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창회 수필가

조회 수 6541 추천 수 5 2015.08.07 11:43:20
                             
                          문인이 맡은 분야는 정서(情緖)라고 강조하는 수필가 도창회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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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창회 수필가

                                                                                      


 

   도창회 선생은 수필가로 지내온 세월이 50년이 다 되었다. 그 세월만큼 명작도 많다. <야호고> <여체> <설산유정> <애상> <겨울을 앓는 사람> <늦바람> <밤별> <빈 집> <거기 그 집> <선심> <껍데기의 노래> <결전의 날> 등이 있다.
  선생은 ‘37년 4월 경북 성주 벽진에서 출생, ‘49년 벽진초등학교 ․ ‘52년 성주중 ․ ‘55년 대구 계성고 ․ ‘62년 동국대학교 ․ ‘66년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그 해부터 동국대학교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다 ‘80년 퇴직하였다. 그 동안 첫 수필집 ⟪땡감을 깨무는 마음을(‘85년)⟫외 7권,    첫 시집 ⟪혼불ⅠⅡ(‘88년)⟫외 9권, 첫 이론서적 ⟪수필문학 이론(‘93년)⟫외 5권을 저술하였고, 민족문학 대상 ․ 문예한국 대상 ․ 21민족문학 대상 ․ 허균문학 대상 ․ 국제문학공로훈장(일본) ․ 링컨학술공로훈장(미국) 등을 수상하였다. 또한 충남 보령시 성주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모산 한국육필문학 공원에 선생의 문예비가 우뚝 서 있다. 선생은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장을 역임한 후 지금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특별대담>                                                              


                   수필가 도창회 선생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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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몇 곳을 구경하고 부산 집에 도착했다. 먼저 도창회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 날짜를 미국으로 되돌아가는 날로 잡았다. 그 사이 지도를 들고 전국의 꽃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KTX 고속기차를 이용하여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도창회 선생과 에세이문학의 김윤정 편집부장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녀는 몇 장의 사진을 찍어 주며, 내게 건네줄 서류를 주고는 내일부터 중국문학기행이 있다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정실: 선생님을 만나 뵌 지가 꼭 1년이 되었네요. 요즈음 바쁘신데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창회: 별 말씀을요. 감사합니다.


                                                       무원해외문학상을 만들다


강: 요즈음 후배육성을 위해 ‘무원(无源)문학상’을 만들었다면서요?
도: 작년 10월에 만들었습니다. 무원은 본인의 사호(師號)인데, 고 양주동박사께서 주셨지요.  이 사호을 붙여 만든 상이 올해로

      2회를  맞이합니다.
강: 그 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도: 수필부문과 시부문에 대한 상입니다. 해당자 한 사람에게 상금 1백만 원과 금메달 그리고  상패를 주게 됩니다. 올해는 해외에

      계신 문인들에게도 ‘무원 해외문학상’을 똑같은 방법으로 수필부문과 시부문 각각 한 사람에게 수여할 계획입니다.
강: 간단하게 계산을 해도 일 년에 5, 6백만 원은 족히 들어갈 것입니다. 어디서 후원을 해 줍니까?
도: 경기일보와 뜻이 있는 몇 분의 문우들이 뒤에서 후원해 주기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을 추천해 주세요.
강: 우리 한국문인협회 각 지부에 선생님의 말씀을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사호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대학원 시절,  고 양주동 선생께 받으신 것이라지요?
도: 맞습니다. 대학원 2학년 때의 일이지요. 당시 양주동 교수께서 나의 수필을 보고는, 그의 문통(文統)을 잇기 바란다는 차원에서

     무원(无源)이라고 지어주셨지요. 학점도 100-1=99점을 주면서 1점은 자기가 죽은 후에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1점을 더 주면

     한국의 국보가 바뀐다는 뜻의 농담과 함께 말입니다.(웃음)
강: 자, 계속해서 선생님의 젊었던 날로 한 번 더 달려가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수필가이면서  시인이신데, 남들에게는 수필가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무슨 연유가 있으십니까?
도: 이런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는데…고등학교 2학년 때 ‘문둥이 나그네’라는 시로 전국 장원을 했지요. 처음에는 시인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고, 많은 시간을 시작(詩作)에 몰두했었습니다.


                       대구 계성고등학교의 3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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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창회  수필가

 

강: 시인으로 탄탄대로를 달려갈 수 있었을 터였는데도, 한국문인협회에는 ‘64년 수필 <여자의 손톱>으로 등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도: 그래요. 수필가로 등록시켰지요.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이렇습니다. 문단에 나와 보니까 서정주라는 사람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지 않습니까. 그 양반이 시(詩)로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고, 또 조지훈이라는 선배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내 앞에

       있는데 거기 뛰어들어서 무슨 빛을 보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약삭빠르다는 생각이 들지 몰라도 수필가로 등단은

       잘했다 싶습니다.(웃음)
강: 대단한 기지라는 생각이 들고 또 솔직하십니다. 그래도 수필가로서의 충분한 능력이 되시니까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이겠지요.
도: 덕분에 계성고등학교 3대 인물로 뽑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소설에 김동리, 시에 박목월, 수필에 나, 도창회가 뽑인 것입니다.

