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시조평론가

조회 수 512 추천 수 1 2020.11.01 06:39:15

 

 

                    김상옥 시조에 나타나는 전통정신과 전통미의 추구

 

                                                                                        김민정

 

 

 

  초정艸丁 김상옥金相沃은 시조시인, 시인, 서예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92053일 경남 통영시 항남동 64번지에서 태어나 20041031일 향년 85세로 별세하셨고, 올해 탄생 100주년이다. 갓일을 하시던 아버지 箕湖 金德洪과 어머니 驪陽 陳씨 사이에서 61남의 막내로 태어났으며, 7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게 된다.

 

  1927년 통영보통공립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 교지 艅艎에 동시 을 실었다. 1934년 금융조합연합회 신문 공모전에 동시제비가 당선되었다. 193035년 사이에 최초 시조동인지 참새동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문학청년의 시절을 보냈다. 1936년 조연현과 함께 활동한 동인지 무궁화를 발표하여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고 두만강 근처 함북 웅기로 유랑을 떠났다. 1938년 함북 청진서점에서 일하면서 김용호, 함윤수 등과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뒤에 임화, 서정주, 박남수, 윤곤강 등이 합류했다. 193920세 때 文章(10)지에 이병기의 추천으로 시조鳳仙花가 실렸고, 같은 해 1115동아일보2회 시조공모에 낙엽이 당선되었다. 1940년 통영으로 귀향하여 <남원서점>을 경영하였는데, 독립운동의 아픔과 애절함을 노래한 浪山의 한시를 써 붙였다가 통영경찰서에 수감되었다. 우리말의 사용이 금지된 식민치하에서 한글 시작詩作을 계속하느라 네 번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52월 윤이상과 함께 상경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이호연, 오세창 선생 등을 만나기도 했다. 해방되던 해에는 김춘수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조직하여 예술운동을 했으며, 11월 삼천포문화동지회를 창립하여 한글운동, 교가 보급운동을 이끌었다.

  해방되어 가람 이병기가 군정청의 교과서 편수관이 되자 봉선화를 국어교과서에 싣게 된다. 그해 가을에 전국 효시로 부산공설운동장에서 해방기념제전이라는 이름으로 글짓기 대회가 열렸는데 심사위원으로 내려갔던 젊은 그는 심사위원을 사퇴하고 직접 선수로 출전해서 매일 다른 시제가 걸리는 사흘 동안 계속 장원을 하였다. 1946년부터 삼천포중, 통영중, 통영여고, 마산고, 경남여고 등에서 20년 가까이 교편을 잡고, 삼천포중 박재삼, 마산고 이제하, 경남여고 허윤정 등을 길러냈다.

  1947년 첫 시조집 草笛(수향서헌)을 출간하면서 편집, 장정, 인쇄, 제본 등 전과정을 혼자서 했다. 1949故園의 곡(성문사), 異端(성문사), 1952년 동시집 석류꽃(현대사), 1953년 시집 衣裳(현대사), 1956년 시집 木石의 노래(청우출판사), 1958년 동시집 꽃 속에 묻힌 집(청우출판사)을 출간했다. 1973三行詩 六十五篇(아자방), 1975년 산문집 시와 도자(아자방), 1980년 회갑기념시집 묵을 갈다가(창작과비평사)를 출간했다. 1983년 이호우와 함께 한국현대문학대계22를 저술했으며 1995년 동인지 재창간, 1998년 시집 느티나무의 말(상서각), 2001눈길 한번 닿으면(01)을 출간했다. 그의 사후인 200510월 이어령 외 35인이 쓴 그 뜨겁고 아픈 경치(고요아침), 민영이 엮은 김상옥 시전집(창비)이 출간되었다.

  교사, 인쇄소 직공, 서점 경영, 도장포 경영 등의 직업을 거친 김상옥은 1962년 서울로 이주하여 표구사를 겸한 골동품가게 <亞字房>을 경영하였으며 그림도 독학하여 1972년에는 쿄토의 융채당화랑에 초청받아 일주일간 성황리에 전시도 했다.

