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식품 안전" 신뢰 깨졌다…위기관리 능력·투명성도 논란
기사입력 2017-08-16 19:59 기사원문
'살충제오염 계란' 파문으로 부실한 식품안전정책 민낯 드러나
안일 대응·책임 떠넘기기…EU는 권한 없어 회원국에만 의존
(브뤼셀=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그동안 유럽은 식품에 대한 높은 안전기준으로 전 세계로부터 신뢰를 받아왔지만 최근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 강타한 '살충제 프로피닐 오염 계란 파문'으로 유럽의 식품안전정책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폐기되는 살충제 피프로닐 오염 계란 [연합뉴스 자료사진]
필수 식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계란의 프로피닐 오염 가능성이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회원국은 이에 안일하게 대응한 것은 물론 쉬쉬하면서 감춘 가운데 수습하려고 급습해온 것으로 드러나면서 위기관리 능력과 정책의 투명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더욱이 유럽연합(EU)은 식품안전경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식품안전에 관한 모든 조치 권한은 회원국에서 맡고 있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회원국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식물기구'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6일로 유럽에서 피프로닐 오염 계란 파문이 발생한 지 3주째 접어들고 있지만, 유럽인들은 아직 파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슈퍼마켓의 판매대에서는 피프로닐에 오염된 계란 수백만 개가 회수돼 폐기되고, 오랜 기간 피프로닐에 오염된 100만 마리 이상의 산란계가 도살 처분됐지만 계란을 원료로 가공한 식품에서도 피프로닐 오염 사실이 확인되면서 2차 오염에 대한 우려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15일에는 벨기에의 7개 병아리 부화장에서 보관하고 있던 계란에서도 피프로닐이 검출돼 이를 폐기하고 부화장을 폐쇄하는 일이 이어졌다.
벨기에 당국은 검출된 피프로닐 오염 수준이 낮아서 소비자들에게 위험은 없다고 강조했지만, 부화장에 보관된 계란에서도 피프로닐 오염이 확인되면서 이번 파문의 끝을 속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피프로닐 오염 계란 파문에 휩싸인 나라는 벨기에와 네덜란드, 독일을 비롯해 스웨덴,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덴마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17개국이다. 또 아시아의 홍콩도 유럽에서 피프로닐에 오염된 계란이 수입된 것이 확인됐다.
이처럼 사태가 커진 것은 무엇보다도 피프로닐 오염 계란이 처음 발생한 국가들이 적극적이고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아 파문을 키웠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피프로닐 오염 계란은 지난 6월 2일 벨기에의 한 농장에서 처음 발견됐다. 그렇지만 벨기에 당국은 50일 가까이 이를 공개하거나 EU에 통보하지 않고 쉬쉬해왔다.
검찰의 수사를 위해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벨기에 당국은 해명했으나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로 인해 EU는 식품안전경보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벨기에 당국이 피프로닐 오염 계란을 통보해온 7월 20일이전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이에 앞서 네덜란드 정부는 작년 11월에 식용 가축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된 피프로닐이 닭 농장 방역작업에 사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사실이 벨기에 정부의 폭로로 드러났다.
네덜란드 당국은 당시 보고서에는 계란이 피프로닐에 오염됐다는 언급은 없었다며 책임 피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스페인 소비자협회인 '행동하는 소비자'의 루벤 산체스 대변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EU 회원국들이 피프로닐 오염 계란에 대해 뒤늦게 통보해와 EU와 비 EU 회원국들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잉마르 스트리즈 독일 소비자연맹 대표도 언론 인터뷰에서 "벨기에와 네덜란드 당국이 이번 사태에 너무 늦게 대응하고 EU 경보시스템에 정보를 매우 늦게 제공했다"면서 "두 나라 당국은 이번 파문을 너무 형편없이 다뤘다"고 비판했다.
루마니아의 한 양계장에서 사육하는 닭들 [연합뉴스 자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