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텐트를 때리는 빗소리가 크다. 텐트 바닥을 손으로 훑으니 물이 흥건하다. 4시30분 출발이어서 여유가 있지만 일어나야 한다. 어지럼증이 확 인다. 트레킹 나흘째, 고산병 증세는 여전하다.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다행히도 빗줄기가 한풀 꺾였다. 랜턴 불빛에 의지해 컵라면을 먹었다. 아직은 깜깜한 시각, 마지막 야영지 푸유파타마르카(3670m)를 출발했다. 오늘은 마침내 마추픽추(2450m)와 조우하는 날이다. 6시간을 걸어 1200m를 내려가야 한다.
↑ 마추픽추는 해발 2450m 산 위에 거짓말처럼 들어앉아 있다. 두 눈으로 직접 봐도 비현실적이다. 꼬박 나흘을 걸어 마추픽추 앞에 섰지만 비바람이 너무 심했다. 트레킹 이튿날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마추픽추에 올라 사진을 새로 찍었다.
↑ 마지막 야영지 푸유파타마르카는 해발 3670m의 고산 위에 있었다. 비구름이 잠깐 가시자, 안데스산맥의 줄기가 훤히 드러났다.
↑ 2 마추픽추에서는 라마를 풀어놓고 기른다. 3 트레킹 도중에 먹은 키누아수프. 국내에서 머리 좋아 지는 곡물로 알려진 키누아는 안데스 지역의 대표 특산품이다. 제법 맛이 좋다. 4 안데스의 들꽃 와캉키. 늘 이슬을 머금고 있다는 신비의 꽃이다. 5 바위 사이에도 길이 나있다. 잉카터널이라고 불린다.
↑ 1 해발 3800m 지점에서 만난 산중 호수. 2 가이드 에드가(왼쪽)와 포터 12명. 포터들은 한 동네 출신이다. 3 페루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을 찍으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어른은 1솔, 아이는 사탕 1개.
오전 10시. 까마득한 돌계단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 가파른 고개를 오르면 '태양의 문' 인티푼쿠(2720m)다. 마추픽추로 통하는 산문(山門)이다. 내리 나흘을 걷는 대장정이 끝나는 순간이지만, 마음은 초조하다. 아직도 날이 흐리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 위에 올라섰다. 아! 마추픽추다! 거짓말 같은 장면이다. 다른 봉우리는 구름에 가려 안 보이는데, 마추픽추만 오롯하다. 잠깐 눈앞이 흔들린 것도 같다. 그러나 지금은 감격할 때가 아니 다. 시간이 없다. 언제 구름이 마추픽추를 덮을지 모른다. 허겁지겁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국내 언론 최초의 잉카트레일 종주는, 어처구니없게도 허둥대다 끝나고 말았다.
마추픽추 가는 길 잉카트레일 트레킹
시쳇말로 요즘 페루가 떴다. 신문·잡지는 물론이고 방송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페루가 곧잘 보인다. 이동시간만 30시간이 족히 걸리는 남미의 먼 나라 페루가 어느 날 갑자기 이웃나라처럼 친근해졌다. 여기엔 이태 전 페루관광청 한국사무소가 문을 연 영향이 컸다. 지구 반대편 나라로 이어지는 공식 통로가 생긴 것이었다. 국내 언론 최초의 잉카트레일 종주가 가능했던 것도 새 통로 덕분이었다. week&은 1년 전부터 페루관광청과 잉카트레일 트레킹을 기획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마추픽추를 오를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전 세계 트레커의 로망이라는 잉카트레일을 걸어 마추픽추에 가고 싶었다. week&은 지난달 말 국내 매체 3곳과 함께 잉카트레일을 종주했다. 마감 날짜가 달라 첫 보도의 영광은 다른 매체가 차지했지만, 개의치 않는다. 기사가 며칠 늦었다고 해서 감동의 총량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말하자면 내 생애의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해야 할 일) 한 줄을 지운 기분이었다.
차스키의 길
페루는 잉카의 나라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12세기쯤 기원해 16세기 스페인이 침략하기 전까지 중남미 안데스 지역을 호령했던 제국이 잉카다. 작열하는 태양, 라마(스페인어로 야마), 신비의 도시 마추픽추, 그리고 황금이 연상되는 고대 왕국이다.
