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병탁 평론가

조회 수 2362 추천 수 1 2017.12.01 22:51:43

그리운 토속 언어의 광맥

이광웅의 대밭을 중심으로

 

호 병 탁

(문학박사, 평론가)

 

1

 

노을이 의를 위해 곱고, 달이 예를 위해 밝던가. 꽃 지는 봄날의 쓸쓸함이 오직 나라 위한 근심에서이고, 낙엽 지는 가을밤의 서글픔은 오직 어버이를 애통이 여김에서인가.’ 취옹이 김병연에게 했다는 이 말은 문학이 다른 가치에 종속되지 않고 자기 충족적인 존재를 말하기 위한 수사학적 질문이다. 즉 그 자체로서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는 문학은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란 말에 다름 아니다.

나는 이광웅 시인을 직접 만나 본 일도 대화한 일도 없다. 따라서 나는 인구에 회자되는 그의 고난에 찬 전기적 사실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앞서 말한 문학이 자기 충족적 존재라는 말을 상기하며 그의 이력에 대한 어떤 선입관 없이 스스로 갖추고 스스로 넉넉한그의 작품을 읽어 내고자 한다.

그의 시정신과 인간적 면모는 보석함에서 보석처럼 반짝인다.

 

사시사철을 통하여 별자리가 가장 아름다운 이 겨울밤, 생각나서 열어본 보석함에는 아, 이태까지 같이 살아온, 3년도, 3년도…… 10년보다 더 오랜, 별빛이, 별빛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보다도 더 오랜 윤동주 시인의,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빛이랑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인의 두이노 고성, 고통의 나라…… 더욱 높은 곳의 별들 새로운 별들의 별빛이랑 넘쳐나게 담기어 빛나고 있다. 인간은 이 지상에서 시인으로 살아간다. 시인의 말이 가슴속에 젖어 있어 언제나 눈이 맑은 시인으로 살고 싶어, 추위에 떨고 있는, 겨울밤 하늘을 보석함에 받는다.

-보석함부분

 

겨울밤 하늘은 차고 투명하다. 그래서 사계절 중 별자리가 가장 맑고 영롱하게 보인다. 언젠가 어느 소중한 사람이 보낸 보석함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바로 그 별빛이 가득 차 있다. 그것은 3년도 10년도 더 오래된 별빛인데, 보석함에는 그보다도 더 오랜 윤동주의 별빛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별빛도 넘치게 담겨 빛나고 있다. 시인은 두 선인의 말이 언제나 가슴 속에 젖어 있어그들처럼 눈이 맑은 시인으로 살고 싶다. 그래서 그 보석함에 별들이 가득한차고 투명한 겨울밤 하늘을받아 담고 있다.

보석함의 용도는 보석을 담는데 있다. 그런데 시인은 보석함 안에 별빛을 담는다. 따라서 별빛은, 그것도 겨울밤의 별빛은 아름답고 귀한 보석과 등가를 이루게 된다. 우리는 시인이 윤동주와 릴케가 보는 별빛도 소중하게 자신의 보석함에 담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빛은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서 인용한 시구다. 윤동주는 별을 헤며 그 하나하나에 그립고 소중한 이름들을 붙여 부르는데 그 중 하나의 이름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광웅은 위의 시에서 릴케는 물론 릴케를 부른 윤동주를 동시에 부르고 있다. 윤동주는 1945216, 27세의 젊은 나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짧고 불행한 생애를 살았지만, 특유의 맑고 순수한 감수성과 삶에 대한 고뇌,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극진한 애정이 담겨 있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긴 그는 우리 문학사의 별이 되어 불멸하는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되고 있다.

릴케 하면 떠오르는 게 장미다. 그는 고독과 소외 속에서도 영과 육,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물으며 평생 아름다운 장미 꽃잎 한 장 한 장 떼어내듯 그것들을 언어 안에 잡아두었다. 이광웅이 언급하고 있는 두이노 고성은 릴케의 작품 중 최고 걸작으로 알려진 '두이노의 비가'의 배경이다. "내가 이렇게 울부짖은들 천사의 서열 가운데서 과연 누가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인가?“로 가슴 철렁이게 하는 첫 행을 시작하는 비가다. 아드리아 바닷가 절벽 위에 자리한 두이노 고성을산책하다가 몰아치는 바람이 전해주는 소리를 듣고 쓰게 되었다는 시다. 낭만과 감수성의 대명사인 시인 릴케는 이 시를 끝내고 4년 뒤 192651세로 사망했다.

