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고백

조회 수 1428 추천 수 0 2015.01.09 14:36:48

       제자의 고백(告白)      


                                                                                  이 복 자
  

   그 시절은 6·25사변 직후라 모두 가난하고 어려운 시기였다. 나는 고향에 있는 모교인 초등학교에 발령받았다. 처음 시작하는 직장생활이라 설렘과 두려웠던 때가 까마득한데 추억은 생생하게 그대로 남아있다.
  건물은 폭격으로 반 이상이 폐허 되고 넓은 강당과 교실 10여 개가 남아 있을 뿐이다.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강당을 여섯 교실로 나누었다. 그중 한구석에서 학생들은 송판에 네 다리를 세운 조그만 책상을 각자 가지고 왔다. 찬 마룻바닥에 앉아 오들오들 떨면서 매서운 추운 날씨였지만 빛나는 눈으로 나를 맞아 주었던 3학년 1반 남아들이었다.
  학생들의 손등은 터서 갈라지고 발가락은 동상에 걸려 벌겋게 부어있는 가여운 아이들이었다. 그래도 참고 견디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견했다. 그중에는 산 넘고 들길을 1시간 이상 걸어온 학생도 있었다. 전쟁 중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지내는 학생도 3명 있었다.
  하루는 가정방문을 핑계 대고 고아원에 찾아갔다. 그리고는 3명의 학생이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빈약한 시설이 비참했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은 웃음을 잃고 양지바른 곳에서 병든 병아리 마냥 웅크리고 않아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다만 배고픔에 먹을 것만 신경 쓰고 눈치를 보는 듯했다. 그 당시의 고아원은 구호물자에 의존하여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었다. ‘가여운 아이들, 어떻게 할 수 없을까’ 하는 마음은 있는데. 나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게 안타까웠다.
  내가 제일 힘들었던 일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매월 기성회비(학교 운영비)를 담임이 독촉하여 걷는 일이었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탓에 우리 반은 항상 꼴찌였다. 무상으로 교육시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런데 무슨 형벌처럼 전교 학급에서 수납된 기성회비는 나에게 다 가져왔다. 서무과장에게 매일 통계를 내어 돈과 함께 보고하는 업무가 교무회에서 내게 맡으라고 한 것이었다.
 중책을 맡아 실행하던 중 아찔한 사건이 생겼다. 교실에 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 돈이 없어진 것이었다. 가슴은 두근두근 속만 태우고 조심하지 않은 나의 실수라 누구에게도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진땀을 흘리며 친지께 사정하여 겨우 해결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서산을 바라보니 저녁놀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곱고 빛깔은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삭막한 내 마음을 위로하여 주는 듯 황홀하고 포근했다.
  그런데 어려움 속에서 항상 웃는 얼굴에 똑똑한 반장, 조윤모가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반장과 집으로 함께 오는 동안 이야기했다. “강원도에서 피난 나올 때 부모를 잃고 작은 엄마와 둘이 삽니다. 작은 엄마는 돈 벌어 오라며 밥도 안 주고 매질까지 해요.”라며 절박하게 돈이 필요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까 마음이 쓰렸다. 나는 저녁을 잘 찾아 먹고 위로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 했다. 표정을 보니 내게 할 말이 있는듯한데 눈치만 보고 망설이다 말을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근무하던 4년간 많은 사연을 뒤로하고 대전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근되어 고향을 떠났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결혼하고 엄마가 되었다. 하루는 말쑥한 하얀 해군제복을 입은 정장한 군인이 집에 찾아왔다. 어떻게 왔을까? 나에게 인사를 정중히 하고는 “선생님. 저 조윤모예요”라고 한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보다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잊지 않고 찾아온 제자가 반가웠다. 제자는 단정히 앉아 망설임 없이 “용서해 주세요. 제가 선생님의 돈을 훔쳤습니다!” 하며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닌가.
  제자는 오랜 세월을 얼마나 자신을 힘들게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그러면서 제자의 진정한 고백에 나도 눈시울이 젖어와 왈칵 쏟아졌다. 나는 제자를 안아주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용서하는 기쁨, 용서받는 기쁨, 그 순간의 감동을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모진 세파 겪으며 참고 견디었으니 잘 살기를 마음 깊이 빌어 주었다.
  어려운 시절 만고 풍파 겪으며 살았을 불쌍한 아이들,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제 이순을 넘긴 노년이 된 제자가 궁금해진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겠지 싶다. 어떻게 변해 있을까? 만남과 헤어짐은 우연이 아니고 깊은 인연이 있다 생각한다. 제자는 진심으로 양심 고백을 할 수 있는 심성을 가졌으니 틀림없이 올바르게 살았을 거라 믿는다.
  정직하게 정도를 걸어온 사람만이 마음의 평화와 축복을 받을 것이리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이 몇이나 있으랴. 잠시 있다 가는 인생길, 많이 사랑하고 아름다운 발자취 남기고 싶다.


오애숙

2015.01.09 23:52:36
*.3.228.204

축하합니다. 

청양띠 해를 맞이하여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되어지길 기원합니다.

많은 좋은 글을 남기어 많은 분들이 읽고 힐링되어지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계획하시는 일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은파  오애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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