잉카가 낳은 또 다른 유산이 길이다. 안데스 고산지대를 촘촘히 연결한 길을 통해 잉카제국은 북쪽으로 에콰도르, 남쪽으로 칠레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영토를 통치했다. 그 길을 뛰어다니며 왕명을 전달했던 전령이 케추아어(잉카어)로 '차스키'다.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3399m)에서 왕이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면 600㎞ 떨어진 해안에서 잡은 생선이 이튿날 왕의 밥상에 올랐다고 한다. 일정 구간을 전력으로 달린 차스키가 다른 차스키와 릴레이 하는 식으로 왕명이 전달됐단다. 지금도 약 2만㎞에 이르는 잉카트레일이 남아있다. 쿠스코를 가운데 두고 길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케추아어로 쿠스코는 배꼽이란 뜻이다.
그 전설의 길을 체험하는 유일한 방법이 잉카트레일 트레킹이다. 쿠스코에서 82㎞ 떨어진 피사쿠초(2600m)라는 작은 마을에서 마추픽추(2450m)까지 산 위에 난 43.5㎞ 길이의 길을 나흘에 걸쳐 걷는다. 그러니까 길이 끝나는 곳에 마추픽추가 있는 것이다.
잉카트레일은 우리나라의 국립공원관리공단과 같은 정부기구 '이엔에스'가 관리·운영한다. 입장객은 하루 500명으로 제한된다. 전 세계에서 신청자가 몰려 경쟁이 치열하다. 11월에 걷기 위해 week&은 지난 6월 예약을 마쳤다. 700년 이상 묵은 길이지만, 지금의 운영 체계가 갖춰진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구름 위의 도시
잉카트레일이 43.5㎞이니, 나흘에 나눠 걸으면 하루에 10㎞ 남짓 걷는 게 된다. 거리는 부담이 안 되지만, 고도는 부담이 된다. 잉카트레일의 평균 고도는 3000m가 훌쩍 넘고, 4215m 높이의 고개도 넘는다. 이틀 만에 1600m 이상을 치고 올라가 4215m를 밟은 뒤 다시 이틀 만에 1800m를 내려오는 코스는 쉬운 여정이 아니다.
첫날은 그래도 괜찮았다. 해발 500m를 치고 올라간 뒤 고도 3100m 와이야밤바에서 텐트를 쳤다. 문제는 둘째 날이었다. 반나절 만에 1100m를 올라 4215m 높이에 있는 '죽은 여인의 길'이라는 이름의 고개를 넘어야 했다. 해발 4000m가 넘어서는 두어 발짝 떼고 숨을 고르기를 반복했다. 하늘이 가까워지는 만큼 걸음이 느려졌다. 4000m 이상을 경험한 뒤로는 3000m 이상 고산이 쉬워졌다. 고산병도 상대적이었다.
잉카트레일은 결국 마추픽추 가는 길이었다. 약타파타(2650m)·룬쿠라카이(3800m)·사야크마르카(3600m)·푸유파타마르카(3670m) 등 잉카 유적이 산자락 곳곳에 숨어 있었다. 유적은 하나같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태로이 서 있었다. 유적 건너편 기슭에선 풀을 뜯는 야생 알파카와 라마 무리가 보였다. 우리 강산에선 볼 수 없는 안데스 야생화를 마음껏 카메라에 담지 못한 건 지금도 아쉽다. 고산병 때문에 사진 대부분이 흔들려 있었다,
푸유파타마르카에서 보낸 마지막 밤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내내 비구름에 갇혀 있다 해질 무렵 하늘이 잠깐 열렸는데, 만년설 내려앉은 고봉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남반구의 별자리도 잠시나마 구경할 수 있었다. 잉카 시대 관개시설이 남아있는 푸유파타마르카의 뜻은 '구름 위의 도시'였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번 여행에서도 인상에 남는 건 사람이었다. 잉카트레일 10년 경력이라는 전문 가이드 에드가(32)는 1주일에 한 번씩 이 길을 걷는다. 일곱 살 아들을 위해 이 길을 걷는다고 했다. 나도 아이들을 위해 여기까지 와서 길을 걷는다고 했다.
우리 일행의 포터는 모두 12명이었다. 트레킹 이틀째 아침, 길을 걷기 전에 에드가가 포터를 불러모아 한 명씩 인사를 시켰다. "나는 마르셀리오입니다. 마흔여덟 살이고, 아들이 넷 있습니다. 깔까리역에서 농사를 짓습니다."
포터 12명의 자기소개 방식은 똑같았다. 이름·나이·자식, 그리고 직업을 말했다. 우리 일행도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손민호입니다. 마흔네 살이고, 자식이 둘 있습니다. 한국의 신문사에서 일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딱히 더 말할 게 없었다.
