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순 시인

조회 수 590 추천 수 3 2021.11.02 11:47:53

 

 

 

              사랑으로 쌓아올리는 행복의 빛깔

              -유경순의 제1시집 재봉틀 앞에서

 

                                                                     강 정 실

                                       (평론가. 한국문인협회 회장)

 

 

  1. 들어가기

 

 

  바야흐로 짧은 글이 유행하는 시대다. SNS가 이를 부추긴다. 길거리나 차 안에서도 다들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나 단문소통 하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다. 이른바 스압(스크롤 압박)을 느낄 만큼 짧은 글과 긴 단어를 줄여 소통하는 데 익숙하다. 이런 변화의 징후는 젊은이의 경우 더 두드러진다. 바야흐로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종이보다 스크린에 더 친숙한 시대. 호모스마트쿠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텍스트, 오디오, 인터넷 등을 이용하거나 융합한 방식으로 급진화하고 있다.

이 탓에 우리들의 손에서 책이 스멀스멀 멀어지고 독서가 이젠 책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다. 움직이는 삽화, 듣는 시()가 더 익숙한 시대가 되었고 사진에 짧은 시()를 입혀 감상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있더라도 이런 짧은 글 중에도 옥석은 가려져야 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2019. 10.1)에 의하면 성인 48%1년 동안 책 한 권도 안 읽는다. 작년 독서량 6.1, ‘2019년 국민독서 실태조사보고서를 보면 지난 1년간(2018101~2019930) 성인의 종이책 연간 독서율은 52.1%, 독서량은 6.1권으로 2017년 조사와 비교하면 각각 7.8%포인트, 2.2권 줄었다고 했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에도 화자 유경순은 종이에 한자씩 실타래를 엮듯, 한 권의 시집 재봉틀 앞에서 만들어 냈다.

 

 

2. 내면에 들어가 그림 찾기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짧은 봄날의 이야기

손안에 꼭 잡고

놓지 말걸

 

어느새 빠져나간

봄날의 햇살은

꽃샘바람 속에

밀리고 말았다

 

마음이야 오죽하랴

눈을 감고

곱씹어 보아도

청춘은 가는 것인데

 

다시 불을 지핀다

까맣게

재가될 때까지

 

청춘이라는 두 글자

다시 마음속에 심는다

  -청춘, 전문

 

  화자는 스물아홉 한창 활짝 핀 꽃다운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 왔는데 어느새 이순(耳順)이 되었다.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 파릇했던 청춘의 꿈은 이미 지나갔고 기억을 먹고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한탄하는 시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 Publius)인간은 새로움을 향해 계속 기운다.”라고 했다. 강가의 물은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세월은 쉼 없이 흘러간다. 기운다는 것에서의 변화를 불변의 존재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하는 새로운 혜안의 정곡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가고 봄날이 쉽게 손에서 빠져나가는 애절함은, 살아온 과정과 현실이라는 절박감을 넘어 청춘이라는 자유를 그리워하게 됨을 어찌하랴.

 

어제 같은 육십 년

한걸음 또 한걸음 걷다 보니

움푹 파인 내 발자국

흐르는 세월을 동무 삼아

같이 가고 뛰어가며

징검다리 건너온

조그만 굴레골*

내 인생에

붉은 스카프를 어깨에 두른

석양의 화려한 외출이다

꿈을 먹는 아름다운 시간이고

꼭꼭 숨겼던 유리구두를 꺼내 신고

왈츠를 추며

또 한 번 황홀한 꿈을 먹는다

이 시간은

반세기 꽃피운 가지가지

끈끈한 삶의 마디 속에

향기로운 꽃향기로

옷고름을 맨다

  -황혼, 전문

 

