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관규여측 (管窺蠡測)
2017-09-28 03:16 조선일보 .A37면2단| 기사입력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운부군옥(韻府群玉)'에 "촉(蜀) 땅에 납어( 魚)가 있는데 나무를 잘 오르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낸다. 맹자(孟子)가 이를 몰랐다"고 썼다. '오잡조(五雜俎)'에는 "지금 영남에 예어(鯢魚)가 있으니 다리가 네 개여서 늘 나무 위로 기어오른다. 점어(鮎魚)도 능히 대나무 가지에 올라 입으로 댓잎을 문다"고 했다.
맹자가 '되지 않을 일'의 비유로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는다는 연목구어(緣木求魚)의 표현을 쓴 일이 있다. 혹자는 이 물고기들의 존재를 진작 알았더라면 맹자가 이 같은 비유를 쓰지 않았으리라 말한다. 윤기(尹愭·1741~1826)는 상리(常理)를 벗어난 예외적 경우로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관규여측(管窺蠡測)의 소견으로 함부로 남을 논하는 것이 모두 이 같은 종류다. 그 폐단은 마침내 반드시 연석(燕石)을 보배로 보아 화씨(和氏)의 박옥(璞玉)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거나, 산계(山鷄)를 귀히 여겨 봉황이 상서롭지 않다고 비방하는 데까지 이른다.(世之以管窺蠡測之見, 妄論他人者, 皆是類也. 其弊終必至於寶燕石, 而謂和璞可棄, 貴山雞而詆鳳凰非瑞.)" '한거필담(閒居筆談)'에 나온다.
관규여측은 대롱의 구멍으로 하늘을 살피고, 전복 껍데기로 바닷물의 양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좁은 소견의 비유로 쓴다. 연석(燕石)은 옥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냥 돌이다. 송(宋)나라 사람이 보옥으로 알고 애지중지하다가 망신만 크게 샀다. 초(楚)나라 행인은 산계를 봉황으로 잘못 알아 큰돈을 주고 샀다. 임금에게 바치려다 산계가 죽자 봉황을 잃었다며 발을 굴렀다.
윤기의 말이 이어진다. "지금 사람들은 조금만 서사(書史)를 섭렵하고 나면 문득 함부로 잘난 체하여 저만 옳고 남은 그르다 한다. 한 편의 기이한 글을 보면 스스로 세상에 우뚝한 학문으로 여기고, 어려운 글자를 외우고는 남보다 뛰어난 견해로 생각한다. 어떤 이는 남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겨 잠시 얼버무려 자취를 감추기도 하고, 어떤 이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뽐내며 과장을 일삼아 명성을 훔친다. 이 같은 무리가 세상에 가득하다." 대롱으로 본 하늘이 오죽하랴. 전복 껍데기로 바닷물을 재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