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jpg

 

   [가을의 시]

 

늦가을 여운(餘韻)

                          기청

 

새가 모이를 쪼듯

눈만 뜨면 자판에 엎드려

시간을 잊은 내가 딱했는지

틈틈이 아내가 불붙는 늦가을

모니터 앞 한 뼘 빈터에

무더기로 풀어놓았다

 

자판을 두들기다 막히면 먼 산 보듯

이 불타는 가을 단풍잎

바라보라는 것인가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바라보면

단풍 색색의 물감, 들국화 은은한 향기까지

 

스멀스멀 모니터 속으로 흘러들어가

멈춰선 글자 애틋한,

아직 풀어내지 못한 생각까지도

빨갛게 혹은 샛노랗게

가을빛 물들이는 것을.

- 출전; 기청 시집 [열락의 바다]중에서

 

[CULMN 오늘]

 

/노벨문학상 수상 談論//

 

 막연한 기대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권위 있는 노벨문학상이라 해도 빛과 그늘의 두 얼굴이 존재한다. 필자가 이미 8년 전 발표한 칼럼(전망)과 수상 이후의 관점에서 쓴 두 칼럼을 동시에 소개한다. 8년이란 시간의 흐름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한국이란 변방이 세계화 경제력 K-컬쳐라는 상승기류를 만나 주류로 부상했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 그 다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기청)

 

 

 

  노벨문학상의 빛과 그늘(이후)

 

  우리가 모두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노벨문학상 수상국이라는 명예와 함께 원어로 수상작품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모두가 함께 축하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노벨상의 제정 경위를 알고 나면 그렇게 잔치를벌일 일만도 아니다. 한강 작가의 말대로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은 끊이질 않고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상인이 죽다?

  알프레드 노벨은 1888년 신문기사에서 자신의 부고를 읽고 충격에 빠졌다. 기사에는 '죽음의 상인이 죽다(The merchant of death is dead)'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평생 큰돈을 모았다. 그런데 마지막 평가가 죽음의 상인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기자가 노벨의 형을 노벨로 착각한 해프닝으로 밝혀졌지만, 그의 충격은 그를 변화시켰다. ‘죽음을 파는 상인‘-다이너마이트는 공사현장에서는 유용한 도구였지만 전쟁 현장에서는 대량살상 무기로 양면성을 가진 발명품이었다.

  노벨은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 3,100만 크로네(단순 환산으로 약 50억원,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약 2,700억원의 가치)를 유언 집행자에게 위탁하고 이 재산을 운용하여 해마다 인류 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prizes to those who, during the preceding year, shall have conferred the greatest benefit to mankind)고 유언장에 적어 놓았습니다.

  자신의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인류 발전에 기여했지만, 한편으로 대량살상이라는 과보에 대한 참회의 성격이 담겨 있다. 이런 경위를 알면 앞서 작가 한강의 말에 공감이 갈 것이다.

  문화라는 현상도 깊게 보면 하나의 정신적 에너지의 흐름이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높은 문화에서 낮은 문화 쪽으로 흐른다, 요즘 반짝하는 K-컬쳐란 것도 세계화의 한 산물인 것이다. 과거 변방으로 여겼던 한국이 상승기류를 만나 잠시 역류현상을 보인 것에 불과하다. 언젠가는 연기(緣起)에 의해 다른 변방으로 옮겨 갈 것이다.

  이번 한강의 수상은 자신은 물론 누구도 예축하지 못한 파격이었다. 그런 면에서 K-컬쳐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 노벨문학상의 전통적 권위가 무너지면서 비주류에게 기회가 확대된 것이다. 미국의 대중가수 밥 딜런이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런 징후가 더욱 선명해졌다. 노랫말과 문학의 혼동은 파격을 넘어 문학에 대한 모욕이란 주장까지 나왔다.

 

  진정성 있는 談論

  여러 조건들의 결합으로 선택은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강 작가의 수상은 혼자만의 것이 아닌 것이다. 한국문학의 터를 닦고 어려운 질곡 속에서도 자긍심을 지켜온 문학인들의 땀과 헌신의 결과인 것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처럼 경사 뒤에는 뒷말도 있기 마련이다. 한강의 작품이 아직 설익은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또 광주 5.18과 제주 4.3사건 등 역사적 팩트를 다룬 작품에서 작가의 일방적인 관점(이념)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또 한사람만 집중조명을 받는 쏠림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수상 자체는 엄연한 현실이지만 진정성 있는 담론까지 함구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노벨문학상의 전통적 권위와 시각이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필자의 8년 전 다른 칼럼 참조) 하지만 아무리 세계적인 권의의 문학상이라 해도 완벽한 신뢰를 담보하기는 어렵다. 현상은 언제나 상대적인 양면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다이너마이트의 두 얼굴, 노벨상의 빛과 그늘, 그것은 모두 불완전한 이상이며 실체가 아닌 것이다.