  화자는 1987년 남편과 함께 뉴욕에 정착하고는 30년 넘게 평생직장인 세탁소에서 일하고 있다. 똑같은 길로 자택과 세탁소로 출퇴근하며 나만의 공간, 세탁소가 굴레골이다. 이 자리에서 사계절을 맞이하며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니 움푹 파인 세월이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디 좋은 일만 있었으랴. 이곳엔 끈끈한 삶이 있고 아픔도 있어 그 마디마디에는 인생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곳 생활터에서, //붉은 스카프를 어깨에 두른/석양의 화려한 외출이다/꿈을 먹는 아름다운 시간이고/꼭꼭 숨겼던 유리구두를 꺼내 신고/왈츠를 추며/또 한 번 황홀한 꿈을 먹는다//는 굴레골에서 위로받으며 단단한 옷고름을 매고 있다고 고백한다. 잔잔한 위로, 건강한 사고, 진솔한 사유의 세계가 독자를 감동의 파동 안으로 이끌게 한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는 <황혼>을 노래한 이 시()는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두고 어찌 시문학성을 운위하겠는가.

 

차마 말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글로 쓰기는 더욱더 힘이 듭니다

계속 보일 것만 같아서

차라리 잊어버리려 합니다

 

나누었던 수많은 언어는

허공 속에 흩어지고

아름다웠던 세월의 기억은

철저하게 퇴색해 버리고

매듭지어진 쌍고리는

배반으로 끊어져 버린

실타래가 되었습니다

 

바람이 뺨을 스쳐 갑니다

뒤돌아 봅니다

슬픔과 배반의 그림자가

길게 따라옵니다

  -배반, 전문

 

  화자는 //차마 말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글로 쓰기는 더욱더 힘이 듭니다/계속 보일 것만 같아서 차라리 잊어버리려 합니다/ 중략 /나누었던 수많은 언어는/허공 속에 흩어지고/아름다웠던 세월의 기억은/철저하게 퇴색해 버리고/매듭지어진 쌍고리는/배반으로 끊어져 버린/실타래가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가다머(H. G. Gadamer)는 인간은 과거를 회상하는 존재, 과거의 사실을 재해석하는 것은 기획이라 했다. 즉 새것은 헌 것이 되고, 헌 것의 아픈 추억은 새것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배반>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나타나듯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적인 신뢰상실감은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항상 존재한다.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랑했던 의 존재와 사랑을 주고 받는 참여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이 참여에는 라는 존재도 당연히 사랑받아야 한다. 그러나 를 다시 부름으로써 도 비로소 우리가 창조된다. 그리하여 우리라는 하나의 공통존재(co-esse)가 형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은 이미 존재론적이며, 사랑은 자신의 존재에의 참여가 신에게로 돌아감, 곧 구원이기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 “사랑만이 구원이다.” 말의 진정한 의미가 있게 된다.

 

싸늘한 봄날 속에

담벼락에 곰상스레 올라온

초록 이파리

군데군데 피어난

하얀 꽃 보라와

계면쩍은 미소 짓는다

 

머나먼 이국땅에 피어난

외로운 송이송이

각고의 고통 속에서도

긴 하얀 목젖은

우리의 기쁨과

위안이 된다

 

찬 서리 오기 전

나의 작은 소망은

말없이 초록의 옷을 벗고

따뜻한 다음의 계절을

변하지 않는 맘으로

무궁화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무궁화, 전문

 

  이민 와서 어렵사리 고생하며 장만한 자택은 옆집과의 담은 아예 무궁화나무다.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인지 담 전체가 무궁화로 총총히 심어져 있다. 어느덧 겨울이 가고 담벼락에는 초록빛 이파리가 돋아난다. 화자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외롭게 피어나는 송이송이의 새삮을 보게 된다. 각고의 고통 속에서도 만개한 꽃을 기다리며 기쁨과 위안이 되는 새싹을 조심스레 만져 본다. 이는 나이가 익어감에 따라 어떠한 인연이 있는 조그마한 것에도 고향과 가족을 연관시키고 관심 두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시인 백석은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집더니/문득 물어 고향은 어데냐 한다’. 시인 이생진도 /‘서당집 큰 미루나무서 있던 자리지금쯤 그 자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되어 있을까/라며 잊혀가는 고향과 늙어가는 자신을 한탄조로 시화화했다.

