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내게 가장 큰 적은 '게으름'.. 시국 상관 없어"
한국일보 이윤주 입력 2017.08.14. 04:42 수정 2017.08.14. 07:31
'5년 만에 도가니' 100쇄 돌파'
새 장편소설 ‘해리’ 집필에 들어간 공지영 작가는 “도가니의 배경이 된 ‘무진’을 다시 한번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한국의 문화상품 중 가장 완전경쟁에 가까운 시장에서 거래된다. 작가는 출신, 학력, 나이를 가린 블라인드 테스트로 데뷔하고, 전작의 상업적 성공과 무관하게 책값의 10%를 인세로 받는다. 해외 상품(번역된 외국 소설)과 똑 같은 환경에서 경쟁하는 거의 유일한 문화상품이다.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시장에서 30년간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가 있다. 장편소설 11권 중 6권이, 산문집까지 포함하면 도합 7권이 100쇄를 넘긴 공지영이다. 그의 ‘100쇄 에디션’에 한 권이 더 추가된다. 2009년 첫 출간해 83만부가 팔린 장편 ‘도가니’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실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2011년 영화로 만들어진 후 일명 ‘도가니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장애인, 아동대상 성폭행 범죄 공소시효 배제를 골자로 장애인 성폭력에 관한 처벌을 대폭 강화했다)의 발판이 됐다.
11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창비 사옥에서 만난 공 작가는 “작가로서 완전 복”이라며 “신문에서 ‘OO판 도가니’라고 하는 것처럼, 단어 뜻을 새로 만들게 된 기쁨이 있다”고 말했다.
-100쇄 출간 소감은
“100쇄 낸 책을 세 봤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착한 여자’, ‘봉순이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즐거운 나의 집’, 에세이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이 책이 여덟 번째인데 100쇄를 기념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100쇄가 드물어졌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다른 책들은 출판사 옮겨 다니며 100쇄 찍었는데 이 책은 한 출판사(창비)에서 나왔다.”
-100쇄는 개정판으로 나온다. 다시 손본 데 있나?
“책 내고 나면, 보기 싫어 이번에도 다시 안 읽었다. 쓸 때 1,000번도 넘게 읽어서 외운다. 내 작품 4,5줄 읽어주고 어떤 상황인가 물어보면 다 맞출 수 있다. 아무리 오래된 소설이라도. 괄호 넣기도 할 수 있다. 근데 이런 걸 표절하면 너무너무 화가 나는 거다. 1,000번도 넘게 읽어가며 고칠 게 있나 고민한 걸 뚝 떼다가 자기 거라고 쓸 때, 엄청 화가 나는 거다”
-최순실 국정농단 때 류철균 이화여대 교수 연루된 거 보고 감회가 새로웠겠다(류 교수가 1992년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는 공지영,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일었고, 류 교수는 의혹 제기 이후에야 자신의 소설은 다른 작품을 2차 텍스트로 만든 ‘혼성모방 기법’이라고 주장하며 원작을 밝혔다).
“그래서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14년째 사형수 면회 가지 않나. 그 사형수 옆방으로 (류철균 교수가) 왔다고 하더라. 진짜 신기했다. 사형수가 잘 해줬나 보더라. 집행유예로 바로 나가고 나서 며칠 후에 너무너무 고마웠다고, 면회 왔다고 한다"
데뷔 30년 ,소설 도가니 110쇄 출판한 작가 공지영씨가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빌딩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이 작품 반향이 컸다.
“피해자들이 어리고 장애인이라서 심하게 당했지만, 회복도 빠르다. 키가 1년에 16㎝씩 큰다. 오늘 기쁜 소식 들었다. 피해자 중 3명이 1급 바리스타 시험 보기 위해 공부한다고. 이 책 나오고 ‘카페홀더’라는 사회적 기업 만들었는데 개업, 기념식 때마다 간다. 갈 때마다 애들이 잘생겨지고, 반듯해진다고 할까. 난 이것만으로도 천국에 갈 거 같다(웃음). 다른 나쁜 짓 해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인데 취재는 어떻게 했나.