이광웅은 두 사람의 지순한 결백과 순결한 서정을 사모하고 따르고자 한 것 같다. 따라서 그는 고원의 빛과 바람을 노래하는, “어린 날의 불꽃을 재생시키는, “밤을 헤치고 온 천사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시인의 램프를 밝히고 싶어 했다.(램프의 아침) 그리하여 언제나 눈이 맑은 시인으로 살고자 했던 것이다.

 

 

2

 

이제 이광웅의 성정과 그가 추구하는 시정신이 어느 정도 감이 잡힌 것 같다. 시인에 대한 몇 개의 글이 존재하지만 그의 작품을 밀도 있게 분석·평가한 글을 아직 찾지 못했다. 처음 있는 일이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의 대표작으로 회자되는 대밭에 시선을 집중해보기로 한다.

 

대밭에 살가지 쪽제비 시글시글 댓가지를 분질러놓으며 댓잎사귀 짓이겨놓으며 바스락 소리 밤새 끊어지지 않는 밤이 깊었다. 새암 두덕에 두룸박 소리 긁히고 부딪히고 쌀 씻는 소리랑 큰동세 작은동세 주고받는 목소리 뒤세뒤세할 때까지 한쪽 귀퉁이 이불귀를 끌어 잡아댕겨가며 대밭을 떠내밀며 잠을 설쳤다.

 

사랑채에서 울려오는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무섭고 선보러 오는 사람네의 수다스런 언변 뒤에 감추어 둔 비밀스런 험상들이 무서워서 얼굴에 껌정을 칠하고 대밭을 빠져나가 북산으로 달려나간 큰고모의 안부가 걱정돼서 할머니는 새벽부터 물레질이 잦았다. 새떼가 지나며는 실자새의 윙윙 소리는 퍼지고 퍼져서는 장지문을 다 흔든 후에 벽장문을 다 흔든 후에 부엌에까지 들어가서 새로 회삿물한 부뚜막을 흔들었다.

 

용수를 박고 막 떠온 젖내기를 좋아하는 만주 아저씨가 오는 날은 우리 동네에는 있지도 않은 유태인 무서운 이야기는 끓는 라디오의 군부대신 연설처럼 열기가 올라오고 멀고 먼 옛날 절의사진絶意仕進에 잠적불출潛跡不出하셨다는 할아버지네 할아버지네 지하수처럼 흘러간 애사에 가슴 아파하는 날은 밀밥을 먹으면서 타국 가서 왼 식구가 세한에도 이불 없이 웅숭거리고 뼈 마디마디 곱았다는 사랑방에 들어 어느새이 괭이처럼 코를 고는 오직 아저씨를 위하여서 어머니는 나를 불러 대밭에 가서 술국 끓일 명아주 잎을 따게 했다. 지는 햇빛 속에 바람 소리 속에 섞여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대밭은 나의 상아탑이었다.

 

해방 직후 팔봉 지서장을 살은 육촌 재종형이 인공 때 대밭을 빠져나가 남쪽 어딘가로 도망치던 구름 낀 밤이 있었고 해방되기 전부터 공산당을 해온 오상리 아저씨가 수복 때 대밭을 빠져나가 북쪽 어딘가로 도망치던 추적추적 비 내리던 밤.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고 말짱허니 갠 하늘이 되어 눈부시게 해가 빛났다. 땅거미 진 저녁이 내리면 어느새이 대밭에 자러 들온 참새떼가 짹재르짹재그르 떨어지는 햇빛 받고 시냇물 흐르듯이 끝없이 울어대고 까막까치가 또 끝없이 짖어대고 볼먹은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보태어 자동차의 이 소란은 극한 대낮의 홍수만큼 시끄러운 것이었다. 지금은 없는 그 새 나라의 대밭이 그립다.

―「대밭전문

 

숲이란 자연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자신의 품안에 사는 많은 짐승들과 균제均齊성을 이룬다. 대밭도 마찬가지로 살가지족제비같은 작은 짐승들이 분탕을 쳐도, ‘참새’, ‘까막까치’, ‘부엉이같은 새들이 시끄럽게 우짖어도 언제나 품에 보듬어 안고 그것들을 놀게 해주고 재워준다. 서로 불협화음을 내는 것은 늘 인간들의 몫이다.