 

이곳에 오면

남색의 호수 위에

달과 별이 함께

춤추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호수의 여왕답게

파라다이스 위를

한발 한발 걷다 보면

호수 깊이만큼

내 인생 여정이

투명해진다

 

호수를 감싸고 있는

주변 숲을 향해

두 눈을 크게 뜨면

또 다른 길이 열려 있고

별무리가 휘황하게 빛난다

 

어슴푸레한 어둔 곳에

어린 왕자의 별이

불시착한 깊은 숲 속을

향해 가면서

비행기 수리가 너무 늦다고

외쳐댄다

  -레이크 조지, 전문

 

  이 작품은 2020년 한미문단 겨울호에 실렸던 내용이다. 레이크 죠지(Lake George)는 뉴욕 북부에 있는 작은 호수다. 화자의 자택과 3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다. 바쁜 생활 중에도 가끔 이곳에 오면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깨끗한 하늘과 맑은 호수의 정경을 맞게 된다. 낮에는 붉은 태양이 떠있고 밤이 되면 숲 속 사이로 부는 바람이 인다. 화자는 흔들리는 나무숲을 보며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가 불시착한 곳에서 비행기 수리가 너무 늦다며 외쳐댄다고 표현한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보는 서정적인 사물은 본향(本鄕)과 같다. 마치 동화처럼 마음이 편해진다. 이런 곳에는 가슴 속 깊이 묻어주었던 삶의 궤적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게 된다. 괜스레 평자(評者)도 화자와 함께 그곳 호숫가를 한 발 한 발 걷게 됨을 느끼게 한다.

 

아침마다 화장을 곱게 한 후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뒤로 묶고는

수수한 원피스 차림으로

일터에 간다

 

처음 재봉틀 앞에 앉던 날

손이 떨리고

페달은 다리에 힘을 줘서

속절없이 눌러 버리고는

하염없이 좌절했던

마음 구석구석에 낀 때들을

가끔 기억해 내고

재봉틀 앞에 앉아 계신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의 손끝은 뭉툭했지만

요술봉 같아

빨간 자개 손틀에서

덜덜덜 돌아가면

꽃무늬가 예쁜 포플린 옷감은

원피스가 되고

치마가 되면

나는 그 옷을 입고

동네에 나가 자랑했다

 

한땀 한땀

건너뛰면 다시 그 자리로

지우개로 지우며

인내를 꿰맨다

삶을 꿰맨다

인생을 꿰맨다

  -재봉틀 앞에서, 전문

 

  화자는 1986년 한국에서 결혼하고 이듬해 임신한 몸으로 남편과 함께 낯선 미국 뉴욕에 도착한다. 그리곤 부동산에 나와 있는 세탁소의 위치와 내부를 구경한다. 이곳이 나의 영원한 직장이라 결심하고는, 세탁소 직원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면서 딸은 신경심리학 의사, 아들은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는 사회인으로 만들어 냈다.

같은 세탁소라도 목 좋은 곳에 옮기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내 건물이 아닌 남의 건물에서 30년을 이곳 한 곳에만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는데도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도 매월 빠짐없이 꼬박꼬박 월세를 내며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두 부부는 이 세탁소에서 사랑으로 쌓아올리는 행복의 빛깔을 꿰매고 있다. 화자는 이곳에서 재봉틀 기술을 익혔고, 남편은 손님의 옷을 빨고 매일매일 다리미질한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남편과 함께 이순을 맞이한다. 그랬으니 이 세탁소 안에는 희로애락남편과 함께한 삶이 고스란히 묻혀 있고, 감수성이 넘치는 시가 세탁되는 곳이다.

