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뜻 / 황수정

조회 수 2176 추천 수 0 2017.11.09 18:41:00

fall-1432252__340.jpg




                                                        [길섶에서] 가을 뜻/황수정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7-11-10 03:38 서울신문


화단의 감나무는 내내 저 혼자 심심했다. 일껏 올려다봐 준 것은 감꽃 필 즈음 잠시였다. 튀밥 모양의 연노랑 꽃이 온 나무에서 터질 때는 백기투항이다. 겨우 손톱만 한 꽃이 분통 같은 봄볕마저 무색하게 하는데, 그 곁에 오래 서 있지 않고는 못 배긴다.


무심했던 나무 곁에 새삼 붙들리고 마는 때가 또 이즈막이다. 벽공에 박혀 익어 가는 대봉감은 점점이 대낮에 켜진 알전구다. 낙하 직전의 홍시를 한참 보고 있자면 둔한 내 머리에도 삼십촉쯤 백열등이 번쩍 켜진다. 대봉감이 떨어지려는 것은 그냥 다 익어서가 아니다. 짧아 헤펐던 봄꽃의 생애, 비바람 소란했던 풋열매의 시간, 저 너머 겨울의 빈 가지까지 다 기억해서다. 그 기억이 무거워서다.


늙은 은행나무가 온 종일 안마당에서 뒤챈다. 한 움큼씩 열매를 떨궈 놓고는 제풀에 놀라 발 아래 굽어보고, 나는 올려다보고. 바람 한 점 없어도 은행 알들은 무시로 떨어진다. 마음대로 여물어 제멋대로 떨어질 리는 없다.


이만하면 됐다, 제 등을 토닥이며 제 손으로 등짐 벗어 제 발등 위에 내려놓는 일. 비워서 깊어지는 가을의 뜻.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미국 질병예방 통제국(CDC) 강조하는 코로나91 증상과 주의 사항 file 웹담당관리자 2020-03-15 8438 3
공지 문예진흥원에서의 <한미문단> 지원금과 강정실에 대한 의혹 file [6] 강정실 2017-12-15 30662 12
공지 2017년 <한미문단> 행사를 끝내고 나서 file [5] 강정실 2017-12-14 28155 7
공지 미주 한국문인협회에 대하여 질문드립니다 file [9] 홍마가 2016-07-08 48244 12
공지 자유게시판 이용안내 웹관리자 2014-09-27 44809 5
728 틈새시장 찾기 [1] 오애숙 2017-12-11 1850  
727 돈의 시학 [2] 오애숙 2017-12-10 2099  
726 엘에이 장미빛 겨울 나기/은파 오애숙 [3] 오애숙 2017-12-09 1549  
725 Christmas festival [3] 오애숙 2017-12-07 1868  
724 거울 보기 [2] 오애숙 2017-12-07 6925  
723 행동은 이상의 가장 고귀한 표현/은파 오애숙 [2] 오애숙 2017-12-07 2214  
722 재테크 스마트폰으로 편리하게 '은행 서비스 이용하는 꿀팁' 오애숙 2017-12-07 1703  
721 '생강' 냉장고에 오래 보관하는 꿀팁 오애숙 2017-12-07 2600  
720 기쁜 우리 잔치날 file [2] 홍용희 2017-11-30 2418  
719 이육사 새롭게 해석 / 도진순 홍용희 2017-11-28 2261  
718 신춘문예 이렇게 쓰세요 file 홍용희 2017-11-24 2024  
717 포리스트 어브 라이트 ( Forest of Light) file 홍용희 2017-11-23 1584  
716 미당이 남긴 얼룩 홍용희 2017-11-19 1512  
715 다복한 추수감사절 되세요 file 홍용희 2017-11-18 2144  
714 명작의 공간/ 김동인 홍용희 2017-11-16 1975  
713 동리목월문학상 발표 홍용희 2017-11-15 1672 1
712 별빛의 메아리 홍용희 2017-11-14 1772  
» 가을 뜻 / 황수정 file 홍용희 2017-11-09 2176  
710 내가 만난 명문장 / 김별아 홍용희 2017-11-05 2681 1
709 시계, 한 시간 뒤로 돌리세요 file 홍용희 2017-11-04 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