첫 연은 그 대밭을 그리고 있다. 작은 짐승들은 댓가지를 분질러놓으며 댓잎사귀 짓이겨놓으며밤새도록 바스락 거린다. 새벽이 되어 작은동서 큰동서가 쌀 씻으러 나와 우물에 두레박 소리 부딪히며 도란거릴 때가지, 대밭의 짐승들이 바스락대며 노는 소리는 화자의 잠을 설치게 만든다.

둘째 연에서 화자의 청력집중은 대숲에서 집 안으로 이동한다. 아침 일찍 기침起寢하셨음을 알리는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사랑채에서 들려오고, ‘할머니의 물레질 소리가 집안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물레질 소리에는 큰고모의 아픈 사연이 있다. 시집보내려고 선보러 오는 사람”, 즉 뚜쟁이의 수다스런 언변뒤에 감추어졌을지 모르는 음모가 두려워 큰고모는 몰래 대밭을 빠져나가도망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딸의 안부가 걱정돼서할머니는 그 걱정을 다스리려고나하는 듯 새벽부터 물레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 소리는 장지문, 벽장문을 흔들고 부엌에까지 들어가서 새로 시멘트 바른 부뚜막까지 흔든다.

다음 연에서 한 집 안의 아침정경은 한 집안의 과거 내력으로 뻗어나간다. “막 떠온 젖내기술을 좋아하는 만주 아저씨가 집에 오시는 날에는 많은 얘기를 듣게 된다. 만주 아저씨라고 불리는 것으로 보아 그는 왜정 때 두만강 넘어 북방의 벌판을 유랑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반도의 변방에 살던 사람들보다는 세상 귀가 틔었을 터이다. 그는 동네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이차대전 중 벌어진 유대인 대학살 얘기도 들려주고, 뜻을 꺾고 벼슬하지 않기 위해 숨어 지냈다는 할아버지 얘기도 들려준다. 타국의 하늘 아래 밀밥을 먹으면서온 식구가 겨울에도 이불 없이 뼈 마디마디가 곱을 정도로 춥게 지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그런 애기 끝, 사랑방에 어느새 괭이처럼 코를 고는아저씨를 위하여 어머니는 화자에게 대밭에 가서 술국 끓일 명아주 잎을 따게 했다.”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대밭은 화자를 가르치는 상아탑에 진배없었다.

마지막 연에서 대밭은 비극적인 민족현대사의 무대로 확장된다. 해방 직후 팔봉 지서장을 하던 집안의 한 사람은 인공 때 대밭을 빠져나가남쪽 어딘가로 도망치고, 해방 전부터 공산당을 하던 집안의 한 사람은 수복 때 대밭을 빠져나가북쪽 어딘가로 도망쳤다. 하나는 인공, 하나는 수복, 똑같은 대밭을 몰래 빠져나가 하나는 으로, 하나는 으로 도망쳤다. 도망은 만나서부둥켜안는 것이 아니라 피해서달아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도망자는 패배한 자이다. ‘승리한 자는 도망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같은 일가친척이 무슨 전쟁을 치렀기에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결과적으로 둘 다 야밤에 몰래 도망쳐야하는 패배자 신세가 되었다. “구름 낀 밤추적추적 비 내리던 밤에 남·북 어디론가 떠나간 그들은 기실 전쟁의 비극적인 희생자들에 불과하다. 두 사람의 뒤 소식은 알 길이 없다. 한국전쟁 당시 죽음은 모두에게 흔한 일상이었다. 특히 두 사람 같은 신분이라면 도망 길에 잡혀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되었을 공산이 크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밭은 구름 끼고 비 뿌리는 밤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허니 갠 하늘이 되어 눈부시게 해가 빛났다.” 저녁이 되면 대밭에 자러 들어 온 참새 떼가 여전히 울어대고 까막까치와 부엉이의 울음소리도 이에 가세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늘 부족함 없는 화해의 관계를 서로 유지한다. 화자는 새들이 깃들어 살던 그런 자연, “대밭이 그립다.”

