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 김혜숙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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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발자국
김혜숙
멀리 보이는 *라니카이 꼬리를
바다에 담아 크고 작은 언덕들이
가슴을 열어 놓고 온몸으로
옥색포대기에 첩첩이 누워있다.
시퍼런 물결이 토해내는 파도가
내 안의 모든 것을 헤집어
이곳저곳을 거침없이 일정하게
빨래 방망이질을 계속한다.
고향집 마당의 감나무가
까치집 하나로 가슴이 다 헐어 있는데
잘 살아보겠다며 외지에서 떠돌던 그가
젊음을 뒤로하고 올 수 없는
북망산천에 홀로 떠났다.
기다리지 않아도 젊음은 가는데
어디서 다급한 사연 듣고
매정하게 급히 떠나간 그가
갔으면 되었지 물웅덩이 같은 얼굴로
왜 기웃대고 있나.
오는가 하면 사라지고
가는가 하면 다시 일어나고
야속한 그가 떠나간 후
몇 갈래의 죽음만큼 지친
나의 삶은 흰 재가 뿌려져 있다.
깨지는 건 아픈 것이 아니라며
두려움 없이 파도는 부서지고
내 안의 나는 무슨 미련이 아직도 남아있어
바다에 담그고 있는 작은 언덕 아래
백사장에 남겨진 긴 발자국을
따라 거닐고 있다.
*라니카이:
천국의 바다'라는 뜻의 라니카이 비치. 오아후 섬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최고의 비치로 손꼽히는 비치
약력:
서울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