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소풍 가기 전날 밤과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우연히 알게 된 산악회를 따라 처음으로 등산겸 여행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 5시 알람에 맞춰 일어났지만 머리는 띵 하고 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늦으면 떼어놓고 가버릴까 봐 서둘러 준비하고 길을 나서는데 생각보다 빨리 택시를 잡아 염주체육관에 일 등으로 도착했다.
관광 버스 기사님은 버스에 우리 산악회 이름을 안 붙여서 날 헤매게 했으나 나와 거의 같은 시간에 세 분이 시내버스를 타고 오셔서 온라인으로만 알던 회원님과 첫 인사를 나누었다.
어색한 기분으로 썰렁한 버스에 앉아 있으니 한분 두분 찾아 들어와 차는 점점 따뜻해지고 6시 40분에 드디어 출발.
십여 분쯤 후에 효천역에서 몇 분이 더 타시고 남으로 남으로 달려 목포항을 향해 달려갔다.
회장님의 인사 말씀과 아침 식사로 준비한 김밥과 간식거리를 제공받고 난 약속한대로 준비한 빼빼로 봉지를 꺼내놓았다.
이 날이 빼빼로데이 바로 다음날이었고 처음 참석하는 나는 찬조로 빼빼로를 나누어 드린다고 약속을 했었다.
여객선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토요일이라 출근길 등굣길로 차는 막히고 난 배가 우릴 버리고 시간 맞춰 떠날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버스가 목포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부랴부랴 선착장을 달려 골드 스타 쾌속정에 발을 들여놓았다.
한 숨 돌리고 구경을 좀 하려는데 배가 얼마나 빨리 가는지는 몰라도 갑판에 나갈 수가 없다고 한다.
어쩌다 한번 타보는 배이지만 아쉬운 마음을 창 밖을 보며 달랠 수밖에,,,
배 안에서 보니 지나치는 풍경은 별로 빨라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리를 앞지르는 배들이 하나도 없는걸 보니 역시 빠르긴 하는가보다.
정확히 한 시간 만에 배는 비금도 선착장에 도착하였고 우리를 포함해서 등산 복장을 한 많은 인파들도 함께 우르르 내렸다.
무슨 행사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를 몰랐는데 도착해 보니 몰려 온 인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항구에는 비금도를 통틀어 몇 대 안되는 차들이 다 마중을 나와 있었고(운전 하시는 분의 말씀) 산을 타러 간 우리는 졸지에 짐차에 실려 꼼짝없이 짐짝 신세가 되었다.
천일염의 고장 신안의 비금도, 이곳 시금치는 별나게 맛이 좋아서 섬초라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는 길에 보이는 염전에는 잡풀이 가득나 있었고 잠시 후 행사장에 도착하니 풍물놀이가 한참 어우러져 있어 벌써 잔치 분위기로 무르익어 있었다.
행사장에는 산을 타러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하고 봉사 나온 손길들의 커피와 인절미 선물, 높이 쳐있는 플랑카드에는 '보석같이 아름다운 비금도 도서 등산대회'라 쓰여있었다.
올 사람은 다 온것같은데 자꾸 기다리라는 방송만 하고 기다림에 지쳐 이미 산으로 가는 발 빠른 사람들도 있었다.
9시가 되자 드디어 행사가 시작되어 단체별로 가족별로 줄을 맞춰 서서 국민의례가 하였다.
군수 이하 여러 유명 인사들의 인사말과 신안군의 자랑을 한참 들은 후 사회자의 출발 신호에 맞추어 모두들 산으로 향했다.
등산로 입구에 세워둔 풍선 아치를 지나 산을 오르는데 마치 서울의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것처럼 사람 사람이 서로 밟힐 지경이었다.
새로 만든 외길을 따라 산을 오르는데 왼편으론 논 같아 보이는 시금치밭이었고 오른편으론 염전이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각 팀끼리 서로 자기네 팀 이름을 불러가며 열심히 가는데 어떤 여자분이 "아저씨, 그런 거(냉감) 꺾으면 혼나요." 하면서도 가을에 항아리에 담아놓으면 정말 예쁘다고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산은 작아도 있을 것은 다 있어서 밧줄을 잡고 기어오르기도 하고 좁은 쇠사다리도 있어 오르내림이 재미있었다.