 

3

 

이광웅 시인 첫 시집의 표제작이기도한 대밭은 대충 위와 같이 읽힌다. 이 시집은 그가 옥중에 있던’ 1985년에 출간되었다. 이 시에서 시인의 일가식구 두 사람이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결이라 할 한국전쟁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교사였던 시인도 바로 그 좌·우의 이데올로기의 대립 때문에, 바로 그것이 빌미가 되어 옥에 수감되는 희생양이 된다. 집안사람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시인도 상치相馳되는 이데올로기를 추종, 찬양, 고무, 동조하였다는 죄목으로 역사의 희생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도대체 이광웅에게 당시의 이 괴물은 무엇이었던가.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한 사회 집단의 사고나 행동 따위를 이끄는 관념이나 신념의 체계가 이데올로기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저 "독일 이데올로기"(1845)에서 처음으로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계급사회에서는 특정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특정 이데올로기를 우세하게 함으로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상호작용을 발생시키고 스스로를 정당화 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성질을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라 부르고 계급적 이해에 따라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에 따르면 계급제도는 반드시 이데올로기를 수반하게 된다,

인민은 역사의 도구로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외적인 힘이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헤겔은 지적한 바 있다. 만일 개인이 외적 힘에 의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존재라면 상황을 바꾸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은 거의 의미가 없다. 바로 이런 점에 대해 마르크스는 비판적이다. 그에 의하면 이데올로기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련의 믿음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허위의식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진정한 의미를 무시했던 20세기 마르크스주의자는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이데올로기의 전형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것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 곳이 한반도다. 민중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외적 힘의 도구가 되어 부여받은 역할 살인, 방화, 납치를 포함한- 을 수행하였다. 정규군은 그들이 싸우다 목숨을 바쳐야 할 대상 이승만이던 김일성이던- 을 정확히 안다. 군의 통수권자에게 충성을 바치는 일은 당연한 군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규군은 상대편의 군, 즉 적군과 전투를 치를 뿐이지 절대로 민간인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큰 실질적 고통과 희생을 낸 것은 지역의 좌파와 우파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그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아니 속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것의 도구가 되어 서로 치고받고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화자의 집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좌파였던 사람도 우파였던 사람도 결국은 같은 대밭을 빠져나가도망쳐야하는 이데올로기라는 괴물의 비극적 희생자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주석적 해석을 붙이기가 꺼려지는 시편들이 있다. 이 시가 그러하다. ‘대밭에서 걷어 올린 여러 무늬들은 시인이 견인한 신선하고 미감 있는 언어들로 환치되어 새로운 의미망을 창출하지만 이해의 걸림돌은 없다. 무늬들은 시인의 사려 깊은 언어의 직조 솜씨를 통해 가슴 뛰게 하는 서정으로 형질이 변화되었다. 민족사의 아픔도 서정의 결로 승화되어 행간 어디에서고 시인이 특정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것 같은 점은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비판적이다. 야밤에 대밭을 빠져나가 남북으로 도망쳐야했던 두 사람은 실상 일제강점기의 울분과 고통을 함께나누고 겪어낸 집안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시인은 그저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겨울밤의 별빛을 자신의 시에 담고자하는 순수한 시인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특정계급이 자신들을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인 이데올로기라는 괴물은 이들 모두의 꿈을 여지없이 짓밟아 뭉개고 말았다.

 

 

4

 

시가 상식적이고 일상적 시간을 다루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럼에도 사건성이 소거된 단순한 일상의 언어화는 아무래도 시적 긴장을 잃게 되고 그런 시는 좋은 시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시인이 범속한 일상과 대상을 치열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이유는 바로 일상의 비일상화로 사건적 서사를 도출하는 데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집 뒤란에 무성하게 흔들리는 대밭은 조국의 시골마을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런 주위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상을 이전과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것, ‘이전과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일상에서의 비일상을 견인하는 능력이다

이 시에서 보는 것처럼 시인은 집 뒤의 대밭에서 사건적 서사를 도출하며 다른 가치와 새로운 시간을 창출해낸다. 그곳이 작은 짐승들이 놀고 새들이 노래하는 곳이라는 서술만으로는 사건적 서사는 발생할 수 없다. 그러나 시인은 그곳을 큰고모가 능동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선택하기 위해 몰래 뛰쳐나간 장소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제 그곳은 가족사가 깃든 현장이 된다. 더 나아가 그곳은 동란 중 집안의 두 사람이 각각 남북으로 방향을 달리하여 몸을 피해야만 하는 민족사의 비극적 현장으로 확대된다. 일상의 평범한 대밭은 철저한 비일상의 사건적 서사가 발생하는 곳으로, 즉 가족의 아픔이, 민족의 비극이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의 현장으로 변모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적 긴장은 팽팽하게 유지되고 독자의 시선은 대밭에서 한 치도 떠날 수가 없게 된다.

