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 가던 날

조회 수 87 추천 수 1 2025.01.27 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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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실에 가던 날

 

                                                                                         정순옥

 

  시급했다. 생명을 살리는 응급실이 필요했다. 남편이 마룻바닥에 넘어지면서 잠깐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긴 했지만, 온몸이 파래지면서 떨리는 증상과 함께 말이 어눌함을 느꼈다. 나는 의료경험으로 알고 있는 응급처치를 하면서 언니에게 빨리 구급차를 부르도록 했다. 미국은 911인데, 한국은 119이란다. 이유를 물은 후에 구급요원들이 도착했다.

  마침내 구급요원들의 손에 의해서 남편은 응급차에 올랐다. 그런데 구급차가 움직이질 않는 것이었다. 손가락으로 스마트폰만 두드려 대면서, 환자가 갈 수 있느냐고 묻는 모습이 나를 무척 불안하게 했다. 이유를 물으니,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장소를 찾는 중이라 했다. 응급차는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는 게 정상이 아닌가요? 라는 나의 말에, “요즈음은 의료대란으로 아무 곳이나 못 가요한다. 전공의가 없다고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응급실 땡땡이라는 말이 생긴 모양이다. 응급차가 병원을 돌다 돌다가 환자가 죽어버렸다는 뉴스가 생각났다.

  구급요원이 몇 군데 전화해 보더니 찾았다면서 멀지만, 분당 J병원으로 갈 것이라 했다.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생명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요 한순간에 유.무가 결정되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나는 무척 긴장했다. 한평생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에서 환자를 치료해 주는 입장에서, 치료 받는 입장의 보호자가 되어 응급실에 가는 나의 심정은 조급했다. 응급차는 환하게 불이 밝혀 있는 응급실 입구에서 비상 깜빡이를 켜고서 멈췄다. 남편은 들것에 실려 보호자인 나와 함께 북적거리는 응급실로 들어섰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 발이 오들오들 떨려 걸음이 뒤뚱거렸다.

  하얀 칸막이며 침대 위에 누워있는 환자 팔에 맞고 있는 수액이 걸려 있는 폴, 산소통 등 낯익은 의료기구들이 눈에 스치니, 내가 다뤘던 의료기구들이라 순간적으로 반갑고 감개무량했다. 나는 바쁘게 환자를 돌보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의 모습을 보자 이젠 되었다-‘ 하는 안도감이 들면서 마음이 한결 안정되었다. 정말 생사를 다투는 순간이었다. 침착하려고 노력해도 남편을 치료할 의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신속하고 친절한 의사와 간호사, 의료팀들의 도움으로, 혈관주사,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 등으로 응급치료를 받은 후, 남편은 응급실을 나올 수가 있었다. 나는 고국 방문 중이어서 몸 따로 마음 따로 움직이는 현상이 잦아진 남편의 202496일 응급의료사고로 인해, 한국의 의료대란을 직접 체험한 한 사람이 된 것이다.

  20231019일 정부에서 의대 증원 발표와 이에 반대하는 의사, 전공의,의대생들의 조직적인 반대가 시작된 의료대란은 아직도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를 주장하는 정부와 잘못된 정책이라는 의사협회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지금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인턴 1년과 레지던트 4년 동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고강도의 의료훈련을 받는 전공의들인데,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대란은 환자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귀중한 생명이 의사의 손끝에서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기에, 나는 의사를 존중하며 전공의 없는 의료공백이 두려워지기도 한다. 응급의료센터에서 생명을 다루는 의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의 모습을 생각해서라도 의료공백은 없어야 한다. 정부나 의료계는 아프지 말자!”를 외치는 국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정부와 의료계의 마찰은 심각한 일이다. 의료개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정부와 원점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의사협회의 해결점은 어디에 있을까. 하루빨리 좋은 타협을 하여 국민들을 불안에서 해소시켜 주길 간절히 비는 마음이다. 국제적으로 의료기술이 높은 위치에 있는 대한민국에 의료대란이란 말은 애당초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인간의 단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생명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의료계요, 국민건강을 지키는 것이 정부일 진데 환자를 놓고 거래하는 모습이 된 의료대란은 꼴 보기 싫은 감정이 든다. 사람의 생명이 하나의 물건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의료대란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며 고통받는 사람은 환자다. 환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의료계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서 일한다는 정부와의 불협화음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병으로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앓고 있는 환자를 볼모로 싸우고 있는 관계자들이 못마땅할 뿐이다. 이 시간 나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환자만을 위해서 의사의 임무를 다하는 한 외상 의사가 왜 이리도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제일인 것들이 많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만 헤아려보아도 참으로 많다. 노벨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세계에서 으뜸인 문학, 미래에 대한 교육열, 컴퓨터 시스템, 예술, 체육, 아름다운 자연환경 --- 사람의 생명을 살려내는 의료지식. 근래에는 여러 가지 중에서도 전공의들의 의료시술이 빠르고 정확하기로 해외에서 정평이 나 있다. 세계에서 으뜸인 대한민국 의사들의 자존심을 짓밟지 않고 의료개혁을 지혜롭게 할 수는 정녕 없을까? 하늘에서 내려오는 지혜만이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꼭! 하늘의 은혜가 의료대란 해결에 임할 것을 믿는다. 고국 방문 때, 응급실에 가던 날부터 시작된 나의 간절한 기도는 오늘도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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