혹시 길을 잃을세라 열심히 우리 팀의 대장 깃발을 바라보며 걷는데 한 시간쯤 후에 그림산 정상에 도착했다.
빙글 돌면서 사방을 둘러보니 눈앞에는 시금치밭과 염전들,그리고 남도 바다의 오밀조밀한 작은 섬들이 펼쳐져 있다.
아담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산의 오밀조밀함이 산에 오르는 맛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한바탕 더 걸어 선왕산 정상 한발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산 너머 산, 바다 너머 산(섬)들을 둘러보며 너무나도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산과 바다, 이렇게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생각해본다.
여기서 보면 아름다운 비금도 전경이 산 아래로 드넓게 펼쳐지면서 선착장으로부터 하누넘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하얀 길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명사십리 은모래 해수욕장이 아름답게 누워있어 드나드는 파도와 벗하여 노는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같다.
산 아래에선 지금과 같은 맛을 느낄 수 없다고 하시며 동네 어르신들이 목축이라며 건네주신 도초 막걸리 한잔, 이렇게 달고 맛있는 막걸리는 처음 먹어보는 것 같았다.
해거름에 이곳에 오르면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다들 하산하기 싫어한다는 어르신의 말씀에 내년 여름 해수욕하러 와서 해거름에 이 산을 다시 올라보리라 다짐해 본다 .
이곳 사람들도 다 같은 생각이겠지만 일단 외국물을 먹어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애국자가 된다는 것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십여 군데 돌아다니며 살았으며 또한 세계를 돌아다닌 여권의 입국비자만도 여권 세 개를 채울 정도로 역마살이 있었지만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우리나라 강산을 비교할만한 멋진 곳이 없는 것 같다.
나이아가라 폭포, 그랜드캐니언, 로키산맥을 지나면서도 그저 웅장하다는 느낌 뿐이었고 영국의 북부 산야를 둘러 보아도 영화에서처럼 멋진 장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
주거지를 떠나 타지로 여행하기가 북한 공산당보다도 더 어려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팔년을 살면서 여러 곳을 선교차 돌아다닐 때에도 그저 삭막한 광경과 모슬람인들의 배타적 시선만 기억에 남아있다.
동남아 여러 나라는 우리의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 하는것 같아 구경보다는 싼 맛에 소핑을 더 즐겼던 것 같다.
하산길에 들어서니 산 아래에서는 벌써 음악 소리가 요란하고 선두를 따라 내닫는 발걸음이 도착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건네지는 또 한잔의 막걸리와 그 유명한 섬초 시금치나물. 시금치 맛 또한 이곳이기에 이렇게 달고 맛이 있었을까?
멋진 목걸이 메달을 선물로 받고 혹시라도 떨어뜨릴까 비닐에 담아주는 주먹밥과 각종 반찬을 담은 일회용 용기 또한 신안군의 자상한 배려를 보는 것 같아 즐거웠다.
조금은 무거워 짐스러운 소금 푸대와 쌀 봉지도 받아 배낭에 넣어 두었다.
십여 명씩 둘러앉아 함께 먹는 산행 후의 꿀맛같은 점심은 등산을 안 해본 사람은 진정 모르리라.
잠시후 시금치밭으로 간다고 하는데 멋진 바닷가를 버리고 가기가 섭섭해 눈도장이라도 찍을 겸 바닷가로 나섰다.
눈앞에는 모래사장이, 저 멀리 오른쪽에는 한국의 나폴리라는 멋진 바위들이 장관을 이루며 늘어서있다. 안 보면 후회한다며 함께 가 보자는 어느 님의 권유에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용이 지나갔다는 전설의 용머리 바위가 누런색과 양옆의 푸른색으로 과연 그런한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였고 사방이 너무도 멋진 경치에 사진 한방 찍지 않을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같은 생각이겠지만 일단 외국 물을 먹어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도 군인 가족으로 이사를 자주 다니며 살았고 항공사 해외 지사에 근무하던 남편 덕에 세계를 돌아다닌 여권이 세 개가 되었었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우리나라 강산을 비교할 만 한 멋진 곳이 없는 것 같다.
