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무야 나무야

조회 수 253 추천 수 2 2020.08.29 08: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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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 청조 박은경

깔깔깔,,,나무가 간지럼을 탄다. 

껍질을 다 벗어 버린 매끄러운 나무 가지를 손으로 문지르면 간지러워 잎사귀가 바들바들 떨린다. 

간지럼 나무의 다른 이름은 배롱나무, 자미화 또는 목백일홍라고도 불린다. 

백일동안 즉 여름 삼개월 내내 꽃이 피는 아주 예쁜 나무다. 

고향 마을 입구에는 열병식을 하는 군인들처럼 두 줄로 나란히 자미화가 늘어서있다. 

여름 내내 빨갛게 고운 꽃을 자랑하다가 들판이 누렇게 벼이삭이 익어갈 무렵이 되면 그 화려함을 내려 놓고 한켠으로 비켜 선다. 


한동안 전라도 광주에 살았던 나는 가끔 시간을 내어 담양에 놀러가곤했다. 

죽림원의 선선함과 소쇄원의 단아함 그리고 가사문학관과 식영정, 면앙정, 송강정등 

굳이 문학을 꿈꾸지 않아도 절로 문학소녀가 될 수 있는 아담하고 멋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특히 송강정은 정 철 선생이 유배생활을 마치고 정쟁에서 물러나 초막을 지어 살던 죽록정을 

후대에 자손들이 기념하기 위해 다시 지어 송강정이라 명호를 붙인 곳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미인곡'과 속사미인곡'을 지은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소나무 언덕배기를 휘돌아 흐르는 강이 있었고 강가에 피어난 자미화의 그림자가 강물에 비쳐 저절로 그의 시심을 자극했으리라. 

수백년 세월이 흘러 지금은 사라져버린 강의 모습이 못내 아쉽지만 

아직도 그곳엔 늘 푸른 소나무와 꽃이 아름다운 자미화가 

굳건히 옛 모습을 지키고있어 그 시절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지금 내가 사는 미국 미네소타에는 추운 지방에서 주로 자라는 자작나무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잘 아는 자알리톨껌의 원료가 되는 나무이다. 

꽃도 피지 않고 나무의 모양도 다르지만 나는 자작나무를 보면서 간지럼나무를 생각하곤 한다. 

아마도 나무의 기둥-밑둥이 매끄럽고 비슷하기 때문이가보다. 

하지만 배롱나무는 자라면서 그 껍질을 스스로 벗어버리는 반면 

자작나무 껍질은 여러가지 효능을 인정받아 다방면으로 쓰여지기에 사람들에 의해 옷이 벗겨지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쑥잎이나 솔잎을 민간요법으로 많이 쓰는것처럼 서양인들은 자작나무 껍질을 이용해 

의약품이나 화장품 재료로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만병통치약이라 한다. 

일년에 두번, 봄 가을로 자작나무 껍질을 채집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만난적이 있다. 

며칠동안 돌아다니며 채집한 나무껍질은 꽤 짭잘한 수입원이 된다고 하였다. 

자작나무 단풍은 그 색이 노랗다. 

그래서 이곳의 가을은 한국과는 달리 노란색이 주류를 이룬다. 

심지어 단풍나무도 그 잎이 노랑으로 색이 변한다. 

이상하고 신기해서 물어봤더니 실버메이플이라는 다른 종류의 단풍나무라 한다. 

가을마다 만나는 한국의 만산홍엽 붉은 단풍과는 달리 조금은 아쉬운 가을의 모습이다. 

이제 화려한 여름도 황금 들판도 다 지나버린 지금 긴긴 겨울밤을 어찌 보낼까 생각하다가 나도 자작나무 껍질로 뭔가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자작나무 껍질은 십여장의 얇은 껍질이 겹겹이 붙어 있어 

옛부터 종이 대용으로 많이 쓰여졌고 가면을 만드는데에도 쓰여졌다고 한다. 

또한 부패를 막는 성분이 들어있어 경주 천마총에서 온전한 상태로 천마가 그려진 그림이 출토된적도 있었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다. 

근처에 흔하게 널려있는 넘어진 자작나무에서 껍질을 벗겨 이 겨울에 무언가 근사한 것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 할 생각을 하니 내 얼굴은 절로 미소가 번진다. 

최근에 병원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갔다가 친구 부부의 차를 얻어타고 고향 집에 다녀왔는데 늦은 가을인데도 자미화 몇 송이가 아직도 피어 있는것을 보았다. 

화무십일홍이라 했건만 석달 열흘을 꽃 피우고도 모자라서 코스모스와 국화의 계절에 피어있는 꽃이라니.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넘어 얻은 늦둥이라고 해야할까? 

 

주인 없는 빈 고향집에는 찬 바람만 가득하고 감나무 대추나무 석류나무에는 

볼품없는 열매들은 힘에 부치는듯  안쓰럽게 매달려 있었다. 

간병하느라 고생한다고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와 준 친구에게 

담장 위에 올라 앉은 둥글넙적 늙은 호박과 빨갛게 입 벌린 석류들 

그리고 지난 몇년간의 우리 동인지를 순서대로 챙겨서 넣어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독자의 자격으로라도 우리 문학회에 가입한다면 이 또한 고마운 일이 아닐까? 

힘에 부쳐도 최선을 다해 열매 맺는 나무들과 세월을 잊은 채 꽃 피우는 나무들을 보며 늦었다 생각말고 

더 열심히 더 뜨겁게 나의 삶을 살아내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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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2020.08.29 08: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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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명옥헌 자미화와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숲 사진을 빌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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