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책이 좋다/ 청조 박은경

 

감기약에 취해 잠시 누워 있는데 이 메일이 왔다는 휴대전화기 알림 서비스 소리가 들렸다.
폰을 열어보니 동네 도서관에서 예약한 책이 준비되었다는 메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도서관에 가서 신청해 두었던 책을 찾아왔다.

시간이 나는 대로 책을 읽다 보니 책을 사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도서관을 이용해 무료로 책을 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

물론 지금도 꼭 필요한 책을 사기는 하지만  웬만하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게 이젠 습관이 되었다.

게다가 작년부터는 노안이 오는지 한참 책을 보노라면 눈이 침침하고 아파서

큰 글씨로 인쇄된 책을 골라서 보는 중이다.

한동안 즐겨 읽던 미스터리 살인 수사물을 접고 요즘은 성경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를 읽고 있다.

(나는 책 한 권을 재미있게 읽으면 그 작가의 책을 처녀작부터 현재까지 모든 책을 다 찾아 읽는 습관이 있다)

 

평생을 이인자로 살아야 했던 모세의 형 아론. 씻지 못할 죄와 그런데도 넘치는 은혜,

불순종한 아들 둘을 한꺼번에 잃어야 했던 아픈 이야기들을

팩션(사실에 기초를 둔 소설)으로 풀어나가는 신선한 맛이 있다.

여호수아의 그늘에서 활동하던 갈렙의 이야기와

다윗을 뜨거운 우정으로 감싸 안은 요나단 왕자의 이야기.

바울과 함께 활동하며 대부분의 신약 성경을 필사했던 실라의 이야기 등

화려한 영웅의 뒤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했던,

그러나 꼭 필요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아름다운 교훈이 들어있다.

나의 독서 사랑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대학까지 공부하신 아버지께서 서울에서 출판사 일을 하시다가 할아버지 병으로 귀향하신 후

주경야독 하시는 모습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나 뿐 아니라 우리 언니도 책에 빠져서 시집갈 때 가져간 짐 중에

벽을 가득 메울 만큼의 책이 제일 큰 짐이었다.
지금은 비워 둔 시골집 아버지의 사랑방은 웬만한 재력가의 서재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출입문과 창문을 뺀 사면 벽에 책이 가득하다.

병실에서 기거하시는 아버지는 지금도 책을 가까이하시며 펜을 놓지 않으신다.

 

어릴 적 나는 국내외 위인전과 그리스 신화 전래동화와 세계 명작 전집 등 벽을 가득 메운 책들을 시간이 나는 대로 마구 읽어댔었다. 아직 전기가 들어오기 전, 시골집에서 석유 호롱불 앞에서 책을 읽다 보면 콧구멍이 까만 굴뚝이 되기도 했었다.

누구는 가난해서 기름 살 돈이 없어 반딧불에 책을 읽기도 하고 겨울에는 눈빛을 의지해 책을 봤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너무나 밝은 전등불 아래서 얼마나 책을 읽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대부분 젊은이들은 휴대전화기으로 게임을 하거나 또는 SNS를 하고 있다.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스마트폰으로 신문을 보거나 책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 나는 확신한다.


아무튼, 나는 청소년기 한때 방황하며 책을 멀리한 적도 있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늘 책을 끼고 살았다.

한때는 무협지에 빠져 밤을 홀딱 지샌 적도 있었고 늦은 시간까지 책을 보다가

다음날 출근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하기도 했었다.

산에 미쳐 주말마다 등산을 다닐 때에도 책을 들고 다니며 목적지까지 가는 장거리 버스 이동 중에도,

한라산 등반을 위해 가던 배 안에서도 책을 읽었다.

또한, 기독교의 불모지인 사우디 아라비아에 살 때에는 오히려 성경 통독을 두 번 했고

지금도 성경을 보지만 작은 글씨가 읽기 힘들어 휴대전화기에

성경을 받아놓고 읽기도 하고 또 듣기도 한다.

 

요즘은 현대 문명의 발전으로 책을 귀로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작년에 남편이 성탄절 선물로 킨들(전자책)을 사 주겠다고 했지만 난 싫다고 사지 말라고 극구 반대를 했다.

아무리 편리하고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난 종이로 된 책이 더 좋기 때문이다.

새 책의 산뜻한 느낌과 잉크 냄새도 좋지만 난 특별히 종이가 누렇게 변한 오래된 책을 더 좋아하다.

더러 찢어진 낡은 책에는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특유의 조금은 퀴퀴한 냄새가 아련한 향수로 전해 온다.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 중에도 그런 책들을 자주 만난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또 언제라도 좋은 사랑스러운 나의 벗이다.

독서의 좋은 습관이 전통이 되어 대를 이어 가는 건 참으로 좋은 일이다.

아버지 덕에 내가 책을 가까이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다 책 읽기를 좋아하며

읽은 책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또 책을 돌려 보기도 한다.

 

요즘 아이들이 책을 멀리한다면 혹시 먼저 살던 우리가 잘못된 본을 보인 건 아닐까.

우리 또한 TV나 컴퓨터같은 현대 문명에 빠져 책 한 권의 여유도 없는,

피폐해 진 마음으로 사는 것은 아닐까.
천고마비,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굳이 헌책방까지 가지는 안더라도 자신을 위해 또는 자녀들을 위해

책을 가까이하며 마음의 양식을 넉넉히 쌓는 시간을 갖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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