  최남선은 26조선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조선문단발표함으로서 우리의 전통 시가인 시조문학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 노력했다. 이어 가람 이병기, 노산 이은상과 같은 이들이 시조의 맥을 지키고 있을 때, 김상옥은 민족의 정서와 민족혼을 찾으려는 노력을 시조에다 기울였다. 정신적인 맥과 전통을 찾아 민족정서를 지키는 것이 곧 민족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임을 인식했던 것이다. 草笛의 제3노을빛 구름에서는 신라고려조선의 유물과 유적을 노래하는 한편, 작품 촉석루」「선죽교등을 통해 애국적 소재를 찾고자 노력했다. 김상옥은 사향, 봉선화등에서 보이는 자연적처소적 공간인 고향의식 외에 전통문화에 대한 접근을 통해 정신적인 고향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한 정신은 초기 작품인 草笛뿐만 아니라 그의 전 작품, 전 시기에서 나타난다.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 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듯 힘줄만이 서노나

-鳳仙花전문

 

눈을 가만 감으면 구비 잦은 풀밭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白楊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 노을처럼 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로운 꽃찌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요

- 思鄕전문

 

  「봉선화는1939년 가람 이병기의 추천을 받아 文章지에 실린 작품이다. 이병기는 추천사를 통해 그의 언어구사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나// 하는 것이 얼마나 그립고 놀라운 일이냐. 이런 정이야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마는, 이런 표현만은 할 이가 그리 많지 못할 것이다. 타고난 시인이 아니고는 아니될 것이다. 쓰는 말법도 남달리 익숙한 바 <삼삼이는>과 같은 말을 쓴 건 그 묘미를 얻은 것이다. 항용 말을 휘몰아 잘 쓰기도 어려운 바, 한층 더 나아가 새로운 말법…… 우리 語感, 語例를 새롭게 살리는 말법을 쓰는 것이 더욱 용하다. 그러나 앞으로 더 洋洋한 길이 있는 이 詩人으로서 다만 鳳仙花 詩人으로만 그치지 말기를 바란다.”

  조연현은 동심에 가깝도록 소박하고 섬세한 감성을 보여주는 시인이라 보고 있으며, 또 임선묵은 그의 시어는 맵거나 독하지 않고 원한에 사무쳤거나 비통에 몸부림치고 있지 않다. 순수와 참여가 조화된 본연의 모습을 證示하고 있는 것이다.”며 시어에 대한 선택이 뛰어남을 지적한다. 鳳仙花의 뛰어남은 위에 지적한 언어의 세련미외에도 이미지의 선명함’, ‘토속적 소재 사용에도 근거할 수 있다.

  「사향에서는 그가 태어난 지정학적인 고향인 통영을 중심으로 回歸不可能한 시간과 공간인 어린 날에 대한 그리움과 토속적인 정서에 대한 그리움이 나타난다. 화자는 추억 속에 구비가 잦은 풀밭길과 개울물이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는 모습과 백양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고 있다. 송아지를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는 저녁노을처럼 붉고 아름답게 산을 둘러 퍼져 있다.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이라며 후각적 이미지 묘사로 생생한 느낌을 다시 한 번 강렬하게 표현한다. 이 작품에 대해 나재균은 지금은 잃어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절실히 그리워 부르는 향수의 노래라고 하여 잃어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고 보았다.

 

지긋이 눈을 감고 입술을 추기시며

뚫인 구멍마다 임의 손이 움즉일 때

그 소리 銀河 흐르듯 서라벌에 퍼지다

 

끝없이 맑은 소리 千年을 머금은 채

따수히 서린 입김 상기도 남았거니

차라리 외로울망정 뜻을 달리 하리오

-玉笛전문

 

불꽃이 이리 티고 돌조각이 저리 티고

밤을 낮을 삼아 정소리가 요란터니

佛國寺 白雲橋우에 이 솟아 오르다

 

꽃장반 팔모 欄干 층층이 고운 모양!