  한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얼어붙은 문학의 터전이 훈풍으로 풀려나기를, 물질문명의 그늘에서 시들어가는 인간성 회복의 계기가 되기를, 우리 시대, 문학의 힘, 그 샘솟는 문학의 열정으로. (*)

 

 노벨문학상의 빛과 그늘

 -8년 전 (전망)

 

  노벨문학상의 선정기준은 무엇인가? 우선 작품 자체의 예술적 성과에 주목할 것이다. 다음은 수상자가 소속한 사회 혹은 국가의 문화적 특성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수상이유로 그 나라의 독특한 정서와 문학의 상관관계를 중시해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가별 수상자를 보면, 프랑스 14명 미국 10 영국 9 독일 7 스웨덴 이태리 각 6 스페인 5명 순이다. 미국과 유럽 등 강대국이 휩쓸고 있다. 상의 주체인 스웨덴의 영향력도 직접적이고 강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양권 수상자로는 인도의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기탄잘리, 1913)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설국, 1968), 오에 겐자부로(소설, 만연원년의 풋볼 1994) 중국의 모옌 (소설, 2012) 등이 있고, 타고르 이후 시 부문 노벨상 수상자는 전무한 실정이다.

 

  타고르 이후 시 부문 동양권 수상자 전무

  이중 타고르의 수상이유는 "그가 만든 그의 시적 사상과 완성된 솜씨와 함께 서구 문학의 일부분인 영어로 표현된, 그의 깊게 민감하고 신선하며 아름다운 운문 때문에 이 상을 드린다고 되어 있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지배아래 있었고 타고르는 영국에 유학하여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처음 기탄잘리’(신께 바치는 송가)는 뱅골어로 쓰였지만, 나중에 직접 영어로 번역, 영국에서 출판하여 온 유럽의 찬사를 받았다. 수상작 기탄잘리는 총 103편의 장시로 인도적인 명상과 신비. 신에 대한 외경을 노래한 것이다. 식민지의 슬픔을 항거하지 못하는 지식인, 기댈 대상은 오직 신과 순결한 영혼뿐, 그의 고뇌와 속죄양 의식이 짙게 깔린 작품이다.

  가와바다 야스나리는 가장 일본적인 작가로 꼽힌다. 그래서 수상이유도 "일본적인 정서의 진수를 표현해내는 위대한 감수성을 지닌 그의 이야기와 통제력에 이 상을 드린다고 되어있다. 그의 바탕에 내재한 허무주의와 서정성 짙은 신비주의는 일본대륙을 감동을 줬지만, 그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 노벨문학상은 심리적인 부담이었을까?

  수상 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가스를 마시고 자살한, 비운의 작가이기도 하다. 지한파인 오에 겐자부로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는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비현실적 신비주의를 비판했다. 장애인 아들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전후세대의 인권문제 등 인간 보편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중국의 모옌은 환상적인 리얼리즘을 민간 구전 문학과 역사, 그리고 동시대와 융합시킨업적이 수상이유였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첫 노벨상 수상자는 시 부문이기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희망 사항이긴 하지만. 타고르 이후 동양권에서 시부문의 수상자가 없기 때문이다. 수상자는 누가 될까? 그보다 어떤 작품이 될까?

  앞의 경우처럼 가장 한국적이거나 인류보편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 될 것이다.

 

  한국 첫 수상작 기대

  수상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으로는, 작가와 작품의 국제적 인지도, 수상 시점이전에 스웨덴어로 번역 출판되어 있을 것 등의 암묵적 조건이 충족돼야 한단다.

  한국문학번역원 자료에 따르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47명이 수상 이전에 평균 5권이 스웨덴어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실태는 어떤가? 스웨덴에 출간된 한국작가의 작품은 10여 종에 불과하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 ‘화엄경4,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시인황석영의 황씨 연대기’ ‘오래된 정원등이 고작이다. 그쪽에서 볼 때 한국 시인으로는 고은 외 거의 무영일 뿐이다.

  일본이나 중국의 문화는 일찍부터, 우리보다 훨씬 먼저 서양에 알려졌다. 해외에 일본학, 중국학 연구자가 많고 일본 중국 문학도 전문가에 의해 꾸준히 번역 소개되었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국가차원에서 해외 일본학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한다.

  이에 비해 해외의 한국문학은 아직 낯설고 머나먼, 무지의 베일에 가려있는 변방일 뿐이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을 기대하려면 우선 한국문학의 바탕이 되는 한국학과 함께 우수한 문학작품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작업이 선행 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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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공간 16. 3월호, 기청산문집 <불멸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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