또 하나 위 시에서 비상하게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이 있다. 시인의 투철한 모국어 정신에 의한 언어 구사다. 많은 사람에게 호소력을 갖고 선호되는 시는 대체로 모국어의 원형적인 어휘, 생활에 밀착된 기층언어로 이루어진 것이 많다. 대밭에 동원된 언어가 그런 경우다. 특히 이광웅은 이 시에서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지역 방언, 투박하지만 절실한 정감을 주는 직정의 언어를 맘껏 부리고 있다.

새암 두덕에 두룸박 소리 긁히고 부딪히고 쌀 씻는 소리랑 큰동세 작은동세 주고받는 목소리 뒤세뒤세할 때까지의 시구는 그 중 백미다. ‘두덕논 두덩, 밭 두덩, 불두덩하는 두덩의 사투리다. 우묵하게 들어간 곳의 가장자리를 의미한다. 물론 두룸박두레박, ‘동세동서의 지역 방언이다. ‘뒤세뒤세는 나직한 목소리로 정답게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두런두런과 같은 의미에 해당하는 토속어다.

이제 우리는 이른 아침 고향의 우물가에서 아낙의 물 긷는 소리와 그들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쌀을 씻는 정겨운 정경을 생생하게 지켜보게 된다. 그가 구사하는 고유, 토착, 원형의 언어 덕분이다. 공동의 터전에서 공동의 운명을 겪으며 삶을 엮어가는 민초들에게 던지는 시인의 지극한 연민의 시선은 이와 같은 철저한 모국어 정신으로 반짝이며 그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샘 가장자리에 두레박 긁히는 소리도, “쌀 씻는 소리, “뒤세뒤세주고받는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 샘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에는 농촌공동체의 소중한 전통과 친교의식이 짙게 온축되어 있다. 사랑채에서 들리는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 “얼굴에 껌정을 칠하고대밭을 빠져 달아난 큰고모, 할머니의 새벽부터 물레질도 삶의 신산함이 구체화된 정감 있는 언어들이다. 실자새소리, 장지문, 벽장문도 마찬가지다. 실자새는 실이 감긴 얼레를 말함이요, 장지문은 방과 방, 방과 마루 사이에 칸을 막아 끼우는 문이다. 벽장문은 벽을 뚫어 물건을 넣어 두는 곳에 달린 문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제는 듣기 힘든 말들이다. 특히 새로 회삿물한 부뚜막은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말로 -필자의 독서가 부박한 탓이겠지만- ‘회삿물은 이광웅의 시에서 난생 처음 발견한 시어다. 이를 새로 시멘트 바른 부뚜막이라고 했더라면 시적 감흥은 물론 시인이 의도하는 의미조차 크게 퇴색되고 말았을 것이다. 지금 부뚜막에 시멘트를 칠했다면 전혀 대단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60-70년대만 해도 농촌의 부뚜막에는 고운 흙을 물에 개어 바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시 시멘트()와 모래()를 이겨 바르는 회삿물을 했다면 상당히 부엌 단장에 공을 들인 것이 된다. 아마 큰 고모가 시집을 가게 되면 그 전에 도망가고 말았지만- 동네잔치를 벌여야 함으로 큰 맘 먹고 새로회삿물을 했을 것이다. 사돈집에는 물론 동네 사람들에게 한 번 본때 나는 광을 보여주려는 순박한 속셈도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이에는 시집가는 딸을 생각하는 가난한 부모의 애틋한 정성이 깃들어있다. 시멘트와 회삿물은 같은 사물을 지시하고 있지만 그 내포된 함축의 의미는 천양지판이다.

용수를 박고 막 떠온 젖내기를 마다할 술꾼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명아주의 어린 선홍색 잎으로 끓인 술국싫어할 술꾼이 또 어디 있으랴. 맛깔스런 토박이말의 광맥을 찾고자 쏟아 붇는 시인의 공력은 그만큼 시에 호소력을 배가한다. 술국만 끓는 게 아니다. “끓는 라디오가 눈에 띤다. 지지직대며 잘 들리지 않을 때 라디오가 끓는다고 말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끓는유성기, ‘끓는라디오, 얼마나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우리만이 표현할 수 있는, 어떤 외국어로도 직역될 수 없는- 모국어인가.

