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관 시인

조회 수 366 추천 수 2 2020.12.31 23:53:26

                 

                자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간 본연의 언어구현

                      -안종관의 제4시집 <한라산>의 이해와 해석

 

                                                                                    이오장(시인)

 

 

  인간 내면의 상징이 어떻게 소리로 표현되고 해석되는지를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80 평생을 살아오며 쌓인 상충한 내면의 소리를 문자로 그려낸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시인이라면 다르다. 시인 개개인의 특성을 살려 작은 실마리라도 한 겹 한 겹 벗겨가다 보면 어느 정도의 실타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습에 관해서 그것의 활용과 개념에 대한 시인의 정신세계를 두드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의 본질은 물질적 구성과 정신적 상상의 결합으로 이뤄진 언어 인지능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지능력에 따라 작품의 결과는 달라진다. 언어에는 인간의 인지체계와 감각 운동체계에서 해석 가능한 계층적 구조의 표현을 무한정 만들 수 있느냐의 능력 진화와 연산에 사용되는 어휘와 성분의 진화능력이 있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특수한 능력이며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능력은 모두 자연에서 얻는 진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감각 운동체계를 통해 이뤄진다. 다른 동물의 상징체계를 본다면 그 상징들이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현상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에서 사용되는 상징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단순한 언어라도 어휘 대상의 관계에서 그 대상이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를 가리키는 경우가 없다. 공통된 목표를 향한 부분의 조화, 심리적 연속성과 정신적 속성을 포함하는 관점 등 각각의 개성에 맞게 부여된다. 따라서 시는 지나치게 이론적인 직관이 된다든가 맞다 틀리다의 주관적 언어표현이 된다면 풀리지 않는 과학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마디로 시는 논리적이지 않은 주체 의식의 언어구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안종관 시인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인간은 본래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해소하려는 목적에 고뇌하고 그것을 찾아내려는 의문을 가지고 시를 쓰는 게 아니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질적 현상에 몰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규정하려는 인간 본성의 자연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자연 의식에서 시를 쓴다. 개인적 존재든 육체적이나 정신적 존재든 또는 어떤 측면을 지녔든 자연이라는 최고의 존재에 따라 인간을 이해하려는 생각이 담겨있다. 이것은 자연에 바탕을 두고 인간존재를 규정하려는 결단이고 자신의 인간애적인 고백이기도 하다.

 

 

  1. 자연의 속에 비춰본 인간의 이해와 해석

 

  인간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시를 통해서 나타난다. 시 쓰기는 이해의 거울이고 자신의 문제를 말로 드러내는 과정이다. 시를 쓰면서 자신 안에 숨어있는 소리를 드러내고 미처 알지 못했거나 듣지 못했던 나의 소리를 시를 통해 보게 되고 그것을 독자에게 알린다. 시는 나의 것이되 나의 것 이상으로 쓰는 과정에서 내 안에 숨어 있는 나를 보게 만들고 보지 못했던 문제의 답을 찾기도 한다. 그 답은 정답이 아니라 각자에게 고유한 해답이며 실존적 해명을 담고 있다. 안종관 시인은 자연 속에서 취득한 모든 사물을 통하여 누구나 알기 쉽게 주제화되지 않은 실존성을 주제화하고 숨어있던 문제와 답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삶의 여정에서 얻은 체험의 결과물이지만 인생 후반부에 들어가 시를 통해 자신의 결핍을 알게 되고 그것을 극복함과 동시에 존재의 성취를 얻은 자신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잔잔한 바다는

조용히 가만가만 속삭인다

 

너울성 물결이 이는 바다는

제법 떠들며 재잘댄다

 

성난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는

매우 성내어 사납게 운다

 

폭풍이 불어닥치는 바다는

꺼이꺼이 통곡한다

 

이렇게 바다는

가마득한 우주의 역사를 삼킨다

 

바다도 말한다전문

 

 

