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는 날

조회 수 1130 추천 수 0 2014.12.16 16:37:09

                                                              이사 가는 날

 

                                                                                              안상선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과 있으면 좋은 것이 있다. 그리고 아무 필요가 없는데 가지고 사는 것도 있다. 이 세 가지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마지막이길 희망하는 이삿짐을 꾸리면서 잔뜩 벌려놓은 나의 생활반경을 한군데로 합쳐 이제는 단순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하여 팔자에 없던 두 집 살림을 하나로 묶는 과정을 체험하게 되었다.

십수 년을 살았던 옛날 집, 두 아이가 성장,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고 내 미국생활의 절정기를 보내며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날면서 자유를 만끽했던 보금자리였다. 그리고 오 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던 현재 집은 은퇴하면서 애들이 가까이 살고 기후가 쾌적한 남가주에 아내와 둘만이 오순도순 소꿉장난하듯이 살았던 조그마한 집이다.

   다행히 타주에 있었던 옛날 집이 팔리고 대충 정리한 세간을 서둘러 이삿짐 보관창고에 저장하고 이곳 남가주에 있는 동네에 집을 마련했다. 그리하여 두 집 살림살이를 하나로 합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일곱 개의 책장을 버리고 그 많은 책을 간추려 이제 하나뿐인 책장 위에 올려놓고 저 선택받은 책들은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저들은 내 마음과 영혼을 살찌게 하는 영양소이니까.

부엌주위에 있는 서랍과 찬장들, 하나같이 그릇과 요리기구, 음식재료들로 가득하다. 아내가 평생 아끼고 모은 살림살이에 그녀의 체취가 물씬 풍겨온다. 필요한 몇 가지 식기들을 서랍, 찬장 몇 군데서 뽑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조촐하게 둘이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식사 후 잘 씻어진 그릇들을 제자리에 다시 올려놓는 과정이 내겐 커다란 도전이다. 똑같은 그릇과 맞춰서 올려나야 하는데 여기저기 열어봐도 그들은 어디론지 숨어 버리고 보이질 않는다. “여보! 둘이 사는데 이렇게 많은 그릇이 왜 필요해?”라고 항의하는 내게 당신 잊었어? 추수감사절엔 애들 한 집에 네 명씩 두 집에 조카네가 다섯, 우리까지 합쳐 모두 열다섯 명이야.”

     물질만능의 현대 생활 속에 주객전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안쓰럽다. 내가 주인이 되어 물질의 풍요함을 즐기며 사는지, 아니면 물질에 대한 욕망에 끌려다니는 노예가 되어 사는 건지.

아침 눈뜨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밤사이 무슨 중요한 소식이라도 놓치지 않았나 확인한다. 아침 산책길에 신선한 공기, 야생화와 풀 냄새를 맡는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은은한 바람 소리에 교차하여 내 귀에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는 정말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이제 나에겐 버릴 줄 아는 결단의 시간이 온 것 같다. 그 많은 살림살이 중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정돈하며 살아야 할 때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속에 쌓여있는 고정된 정신적 사고방식이나 오래된 생활습관의 많은 부분을 버려야 할 것 같다. 급변하는 요즘 세상, 버리지 않으면 나는 결국 나 자신 속에 갇히어 살게 된다. 더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많이 버릴수록 우리 마음은 더 여유 있고 풍족한 삶이 되지 않을까.

   품위 있고 빛깔 좋게 늙어가고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는 석양처럼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버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신이여,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고요함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키는 용기와 이 두 가지를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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