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옥 수필가

조회 수 12331 추천 수 5 2015.02.10 10:03:14

   


                                                 절망에서 빠져나오기와 꿈꾸기 시간
                                             정순옥의 수필집 《오매, 복사꽃 피네》작품세계


                                                                                                                                           강 정 실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



1. 여는 말

  우리는 한 편의 수필에서 인생관과 철학을 읽는다. 이 경우 작가의 체험 진폭이 깊고 넓을수록 독자는 작가의 미적 감수성에 탐닉하게 되며, 내적 감각을 통해 자기화의 희열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수필문학은 자신의 초상을 그리는 것이다. 이는 수필이 자기 관조와 자기 고백에 형성되는 문학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자기 관조는 우리들의 일상이라는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유로 되거나, 특성화되거나 아니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의 투영일 것이다.
  독일 철학자 지멜(Simmel Georg)은 “타인에 대한 해석, 타인의 내적 본질을 분석하는 것을 억제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훌륭한 초상화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하나의 표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의미 있는 초상화를 볼 때마다 우리는 그 표정 뒤에 어떤 속내가 숨겨져 있는지 알고 싶은 독심술과도 같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비평가 곰브리치(Gombrich)가 이미 갈파했듯, 이런 때 정확한 표정을 포착하기란 그야말로 ‘악명 높을 정도로’ 어렵기만 하다.
   또한, 수필만큼 글쓴이의 인격이 있어야 하는 문학 양식도 없을 것이다. 흔히 “문(文)은 인(人)이다.”라고 한다. 이는 문장이 곧 인격의 표현이며, 고매한 인격에서 깊은 글이 나오고 천박한 인격에서는 얕은 글이 나온다는 말이겠다. 곧 글이란 혼(魂)의 울림이요, 영(靈)의 외침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2. 안으로 들어가기

  수필작가 정순옥이 발표한 두 번째 수필집 《오매, 복사꽃 피네》라는 표제어가 투박하면서도 순수한 모습이 동시에 떠오르게 한다.
  그녀의 수필을 읽어보면 절망에서 빠져나오고 또 다른 아름다움과 새로운 꿈 꾸기 하는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전 4장으로 편성된 《오매, 복사꽃 피네》 안에 담긴 작가의 세계는 눈앞에서 조립한 누각이 아니요. 오늘이 있기까지의 고단한 노고·아픔·배움에의 열망이 담겨 있는 진솔한 삶의 현장이다. 이 수필집에는 처녀 때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녹아 있는가 하면,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해광이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겪어야 했던 아픔을 진솔한 편지와 시가 담담하게 적혀있다.
  작가 정순옥은 1950년, 전북 내륙지방 소쿠리 마을에서 8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얼굴을 보면 순박하고 여린 듯하지만 한 번 만나면 아무런 꾸밈없이 진솔하게 대화한다. 그녀를 쳐다보는 남편 이병호 시인은 항상 말없이 대해주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녀는 다정다감하고 솔직하며 집념 또한 대단히 강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영어 탓에 일 년에 두 번 있는 미국간호사자격증을 16번의 응시를 통해 받았다. 지칠법한데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합격할 때까지 응시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 체험기가 1989년 LA 중앙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공모에서 우수작으로 뽑혀 문장가의 입문이 시작된다. 이어 2003년 <미주광야지>에 수필 신인상에 당선 후, 다시 2009년 본국에 있는 <한국수필>에 정식 절차를 마치고 현재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이사로 남편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나는 복숭아꽃을 보면서 내가 살던 고향을 생각했다. 고향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어 내 삶이 고단하거나 괴로울 때면 항상 안겨서 위로받고 싶은 곳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을 흥얼거리면서 타향살이한 지 벌써 삼십 년을 바라보고 있다. 많은 사람은 고향을 잊어버리고 산다지만 난 그러질 못한다. 고향은 아름다운 내 사랑의 시작이었고, 이 세상에서 평화와 행복을 안겨주는 가장 포근한 내 인생의 요람이기 때문이다.
                                                        -<오매, 복사꽃 피네!>에서


  오매, 복사꽃 피네. 우리가 듣는 일상적 언어이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적인 타국의 생활에서 느끼고 보는 복사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 꽃 속에 고향의 그리움 그리고 아픔과 기억이 알알이 배겨있는 작가의 복사꽃이다. 이런 복사꽃은 바로 화자의 생애요, 살아감이다. 복사꽃으로 말미암아 갈등하고 화해하기도 한다.
  이는 수다한 고향에 대한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역정을 간결하게 비유, 상징하면서 이 수필의 존재는 철학적 문제에 닿게까지 한다. 그리고 전라도 사투리의 개인사적인 화소일지언정 우리는 모두 공동체적인 동심원 안에서 자기화의 동화를 통해 화자와 동일시작용을 일으키게 한다. 읽는 재미는 이렇게 감응과 감동을 통해 동화하게 마련이리라.