임의 손 간데마다 돌옷은 새로 피고

머리엔 푸른 하늘을 받처 이고 있도다

-多寶塔전문

 

  그는 주로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유물유적을 통해 신라정신에 맥을 대고 있으며, 고려시대조선시대를 거쳐오면서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에 담긴 우리 민족의 숨결을 더듬고 그것에 배어 있는 민족정신과 정서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 草笛에 실린 작품의 창작년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해방 2년 후인 47년에 출간했고, 39년 등단 후 첫 시조집이었으므로 10년에 걸쳐 쓴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일제시대에 창작한 작품일 수도 있고, 해방 후의 작품일 수도 있다. 신라의 유물과 유적에 의미를 부여한 玉笛, 石窟庵, 多寶塔, 十一面觀音, 大佛등의 작품에서는 우리민족이 가졌던 종교와 내세에 대한 믿음과 미의식까지 찾고 있다. 1973년에 간행된 三行詩 六十五篇에서도 이러한 작품이 많다.

  「玉笛첫 수에서는 신라 삼보 중 하나인 옥적을 불던 신라시대 사람의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지금도 그 아름다운 소리가 은하처럼 서라벌에 퍼지는 것을 들리듯이 현재형을 써서 표현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그 맑은소리가 천 년의 시간을 머금은 채 옥적을 불던 사람의 따뜻한 입김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 차라리 외로울망정 뜻을 달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玉笛은 신라 시대 때 만들어진 길이 약 53.5cm이고 지름은 약 3.3cm인 대나무 피리다. 삼국유사에 전해오는 萬波息笛이 바로 이 玉笛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만파식적은 신문왕 때 대나무로 만든 것이며 나라에 우환이 있을 때 그것을 불면 우환이 사라진다는 신비한 피리다. 이 시조에서는 玉笛萬波息笛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일제의 압박으로 힘들던 우리 민족에게 그 피리가 다시 한 번 효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작품이라 생각된다.

  「多寶塔에서는 그것이 완성되기까지의 모습과 완성된 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 옛날 정과 망치로 돌을 다듬어 탑이 되기까지의 인내와 노력은 대단했다. 완성된 미의 아름다움보다 완성과정에서의 피맺힌 아픔이 첫째 수를 이루고 있다. 그 피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佛國寺 白雲橋 위에는 탑이 완성된다. 多寶塔의 모습은 팔모로 된 꽃쟁반 모양 한 층 한 층 고운 자태이다. 그것을 다듬은 석공의 손길, 그의 손길이 간 곳마다 천여 년이 지난 지금 돌옷이 새로 피고 그것과 조화를 이룬 하늘, 그 푸른 하늘을 탑이 이고 있다. 외형적 아름다움에만 머물지 않고 그것을 만든 석공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있다.

 

보면 깨끔하고 만지면 매촐하고

거러운 손아귀에 한줌 흙이 주물러져

千年전 봄은 그대로 가시지도 않았네

 

휘넝청 버들가지 포롬히 어린 빛이

눈물 고인 눈으로 보는듯 연연하고

몇포기 蘭草 그늘에 물오리가 두둥실!

 

高麗의 개인 하늘 湖心에 잠겨 있고

숙으린 꽃송이도 향내 곧 풍기거니

두날개 鄕愁를 접고 울어볼줄 모르네

 

붓끝으로 꼭 찍은 오리 너 눈동자엔

風眼 테 넘어보는 할아버지 입초리로

말없이 머금어 웃던 그 모습이 보이리.