 

어느덧 35년을 훌쩍 뛰어넘었다.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커다란 이민 가방에 미역과 고춧가루 아기 이불 기저귀를 짐칸에 넣으면 잃어버릴까, 어깨에 메고 뒤뚱거리는 아내를 손잡고 오던 날. 몇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시카고 경유 허름한 호텔에 들어서서 남편 어깨에 시뻘건 피멍이 든 걸 알았다. 피곤해 침대에 쓰러진 모습이 얼마나 든든했던지 젊다는 것 하나가 그냥 멋있기만 보였다. 기댈 수 있는 커다란 버팀목이었다. 세월은 달리다 못해 날개까지 달고 나른다. 30여 년을 하루같이 앞만 보고 달려온 날들이 코로나 때문에 잠시 정지해 버렸다. 그 패기 용기는 간데없고 갑자기 의기소침해졌다. 희끗희끗 흰머리는 머리숱이 없어 바람에 휘날리고 익숙지 않은 추리닝 옷차림은 왜 그리 초라해 보이는지. 세월이 혼란해 이런 세월을 사는 것은 남편의 책임이 아닌데 너무 힘이 없어 보여 속이 상한다. 오늘은 시키지 않은 설거지를 한다고 싱크대 앞에 서 있다. 하지 말라 해도 가서 쉬라며 고집부린다. 오늘따라 남편의 뒷모습이 더욱 애처롭게 보인다. 한국의 고유한 육십 대 후반의 남자의 자존심은 생각에 꼬리를 무는 모양이다. 이젠 일을 놓고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나이인데 …….

그렇게 안 해도 돼요

당신 잘못이 아닌걸요!”

-남편의 뒷모습, 전문

 

 

  혼자가 아닌 가족이라는 공동체로 함께 걸어간다. 김시탁의 시, ‘사는 게 꼭 정기적금 같다는 시구가 불현듯 떠오른다. //원금 갚고 이자 물고/제날짜 넘기면 연체료 물고/정기적금은 벅차면/해약도 하지만/우리 삶은 지치면/중도해지할 수 있을까/살아온 시간 정산하고/살아갈 시간 반납하면/해약할 수 있을까/해약 환불금 같은 것도/받아낼 수 있을까/사는 건 꼭/평생 상환사채 대출 같은 것//

<남편의 뒷모습>은 시형식을 차용한 서사시다. 생각지도 않았던 코로아 펜데믹이 장기간 이어지다 보니 모든 사람들은 외출을 자제한다. 직장에 근무하는 업무도 집에서 재택근무하게 된 세상이 되었다. 이러다 보니 세탁소는 직격탄을 맞게 될 수밖에 없다. 세탁소의 일이 줄어들다 보니 남편의 위치는 조금씩 존재감이 위축되며 기()가 죽는다. 괜스레 앉아 있기가 미안한지 안 하던 설거지를 자청한다.

  우리의 인생을, G. 마르셀은 존재의 세계는 모든 것이 교유하고, 모든 것이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고 한다. 공동 존재를 정립한 것이다. ‘우리와 같은 상호적 개념은 같은 주관적 개념보다 언제나 앞서게 된다. 예술도 억압된 대리적 충족이며 그러한 목적에 이르는 수단이라고 보는 심리학적 예술관도 작품 생성의 조건으로 인과적 설명을 시도한다. 이러한 탐구는 너와 나를 동일 선상에 놓아야 작품 이해가 정당해진다. 화자 유경순도 노년에 들어서며 자기성찰과 존재의 자각을 사랑과 이해를 통한 인생의 통찰로 이루어진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 오랜 시간 하나님께서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사랑으로 오래도록 참으셨습니다

 

어릴 적 엄마의 냉가슴앓이도

시간이 지내놓고 보니

곱디고운 모습으로 노년을 보냈습니다

사랑의 오래 참음은

참으로 맑은 생수입니다

 

땅을 깊숙이 파면 팔수록

맑은 물이 나오듯

맛은 더욱더 시원하겠지요

 

어느 결혼식 축가가 생각납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오래 참는 것은 아프기도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 내게 오는 것이라고

믿어 봅니다

-오래 참음, 전문

 