 나는 남편 앞에 굳은 얼굴로 서서 똑똑히 말했다. “내가 지금 단단히 화가 났거든요. 내가 말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나는 어떤 변명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내 뒷전으로 들리는 소리는 나도 일찍이 느끼고 있었던 뻔한 소리다. ‘자두나무 가지가 꽃을 상하게 하니깐 그랬지-’ 나의 의견은 아랑곳없이 한 행동에 화가 나서 조개 입을 하고 지내는 두 주일 동안,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화가 나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풀어야 한다는 진리의 성경 말씀도 생각해 보고, 평생 사는 사람에게 화를 낼 정도로 어차피 열매도 못 맺는 나무 하나에 집착하는 나의 모습이 옳은가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우리 집을 아름답게 함께 꾸며가면서 사는 남편의 동등한 사랑이, 우리 아버지의 조건 없는 사랑 같기를 은연중에 바랬던 것이다. 나는 아스라이 먼 곳에 계신 울 아빠가 너무도 그리웠던 거다.
                                                             -<배롱나무를 심으며>에서


  화자는 자두나무를 잊기 위해 새로운 배롱나무를 심는다. 자두나무는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면서 대가족을 거느리고 살아오신 아버지와 고향의 그리움이다. 이런 나무가 남편에 의해 잘려나갔다. 화자는 자두나무에서 피는 꽃과 열매를 보며 새롭게 키우려고 했던 소중한 기억이 무참히 잘려나갔음을 의미하는 글이다. 어쩌면 화자가 맞닥뜨린 현실이 절망적 상황일 수 있다. 남모르는 고뇌를 잊게 해 줄 위안처를 남편이 무참히 잘라버린 아픔. 화자의 표현처럼 “내가 지금 단단히 화났거든요. 내가 말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그 순간은 절망적 상황이었지만, 화자의 의지와 집념은 사랑 하나로 바위를 뚫을 수 있었으리라. 화자의 아버지가 막내딸인 화자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존심을 버리고 서 계셨던처럼 말이다. 화자는 현모양처다.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고 남편과 쉽게 화해하는 그런 삶과 마음이 바로 작가 정순옥이 아닌가 싶다.


  음악 소리에 젖어 멈추지 않는 내 발걸음은 재이드 가든(Jade Garden)으로 향한다. 내 몸뚱이만 한 옥수석이 모자이크 된 뜨락에 조형되어있다. 5억 년 전에 생성된 옥수석인데 누군가로부터 바닷물 속에서 발견되었단다. 이제는 아트재이드로 바뀌어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5억 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갖은 풍파를 견디어 낸 인고의 흔적이 고스란히 함축되어 하나의 예술품을 만들어낸 옥수석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한 어느 철인의 말이 떠오르게 한다.
                                               -<음악이 흐르는 캔터베리 우드스>에서
 
  화자는 시시포스(Sisyphos)의 노역처럼 한때, 세상의 짐을 지고 한 계단 오르기에도 벅찬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도, 각종 악기가 뿜어내는 재즈음악에 쉽게 빠져든다. 어쩌면 인생은 가락과 함께하는 것일 게다. 아마도 화자는 장구나 피리 혹은 해금이 형성된 풍물패들의 놀이었다면 또 다른 해석을 풀어놓았을 성 싶다. 그 음률 속에서 이방인의 삶을 정의함으로써 조화인 가락을 의미화하고, 현재적 자아의 자성과 진지한 삶의 통찰을 다른 메시지로 보여 주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또 다른 드림 재즈밴드 그룹들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연주하는 신이 나는 음악 소리와는 달리, 내 귀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들렀다가 간 다시금 은물결이 출렁거리는 듯한 호프만의 뱃노래가 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미국생활 30여 년이 지난 화자는 아직도 영어에 서툴다며 자신을 콩글리시, 컴퓨터도 익숙지 못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도리어 그 긴 세월을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그리고 자기반성 덕분에 오로지 가족 중심의 생활인 듯싶다. 그래도 이 수필을 영문으로 번역한 것을 보면 조화되지 않은 한국적 미국인이다.