“작가마다 다 다른데 나는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 전부 찾아 프린트한다. 온갖 관련 책도 다 사는데 보통 30~40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쓸 때는 150권 정도 읽었다. 그걸 다 읽으면 머릿속에 사건이 대충 그려진다. 거의 모든 사건이 여기서 나오고, 어떻게 소설 쓸 거 인가까지 나온다. 구술 서 말을 얻은 거다. 취재는 현장 냄새와 분위기를 보러 가는 건데, 현장에서 얻는 구술은 삼백 개가 안 된다. 물론 아주 중요한 거지만. 이걸 어떤 실로 어떤 모양으로 꿸지, 그러니까 누구를 화자로 삼고 어떤 방식으로 전개할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게 제일 어렵다. 바늘 딱 들고 첫 구슬 꿸 때가. (‘도가니’는) 취재 다 해놓고 그게(주인공) 안 정해져서 살이 몇 ㎏가 빠졌던 거 같다.”
-스트레스 받으면 살이 빠지나?
“좋은 스트레스 받으면 살 빠지고, 나쁜 스트레스 받으면 살찐다. 다시 말해 일로 스트레스 받으면 살 빠지고 사람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생기면 먹어서 찐다(웃음). 우연히 그 학교에서 해고된 농아 선생님을 만났는데 기간제 교사라는 걸 처음 알았다. ‘이 기간제 교사를 비장애인으로 만들어 꿰면 되겠다’ 정하고 나서 굉장히 쉬워졌다. 몇 달 동안 하루종일 그 사건만 생각하고 있으면 하늘이 복도 내려주는 거 같다. 주파수에 따라 고음, 저음들을 수 있는 청각장애인이 있다는 것도 현장 가서 알았다. ‘연두(소설 속 피해자인 청각 장애인)가 법정에서 조성모 노래 들었다는 장면을 클라이맥스에 넣자’는 영감이 생겼다.”
-이 책이 독자의 어떤 지점을 건드렸다고 생각하나?
“영화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웃음). 가끔 영화 보다가 원작이 보고 싶어지지 않나. 영화는 금방 촌스러워지는데 원작은 향기가 있으니, 그래서 보는 거 아닐까.”
소설 '도가니' 속 강인호, 서유진 중 어떤 인물에 가깝냐는 질문에 작가는 서유진을 꼽으며 "앞에 나가서 열심히 싸우진 않았을지 몰라도, 못 떠났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작가가 14년 간 사형수들을 만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햇수로 30년째 활동하고 있다. 그 사이 독자 취향 많이 바뀌었을 거 같은데.
“독자 취향이 바뀌었겠지만 나는 내 맘대로 한다. 다행히도 내 관심사가 사람들한테 어필하는 거 같다. 그 이유를 하도 질문 받아서 나도 생각을 해봤는데, 내가 권력 편에 안 붙어서 그런 거 같다. 권력 있는 어르신, 출판사하고만 놀았으면 완전 밥맛이었을 거 아닌가. 내가 그런 분들 기린아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맨 처음에는 안 만나주니까 그렇게 살았는데, 좀 있다 보니까 내가 행운아구나, 생각했다.”
-작가 개인의 관심사를 택하지만, 독자한테 잘 읽히게 써야 한다고 고민은 하지 않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걸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여기에 관심 많은데 그걸 사람들은 대중성이라고, 나는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예전에 내가 외국 있을 때 막내가 학원 안 갔다고 연락 와서 애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가 없을수록 네가 시간을 잘 지켜야... 네 자존심 아닌가?’ 이 말을 할 때까지 백 마디 잔소리를 참고 애가 자극 받는 말을 어떻게 한마디로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나는 이런 게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5년 더 좁히면 문학시장이 줄어든 거 같다.
“체감한다. 올 봄 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내고 베스트셀러 1위 올라간 적 있는데 판매량은 굉장히 다르더라. 그리고 예전에는 한번 올라가면 쭉 베스트셀러 유지했는데 얼마 못 가더라. 읽는 방식이 달라져도 책은, 텍스트는 영원할 거라고 보는데, 문학은 위기 같다.”
-그 분야에서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고민은 없나.
“가장 큰 적은 독자나 출판시장의 흐름보다 내 게으름이다. 나는 정말 재미있는 소설 써보고 싶다. 이제 촛불집회도 그만하니까. 머릿속에 구상하는 장편이 4,5개 있는데, 구슬 꿸 시간이 없다. 노는 게 재미있어서(웃음). 체력도 떨어지고, 애들도 크고 하니 점점 게을러지는 거다.”
