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경자년(庚子年)
건강 속에
뜻하신 그 모든 것
새해엔
꼭! 이루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송구영신/은파
모두 설레임 가슴에 인다. 새해 맞이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송구영신으로 들떠 있다. 송구영신은 묵은해 보내고 새해 맞는다는 의미! 유래는 송고영신(送故迎新)에서 나온 말로 관가에서 구관(舊官)을 보내고 신관(新官)을 맞이했던 데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새아침 맞기 위해 바다를 찾는다. 송구영신을 위해서는 미국에 와서 처음 바다를 찾았다. 늘 송구영신은 교회 안에서 준비 찬양 드리다가 밖에서 들리는 폭죽 소리와 함께 스크린을 통하여 제야의 종소리와 동시에 함께 환호한 후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올해는 아버님께서 몸이 불편해 가정예배를 대신하였다. 예배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들과 함께 산타모니카를 향했다. 새해가 임박해지자 수많은 인파의 물결 출렁이었다. 사실 바닷가에 간 이유는 불꽃 속에 잡다한 것 날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면서 불꽃놀이 구경하고 싶은 까닭이 100%였다. 예상과 달리 불꽃놀이는 하지 않았다. 새해 첫날부터 예상에서 빗나갔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주먹구식으로 실행하지 말라는 사인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다행히 바닷가를 빠져나오기 전 멀리서 불꽃이 터진다. 예전에 쓴 [불꽃]에 관한 시조가 가슴으로 울려 퍼진다. 핸드폰을 꺼내어 조용히 음미해 본다.
새까만 하늘속에 펑펑펑 기지개 펴/음악속 나래 펼때 무어라 형용 못 할/환희의 도가니속에 타오르는 예술혼//
한때의 젊은 기백 용솟는 맥박처럼/굽히지 않던 강령 캄캄한 절벽속에/갇힌 맘 툭툭 털고파 양손높이 세운맘//
심연의 한 녹여 낸 불덩이 품어내어 /하늘로 속 시원히 내 안에 감춰있는/잡다한 모든 묵은 것 하늘속에 던진다//
가거라 썩어 빠진 옛것들 어서어서/오너라 이팔청춘 불타는 용맹이여/묵은 것 새론 맘 속의 결심으로 던지누//
본인의 졸작, [불꽃 축제/은파] 전문
아들과 함께 수많은 인파의 물결 속에서 빠져나오며 멀리서나마 불꽃에 관해서도 대화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온 동기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하며, 대화가 이어져 가길 원했다. 여러 대화 중 핵심 골자에 대한 질문은 아들이 꼭 알기 원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송구영신에 대한 것이다.
넌지시 묻는다. “아들아, 이 많은 사람이 왜 이곳에 왔겠니? 하지만, 오기 전 마찰이 있어 답변이 없다. 결국, 질문과 답변을 혼자 해야만 했다. “아들아 이곳에 온 사람은 대부분 한 해 동안 얽히고설킨 것들과 못다 이뤄 실패한 것들 바닷속에 모두 던져 버리고 새로 출발하려고 왔단다. 그런 사람처럼 새마음, 새로운 계획으로 실천하겠다는 다짐이 되었으면 해. 이런 마음은 중요하니, 본받았으면 좋겠다. 바로 이런 것이 터닝포인트(Turning Point)라고 말할 수 있단다….
-2020년 1월 1일, 산타모니카해변 촬영
올해 뉴욕타임스와 뉴스에서 편집진은 2019년 한 해 동안 발생한 국내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방향을 집약한 결과, 터닝포인트 2020년의 주제로 ‘도전의 시대 새로운 희망’을 선정했다고 하였던 것처럼, 부모로서 아들의 인생길에 중요한 시기, 대학교 가기 위한 마지막 준비 단계가 2020년도라서 터닝포인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물론 받아들이는 것은 아들의 몫이라 싶지만, 부모로서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아들이 하루속히 게임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에 임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작년에 받은 성적은 이맘때 모두 A였는데, 올해는 B학점이 3개나 되었다. 지각하여 과제를 담당 선생이 안 받아 그렇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게임을 새벽 두세 시까지 하다 잠드니, 지각할 수밖에 없었지 않겠는가! ...