 토요일 아침,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회 성도와 잠시 바닷가를 거닐었다. 먼동이 터지면서 무리지어 나는 펠리컨이 아침 햇살 사이로 상큼하게 다가온다. 잠시 후 또 다른 펠리컨 무리 중 리드가 나의 옆으로 지나친다. 그런데 리더의 모습이 내 사랑하는 아들처럼 유유히 지나간다. 착각이었을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목구멍에서 가쁜 숨이 터져 나온다. 그 환상을 한 편의 시로 만든다. 그리고는 너에게 편지를 띄운다.
 너는 한 마리의 하얀 새/창공을 나르는 펠리컨/초록 바다와 붉은 태양 사이로/자유롭게 나는 아름다운 새/사람들을 초록 바다처럼 넓은 가슴으로/사람들을 붉은 태양처럼 뜨거운 가슴으로/사랑을 많이 참으로 많이/海光이라는 이름을 품은 너/오늘도 내 눈동자에/너의 모습을 그려 놓는/ 한 마리의 하얀 펠리컨/ 창조주의 유일 작품 고귀한 너
<본인의 졸작 해광海光 원문>   
                                             -<하늘나라 아들에게 띄우는 편지>에서


   화자는 바다를 생명을 보듬어 안은 어머니로 비유하면서 가슴이 먹먹할 때는 바닷가로 향한다. 아침 햇살이 다가오면서 펠리컨 무리 중 리더가 하늘나라로 먼저 간 아들의 얼굴로 바뀐다. “‘남편이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있더라만 나는 너를 어느 곳에도 묻지 못하고 아직도 이렇게 내 품에 보듬고 서성거리고 있다.” 아직도 아들을 가슴에 묻어두고 떠나보내지 못하는 화자의 마음은, 김소월의 <초혼> 시구만큼 애절하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서러움에 겹도록 부르노라…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이만큼 화자의 가슴속은 남들에게 웃고 있지만, 멍든 가슴을 숨기지 않고 파헤치며 죽은 아들의 이름을 이 작품을 통해 애절하게 부르고 있다.
  어쩌면 삶과 문학은 봄 안개와 장맛비인지 모른다. 봄 안개와 장맛비는 바로 자식을 처음 가슴에 안았을 때의 기쁨과 그 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묻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요, 펠리컨의 환생은 ‘예지몽’이 그러하듯 화자로 하여금 아들 해광이를 유추해내는 해석의 빌미다. 펠리컨과 아침 햇살의 절묘한 조화가 이 수필을 추억 속의 한 페이지로 인도하면서 땅에 묻힌 자식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마음 안에 미세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런 수필적 상상이야말로 수필을 수필답게 하는 마력과도 같은 힘이 아닐까 싶다.


   인생의 아름다운 꿈의 조각보를 만들어 가면서 내는 재봉틀 소리는, 우리 어머니 세대와 나의 세대 그리고 딸의 세대를 잇대어 주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재봉틀은 내 삶의 여러 양상의 편린들을 박아 소박한 꿈의 조각보를 완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내 삶을 박아 가면서 내는 흥겨운 재봉틀 노랫소리를 듣는다. 도로록 도록….
                                                              -<재봉틀 노래>에서


  화자가 맞닥뜨린 꿈의 조각보를 만들어 가는 재봉틀 소리는, 바쁘고 힘든 어린 시절의 어머니 때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재봉틀 소리이다. 이 소리는 배움의 열망을 이룬 의지와 소망의 소리였으리라. 당시는 비록 절망적인 소리였겠지만, 지금은 남루에서의 탈출과 종교적 귀의. 이들이 하나로 융해되어 영글어 있는 삶이 세대를 잇대어 주는 즐거움의 소리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렇기에 수필을 읽노라면 진한 감동과 함께 인간 승리의 전설을 듣는 듯하다. 꿈을 찾아 떠나는 노마드의 삶. 화자는 이제 중견작가로 변신하여,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그 안에 내재한 존재의 문제에 귀의하고 있다. 문장이 덜 정련되어 있고, 사상의 깊이가 다소 얕다 하여 탓할 수 있으랴. 어차피 수필문학은 삶에서 길어 올린 영혼의 소리요, 반영이 아닌가.


  현대인들은 대부분 답답하게 보이는 들창보다는 속 시원하게 보이는 널따란 창문을 좋아한다. 창문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시원스럽게 열려 훤히 보이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여성 패션까지도 앞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배꼽티가 유행하여 너도나도 입는다. 하얀 복부 가운데에 움푹 팬 배꼽이 숨기고만 있기엔 너무도 앙증스럽게 예뻐서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열린 마음이 생겨서다. 모두 즐겨 입으니 배짱이 두둑한 임신부도 입고선 오리처럼 뒤뚱뒤뚱 길을 걷기도 한다. 보는 사람의 민망함은 아랑곳없이, 호박같이 둥글게 불거져 나와 신비스럽기 그지없는 아름다운 몸짱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들창>에서


