겨울잠 깬 개구리들의 힘겨운 봄

조회 수 3812 추천 수 2 2017.03.24 10: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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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간여행자의 아내’에서 주인공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운명을 안고 살아간다. 물론 시간이동은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기후변화는 동물들에게 실제 시간이동에 버금가는 공포를 안겨줄 수 있다. 개구리의 경우가 그렇다.

개구리에게 시간은 곧 기후다. 온몸으로 받아들인 날씨와 기온, 습도 정보로 산란시기와 동면시기를 결정한다. 지난 1월 초 남부지방의 평균기온은 5도를 넘었다. 1월 8일, ‘봄이 왔구나’ 생각한 남부지방 개구리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알을 낳았다. 그러나 사흘 뒤 한파가 찾아와 기온이 10도 가까이 떨어졌다. 개구리 입장에서는 봄에서 겨울로 시간이 역행한 셈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007년 4차 보고서에서 기후변화 탓에 양서류가 2020년이면 멸종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개구리를 만나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개구리가 한겨울에 알을 낳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양서류 전문가인 서산중앙고 김현태 교사와 함께 개구리의 힘겨운 봄맞이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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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시 한 습지에서 촬영한 북방산개구리 알. 수면 위로 희끗희끗하게 보이는 부분은 알이 언 것이다. 오른쪽은 정상적인 알.



◆수면 위로 나온 개구리알에 살얼음이 



“이상하네… 왜 이것밖에 없을까요.” 

경칩(3월5일)을 일주일 앞둔 지난달 26일. 월출산 도갑사 인근 계곡을 들여다보던 김 교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난해에는 그래도 북방산개구리알이 이곳을 웬만큼 덮었는데, 올해는 반의 반도 안 된다”는 그의 설명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는 국립생물자원관 외부연구원, 한국양서파충류보존네트워크 모니터링위원장 등을 지냈고, ‘한국의 양서파충류’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12년째 전국을 돌아다니며 양서파충류의 생태를 기록하고 있는 김 교사는 “해가 갈수록 개구리가 눈에 띄게 준다”며 “여기는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 아닌데도 왜 이렇게 줄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개구리 등 양서류의 개체수 감소를 부른 유력한 용의자는 기후변화다.

김 교사는 “지구 온도가 꾸준히 오르기만 하면 모르겠는데, 기온 변동성이 너무 심해져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상고온과 이상한파가 반복해서 나타나게 되면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치명적이다.


북방산개구리 알은 물밖에서 보면 투명하고 동그란 젤리가 얕게 물 위를 덮은 것 같지만, 물 위로 들어올리면 그 밑으로 약 15㎝나 되는 덩어리가 포도송이처럼 딸려 나온다. 알이 물속에서 산소를 공급받게 하려는 전략이다. 그런데 갑자기 한파가 닥치면 물이 얼면서 알덩어리도 덩달아 얼어붙는다.

1월 초 남부지방 북방산개구리가 낳은 알도 대부분 동사를 면치 못했다. 지난달 26일 도갑사 계곡에서도 살얼음이 낀 북방산개구리 알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북방산개구리 암컷은 1년에 한 번 알을 낳는데 이렇게 얼어죽는 알이 많아지면 그만큼 개체수가 줄 수밖에 없다. 

용케 부화해 개구리가 된다 해도 굶어죽기 십상이다. 날이 완전히 풀리기 전에 성체가 되면 작은 곤충 같은 먹잇감을 찾기 힘들어서다. 김 교사가 계곡 언저리에 마치 설원의 스키 자국처럼 찍힌 두 줄을 가리켰다.

“저기 저 자국은 밤새 멧돼지가 밤에 훑고 지나간 자리예요. 개구리 같은 양서류는 새끼(알)를 많이 낳습니다. 다른 동물한테 (새끼나 알이) 충분히 잡아먹혀도 약 3% 정도는 살아남아 번식하는 생존전략이지요. 너구리와 멧돼지, 산새 등 종의 다양성이 유지되려면 양서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기후변화보다 더 무서운 인간

도갑사에서 북쪽으로 약 250㎞를 달려 이번에는 충남 예산군 남연군묘 주변 논을 찾았다. 김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2007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개체수 조사를 벌이는 곳이다.

산비탈에 조성된 논은 길가에 가까운 위쪽과 조금 떨어진 아래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래 봐야 거리가 몇 m에 불과해 기온·습도에 차이가 날 리가 없는데도 개구리 울음소리는 유독 아랫논에서만 들렸다. 김 교사는 “(가야산이 있어) 등산객이 많이 다니는 저 위쪽의 개구리들은 낮에 돌 밑에 숨어 있다가 사람이 없는 밤에 나와 운다”며 “기후변화도 문제이지만 더 무서운 건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특히 식용으로 북방산개구리를 잡아대는 탓에 씨가 마를 지경이라고 했다. 개구리를 통째로 고아 만든 개구리즙 한 포에는 보통 개구리 3마리가 들어가는데,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중국산보다는 국내산 개구리즙이 더 비싸고 인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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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방산 개구리



북방산개구리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에 따라 산에서 잡아 먹는 것이 금지된다. 양식 허가(인공증식)를 받아 길러 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개구리는 살아 움직이는 벌레를 먹기 때문에 먹이 값이 워낙 비싸 양식업자 중에는 허가만 받아놓고 산에서 잡아다 파는 경우도 많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개구리 불법포획 단속은 사실상 전무하다. 충남지역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개구리는 올무 같은 도구를 써서 잡는 게 아니어서 단속이 어렵다”며 “우리 군(郡)을 포함해 개구리 포획 단속을 벌이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개구리 포획은 1∼2월이 피크다. 계곡이나 산사면에서 동면 중인 개구리를 한번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잡은 개구리는 그대로 냉동됐다가 즙이나 탕이 된다.

이래저래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은 개구리들은 “아∼ 잘 잤다!” 대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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