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도와 사랑초

조회 수 152 추천 수 0 2021.05.28 17:20:41


아보카도와 사랑초/ 청조 박은경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랫말처럼 사람들은 사랑을 주고 또 사랑을 받는다.
동물들과도 사랑을 한다. 애완견이나 애완고양이와 주고받는 사랑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식물들과도 사랑을 할까?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아보카도를 즐겨먹는다. 한 번에 여러 개를 사다가 냉장고에 두고 식후에 반씩 쪼개어 먹는다.
 건강과 미용에도 좋고 포만감도 있어 밥을 적게 먹게 되니 일석삼조라 하겠다.
검푸르게 잘 익은 아보카도 중간을 둥글게 돌려가며 칼집을 넣어 양손으로 비틀면 반으로 딱 쪼개진다.
 갈라진 한쪽에는 탁구공만한 씨가 붙어있고 반대쪽은 움푹하게 씨 자리가 패어 있다.
남편과 반쪽씩 나눠먹기도 하고 싫다하면 씨 없는 반쪽을 작은 접시에 엎어 두었다가 먹곤 한다.
한 주에도 몇 개씩 나오는 이 씨앗을 그저 생각 없이 버리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흙이 담긴 빈 화분에 찔러 넣고 흙을 덮은 후 물을 주었다.

그리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송곳처럼 뾰족하게 싹이 올라오는 게 아닌가.
열대과일로 커다란 나무에서 열리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우리 집 안 화분에서도 싹이 나고 자란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일단 싹이 올랐으니 한번 열심히 키워보자는 마음에 화분을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고
흙이 마르지 않게 물을 주며 지켜보았다.
송곳 끝처럼 올라오던 싹에서 서너 개의 잎이 녹차 잎처럼 갈라지더니
점점 자라서 제법 나무모양새를 갖추어간다.
나의 사랑 아보카도는 그렇게 키가 자라고 잎이 늘면서 창가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집 안에서 자라서일까 아니면 원래 제가 자라던 환경이 아니라서일까
멀쑥하게 키만 크고 약해보이며 휘청거렸다.
전에 키우던 벤자민트리 생각이 나서 먼저 자라던 아보카도 옆에 씨앗 두개를 더 심었다.
새로 나온 싹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세 나무의 줄기를 조심스레 꼬아서 튼튼한 아보카도 나무를 만들었다.
이젠 멀쑥하게 커 보이지도 않고거나 외로워 보이지도 않고 튼실한 나무로 그 모습을 뽐내고 있다.
때론 내가 바빠서 물주기를 잊어버리면 잎이 축 늘어진다.
얼른 물을 주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을 건네주면
다음날은 바로 생기가 돌고 이파리들도 하늘을 향해 만세를 한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로 식물들도 사랑해주고 말을 걸어주면 더 잘 자란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이름에 사랑을 달고 사는 식물이 있다. 우리 집 사랑초. 이 귀여운 녀석을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사랑초를 처음 만난 곳은 광주에 살 때 자주 오르던 무등산이었다.
부지런히 걷거나 쉬엄쉬엄 걸어 올라도 산중턱쯤에선 꼭 쉬어 가게 된다.
등산객들의 오아시스, 그 곳이 바로 당산나무집이다.

수령이 수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당산나무 아래에 평상이 놓여 있고 나무 주변에는 집 주인이 가꾸는 화초들이 있다.
하트모양의 보랏빛 고운 이파리와 야리야리하게 숨은 듯 하얀 꽃무리들.
그 때 함께 간 친구한테 들은 사랑초 이야기는 내 마음에 감동을 주었고
나중에 이 화초에 관심을 보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꼭 전해 주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 후 미국에서 살며 어느 가게에서 이 꽃을 만났을 때의 기쁨과 반가움은 머나먼 고향을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
그 날 나와 함께 집에 온 사랑초 화분은 지금도 티브이 위에 앉아 나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사랑초를 사랑하며 매일 물을 주고 보살피던 어느 날이었다.
자세히 살피고 사랑했건만 시름시름 기운을 잃더니 그만 안녕을 고하는 게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화분 바닥에 물 빠짐 구멍이 없어
위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뿌리에 홍수가 난 것이다.
그때에야 너무 지나친 사랑은 질식사를 일으킨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렇게 죽어버린 사랑초 화분을 구석에 처박아둔 지 얼마 지났을까
놀랍게도 화분에 새 싹이 오르고 화초가 다시 생명을 되찾았다.

참으로 놀라운 게 살고자하는 의지인가 보다. 조심스레 화분을 갈아 주고
이제는 넘치지 않게 사랑해주며 새로 피어난 나의 사랑을 가꾸고 있다.
그때로부터 일 년이 지났을 무렵, 화분에 넘치도록 가득해진 사랑초를 분갈이했다.
반을 갈라 화분 두 개에 갈라 심었고 얼마 전 인터넷에서 배운 대로 꺾꽂이도 시도해봤다.
새 화분에 흙을 담고 사랑초 줄기를 몇 개 꺾어 꽃아 두니 새 화분이 되었다.
새 화분을 만들며 키다리 아보카도 씨앗을 가운데에 묻어두었다.
사랑초는 키가 한 뼘 정도로 자라지만 아보카도는 아래 한 뼘 정도는 잎이 없이 숙 자라는 키다리이니
둘을 함께 키우면 잘 어울릴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 정보가 틀린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잘못 심어서인가 사랑초 줄기가 말라 죽어간다.
쉬운 게 없구나 싶어 포기하고 아보카도나 잘 키워야지 생각하고 지켜보았다.
그런데 우와! 사랑초 잎사귀가 말라버려 잘라낸 자리에서 새 싹이 두개나 올라온다.
생명력이 강한 사랑초는 잎이 말라가면서도 생명의 힘을 흙 속에 남겨
기어이 뿌리를 만들고 새 싹을 올려 낸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한 알의 밀알 교훈을 떠올려본다. 죽음으로 다시 사는 생명의 신비이다.


우리 집 아보카도와 사랑초. 이 둘의 사랑 또한 기가 막힌다.
내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이 아니다. 빛을 따라 몸을 움직이는 사랑초 한 줄기가 아보카도를 감아 안고 있다.
마치 나팔꽃 넝쿨이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듯 사랑초 한 줄기가 다른 줄기들보다 더 길게 자란 것이다.
아보카도가 곁에 있지 않았다면 사랑초가 그리 길게 자라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소나무와 바위처럼 매우 달라 보이는 이 둘도 참으로 멋진 사랑을 이루어 내고 있다.
기후와 환경이 전혀 다른 곳에서도 잘 자라고 있는 아보카도와
오뚜기처럼 두 번 세 번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사랑초를 닮아가며
나도 이곳 미국에서 죽을 힘을 다해 살며 열심히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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