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원평 시장
정순옥
생각만 해도 즐거워지는 원평 시장이 있다. 전북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 있는데 전주시에서 정읍시를 잇는 중간 쯤에 원평 정류장이 있는 곳이다. 신작로를 따라서 정읍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빠져 논길을 걸으면 정읍군 감곡면 계룡리,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나온다. 원평 시장 삼거리는 신작로에서 옆길로 길게 빠져 가다가 두갈랫길로 나뉘어지면서 오일장을 이루는 곳이다. 나는 전통 상설 시장인, 원평 시장 삼거리를 생각하면 괜스리 기분이 즐거워진다. 원평 시장 삼거리를 지나 다니면서 나의 소녀시절의 꿈이 커 갔고 지금도 그 하늘 위로 새꿈이 너울대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의 집강소며 1919년 기미년 독립만세 운동이 김제시에선 처음으로 일어난 곳이어서 그럴 것이다. 즐거운 원평 시장은 선조들의 애국심을 품고 한국의 전통문화가 차고 넘치는 우리나라에서 영원히 보존해야 할 참으로 귀한 오일장 재래시장이다.
신작로를 낀 원평 시장 입구 삼거리는 가장 북적이는 곳이다. 삼거리엔 항상 뻔데기 파는 아줌마가 뻔데기를 볶고 있다. 뻔데기는 생김새는 징그럽게 생겼어도 영양분이 많으며 고소한 맛과 냄새가 좋아 시골사람들의 영양제라 부른다. 옆으론 냉이 쑥 달래 등 각종 나물을 담은 나물바구니가 즐비하고 나물 파는 아줌마들의 덤으로 주는 시골 인심이 듬뿍 묻어 나는 곳이다. 한 쪽으론 뻥튀기 아저씨가 “ 귀 막으시오! 뻥~ 이요~” 큰소리로 외치면서 쌀 보리 강냉이 등 각종 튀밥들을 튀겨 낸다. 엿장수 아저씨는 커다란 무쇠가위를 쩔꺽 거리며 사람들을 모우면서 가끔은 엿장수 맘대로 넓다란 엿판에서 엿을 조금 떼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맛을 보이기도 한다. 원평 시장은 아름다운 시골 향기가 차고 넘치며 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기찬 생활 장소다.
복잡한 시장안을 빠져 나아갈 쯤이면 넓은 광장이 나온다. 거기엔 돼지 우리를 해 놓고 돼지를 파는 사람과 음~메 하는 소를 경매하는 사람들이며 줄들로 다리를 묶인 닭들이 푸득거리며 꼬꼬댁 거리는 소리들로 소란스럽다. 한 쪽으론 옷장수가 넓다란 천보자기 위에 놓인 옷가지들을 손으로 들어 올리며 “ 값싸고 좋은 옷 사구려~ “ 하며 헌옷이나 구호물자 같은 옷들을 파는 소리로 시끌벅적 하다. 다른 쪽에선 천막을 쳐 놓고 써거스 공연이 있다고 사람들을 부른다. 이 써거스 공연은 사람들에게 보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게 할 때가 많았다. 어떤 사내 아이들은 천막 밑으로 기어 들어 가다가 들켜서 엉덩이가 까져라 두둘겨 맞는 경우도 있다. 어쩌다 학교에서 단체로 보던 써꺼스는 참으로 신기했다. 옷 속에서 비둘기나 계란이 나오기도 하고 입 속에서 보자기가 나오기도하는 마술사 아저씨. 코끼리들의 묘기, 예쁜 소녀나 아저씨가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면서 하는 절묘한 묘기가 신기할 뿐이다. 장터 끝부분 시냇가에 있는 커다란 고목나무 너머로 멀리 바라만 보아도 생기가 솟아 나온다는 모악산이 보여 정취를 이룬다.
원평 삼거리에서 전주시 쪽으로 가는 신작로를 따라 걸으면 길가에 대장간이 있다. 시뻘건 용광로 불에 무쇠덩이를 달구어 호미나 곡괭이 등 원하는 모양의 농기구나 각종 연장을 만드는 곳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장인정신으로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장이의 모습을 구경하면 재미가 있다. 조금 지나면 얼굴엔 하얀 분말가루로 범벅이 되어 있고 머리수건을 쓴 아줌마가 가끔씩 밖았 공기를 쐬는 방앗간 집이 나오고, 한참을 걸으면 내가 다닌 원평초등학교가 나온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배려심과 사랑이 많은 원평 초등학교에 다녔음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학군이 다른데도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졸업장까지 받을 수 있게 하였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어 고맙기가 한량없다.
평소에는 듬성듬성 있는 상인들이 오일장이 되면 우루루 몰려 오고,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기 위해 너나나나 몰려들면 원평 시장은 왁자지껄 소란스러워 진다. 한두 사람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면 사람사는 냄새가 풍기고 그야말로 북적대며 신나고 즐거운 날이 된다. 많은 사람들은 원평 장날에 만나 그동안 못했던 가족 이야기도 하고 남자들은 막걸리 한 잔을 하면서 즐기기도 하고 여자들은 붉은 팟죽을 먹으며 덕담을 나누기도 한다. 전주에서 정읍으로 왕래하는 버스가 원평 정류장에서 멈추면 사람들은 오르 내리고 움직일 수도 없을정도로 터질듯 짐짝처럼 사람을 실은 만원버스는 오라~잇! 하는 여차장의 소리와 함께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떠난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인연을 맺어가며 더불어 살아가는 원평 시장 입구는 만남과 이별의 삶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어머니와 원평 시장 삼거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날은 행복꽃이 활짝 피는 날이다. 농사꾼인 우리 엄마는 밭에서 난 채소나 곡식을 커다란 보따리나 소쿠리에 담아 머리에 힘겹게 이고 나가 주로 물물교환을 한다. 노트나 크레용 혹은 고무신이나 생활용품으로 바꾸신다. 한국전쟁 이후의 재래시장은 이처럼 서로서로 적당히 인정으로 주고받는 물물교환이 많았다. 어렸을 때의 내 꿈은 원평 시장에서 우리 어머니에게 하얀 사까리가 성글성글하게 붙은 입을 오무릴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랗고 달콤한 알사탕과 맛있는 고기를 풍성하게 사 드리는 것이였다. 나는 훗 날 어머니를 미국으로 초대해서 마음껏 사탕과 불고기를 잡수시도록 했더니 대만족 하셨으니 내 꿈은 이룬 셈이다. 그러나 “ 책으로 쓸려면 열권도 모자랄 나의 이야기 또 너의 인생살이 이야기를 생생하게 쓰거라 .” 하신 어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리기는 요원한 일이다.
즐거운 원평 시장은 민족을 사랑한 선조들의 애국심을 품고 너와 나의 꿈이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 여서 북적거리며 다정다감하게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을 주는 행운이 깃든 곳. 한국의 전통문화를 연연히 이어가며 우리나라 최고의 오일장 재래시장으로 새롭게 거듭나길 희망하면서 추억의 즐거운 원평 시장 삼거리를 찿아 간다.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이 비디오처럼 펼쳐 보이네요
참 그리운 모습입니다
지금은 그시절의 모습과는 많이 변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