시인은 지역의 관습적 어법을 그대로 시에 사용한다. ‘로 발화된다. 따라서 잡아당겨잡아댕겨가 되고 말짱하니말짱허니로 쓰고 있다. 앞에서 보는 다양한토속어의 구사와 함께 이런 어법의 채택은 강한 친근감으로 우리의 정서를 때린다.

이 시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절의사진絶意仕進에 잠적불출潛跡不出이란 고풍스런 한자어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이 전아한 말은 사랑채에서 들려오는 점잖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와 조화를 이룬다. “지하수처럼 흘러간조상들의 애사哀史와도 잘 어우러진다.

젖내기술은 물을 타지 않은 술로 당연히 진하고 순수한 술이다. 막걸리가 출고되기 전 양조장에 직접 가서 부탁해야 한두 주전자 살 수 있었던 이 술도 이제는 추억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시집의 많은 시편 중 대밭이란 단 한 편의 시에서도 앞에서 보는 것처럼 많은 민족고유어를 찾을 수 있다. 유년시절에 익힌 이런 토착어에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어떤 특별한 정서적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의식 너머 심층에 자리 잡고 우리의 정감을 자극하는 이런 언어는 그 친화·호소력이 강력하다. 어릴 적에 맛들인 음식이 평생의 입맛으로 남는 것도, 유년시절의 고향이 누구에게나 잃어버린 낙원으로 간주되는 것도 다 같은 이치다. 그래서 비록 집안의 한숨과 눈물이 얼룩져 있는 대밭이지만 시인은 시의 결미에서 그 대밭이 그립다고 토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광웅이 대밭에 견인하고 있는 그리운 어휘들은 이 시가 보여주는 가장 큰 미덕이라 아니할 수 없다.

 

 

5

 

시는 소리와 의미의 유기적 결합이라는 정의가 있다. 시에서의 음성적·음악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내용이나 의미에 못지않게 크다는 말이다. 대밭은 네 개의 연으로 나뉘어 있지만 전혀 행갈이를 하고 있지 않아 산문시에 해당된다. 이름 그대로 겉보기에도 오른쪽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꽉차있어 산문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가 시처럼 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소리의 음악성 때문이다. 맥박이나 호흡은 평소 우리가 의식하지 않지만 생명에 직결되는 가장 중요하고 현저한 규칙적 반복의 리듬이다. 리듬은 우리에게 어떤 즐거움을 준다. 이는 신체의 리듬과 관련되는 생리학적 기초와 관련을 갖는다. 산문시지만 대밭은 시인의 면밀한 계획 아래 일상 언어의 속성을 학대하거나 변형시키며 시의 음성적 요소에 예각을 세우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런 언어운용방식은 시의 음악성 추구뿐 아니라 그 자체가 끊임없이 의미화 되는 특성을 지닌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일상 언어에서 기호는 표현과 내용 차원의 결합이 자의적이지만 예술언어에서 기호들은 그 형식적 요소 자체가 독특한 의미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음의 반복은 일상어에서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지만 시에 등장할 때 그것은 추론과 논의를 잠재우고 추억과 정서, 그리고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대밭을 유심히 살피면 형태가 같거나 유사한 언어적 표현을 병렬시킴으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은유의 한 형태인 병치倂置가 다수 나타난다. 음의 반복은 물론 같은 이미지의 병렬과 동일한 통사구조의 채택은 시의 언어적 조형을 단단하게, 또한 아름답게 구축하는데 성공적으로 복무하고 있다. 비평가의 특별한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댓가지 분질러놓으며댓잎사귀 짓이겨놓으며는 동일한 이미지와 통사구조가 한 문장에서 정확이 맞물리며 반복된다.(이는 마지막 연에 나오는 참새가 끝없이 울어대고까막까치가 끝없이 짖어대고의 병치와 같은 맥락에 위치한다.) ‘놓으며라는 반복되는 동음의 결구는 병치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대밭의 작은 짐승들이 분지르고 짓이겨가며내는 바스락 소리는 밤새 시글시글한 대밭의 분위기 형성에 상승효과를 주고 있다. 이어 등장하는 긁히고부딪히는의 유사 이미지 반복, “쌀 씻는 소리와 두세두세 주고받는 목소리의 병렬도 마찬가지로 소리효과의 상승에 가세한다.

다음 연에서도 기침 소리가 무섭고는 뒤의 험상들이 무서워서와 병치되고, 장지문을 다 흔든 후에와 벽장문을 다 흔든 후에에는 같은 통사구조의 반복은 물론 다 흔든 후에라는 동음이 반복되고 있다. 잠적불출 하셨다는과 뒤에 나오는 뼈 마디마디 곱았다는에서 무엇 했다는이라는 말은 자신의 얘기가 아니라 타인의 얘기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표현방법을 이중 배치한 것이다.

