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웅 시인

조회 수 4003 추천 수 1 2017.05.01 07:49:02

                                                                          “바람없는 날에도 뜨는 연”
                                                                              (김신웅 시인의 시와 인생)
                                                               

                                                                                                                                       고영준

                                                                                                                                   (시인. 목사)
                                   
이 감상 평설은 시집 [바람없는 날에도 뜨는 연], [사랑을 위한 평균율], 그리고 다른 문예지에 발표된 김신웅 시인의 인생 여정과 그의 작품을 읽고 필자 나름대로 간략하게 정리해본 것입니다.
김신웅 시인을 생각할 때면 나는 늘,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가리]를 유고작으로 남긴 토마스 울프를 생각합니다. 김 시인이 군사정권 아래서 해직기자가 되고, 한국문단의 추천제도를 거부하며 절필을 하고, 갯벌에 매였던 나룻배가 풍랑에 떠밀리듯 이민길에 올랐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울프의 이 작품을 번역한 윤시원 씨가 서문에서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울프의 문학주제는 ‘뿌리뽑힌 자의 고독과 방황’이라고 했기 때문인 듯싶습니다. 김 시인의 많은 시에는 ‘뿌리뽑힌 자의 고독’이 범람하고 있거든요. 이 고독에는 절망적인 그리움과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혹은 환희를 기다리는데 허무의 정체가 나타날 것 같은 암울한 기다림이 담겨 있지요.
 
 늘 그리는 마음으로 따르는 그림자
 한밤중에도 머리맡에서 흔들어 깨우며
 가슴 속 낙숫물 소리 들으라 하네
 .......
 기다림에는 끝이 없고
 하나씩 덜어져가는 꿈 광주리 비워지면
 가릴 부끄럼도 없이 드러나는 가슴
 가지마다 헐벗은 나무로 서서
 환청 듣기만 하네 듣기만 하라네
               <고이는 그리움으로> 부분


김 시인은 무엇을 그처럼 그리워하고 누구를 그처럼 애타게 기다리기에,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부끄러워 나설 수 없는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가슴으로 우는 자기 울음을 환청으로 듣는 것인가.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전설 같은 고향 때문인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얼굴의 조국을 기다리는 것인가? 아니면 꿈이 비워지고 난 자기 정체에 대한 상실 때문인가?’


떠밀려 온 배는 다시 떠나지 못했다
풍랑에 얹혀와 처박힌 고물에
그날의 큰 파도에 찢긴
만선의 꿈
그 때 그 바람으로 가슴에 뚫린
배밑창으로 솟구치던 물길
물려질 가난으로 길을 내 
바닷길 어지럽게 펼쳐 있다
바다색조차 병들어 슬퍼보인다
                                            <슬픈 바다색> 전문


떠밀리다시피 조국을 떠나온 김 시인의 가슴은 뻥 뚫려버렸고, ‘떠밀려 온 배는 다시 떠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풍랑에 얹혀와 처박힌 고물에... 파도에 찢긴 만선의 꿈’은 사라져 갑니다. 그래서 “바다색조차 병들어 보인다”고 합니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지만 돌아가기 싫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가 그리운 이들을 만나고도 싶은 고국. 나이 들어 아픈 눈으로 바라보니 바다색조차 병들어 보입니다. 그러나 김 시인은 이민지에서 하나님을 만나지요.
토마스 울프에게 고향은, 과거의 다른 이름이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회상이요, 어린 날의 추억과 사랑의 상징입니다. ‘유년시절을 지배하고 지금도 덧난 생채기로 남아 있는 고향’, ‘부모·형제에 대한 정 못지않게, 또한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 못지않게 지독히도 강렬한 불꽃이 고향을 향한 사랑이다’라고 하는 울프의 말은 김 시인의 시행에서 쉽게 찾아집니다.


 까치가 철탑 위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한동안 아무일이 없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왔습니다
 이윽고 그 철탑둥지에서
 까치가 날고
 까치새끼가 날기 시작하였습니다
 철탑 위 그곳이
 내 고향입니다
       <까치 둥지> 전문


철탑 위 둥지는 까치의 고향인데 시인은 “내 고향”이라 합니다. 까치는 돌아갈 수 있어도 ‘나’는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실로 우리 현대인에게 있어 고향은 산업사회의 광기가 훼손한 폐허에 지나지 않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은 있습니다. 특히 시도 때도 없이 망향병이 도지는 “뿌리뽑힌” 객지 사람들에겐 먼 기억 속의 전설이 되었지만, 행복했었건 불행했었건 그건 때묻지 않은 고운 정서로 남아 있거든요. 그것이 때로는 사람을 어떤 구원으로 인도하지요.
고은 시인은 <까치둥지>를 접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50년 전 나와 함께 시를 지어 서로 돌려가며 읽던 벗이 보내온 것이다. 하필 철탑 위에 지은 까치 둥지를 노래한단 말인가. 도시 혹은 도시문명 속에 살아가는 생명이 더 절실함인가.”
또한, 김신웅 시인의 시에는 ‘뿌리뽑힌 자’가 되어 ‘떠밀리듯 고국을 떠나온 디아스포라’의 서정이 시행마다 녹아 있습니다. 기다림이지요.
 