포터는 출신지역이 같았다. 포터는 한 지역 주민이 팀을 이뤄 움직인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의 짐은 물론이고 식사까지 책임졌다. 포터 1명의 짐은 8㎏이 넘지 않는다. 포터들의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페루 정부가 엄격히 통제한다고 했다. 폐타이어를 이어 붙인 슬리퍼를 신은 포터도 있었다. 잉카트레일에서는 해마다 트레커 2명과 포터 1명꼴로 인명 사고가 발생한다.
트레커는 전 세계에서 모인 듯했다. 출발 날짜가 같으니 여러 팀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시로 마주쳤다. 점심식사 장소나 야영지도 대부분 겹쳤다. 호주·뉴질랜드·브라질·미국·네덜란드 등 다국적 여행자로 이뤄진 팀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미국 텍사스에서 왔다는 중년 여성이었다. 체중이 얼추 100㎏는 넘어 보였다. 모든 짐을 포터에게 맡긴 그녀는 산소통만 메고 길을 걸었다. 산소 마스크를 입에 문 채 그녀는 4215m 고개를 넘었다. 그녀의 힘든 걸음을 보고 버킷 리스트를 떠올렸다.
세상의 끝
마추픽추에 입장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꼬박 나흘을 걷거나, 우루밤바강을 따라 마추픽추 아랫마을 아구아 칼리엔테스(2050m)까지 기차로 간 다음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잉카트레일이 시작하는 피사쿠초에서 자동차 도로가 끝난다.
셔틀버스를 타고 마추픽추를 입장하는 인원에도 제한이 있다. 하루 2400명. 2400명 중에는 마추픽추 건너편 와이나픽추(2750m)까지 갈 수 있는 400명이 포함돼 있다. 마추픽추는 케추아어로 늙은 봉우리, 와이나픽추는 젊은 봉우리란 뜻이다.
트레킹 마지막 날 인티푼쿠에서 마추픽추를 내려다본 뒤 우리 일행은 마추픽추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사람도, 카메라도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이튿날 버스를 타고 다시 마추픽추에 올랐다. 이날은 하늘이 파랬다.
마추픽추가 특별한 건, 1911년 미국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1875∼1956)이 마추픽추에 오르기 전까지 서방은 물론이고 페루 정부도 마추픽추의 존재를 몰랐다는 데 있다. 300여 년 통치기간 동안 잉카 문명 대부분을 초토화했던 스페인도 600년쯤 전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는 이 산중도시는 발견하지 못했다. 마추픽추 유적이 크게 훼손되지 않고 보존돼 있는 까닭이다. 하이럼 빙엄이 마추픽추에서 5000점이 넘는 유물을 빼간 뒤 여태 돌려주지 않고 있다지만, 그 덕분에 마추픽추가 세상에 알려진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눈 앞의 마추픽추는 사진 속의 마추픽추보다 더 비현실적이었다. 2450m 높이의 산 정상에 축구장 크기의 고대 도시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현실이 외려 더 비현실적이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하나의 세상이 끝난다. 하여 마추픽추는 세상의 끝이었다. 세상의 끝에 걸려있는 도시였다.
●여행정보=잉카트레일(incatrail peru.com) 트레킹은 선택 받은 자의 여행이다. 하루 정원이 최대 500명이다.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 자격을 갖춘 가이드, 현지 출신 포터와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하루 정원 중에 포터와 가이드도 포함돼 있어 순수 여행자는 200명이 갓 넘는다. 전 세계에서 신청자가 몰리므로 예약은 빨리할 수록 좋다. 성수기인 5∼9월에는 6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 해마다 2월 한 달은 보수를 위해 길을 폐쇄한다.
트레킹 비용은 포터를 몇 명 고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 팀의 최대 인원은 16명까지로, 여행자 1명이 보통 포터를 1.5명 부린다. 잉카트레일 입장료(251달러), 마추픽추 입장료(131.08달러), 가이드 비용 등을 포함해 1인 560∼1000달러쯤 든다. 잉카트레일 예약부터 포터·가이드 섭외까지 자격을 갖춘 전문 여행사에 맡기는 게 편하다. 쿠스코에서 한인민박 '사랑채'를 운영하는 길동수(52)씨가 우리와 동행했는데, 그가 대표로 있는 '길투어(ghiltour.com)'가 유일한 한국인 허가 업체다. 1인 750달러부터. 070-8253-9294.
페루 가는 길은 멀다. 보통 미국을 경유해 페루 수도 리마로 들어간다. 공항 대기시간을 포함해 비행시간만 26시간이 넘는다. 페루의 화페 단위는 솔(Sol)이다. '누에보 솔'이 정식 이름이지만 솔이라고 줄여 부른다. 3솔이 1달러 정도다.
간절히 가보고 싶은 곳...
부럽습니다.
좋은 정보와 후기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