칠흑의 밤하늘 반짝인다. 제아의 종소리속에 새해가 되었다. 다시 설렘 인다. 그 설렘 아들에게 인다면 기적일까? 조용히 반문해 본다. 바람은 2020년이 아들에게 '먼 훗날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고 추억을 말할 수 있는 해가 되길 두 손 모은다.
새해를 여는 마음/은파 오애숙
한 해가 가는 길목 희망아 내게 오라
새 아침 동창이 밝게 햇살 비추나니
자 함께 희망 맘속에 슬어 활짝 나르샤
동녘의 밝은 햇살 내게로 오라오라
가거라 쓸데없이 얼키고 설키었던
잡단한 모든 것들아 나에게서 떠나라
낡은 것 지는 해 속 확실히 던졌으니
잡다한 그 모든 것 세월강 보내고서
소망의 샘물터에서 목 축이어 달리네
힘차게 떠오르는 희망찬 소망의 빛
새해 속 우리 함께 웃으며 행진할 때
동녘의 윤슬 사이로 나래 활짝 펼치리
늘 맘속 송구영신 박제해 다짐한 맘
첫 단추 잘 잠구어 하나씩 일궈 가세
경자년 삼백육십오일 활짝 열여 있으니
=수필= 와우~ 경자년이 밝았다/은파
2020년 새해가 되었다. 살아있는 자는 설렘속에 제아의 종소리와 함께 기지개 편다. 밤바닷가로 몰려나온 인파가 꽤 많다. 이순간, 태어난 경자년 1월 1일생 아이들도 꽤 많이 있을 듯 싶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온 누리를 내것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였을까? 이 세상에서 뭔가 해 보겠노라고 두 주먹을 꽉 쥐고 태어난다. 올해는 경자년이다. 60년 전에 태어난 1960년생은 회갑을 맞이 하는 해다. 전쟁의 안정권에 도래 된 까닭인지. 베이비붐(1953~1963)의 정점 이뤘다. 통계에 의하면 역대 유일하게 1,006,018명이 출생했으며, 2020년이 된 올해의 생존자는 90만명으로 추정된다는 보도다.
1960년생은 그런 이유로 늘 또래 집단과 끊임없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살아온 것이다.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취업에서도 마찮가지였다. 혁명으로 얼룩진 군사 쿠데타의 유신 독재와 5공화국 철권 정치로 젊은 날은 억압의 시절이었다. 민주화로 나가기 위해 학생과 정치가 마찰이 되었던 시기다. 20살 이후엔 한동안 거리를 다닐수 없었다. 명동거리를 걷다 젊은이라는 명목이 죄가 되었던 시대였다. 삼청교육대가 이때 생겼기 때문이다. 쿠데타로 전두환 정권(신 군부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바로 1960년생이 20살이 되던 해다.
1980년대 사회정화사업을 명분으로 군경 합동작전인 ‘삼청작전’을 진행했다. 신 군부세력이 무지한 까닭이었나, 아니면 권력에 눈이 어두워 제세상 만들려고 했는지. 헌법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 결국 무시됐다. 계엄 상태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인지. 오죽하면 당시 한국사회의 정치구조를 삐꼬는 '코에 걸면 코걸이 올시라'라는 시가 신문에 발표가 되었겠는가! 그 시인은 당시 무사했는지. 갑자기 궁금해 진다.
'삼청작전' 통계에 의한 보도는 1980년 8월부터 1981년 1월까지 6만 여명이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 체포됐다. 나의 후배도 앞서 말한바처럼 명동거리 활보하다 잡혀들어갔다. 성숙한 외면로 성년식을 앞 두고 혹독한 경험을 치루게 된 셈이다.다행히 그애는 대학생이 아니라 쉽게 풀려 놨던 것 같다. 당시에 후배가 당일에 풀려났는지. 하루만에 풀려났는지. 너무 오래되어 가물거린다. 분명한건 후배의 증언은 무조건 보이는데로 다 쓸어 짐짝 취급하듯 잡아갔다고 표현했다.