 기다려라
 그래도 기다려라
 그래서 안 되어도 참아라
 기다리고 참아도 안 된다면
 그리워 할 수밖에
 그러다 지쳐도 그대로 기다려라
 .......
                                              <사랑의 십진법> 중 부분
 
 .......
 사랑에는 되풀이가 없습니다
 언제나 새롭게 있어야 합니다
 사랑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지름길로 가다가는 길을 잃게 됩니다
 .......
 사랑에는 헤어짐이 없습니다
 기다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연습이 없다> 중 부분


‘멀리 떨어져 있어 더 맑은 정’이 그립고, 세상 떠나기 전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감감한 그날에 대한 절망적인 기다림이 애틋합니다.

기다림은 일반적으로 그리움을 동반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이든 사건이든 현실로 그 그리움의 정체와 조우했을 때 그리움만큼

 행복할 것인가, 그리워했던 만큼 실망할 것인가. 기다림은 기다림 자체로 내 안에서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무엘 베켓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생각납니다. 혹 이 연극을 보신 적 있나요?
막이 오르면, 무대 위에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희곡에도 ‘시골 길, 나무 한 그루, 저녁때’, 이 세 마디만 쓰여 있지요. 그리고 나지막한 풀 무덤 위에 앉아있던 에스트라공이 장화를 벗으려고 애쓰다가 잘 안 벗겨지자 “되는 일이 없어” 하면서 그만둘 때 불라디미르가 등장합니다. 둘은 거기서 고도(Godot)를 기다립니다. 어디에서 오는지, 왜 오는지, 언제 오는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그러나 온다는 고도는 오지 않고, 그렇다고 별다른 사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염려하는 인간이 가지는 ‘근본적인 기분(basic mood)’을 권태라 부르지요. 그 구조는 ‘붙잡고 있음(sustained)' 이자 동시에 ’공허 속에 놓아둠(empty transmitting)'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붙잡고 있을 뿐이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어느 초라한 기차역에서 누군가 빨라야 네 시간이 지나서야 오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 그는 기차 시간에 의해 붙잡혀있으면서 동시에 공허 속에 놓여있는 셈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느끼는 존재구조라는 것이지요. 요즘은 스마트폰이 있으니 권태스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러나 꼭 그 기차를 타야하는데 10년, 아니 30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면?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 En attendant Godot, Waiting for Godot]는 하이데거가 제시한 바로 ‘예사롭지 않은 권태’에 관한 문제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희곡입니다. 이 작품 속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Vladimir)와 에스트라공(Estragon)은 ‘고도를 기다리는 일’에 붙잡혀 있으면서도 동시에 공허 속에 놓여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연극 내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시간 죽이기’를 하지요. 두 사람은 아무래도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다가 퇴락해갑니다.
인간은 주어진 삶에서 겪는 구조적 허무(권태) 혹은 부조리로 인해 불라디미르나 에스트라공처럼 퇴락해 가거나 까뮈의 시지프스처럼 반항함으로 승리하는 존재(실존)가 되기도 하지요. 그런데 크리스천은 “고도”가 아니라 “인자”를 기다리고, 퇴락해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없는 날에도 연을 띄우므로 날로 새롭게 변화하는 존재가 됩니다.
니체처럼 ‘의미 없는 존재이기’에 의미를 만들고, 부조리하기에 정의를 찾으며, 부도덕하기에 도덕을 찾아 고독한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 대부분은, 특히 예수는 그렇게 가장 인간답게 실존적으로 살았습니다.
김 시인에겐 <바람없는 날에도 뜨는 연>이 있지요. 보람 없고 바람(소망) 없는 사막에서의 날들에도 김 시인은 시연(詩鳶)을 하나님께 띄웁니다.

 .......
 가슴에 뜨는 내상內傷
 해금 奚琴 소리에 태워
 바람 없는 언덕에 뿌린다
 바람 없는 날에도 띄운다
                                         <바람없는 날에도 뜨는 연> 부분


김 시인은 군산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토요동인회>에 가입하여 시를 발표했고, 거기서 송기원, 신석정, 최영, 고원, 김수영, 고은 시인 등 당시 한국현대시의 선구자들과 교분을 쌓게 됩니다. 그 후 <정의여고> 교사 및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다가 1980년 대에 해직기자가 되었고, 결국은 사랑하는 조국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민길에 올랐습니다.


어둠 속 헤매다
밝는 새벽
부신 빛 아니어도
창호지 뚫고 비치는
기쁨에 취한
눈물에 담긴 빛으로
향기로운 예물
희생의 제물되어
마음 속 강 
가슴의 바다되어 
씻기시고 맑히심으로
넘치는 은혜로 채우시다  
       <빛의 열매> 전문


위의 시, <빛의 열매>는 김 시인이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에도 끝까지 시심을 잃지 않고 활동하다가 주님을 만나고 그의 은혜를 찬양하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사람을 제외한 모든 기식있는 것들은 태양 에너지에 의해 열매를 맺지만, 인간은 영적인 빛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거든요. *


김신웅.png


약력:

*金信雄  Kim Shin Woong,

 50연대토요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와시론>으로등단. 정의여고 교사. 중앙일보 기자.

1980년 해직기자.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원로회원.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재외동포문학상. 가산문학상. 미주시인상. 해외문학 대상 수상.

미주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이사장 역임.

시집:<대합실>(1958),<바람없는 날에도 뜨는 연>(2002),<사랑을 위한 평균율>(2013)

         <질때도 필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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