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년 만의 해후
안상선
우리가 고달픈 삶을 살아가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원인 중 한 가지가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마음이 따듯한 사람을 만나는 일일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내 영혼의 마중물이 되어 목마른 내 마음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그런 특별한 사람이 있었다.
사 십여 년 전, 마지막 떠나는 열차에 오르는 심정으로 가방 하나 들고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망망대해에 혼자 내버려진 듯 막연하고 아득하기만 했다. 생소함과 서러움이 마음속에 파도처럼 밀려온다. 미래를 향한 두려움과 절박함이 내 마음속을 꽉 메운다.
종일 그레이하운드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낯선 미국 중부의 시골풍경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던 나는 석양 무렵에야 어느 조그만 마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갑자기 배고픔이 날 엄습했다. 긴장된 마음이 종일 굶은 것도 잊어버린 탓이리라. 주위의 거리를 아무리 둘러봐도 먹을 것을 파는 식당이라곤 한 곳도 없다. 그때 버스 대합실 구석에 서 있는 자동판매기가 눈에 띄었다. 내게는 모두가 생소한 품목들이다. 두리번거리다 ‘chicken noodle soup'이라고 쓰인 깡통 하나를 끄집어 손에 쥔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따끈따끈하고 부드러운 국물 맛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서투른 영어로 병원장인 미국인 의사와 면담을 마치고 취업이 되었다. 그리고 일 년의 그곳 병원생활은 나의 미국생활의 밑거름이 되었고 새로운 삶의 첫걸음이었다.
그때 이웃 동내에 개업하고 있는 한국인 의사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내 병원취업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전문의를 양성하는 병원들에 관한 중요정보는 물론 미국생활의 길잡이가 되어준 부부였다. 내 평생 마음속에 간직하며 바쁘게 살다 보니 사 십여 년이 지나버렸다. 언젠가는 만날 날이 있겠지, 그땐 고마웠던 내 마음을 꼭 전달해야지 다짐하면서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다.
지난달 이곳 남가주 어바인에 있는 동네로 이사 왔다. 우연한 기회에 그 부부도 이 동네로 이사하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우리는 사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사십 년이란 기나긴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생생한 기억으로 그때 일들을 마치 어제 일어난 얘기처럼 주고받는다. 아- 평생 궁금해하고 만나고 싶었던 그분들과 다시 만나 새로운 이웃이 된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열심히 일하고 끊임없이 달려온, 확신에 차고 당당해 보이는 내 인생. 그 뒤안길에는 낭떠러지에 매달려 추락 직전인 나를 받쳐준 분들이 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암흑 같은 미국에서의 첫 발걸음, 그 어려운 시절, 내 삶의 등불이 되어 나를 지켜준 이분들이다.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해준 이분들께 어찌 내 마음을 다 전할 수 있을까.
인생의 마중물이 되어준 두 분과 사십 년 만의 해후, 또한 내 미국생활의 첫 장과 내 삶의 마지막 장을 함께 할 동반자로 나타난 이분들. 난 이처럼 축복받은 인연을 소중히 아끼며, 내게 주어진 이 행운을 고이 간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생을 함께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