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편지
정순옥
반가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편지 한 통이 이렇게 고맙고 행복하게 하다니 놀랍다. 여느 때와 같이 열쇠로 편지함을 열었다. 편지 겉봉에 Fat Mat이라고 쓰여있다. 나는 흔하디흔한 정크 우편물인 줄 알고 그냥 버리려다가 손 글씨로 이름이 쓰여 있어서 편지 봉투를 열었다. 어 `엉? 나는 봉투에서 쏟아져 나오는 내용물들에 놀랐다. 손 편지와 함께 우리 부부의 이민생활 이야기가 실린 2014년도 몬터레이 헤럴드 신문 쪽지가 함께 동봉되어 있다. 물건 정리를 하다가 보관함에서 발견한 귀한 신문내용이어서 보내준다는 사연과 함께, 너무도 반가운 편지다.
편지(便紙)는 상대방에게 소식이나 용무를 전할 때 글로 쓴다. 현재는 첨단 영상매체가 있어 카톡이나 이메일로 바로바로 소식을 전하지만, 전에는 종이 위에 글씨를 써서 소식을 전했다. 인간관계는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편지는 직접 만날 수 없을 때 비대면으로 소통하는데 아주 좋은 대화의 통로가 아닌가 싶다. 대면해서 말하기엔 어색한 문제도 비대면 편지로 마음을 전하면 훨씬 효과가 있을 수가 있다. 나처럼 무채색인 사람도 편지를 쓰다 보면 정서가 살아나고 수수한 색깔도 나타내짐을 느낄 수 있다. 우체국에서 발행한 간단한 사연을 적어서 보낼 수 있는 엽서도 있다. 그리운 사람의 편지, 연인들의 보랏빛 엽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정서를 준다.
나의 학창시절에는 펜팔이라는 게 유행했다. 월남 파병이 한창이던 때는 군인들에게 위문 편지쓰기를 장려한 적도 있다. 기적 소리 슬피 우는 밤으로 시작해서 사그락사그락 낙엽 굴러다니는 소리가 쓸쓸한 가을날을 노래하고 있다거나 건강하게 귀국하시라는 편지를 썼던 추억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어느 날 내가 받은 편지가 누군가 뜯어본 것 같아서 알아보니 카운셀러 선생님이 편지를 점검한 후에 전해 주신다는 것이다. 사춘기 나이에 혹시라도 연애할까 봐 그런다나. 형식적인 위문편지를 주고받은 것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얼굴 모습도 또렷이 생각이 안 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생각해 본다. 펜팔 한 사람이 귀국한 후, 빵집에서 만났다는 얘기는 친구들 사이에 즐거운 대화거리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진 그리운 명물 중의 하나가 길거리에 서 있던 빨간색 우체통이다. 곁을 지나갈 때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정다운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싶은 마음도 생겨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들기도 했던 빨강 우체통. 빨간빛 우체통 앞에서 정성껏 쓴 편지를 들고 서 있는 누군가의 모습은 낭만 그 자체이다. 행복과 그리움이 항상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길거리에 서 있는 빨간색 우체통이 보고 싶다. 어딘가에서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만약 내 눈에 띈다면 나는 그곳에서 아리송한 사랑의 말들을 떠올리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 가슴이 떨릴 것만 같다.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편지함 속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편지 봉투에 쓰여 있다. 편지 한 장 쓰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쓰고 또 지우고 몇 번이나 고치고 또다시 새 종이에 옮겨서 쓰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통신이 쉬운 시절이 아닌 옛날에는 국제전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나같이 외국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겐 편지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편지를 써서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고 하면서 서로의 사랑도 생각해 보고 그리움을 달래는 시간도 되었다.
나에겐 귀한 우리 어머니의 손 편지가 있다. 옛날 글씨체인데다가 글씨 한자에 다른 글씨를 붙여 뜻을 연결한 아주 읽기 어려운 글씨체다. 우리 어머니가 살던 시대에는 보통 여성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에 가서 신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개화된 여성들이라 했다. 우리 어머니는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선생의 딸이셨다. 그래서인지 한문을 서당에서 가르치는 방법대로 하늘 천 따지 하면서 외우고 쓰시던 기억이 긴가민가 난다. 한국전쟁 후, 어머니가 언문이라고 부르면서 한글을 배우러 다니시던 모습이 내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외국생활을 시작하자, 어머니는 그때 배운 한글로 나에게 편지를 쓰셨다.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정다운 편지는 메마른 광야에서 나를 살려내신 생명 약이다. 나에게 사랑을 기도에 담아 보내신 어머니의 반가운 편지는 늘 나에게 인내와 삶의 생기를 주시곤 했다.
함박눈이 많이 내리던 시절에는 우체부 아저씨가 우편물 가방을 어깨에 메고 외딴집까지 걸어서 편지를 배달해 주기도 했다. 구수한 산골의 향취가 온 세상을 덮을 땐 외딴집 노모가 눈물 콧물을 치마폭으로 닦으면서 객지에서 자식들이 보내 준 편지 내용을 들을 때다. 옛날에는 우체부 아저씨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을 대신해서 편지를 읽어 줄 때도 있었다. 우체부 아저씨는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는 반가운 사람이었다. 시골 마을에 우체부 아저씨가 들어오면 온 동네는 즐거움으로 떠들썩해지곤 했다. 누군가의 소식을 전해오는 편지는 모두에게 궁금증을 주기도 하고 해결하기도 하는 마력이 있는 시절도 있었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 속 울려주는 ~ 눈물 젖은 편지……떠나버린 너에게 사랑 노래 부른다~”
친필로 쓴 반가운 편지를 받고서 내 마음이 행복함을 느낀다면 나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달해 줄 수 있는 말을 손 편지로 써서 보내면 좋을 성 싶다. 편지 쓸 종이와 볼펜을 찾는 내 귀에 70, 80년대에 열풍을 일으켰던 인기 듀엣 어니언스의 감미로운 노래, ‘편지’ 가 통기타 소리에 어우러져 들리며 나의 손을 멈추게 한다.
아련한 추억을 불러온 귀한 수필 즐감하고 갑니다
저도 한동안 편지쓰기에 미쳐 있었지요
첫사랑 그사람과 서울과 광주 사이에 수많은 편지가 오고갔으니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