   현대사회는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배꼽티가 유행하는 물류시대가 넘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은 것을 쉽게 잃어가는 세대다. 예로부터 해어진 옷은 비슷한 색의 조각을 덧대어 실과 바늘로 한 올 한 올 꿰매서면서까지 몸매를 가리려 했다. 폭넓은 치마 속에 임신한 복부를 널따랗고 보드라운 복대로 싸매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다. 그곳에 부끄러움과 가림의 공간이 존재했고 삶의 뿌리라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옛 여성들의 이야기는 소설만 같다. 세대의 풍속이 변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변한다.
  이처럼 쉽게 변해가는 세대의 풍속과 물질적 풍요는 인간의 생활과 삶 자체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 탓에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자조적인 이 시대의 문제,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낭만의 상실이요, 인간성의 상실이다. 빠르게 변하는 풍속과 물질적 풍요는 점차 인간이 설 땅을 앗아가고 기계의 예속화를 가속시킨다. 이런 비인간화에 대해 일찍이 오르데카 카세트는 그의 <예술의 비인간화>에서 “현대 사회의 빠른 구조는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하다가 옛날을 잃어버리고 자아상실을 넘어 자신의 모습까지 지워버린다.”라고 말하고 있다. 깊이 새길 말이라 싶다.


  열약한 김포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탄 후, 한강을 스쳐 지나오면서도 가슴이 막혀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만 지닌 채 1970년대부터 나는 해외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자동차로 한강대교를 편안한 마음으로 지나 세계 최고의 인천 국제공항을 넘나들고 있다. 시대와 환경은 달라졌어도 한강을 말없이 바라볼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울컥해 지면서 한없는 연민이 일곤 한다.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이 뛰는 한강. 보고 또 보아도 아름답기만 한 한강. 보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떨어져 지내야 하는 아쉬움에 눈시울이 젖어드는 한강. 지금은 머나먼 곳에서 무사함을 비는 마음으로 그리움을 달래야 하는 한강. 한강은 내 영혼을 신선하게 해 주는 영원한 내 사랑이다.
                                                            -<내 사랑 한강>에서


  화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먹고살기 위해 어린 젖먹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남편과 함께 미국 길에 오른다. 그동안 이방인이라는 인간적 고뇌와 삶의 방향을 재단하기보다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튼실하게 만들기 위해 궁극적 사명을 다해 왔다. 그러나 그 자식을 미국 땅에 묻고 심한 고통과 우울증으로 번민하다가 지천명을 넘기면서 자아인 ‘나’를 탐색하고 비로소 ‘나’를 찾기 시작한다.
  화자는 먼저 고향 가족이 있는 고국을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는 한강을 바라보면서 단풍 같은 나이에 다시 찾아왔다면서, 재미교포로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내 가슴 속에 파묻혀 있는 그리움을 한강물에 와락 쏟아 부으면서’라고 고국에 대한 사랑을 쏟아 놓는다.
  그렇다. 화자의 몸은 비록 가을 소풍을 즐길 나이일지라도, 한옥 돌담을 끼고 만들어진 아담한 방에 창호지를 바른 들창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을 마음으로 느끼며 고국에 대한 찐한 그리움으로 살아가고 있다.


 3. 들어가는 말
  수필작가는 창작현장에서 특별히 선택된 어떤 제재를 통해 인간과 우주의 본성을 깨달음의 형태로 인식하여 형상화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애매하거나 종잡을 수 없는 다양한 제재의 본성을 사상가나 철학자의 대담록 등에서 찾아낸 법칙과 원리를 활용할 경우 뜻밖에 대상의 본질을 쉽게 암시받을 수 있다.
  이렇듯 정순옥의 수필은 읽기 편하고 어렵지 않다. 도리어 단조롭게 여겨진다. 그 창작성 발상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해체하지 않고 낯섦과 통섭의 의도를 쉽게 간파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수필은 철학의 명제처럼 논리적인 언어구조로 되어 있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이런 수필은 파괴된 내면을 조심스럽게 기우고 가슴에 맺힌 상처를 닦아내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그녀의 수필은 자신을 구해내는 절망에서 빠져나오기와 꿈꾸기 시간이다. 어쩌면 낯익지 않은 발상이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수필보다 사고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작품들이 차라리 더 낳지 않을까 싶다.
  여타의 작품에서도 이런 해체와 통섭이 엿보이는 것은 앞으로 그녀의 작품이 지향할 분명한 향방을 보여주고 있다. 수필작가 정순옥의 수필은 고향의 그리움과 영혼의 미세한 풍경 그리기일 것이다. 수필이 더욱 정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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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전북 정읍 출생/1978년 도미/《광야》 신인문학상 수필 당선/《한국수필》 신인문학상 수상/제26회 허난설헌문학상 수필 금상/

제25회 서울문예창작 문학상/제4회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상/현재: 한국문인협회 및 미주지회 이사
저서:《기쁜 소식》, 《오메 복사꽃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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