 

어깨 벌숨하고 목잡이 오무속하고

요조리 어루 만지면 따스론 임의 손

千年을 흐른 오늘에 상기 아니 식었네

-靑磁賦전문

 

찬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白鶴 한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끝에 風磬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달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아래 비진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틈에 不老草 돋아나고

彩雲 비껴 날고 시내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마리 숲을 뛰어 드노다

 

불속에 구어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純朴하도다

-白磁賦전문

 

  김상옥은 신라 정신 외에도 고려시대 및 조선 시대의 우리의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대해 찬양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 靑磁賦, 白磁賦, 硯滴, 紅梅幽谷圖,翡翠印靈歌,葡萄印靈歌등의 문화재와 巫歌,鞦韆등 전통 풍습 등에 관해서도 작품을 써서 우리 민족의 전통정신을 추구했던 것이다. 특히 김상옥은 陶磁라는 산문집에서 도자기에 대한 애착과 안목을 보여준다. 이러한 도자기에 대한 그의 사랑은 많은 시조작품에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靑磁賦의 첫째둘째 수에서는 외형을 묘사한 부분이 있지만, 셋째넷째 수에선 사실적인 외형묘사와 함께 상상적인 요소가 등장한다. 다섯 째 수에서는 화자는 이 도자기를 만든 조상의 숨결을 느끼고 있다. 정혜원은 이 작품을 대상을 하나의 정물로서 바라보며 외적인 형상미를 추구하는데 골몰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단순히 청자의 외적 형상미만 추구한 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철학과 민족의 전통적 정서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정혜원은 일제하에서 아직 문화재나 유적에 대한 일반의 깊은 자각이 없던 시절, 홀로 외로운 노래로써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우쳐준 그의 일련의 시작들은 어떤 드높은 목청의 항일적 노래보다 귀한 것이었다 할 수 있다. <중략> 실제로 그가 시를 통해 이 땅, 이 겨레의 문화 쪽으로 이끌어 모은 관심의 폭은 어떤 적극적 행동보다도 민족의 혼을 살리는 작업이었다.” 라며 민족혼을 살리려한 김상옥 시인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첫시조집 草笛서 보여준 고전적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관조는 그 이후의 시조집 三行詩 六十五篇까지도 이어진다.

  「白磁賦에 대해 유성규는 단순한 백자의 외양을 읊은 것이 아니라 백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의 정서낭만예술문화철학 등 한국의 상징으로 제시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박형준은 김상옥 시조의 조형물 형상화 방법에서 이 작품을 백자의 의연함과 변치않는 아름다움을 진밀(縝密, close-woven and dense)’의 수법으로 노래했다고 보았다.

  ‘찬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란 표현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떠오르게 하는 구절이면서, 백자의 깨끗함, 담백함, 고고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백자의 외양 묘사로 보면 바위틈에 갸우숙이 불노초가 돋아나 있고, 아름다운 구름과 흐르는 시냇물, 그 맑은 곳에 뛰어노는 사슴 한 마리의 평화가 있다. 고요한 산의 적막과 평화가 이 백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백자의 본래 모습인 흰 살결, 티 하나가 내려와도 흠이 질 수밖에 없는 깨끗한 모습이 백자의 진가임을 말하고 있다. 얼음같이 차고 맑은 모습 속에 이조의 흙이 그대로 살아 있고 이 백자를 만들던 때의 도공의 순박한 마음과 조상들의 생활이 깃들어 있음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도자기 하나에도 흐르던 우리 민족의 정서를 읽어 내고 민족정신에 대한 예찬과 향수를 담고 있다.

 

雨氣

머금은 달무리

市井은 까마득하다

 

맵시든

어떤 品位

아예 가까이 오지 말라

 

寂寞

범할 수 없어

 

꽃도 차마 못 꽂는다.

-白磁전문

 

굽 높은

祭器.

 

神前

제물을 받들어

올리는-

 

굽 높은

祭器.

 

도 받들면

文字

매이지 않는다.

 

굽 높은

祭器!

-祭器전문

 

  민족정신을 추구하고 영원히 지켜가고자 하는 그의 정신은 후기의 작품집에 올수록 단시조를 쓰는 경향이 짙어지며, 단순화된 단시조를 통하여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고 압축하고 있다.