남자친구와 같이 가지 않았기에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의 기억엔 그애의 남자친구가 고대생이었다. 만약 같이 명동거리를 거닐다가 잡혀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운명이 달라졌을까 생각해보니, 아찔하다. 통계상 당시에 잡혀가 혹독한 훈련 받은 자는 4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시민이 순화교육 대상자로 분류돼 군부대 내에서 삼청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이다. 불량배 일제 검거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3명 중 1명은 전과 사실이 없었던 것 역시 다 안다.
'삼청작전'은 마구잡이 검거 의혹이 불거진 이유다. 그런 까닭에 삼청교육대 사건을 어떤이는 우리 역사의 ‘우울한 그림자’라고 표현했던 기억이다. 이때 대학을 다니다 군대입대한 이들 역시 혹독한 곤역을 치뤘다고 한다. 학생들이 잘못 된 정치와 맞섰기에 군인들을 고생 시켰다고.. 그런 이유라지만 사실 위에서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라 싶다. 1960년생은 결국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휴강에 동참해야 했다. 계속 되는 학생들의 시위로 대학이 문을 닫았다. 심지어 학교에서 공부 할 수 없어 오직 레포트로 평가 되어 학점이 나왔다.
가장 비통한 것은 민주주의 꽃인 언론의 자유가 말살되었다. 암흑의 역사라 싶다. TBC(동양방송)'과 'DBS (동아방송)이 '전두환 정권'의 '강압'에 의한 '방송 통폐합'과 관련하여 1980년 11월 30일 동양방송이 막을 내렸다.1964년 개국부터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에 따른 신문-방송 겸영 금지를 이유로 KBS에 넘어갈 때까지 국내 방송계를 주름잡았던 대형 방송사였다. 민주주의 역사상 정책상 잘못 된 과오로 인해 두고두고 쥐구멍을 찾아야 될 역사다. 한국문인협회 현재 고문이신 김신웅 시인 역시 당시 피해자이시다. 당시 신문기자이셨다고한다. (당시 언론 말살 작전의 피해자)
1960생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3.15 부정선거를 간접 경험해야 했다. 그 결과로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났다. 결국 박정희 쿠데타에서 유야기를 보냈다. 앞서 서두에 밝힌바 억업의 삶이었다. 1960년에 태어나 1988년까지년까지 정치와 사회적인 면에서 짓눌려 살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보릿고개의 한을 가지고 살아왔던 부모세대의 그 한을 풀기 위하여서 학벌주의에 빠질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하나의 돌팔구는 음악이었다. 당시에 빌보드 차트에 오른 곡들로 위안이 되었는지. 팝송과 춤 패션에 올인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일까 많은 친구들이 팝송에 빠져 있었다. 노래도 꽤 잘불렀던 기억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밤바닷가! 당시의 곡들이 어렴푸시 흥얼거려진다. 지금 들어도 멋지고 아름다운 명곡들이다. 인간은 28세 이전의 음악으로 한평생을 흥얼거린다는 연구도 있는데 정말 다행이라 싶다. 그런 저런 여러가지로 대한민국은 민주화 시발점이 된 해로 역사가들의 평가다. 시원스런 바닷바람을 맞으며 알게 모르게 억압의 시절을 살아온 1960년 경자년에 태어난 모두에게 애뜻한 마음으로 꽃길만 걸어가세요. 기원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곳 미국도 1960년도가 되어서야 안정권 속에 베이비붐 시대가 열렸다. 그런 까닭에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이 1960년도에 태어난 이들은 65세에서 68세로 미뤄 졌다고 한다. 진실로 안타갑고 아쉬운 마음이라 생각되지만 앞으로는 1970년도에 태어난 이들에게는 메디칼 혜택도 없을 정도라고 하니, 지금까지 열심히 잘 살아 왔던 60년 경자년 생들이여, 긍정의 날개를 펴서 사세요. 당부해 드리고 싶습니다. 사는 사람,어떻게든 살아 갈테니까. 문제는 골골 백세가 아니라 백세까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싶습니다.
누가 그랬던가!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건강하다면 생각과 계획에는 커트라인이 없다. 하여 60년생(경자년) 공수래공수거 되기 전, 하늘빛 향기 품고 나래 펴게 되시길 두 손 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