  한편의 인생관이다. 잔잔한 바다는 어머니 뱃속에서의 조용한 태동을 말한다. 듣는 것이라고는 어머니가 느끼며 겪은 진동을 어머니와 함께 공유할 뿐이다. 태고의 과정도 없고 폭발의 징조와 흔들림도 없다. 모든 것을 어머니가 막아주고 보호한다. 이때는 행복이나 불행, 고통과 고뇌가 없어 인생 최대의 행복한 시기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은 모른다. 그러다가 태고의 고요함을 뚫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며 세상에 나온다. 너울성 파도는 제법 떠들며 재잘대어도 자연 속에 느끼는 만족감은 성장을 촉진시키고 정신력을 키운다. 아주 조용하다. 그러나 곧바로 닥치는 시련과 아픔, 사는 건 쉽지 않고 자연을 이겨가며 산다는 것은 어렵고도 힘들다. 여기에서 낙오되면 삶을 이어가지도 못하는 최대의 고비다. 폭풍 속에서 통곡하기도 하고 파도를 타고 흘러가며 어느 곳에 내릴까 하는 고민에 인생이 겪는 최고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다가 어느 곳에 다다르면 인생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느끼고 삶을 정리하려 하지만 곧바로 가마득한 우주의 역사를 보게 된다. 인생은 파도를 타고 사는 부평초다. 안종관 시인은 위 시 속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을 담아내어 자연 속에 비친 인간의 모습을 바다에 비유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 구현을 하였다.

 

 

  파란 하늘에 담긴

눈부신 햇살과 흰 구름이

날 유혹하네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얼비치는 푸르른 호수

그 호수에 풍덩 빠져들고 싶네

 

빨간 고추잠자리 날며

키다리 코스모스 하늘거리고

노란 은행잎 떨어진 길

연인들의 밀어들 들리어오네

 

해맑은 가을 하늘

한 곳에

흰 구름 궁전 짓고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네

 

티 없이 살고 지고

티 없이 살고 지고

 

가을 하늘전문

 

 

  인간이 가진 최고의 욕망은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순간에 가장 깊은 행복을 가지려는 것이다. 남이 가지지 않는 것들을 갖고 남이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여도 그 순간뿐이다. 어차피 정해진 삶을 연장할 수는 없으며 그 너머의 세상은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는 미지의 상상 세계일 뿐이다. 그것을 모르는 인간은 종교를 만들고 신을 만들어 숭상하고 경배하며 자신의 영혼을 일시나마 달래며 살아간다. 뇌가 있어 생각하는 동물인 사람은 불가능한 것도 얼마든지 상상으로 만들어내고 그곳에 안주하여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간이 무엇을 못 할까. 정신이 작동하는 한 꿈을 찾는 번뇌는 지속한다. 가을 하늘을 보며 안종관 시인은 꿈을 꾼다. 누구나 갖는 보편적인 꿈이다. 흰 구름의 유혹에 빠져 푸르른 호수에 풍덩 빠지고 싶고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걸어오는 여인의 밀어를 들으며 궁전을 짓고 티 없이 살고 싶은 꿈은 불가능하지만 가능할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하여 인간이 가진 최고의 욕망을 이루려는 절실함, 그러나 이 같은 꿈은 안 시인에게만 있는 것일까. 모든 인간은 이러한 꿈을 그린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안 시인이 가진 자연의 순환고리다. 파란 하늘. 흰 구름. 푸른 호수. 고추잠자리. 은행잎과 천사 같은 여인. 왕이 사는 궁전 등 자연 속에 있는 모든 사물을 동원하여 하나의 연결고리로 만들어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의 순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흘러가는 구름

불어오는 봄바람을

애태우며 기다립니다

 

아침 안개 자욱하고

비 내리는 긴긴 여름을

줄기차게 기다립니다

 

찬바람 불어오고

찬 서리 내릴 때까지

가을 향기를 채웁니다

 

눈 내리는 엄동설한

내년을 기약하며

쓸쓸히 사라집니다

 

들국화전문

 

 

  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혼자 살다가 사라진다면 참 슬픈 일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 속에 살지 못하여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비극인가. 그러나 이러한 일은 허다하다. 지구상에 72억 명이 사는데 모두가 기억하고 인사할 수는 없지만, 주위 사람들은 알고 사는 게 인간 사회다. 오고 가는 정이 없다면 사람 사회가 아니라 사막 위에 듬성듬성하게 자라나는 모래풀이 아니겠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는 보이지 않는 끈이 존재하여 서로 이끌고 잡아주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존재가치를 모른 채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런데 꽃 중에도 이런 꽃이 존재한다. 들국화다. 실제로는 무리 지어 피는 꽃이지만 가꾸지 않는 곳에 피어나는 꽃이라 들국화라 부른다. 그런 들국화를 사람과 비교하여 고난의 역사를 썼다. 봄바람을 기다려 자라나 안개 자욱한 여름을 보내고 찬 서리 맞으며 화려하게 피어난 들국화, 그렇지만 어느 꽃보다 향기가 짙어 십 리 밖에서도 알아채는 향기로운 꽃, 아무도 봐주지 않고 다가들지 않아도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고 수행하는 입지적인 꽃, 사람 사회에도 이런 존재는 있어 가끔씩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안 시인은 이러한 사실이 안타깝다. 왜 똑같은 사람인데 혼자서 자라고 혼자서 가야 하는가. 시인의 눈에 비친 안타까운 관찰이 자연 속에 비쳐 읽는 이의 공감을 얻어낸다.