  화자는 30년 가까이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인류는 지금까지 전통적인 것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파괴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종교적인 변화에 가속도가 붙어 제어의 필요성이 요구될 때 이를 위한 조치는 단호하다. 성경을 달리 해석하고 통제가 안 될 때에는 탈 중심 다원적으로 자기들만의 평등의 세계로 모이게 된다. 이런 힘은 항상 하나가 아니라 뭉칠 때 존재한다. 화자는 유교에서 과감하게 탈퇴한다. 어쩌면 키치(Kitsch)가 말하는 대로 세상은 잡다한 싸구려 그림, 이발소 그림이나 조악한 것이 판치는 세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형식에서 벗어난 진실에는 오래 참음(인내)과 용서 그리고 사랑이 필요하다. 화자도 어릴 적 어머니가 경제적 문제로 냉가슴앓이를 했음에도 사랑의 인내로 고운 모습으로 노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를 목격한 화자는 인내는, 참으로 맑은 생수라 한다.

 

사랑의 오래 참음은

참으로

스테인드글라스의

영롱한 색채가

마음속에 십자가를 그린다

 

머릿속에 맴도는

회개의 사건들이

적나라하게

공중에 펼쳐지고

 

세상의 구름다리를

이리저리 타고

노닥거리는 방랑자의

노랫소리는

끊어질 듯 달랑거리는

믿음의 밧줄이

받치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성령의 갑옷만 입으면

됩니까?

그 옷이면 됩니까?

그렇다면

누더기 단벌신사라도

저는 좋습니다

  -단벌신사 십자가, 전문

 

  교회 창문에 붙어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따라 화려하게 변한다. 자신도 모르게 화려한 색채 속에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세상의 구름다리를/ 이리저리 타고/ 노닥거리는 방랑자의 노랫소리는/ 끊어질 듯 달랑거리는 /믿음의 밧줄이/받치고 있다/ 중략/누더기 단벌신사라도/성령의 갑옷만 입으면 된다//고 한다. 의뢰하는 헌옷을 수선하고 깨끗하게 하는 직업인이라 단벌신사라도 좋다고 단언한다.

  화자는 세탁소에서만 일하며 시간의 측면을 잘 조정한다. 일하는 곳에서 가족의 안녕과 하나님의 형상까지 만들어 낸다. 모든 세계 구축의 시가 창조되는 곳도 세탁소이다. 이러한 고유의 자기세계 구축은 내재적 동기가 극대화한 상태로 적절한 결합점을 찾는 곳도 세탁소이다.

 

  3. 나가기

 

  울창한 숲, 드넓은 들판이 품고 있는 자연의 위대함과 생명의 신비는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현대문명이 낳은 회색빛 도시에서 잠시 일손을 놓고 자연으로 들어간다. 이곳에 오면 살아 있는 여명의 빛을 보게 된다. 때로는 보드라운 풀밭을 맨발로 누비며 그곳에서 나고 자라, 숨 쉬는 모든 생명을 직접 보고 느낀다.

어느덧 자연에서 그리움과 사랑의 대상을 찾아낸다. 자연이 품은 정서는 출발점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다. 도덕경 6장에는 마음의 신()은 영원하며 위대한 어머니(玄牧)라고 한다.

  시를 외우고 시 쓰는 것도 생명의 무늬가 살아 있음이요, 가치 있는 존재의 탐구일 것이다. 이는 생명의 울창한 숲에서의 열림이다. 어렵게 창작한 한 편의 시가 남들에게는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작가에게는 위대한 탄생을 위한 맺힘이다. 그곳에는 생명의 강이 이어지고 운명의 별이 새롭게 돋는 환희가 시속(時俗)에 언어적 미감으로 가득 차있다.

화자 유경순은 새로운 창작물에 자신만의 호흡이 있는 시, 고운 색깔을 넣어 아름다운 무늬가 표현되는 시가 계속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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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1958년도 충남 온양 출생 1987년 도미 서울문학 시부문 등단.

  한국문협 미주지회 회원. 뉴욕 스카스데일 거주

  시집: <재봉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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