나이아가라 폭포, 그랜드캐니언, 로키산맥을 지나면서도 그저 웅장하다는 느낌 뿐이었고 영국의 북부 산야를 둘러 보아도 영화에서처럼 멋진 장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
주거지를 떠나 타지로 여행하기가 북한보다도 더 어려운 사우디에서 팔년을 살면서 여러 곳을 선교차 돌아다닐 때에도 그저 삭막한 광경과 모슬람인들의 배타적 시선만 기억에 남아있다.
동남아 나라들은 우리의 어려웠던 옛시절을 기억 하는것 같아 구경보다는 싼 맛에 소핑을 더 즐겼던 것 같다. 참으로 보면 볼 수록 금수강산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아름다운 우리 땅이다.
이제 시금치 밭에서 각자 원하는만큼 시금치를 캐는 행사가 있다. 어떤 이들은 운 좋게도 차에 올라 타고 가고 나는 다른 이들은 함께 걸어서 눈이 시리도록 시퍼렇게 널려있는 시금치밭에 도착했다.
여기도 음악 소리 빵빵 하고 확성기 소리도 왕왕 대고 커다란 밭에는 사방으로 사람들이 빈 상자 하나씩 옆에 끼고 둘러 앉아 있다.
모두들 시작하라는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데 계속 도착하는 사람들 때문에 조금 더 기다리라는 말만 계속 한다.
나는 시금치 캐기를 포기하고 밭을 지나쳐 동네 분들이 나눠주는 커피 한잔에 다리를 쉬며 사람구경으로 눈의 피로를 풀었다.
몇몇 사람들이 일단 물가로 돌아가서 회라도 한 접시 먹자고 의견을 모으고 선착장으로 나가는 마을 차량에 올라탔다.
그 곳에는 벌써 많은 분들이 모여있었고 우리 회장님도 벌써 그곳에 와 계셨다.
아직도 뱃시간이 많이 남아 베낭에서 과일도 꺼내고 음료수도 나눠 마시는데 누가 옆구리를 찌르며 저기 골목으로 모이라고 한다.
누구네 평상인지 그 위에 막걸리와 간재미 무침이 보기에도 군침이 돌도록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고 나는 조금 사양하다가 체면 불구하고 열심히 젓가락을 놀렸다.
거기에 양념으로 간재미 거시기가 어쩌고 저쩌고 사람들 모이면 늘상 하는 음담패설이 오가면서 지친 분위기가 한결 유쾌해졌다.
이제는 모두가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모두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웅성웅성 들이는 말이 생각보다 너무 많은사람들이 온 탓인지 배편이 조금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타고 가기로 한 네 시 배는 정원이 찾다는 말과 함께 우리를 버리고 가 버리고 우리는 할 수 없이 특별히 부른 다음 배를 기다려야만 했다.
덕분에 만원 배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고 여유롭게 배를 타고 올 수 있었다.
가는 배에서부터 내 옆에 앉아 졸지에 짝꿍이 되어버린 그 분은 여전히 나를 챙기느라 배부르다는데도 자꾸 막걸리를 권해서 난처해 지기도 했다.
아쉬움으로 지는 해는 물보라 사이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운치를 더해 주었고 처음으로 함께 한 산행이 이렇게 멋진 여행이 되었기에 이들에 대한 정은 이미 깊이 들어버린것 같다.
벌써부터 다음 산행이 기다려지고 이것 저것 챙겨주시는 회장님 사모님의 배려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정으로 하나되는 회원들과 멋진 경치로 나를 사로잡는 아름다운 강산이 있어 새삼 이 땅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2005년 11월]
15년 전의 수필이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수필이 내면의 느낌을 글로 들어내고 있으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