 

 

  2. 자연 속의 실존적 그림 꺼내기

 

  본질은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것이며 실존은 그것이 지금 그렇게 있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하나의 사물이 그 자신이 되게 하는 것이 본질이며 그것이 본래 모습과 다르게 그렇게 있는 모습, 즉 현재의 상태가 실존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본질과 실존을 합하여 자유롭게 상징과 은유로 언어를 구현하는 것이 현대 시의 참모습이다. 현대 시에 있어 본질과 실존을 어떻게 구사하느냐에 따라서 그 면모를 갖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를 합하면 상상의 폭은 커지지만, 독자의 감동을 얻기는 쉽지 않다. 어려운 낱말과 새로운 합성어 또 미래지향적인 감각적인 시로 연결되어 가장 중요시되는 시의 대중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안종관 시인은 이점을 이해하고 자연 속의 그림을 언어로 끄집어내어 전혀 어렵지 않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시를 그대로 꾸밈없이 쓴다.

 

 

시냇물 소리

새소리

귀가 즐겁네

 

아름다운 꽃

파릇한 새싹

눈이 즐겁네

 

신토불이

맛있는 음식에

입이 즐겁네

 

남을 칭찬하면

남에게 베풀면

마음도 즐겁네

 

모두 모두 즐겁네전문

 

 

  삶의 최대 목적은 행복이다. 그러나 예약되지 않았고 이뤄지지도 않는다. 욕심 때문이다. 아무리 큰 것을 가졌어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것을 원하고 다 가졌다고 생각하다가도 뭔가 부족하다는 멈추지 않는 욕망, 이것 때문에 인간은 영원히 행복하지 못하다. 지구가 열 번 바뀌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도 그 욕망은 채울 수 없을 것이다. 일시적이나마 행복할 때가 있다. 자연의 소리를 들을 때와 입이 즐거울 때다. 아주 잠시지만 다른 것을 잊고 심취하게 되어 만족감을 느낀다. 이것을 알기에 '개도 밥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라는 말도 생겼고 실제로 밥상머리에서 싸우는 것은 아주 드물다. 그리고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가 남을 칭찬하고 남에게 자기 것을 줄 때다. 칭찬한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고 준다는 것은 나를 버리는 것으로 이때만큼은 큰 만족을 느낀다. 안종관 시인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질인 감성을 끄집어내어 누구나 알기 쉽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를 썼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독자와 감동을 공유한다.

 

 

 

찬란한 빛깔도 없고

아무런 맛도 없이

그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밤낮없이 흐르는 물

 

일정한 용기에 담아두면

언제나 그곳에

머물러 있는 물

 

낭떠러지에 다다르면

아름다운 폭포가 되고

떨어져 깊고 맑은 소를 이루는 물

 

말없이 흘러가며

목마른 대지를 적셔주고

동식물의 갈증을 해소해주어

생명수가 되어주는 물

 

때로는 한번 성나면

홍수가 되어 모든 것을 휩쓸어가고

성난 파도는

재물과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송두리째 삼켜버리는 물

 

생명체를 구성하는 요소 중

그 중 으뜸은 물

이 세상에 물이 없다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지

 

물이 없으면전문

 

 

 

  물은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 예로부터 물같이 살라 물처럼 되라는 격언이 생기기도 하였다. 천하를 평정하는 것도 치수에서부터 시작하여 강물을 다스린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역량을 인정받기도 하지 않았는가. 어느 모양의 그릇에 들어가도 아무런 저항 없이 그 모양을 따르는 순종, 높은 곳을 바라지 않는 겸양, 절벽을 만나도 망설이지 않는 용기, 생명을 위하여 나눠주는 자비 등 물의 성질을 거론한다면 끝이 없다. 그러나 안종관 시인이 말하는 것은 물의 성질만이 아니다. 물의 형태와 성질에서 인간의 본질을 보았고 그것을 인용하여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한다. 누구나 알지만 잊어버리고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인간의 오욕을 나무란다. 이것이 시가 갖는 기본자세다. 철저하게 기본을 벗어나지 않는 시작법을 연륜으로 채우며 우리에게 잔잔한 깨우침을 주고 있다.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의 문을 열어보자

