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빠진 사람들 / 고두현

조회 수 1922 추천 수 1 2017.09.22 09:16:28

                                                                 정원에 빠진 사람들   / 고두현 논설위원
                                                      한국경제 .A31면1단| 기사입력 2017-09-23 00:20 기사원문[천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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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庭園)의 뜻은 동서양 모두 비슷하다. 한자의 ‘동산 원(園)’이나 영어의 가든(garden), 프랑스어 자르댕(jardin), 독일어 가르텐(garten) 등이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의미한다. 이상향을 뜻하는 낙원(paradise)의 어원도 ‘울타리 속의 즐거운 장소’다.


정원의 역사는 지역이나 문화 특성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다. 스페인은 이슬람풍의 알함브라 정원 같은 중정식 정원 문화를 꽃피웠다. 중국은 쑤저우(蘇州)의 졸정원(拙政園)처럼 정자·연못·돌의 인공미를 중시했다. 한국 최고의 민간 정원으로 꼽히는 담양 소쇄원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 일본 교토의 료안지(龍安寺)는 단순·간결미의 상징이다.


정원은 철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숲속에 학교를 세우고 정원을 거닐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에피쿠로스는 밭에서 채소와 과일나무를 키우며 정원수업을 했다. 학교 이름도 ‘가든 스쿨’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의 회심(回心)을 통해 진정한 신앙에 눈을 떴다.


작가들은 정원에서 영혼의 안식과 영감을 동시에 얻었다. ‘정원사 헤세’로 불린 헤르만 헤세는 두 번의 전쟁과 망명을 겪으면서도 이사가는 곳마다 정원을 만들었다. 영국 햄프셔의 시골집에서 평생 식물과 함께 산 제인 오스틴, 미국 버몬트 주의 산속 정원에서 동화를 쓴 타샤 튜더도 ‘정원의 작가’였다.


동양에서는 정원을 선비 정신과 동일시했다. 정조는 창덕궁 후원을 ‘지혜의 샘’이라고 부르며 자주 거닐곤 했다. 사대부들은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을 정원에 옮겨오는 차경(借景) 문화를 즐겼다. 1800년대 후반 서울 4대문 안 정원이 3000여 개에 이를 정도였다. 미군 장교로 한국에 왔다가 눌러앉은 ‘푸른 눈의 정원사’ 민병갈은 태안에 국내 최초의 민간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을 일궜다.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은 20여 년에 걸쳐 고향인 당진에 1만5000평 규모의 ‘마리오 정원’을 가꿨다.


남해 독일마을의 원예예술촌도 유명하다. 약 5만 평에 베르사유궁전풍의 프렌치 가든, 바위와 분수가 어우러진 일본식 화정(和庭) 등의 정원이 모여 있다. 국가정원 1호로 지정된 순천만 정원에서는 오는 29일부터 11월5일까지 갈대축제가 열린다. 여의도에서 어제 개막한 서울정원박람회에도 ‘정원 작품’ 80개가 펼쳐졌다. 이번 주말에는 꽃과 나무와 풀의 향기 속으로 떠나보자. 정원은 생명과 부활, 치유의 상징이다. 서양 의사들은 아스피린 대신 정원 산책을 권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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