白磁는 단시조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으며 白磁賦보다 감정이 더 많이 절제되고 단순화되었다. 김상옥은 陶磁에서 단조하다는 것은 처음부터 단조로운 것이지만, 단순하다는 것은 모든 군더더기를, 아니 모든 설명적인 요소를 다 제거한 다음에 얻어낼 수 있는 생략의 미라고 할 것입니다.꾸밈을 거세하고, 단순에의 향수, 단순에의 귀의 <중략> 백색의 그 단순성과 그 신비성을 더욱 효과 있게, 더욱 철저하게 받은 조형이 곧 우리의 이조백자입니다.백자의 백색으로 하여 그것이 더욱 질박하고, 더욱 경건하고, 더욱 아취있게 보인다는 말씀입니다.”라며 단순미에 대한 정의와 함께 우리 백자의 단순미를 찬양하고 있다.

  그가 추구한 민족의 정서는 무엇일까. 위 시조를 통해서 보면 그것은 우리 민족이 흙으로도 눈부시게 뽀오얀 백자를 만들 줄 알던 미적 감각과 능력이며, 그 높은 품위와 자존심이다. 白磁가 지니고 있는 우아함과 고품격은 市井과는 먼 것이니 아예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것이다. 그 높은 자존심과 소중함 때문에 꽃도 차마 꽂지 못한다고 한다. 인간이 아름다움의 극치로 보는 꽃, 그 꽃조차 꼽을 수 없다는 것은, ‘꽃보다 높은 아름다움을 백자가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白磁처럼 순결하고 맑고 높은 자존심이 우리민족의 정서라고 본 것이다.

  우리의 전통정신을 살리고자 시조를 많이 쓴 시조시인임에도 불구하고 형식적 시험을 시도했던 때문인지 그의 시조에는 파격의 작품들, 시조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작품들이 많다. 三行詩 六十五篇이나 香氣남은 가을에서 長形이란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사설시조로 보기에도 애매한 작품을 써왔다.

祭器라는 작품도 형식면에서 많은 파격을 보인다. 시조에의 새로운 형식의 모색과 함께 시험한 이 작품은 그의 을 갈다가에 게재되었다. 이우재는 이 책을 시조집이라 했지만, 정형에 맞는 작품은 몇 작품밖에 없다.

  「祭器라는 작품은 香氣남은 가을느티나무의 말에 서시로 게재되어 있다. 내용은 시도 받들면 문자에 매이지 않는 굽 높은 제기라는 것이니, 시의 내용으로 본다면 시조냐 아니냐를 따지고 있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어디서나 빛날 수 있는 정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시정신이라고 김상옥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김상옥 시인의 시조에서 추구하는 이상향은 민족의 정신적 고향인 전통정신과 전통미의 회복이다. 그리하여 그는 玉笛, 人間나라 生佛나라의 首都, 大佛, 多寶塔, 雅歌 其一 - 阿斯女의 노래등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가 추구해 가야할 민족의 정서, 전통적 정신을 신라시대의 꽃 핀 불교문화와 예술, 그리고 그들의 정신적 자존심 속에서 찾고자 하는 신라정신의 지향과 白磁賦, 靑磁賦, 紅梅幽谷圖, 葡萄印靈歌, 翡翠印靈歌등의 작품을 통해 본 조선시대 우리 민족의 안목과 정서를 통한 아름다운 전통미를 추구하고, 白磁, 祭器, 2, 現身, 雅歌 其二 - 阿斯女의 노래등에서 시인은 영원한 민족정서의 추구를 통해 정신적 유토피아를 찾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민정 -es.jpg

  약력:

1985시조문학 지상백일장 장원/성균관대 문학박사/상지대학 대학원 강사 역임/명일중 부장교사 근무/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국제펜한국본부 언어보존위원/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강동문인협회 부회장/한국여성시조문학회 고문/나래시조시인협회 고문. 평설집: 모든 순간은 꽃이다. 시의 향기. 논문집: 현대시조의 고향성/사설시조 만횡청류의 수용과 변모 양상. 수상:나래시조문학상/시조시학상/김기림문학상/한국문협작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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