 

자신이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자

 

마음의 여유에서

미소가 피어날 것이다

 

마음을 활짝 열고

정다운 이웃에게 달려가자

 

다가오는 이웃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자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도

희망의 샘이 솟아오른다

 

너와 나 우리가 모두

아름다운 사랑을 함께 나누자

 

사랑을 함께전문

 

 

  사람에게 마음이 무엇인가, 보이는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서 생기는가 누구나 쉽게 마음을 얘기하지만, 마음이 무엇인지를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의 실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 즉 뇌의 활동은 사물을 보고, 이동하고, 건드리고, 취하고, 놓치고 사람이 행동하는 모든 생각과 실천은 뇌에서 일어나는 반사작용이다. 이러한 모든 심적 움직임은 사람의 행동반경을 정하고 고통, 번뇌, 환희, 비애 등을 다스리며 자신이 자신을 감지하고 조인다. 육체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 마음, 즉 뇌의 움직임이다.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뇌이며 뇌의 움직임이 그 사람의 모습이다. 안종관 시인은 그 마음이 넓고 따뜻하다. 살아 있어도 감사할 줄 모르고 여유를 못 가져 웃지 못하고 이웃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보통 다 그렇다. 그게 인간의 본모습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이 시인의 마음을 자비로운 사랑으로 채웠는가. 그것은 살아오는 과정에 아름다운 것만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3. 솔직하고 진실한 시

 

  누구나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나는 본래 성실하고 착하며 남들과 화목하게 지내며 신앙도 깊은 사람인데 세상이 하도 험하고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이 많아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변했어. 그렇지 않았다면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남을 도와가며 살고 누구라도 나를 좋아할 거야' 이러한 생각은 어렵고 힘들 때 더 많이 나고 자신의 실체를 감추기 위하여 불현듯 튀어나오게 된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과시하고 으스대며 자신의 본체를 감추면서 사람과의 교우를 원한다. 그렇지만 어떠한 말을 해도 그 사람의 참모습은 감춰지지 않고 눈빛과 행동에서 노출된다. 이러한 이유로 시의 발현은 고대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 간의 감정을 좋은 방향으로 끌어냈다. 그래서 이론을 떠나 인간 본성을 그린 가장 솔직한 시가 오랜 기간 남는 것이다.

 

 

옷이 작아진다면

잘 먹고 잘 자라고 있다는 거야

 

빨래할 것이 많다면

입을 옷이 많다는 거야

 

전화벨이 자주 울린다면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거야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면

재산이 많다는 거야

 

이메일이 많이 온다면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많다는 거야

 

먹을 수 있고 걸을 수 있다면

나는 잘살고 있다는 거야

 

잘살고 있다는 거야전문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대급부가 있다. 인생 새옹지마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것을 알면서도 우선의 부과에 불만을 토하고 저항하는 게 사람이다. 당장 보이는 앞에 불만이 쌓이고 그 뒤에 따라오는 대가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두 번 울고 두 번 웃는 존재라 한다. 하나의 일에 국한된 게 아니고 모두가 삶에 연관된 불변의 진리를 외면한다. 더구나 현대에 들어서서는 사물에 국한되지 않고 멀리 상상의 세계에서도 하나의 틀을 고집하고 뒤따라갈 반대급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율 자동차가 나오면 운전은 편하겠지만 운전하는 재미가 없어지고 기계의 노예가 된다는 사실을 잊는다. 또 우주를 향하여 나가지만 그 반대로 지구의 앞날은 걱정하지 않는다. 안 시인은 이러한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아주 간결한 어조로 사람의 심리 상태를 짚어낸다. 어렵고 싫증 나지 않는 실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삶의 모양은 어떨까

세모일까 네모일까 다섯 모일까

원형이 좋을 거야

 

삶의 색깔은 무슨 색일까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이 좋을 거야

 

삶의 빠르기는 얼마일까

느림보일까 번개처럼 빠를까

적당하게 가는 게 좋을 거야

 

삶의 방식은 어느 것이 좋을까

미움과 시기와 질투 방식보다

사랑과 희망의 삶이 좋을 거야

 