-소설 안 나오는 이유가 시국하고 상관 없는 거였나.
“시국이 무슨 상관? 옛날에 시국 안 좋을 때도 돈 필요해서 썼는데(웃음). 시국이 뒤숭숭하니 독서가 분산되더라. 내 평생 처음으로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터진 날부터 대선까지 책을 거의 못 읽었다.”
-평소에는 얼마나 읽나?
“한 달에 50권을 넘게 사서, 거의 다 본다. 구술을 모으는, 직업적 투자다. 온갖 잡독을 하는데, 항상 빼놓지 않고 읽는 게 전문가들의 에세이다. 취재를 엄청 절약시켜준다.”
-2012년 대선과 지난 대선에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문재인 정부 정책은 마음에 드나?
“믿고 맡기고 싶다. ‘교양 있는 시민’으로 관심 가지면서 편하게 내 일 하면 될 거 같다. 이 정부 인사로 들어간, 존경하고 친한 분들의 희생정신에 감사드린다. 그분들도 다 놀기 좋아하는 분들인데 얼마나 힘들까 싶다.”
-문재인 정부 인사로 발탁되면?
“이 정부가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절대로 안 부른다. 걱정하지 마시라.”
-여성학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바람직한 가부장 모습을 보이는 한편 성소수자 결혼을 반대하는 등 성을 보수화시킬 거라고 본다. 김정숙 여사도 기자들한테 화채를 만들어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내조’하는 모습 엄청 보여주지 않나. 가부장제에서 여러 번 탈주한 공지영 작가는 대통령 부부 행보 어떻게 보나.
“대선 때 몸바쳐 (트위터에 문재인 후보 기사) 리트윗했다. 노무현 정부 때 뉴스 안 보고 정치에 관심 없었던 부채의식 때문이다. 그때 몇 가지 (기사 리트윗) ‘안 하는’ 원칙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후보 부인들에 관한 기사를 리트윗하는 것이다. 나는 (가족을 정치에 활용하는 것) 아주 싫다. 내 딸이라도 싫을 거 같다. 나는 물론 안하고. 그런데 이건 작가 개인의 생각이고. 이분들은 어차피 국민 과반수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이라서, 어쩔 수가 없는 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여성관을 믿는다. 한 가지 진보한 건 마지막에 따님이 유세에 한번 나왔지만 아드님이 끝까지 안 나왔다는 거다. 이렇게 한발자국씩 가야 하는 거 같다. 그리고 그 나이에 남편 그렇게 좋아하면 인정해줘야 된다. 존경이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데, 이건 ‘~이즘’이 들어갈 문제가 아니다. 내가 그런 남편 안 만난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대답은 노코멘트다. 김정숙 여사한테 우리나라 페미니즘을 위해서 남편 덜 좋아하고 당신 일을 가져라, 그럴 수도 없지 않나.”
-올 봄 소설집 출간 간담회에서 “이제 나이도 있고 점잖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위선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내가 1963년 1월 생이다. 건강하게 사는 게 20년도 안 남았다. 책을 그렇게 많이 썼는데도 지난 20년이 쏜살같이 지나가 화가 나는데, 어른들은 남은 20년은 더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난 내 맘대로 살 거다. 대통령 선거 나갈 것도 아니니까. 싫은 사람 싫다고 하고 좋은 사람 좋다고 하면서. 독자가 나한테 돌 던지면 그만 쓰면 되지. 애들도 다 키워놨는데. 위선을 떨겠다는 건, 이제 고소는 그만 당해야 할 거 아닌가. 아, 며칠 전에 무혐의 판결 나왔다. 2년 반 끌다가 정권 바뀌고. 꼭 써달라.”(공 작가는 2015년 7월 페이스북 자신의 계정에 전직 신부의 공금 횡령 의혹을 폭로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꿈이 있다면.
“좋은 동화를 꼭 쓰고 싶다. 어릴 적 그렸던 그림도 다시 그리고 싶다. 더 궁극적인 건 자유롭게 살고 싶다. 글 쓰든 안 쓰든. 얼마 전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무덤 갔다. 거기 써 있는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처럼 사는 게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