압권은 마지막 연에 있다. 보기 쉽게 다음과 같이 정렬시켜 본다.

 

인공 때 대밭을 빠져나가 남쪽 어딘가로 도망치던 구름 낀 밤

수복 때 대밭을 빠져나가 북쪽 어딘가로 도망치던 비 내리던 밤

이에 대한 무슨 구구한 설명이 필요할 것인가. 행단위의 진행을 무시하는 외형상 우선 산문인 산문시대밭안에는 위와 같이 완벽한 음악적 리듬의 패턴이 숨어있었다. ‘방향을 지시하는 어휘만 바뀔 뿐 행위가 일어난 장소와 행위의 구체적 내용이 철저하게 동음으로 처리되고 있다. 동시에 전쟁과 관련된 이미지가 반복되는데 이는 인간의 가치를 너무나 허무하게 부수어 버리는 전쟁에 대한 깊은 회의와 고뇌가 담겨있다. 우리는 병치되고 있는 그 의미들의 포위망에 저절로 갇혀버린다. 무슨 죄가 있어 집안사람들은 깊은 밤에 어딘가로도망을 쳐야만 했던 것인가. ‘앞에 같은 통사구조로 붙어있는 수식어 구름 낀비 내리던이 가슴에 아프게 다가온다. 그렇다. 그 밤은 달 밝은 밤이 될 수 없다. 시인이 만들어 낸 궂은 밤의 어둠에 우리의 마음도 함께 휩싸이는 것처럼 그 밤은 더 어둡고 캄캄한 역사적인 고통의 밤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밭을 빠져나가도망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오래 눈에 밟힌다.

음악적 효과를 얻기 위해 시인이 반복하는 소리는 작은 단위에서 큰 단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시를 정독한 독자는 이미 눈치 챘겠지만 시인은 시 전체에도 큰 리듬을 주고 있다. 모든 연의 마지막은 잠을 설쳤다.”, “부뚜막을 흔들었다.”, “상아탑이었다.” “대밭이 그립다.”라고 인간·자연의 존재와 그 존재의 행동을 단언적으로 기술한다. 여기에는 시대현실에 대한 단호한 목소리의 배음이 리듬으로 작동한다. 차이가 있다면 세 개의 연이 과거형인데 마지막 연만 현재형으로 마무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인은 맑고 투명한 시세계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현실과 체제에 순응하고 어우러져 살겠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시인은 언제나 현실에 비판적 의식을 가진 존재다. ‘무엇을 했다라는 과거형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다. 비록 그것이 가족의 아픔을 담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시인은 그곳이 그립다고 말하며 시의 문을 닫는다. 그곳은 작은 짐승들이 마음껏가지와 잎을 분지르고 짓이겨놓는대밭이다. 그곳은 마음껏새들이 울어대고 짖어대는대밭이다. 특유의 날카로운 현실의식과 비판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시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보자. “땅거미 진 저녁이 내리면부터 홍수만큼 시끄러운 것이었다.”까지의 문장은 시에서 보기 드문 긴 문장이다. 몇 줄이나 되는 이 문장을 따라 읽다보면 숨이 헐떡거릴 정도다. 다음 문장을 위해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데 시인은 어느 틈에 대밭이 그립다.”고 한 마디하고 시에서 나가버렸다. 맥 빠질 일인가. 아니다. 고수는 긴 호흡 끝에 단박에 끝장을 내버린다. 이게 바로 시의 묘미다. 이게 바로 이광웅만이 보여줄 수 있는 빛나는 검광의 리듬이 아니겠는가.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여야겠다. 자칫 지나친 욕심을 내다가는 넋두리처럼 주절거리게 되고 읽는 사람이 진짜 맥이 빠질 것 같다. 오장환의 시집 한 권이 발단이 되어 순정했던 시인은 천형과 같은 욕을 보았다. 오장환의 시 한 편을 헌사로 바치며 대밭을 빠져나간다.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옛흙이 향그러/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늣끼엿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오장환, 나의 노래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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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1988<표현>으로 등단

충남 부여 출신

원광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문학박사

1회 군산문학상 수상

17회 표현문학상 수상

시집 칠산 주막 외, 평론집 나비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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