삶이란전문

 

 

  삶의 모양은 없다. 모나지 않고 둥글지도 않은 무형의 무 개체다. 또한 삶의 색깔도 없다. 무형의 개체에 색깔이 있다면 혼란만 가증된다. 속도도 없다. 일정하기 때문이다. 방식도 없다. 무궤도를 달리기 때문이다. 삶은 자연의 순리를 밟아가는 약소한 질량일 뿐이다. 어느 생명이든 주어진 기간이 있고 그 기간만큼 살아가다 후대를 남기며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지혜를 가진 인간만이 자신들의 삶에 대하여 의문과 질문을 찾아내어 끊임없이 방황하고 묻는다. 가장 현명하지 못한 인간의 약점이다. 이러한 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수많은 현자가 말을 남겼으나 결과는 아니다. 어떠한 결정을 내놨어도 아직 정답은 찾지 못하였고 앞으로 계속, 이어갈 인간의 숙제다. 안 시인도 마찬가지다. 삶의 정점에 서서 뒤돌아봐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후회. 남은 삶을 계산해 봐도 의문만 남아 허무하게 살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누구도 비껴가지 못하는 숙명인 것을 어떻게 할 수 있으랴. 다만 남들과 똑같이 삶을 재조명해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올바른 것인지 셈하여 보는 것이다.

 

 

탐라 돈내코계곡. 효도천을 흘러 흘러

곶자왈 숲속으로

숨바꼭질해서는

천팔백 여종 식물들의 생명수 되어주고

땅속으로 흐르는 물은

바닷가 마을마다

용천수로 솟아올라

맑은 용수 되어주지

 

시원한 남풍은

아름다운 운무(雲霧)를 몰고 와서

봉우리들과 숨바꼭질하고

기암절벽 영실의 병풍폭포에서는

선녀들이 목욕하고

하늘나라로 가고

엉또폭포에선

빗방울과 물방울의

허공의 협주곡도 웅장하지

 

한라산일부

 

 

  87행의 장시다. 한라산은 1,947.3m의 우리나라 두 번째 높이의 영산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차지하는 장엄한 산이다. 수만 년 전 바다 밑이 융기하여 화산으로 치솟아 바다에 우뚝 서서 한반도를 내려다보며 백두산과 마주하여 민족의 정기를 지킨다. 하여 수많은 문인이 제주를 노래하며 문학사에 우뚝한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그만큼의 시련을 받아 민족의 슬픔이 자욱하게 깔린 애련의 땅이기도 하다. 민족의 슬픔인 4.3사건은 지금도 흉터가 남아 제주의 한쪽을 무너트리고 있으며 그 상처는 문학작품 속에서 또 다른 세계를 그린다. 특히 이생진 시인은 그리운 성산포를 시로 표현하여 제주의 자연을 사무친 그리움으로 나타내기도 하였고 많은 화가도 제주의 풍경을 담아 그려 내었다. 안종관 시인은 그 어떤 작품보다 세밀하게 제주를 그렸다. 87행의 첫 행부터 마지막 행까지 세밀한 필체로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듯 표현한 것이다. 이 시가 좋다고 느낀 것은 자신의 감정 이입 없이 사실 그대로의 실경산수를 그린 것이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안 시인만이 가진 자연적 실존 기법이라 할 것이다.

 

 

  4. 언어의 표현력은 자연에서 얻어진다

 

  시의 본질은 물질적 구성과 정신적 상상의 결합으로 이뤄진 언어 인지능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인지능력에 따라 작품의 결과는 달라지는데 언어의 표현을 무한정 만들 수 있느냐의 능력은 자연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안종관 시인의 시적 영역에서 보았다. 현대문명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인간 본연의 기질은 바꿀 수 없어 서정의 감동 시가 명작으로 남는 것은 당연하다. 사물의 본질이 아닌 실존을 그대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안 시인은 있는 그대로 사물을 그려 자신의 감정 이입이 없이 한 편 한 편 작품을 창작했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너무 단순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그 평가는 완전히 독자의 몫이다. 인생의 말년을 시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에 찬사를 보내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을지를 상상해 본다. 

 

안종관 es.jpg

 

안종관

화백문학 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화백문학, 가온문학, 애월문학 회원

동인지: <시간을 줍는 그림자>. <흔들리지 않은 섬>

시집: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징검다리>, <백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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