      하지만 시를 못 쓰는 사람은 수필을 쓸 수가 없어요. 그 이유는 문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운문을 모르는 사람이 사물론을

      정리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다 시를 쓰면서 수필을 했어요. 스승인 양주동 선생과 피천득 선생도 시를 썼지요.

      그 유명한 ‘어머님의 은혜’는 양주동 선생의 글이잖아요. 피천득 선생도 ‘수필은 시의 연속선상에 있는 문학’이라고 강조를

      했습니다. 이와 같은데도 요사이 수필가들은 시를 자꾸 포기하는 것이 가슴 아파요. 그건 잘못된 일입니다. 문인이 어떻게

      수필만, 시만 고집합니까? 그들은 한 장르도 어려운데 어떻게 두 장르를 하느냐고 항변을 합니다. 뭐, 내용이  칙칙해지고 늘어

      진다나요? 그건 절대 아니에요. 두 장르는 반드시 결부되어 있습니다. 수필문장을 쓰는데 그걸 함축을 못 시키면 문장이 안 되는

      것이지요. 시를 하면 문장 하나하나가 다 달라지는 효과를 얻을 수가 있어 좋습니다.
강: 시에 대해 말씀이 나왔으니, 선생님의 장시 중 <장송비가>와 <한 영혼의 연가>가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합니다.

      그 시에 대한 설명을 좀 해 주시죠.
도: 그 시는 3년 8개월의 긴 시간과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 시입니다. 2천 행의 장시입니다. 두 편이 한 쌍입니다. 비가悲歌(Elegy)는

     슬픈 노래이고, 연가戀歌(Amoretti)는 기쁜 노래의 시입니다. 하지만 형식부터 다릅니다. 연가의 최고는 엘리엇입니다. 그는

     신화적인 이미지를 가져다 썼습니다. 나는 그런 사랑을 주제로 해서 세 살부터 구십 살까지의 모든 사랑을 그려 넣었지요. 내가

     경험하지 못한 80-90세의 사랑은 대리 경험을 하면서 적었습니다. 예를 들면 경복궁 뒤 캄캄한 데서 요사이 젊은 아이들이

     사랑하는 모습을 훔쳐보았지요. 그들에게 혼쭐이 난 적이 한두 번 아닙니다.(웃음) 또 있습니다. 시골에 가서 90대 영감님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쓴 시가 <한 영혼의 연가>입니다. 한동안 <장송비가>를 쓰고 나서는 실어증에 걸려 엄청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죽음의 시를 쓰면서 죽음에 가까이 가보지 않고 쓰면 누가 믿어 주겠습니까? 6개월간 밤 9시에 공동묘지에 가서

     새벽 4시까지 죽음과 같이 있었지요. 낮에는 집에 와서 문을 이불로 막아 햇빛을 차단하고 쓴 시입니다.
강: 저로서는 상상도 못할 대작업입니다. 한 마디로 직접적인 경험과 간접적인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네요. 토마스 그레이의

      시가 500행도 안 되는데 세상에서 제일 긴 시라고 합니다. 선생님의 시를 기네스북에 장시로 신청해 보실 생각은 없습니까?(웃음)
도: 기네스북에 올라가면 뭐 하겠습니까? 노벨 문학상이라면 모르지요.(웃음) 하여간, 연작시 10편을 쓰는 것보다 장시 1편이 더

      어렵습니다. 연작시는 했던 이야기를 또 써도 괜찮지만 장시는 시구를 중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한 구 절도 똑같은 게

      없으니 내공이 들어가야 합니다. 보통 500행에서 600행쯤 가면 앞에 나온 것이 자꾸 튀어나와, 시어 중복을 안 하려고 엄청난

      고민과 함께 힘이 들어갑니다. 이런 고행이 따를 때는 담배와 술은 기본이고, 평소에 언짢았던 일들을 마누라에게 토출시킵니다.

      자연 부부싸움을 하게 되죠. 분위기를 바꾸어 보는 것이지요. 이런 짓을 반복해도 한 줄의 시구가 안 떠오를 때는 밖으로 훵하니

      나가 버리지요. 이게 몸에 박혀 버린 것 있죠? 지금은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이유 없이 외출도구부터 준비합니다.

      며칠이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게 필수적인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강: 선생님께서는 대학 강단에 영문학을 강의하면서 수필 300여 편 이상과 시 2,000여 편을 창작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아온 것인지 짐작게 하는 부문입니다.
 도: 수레바퀴로 본다면 두 바퀴를 동시에 돌린 것이지요. 하나는 창작의 바퀴, 또 하나는 학문의 바퀴. 시간적으로 봐서 두 배의

        노력을 했습니다. 학문은 학문대로 대성해야 하고, 창작은 창작대로 명작을 내야 하지 않습니까? 새벽 4시까지 잠을 잔 적이

        없습니다. 가끔 드는 생각은 하나만 굴렸으면 더 많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겁니다.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더 높이 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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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실 평론가

              

                                              

                                                          수필에 대한 장르적 본질

 

강: 선생님. 이제 수필의 장르적 본질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도: 수필은 자유롭게 쓸 수가 있습니다. 다 아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자유롭게 쓴다고 해서 다 수필은 아닙니다. 수필의 장르적인

      특성에 들어가야 비로소 수필이라는 글이 되지요. 그런데 유독 수필을 ‘광범위한 장르의 글’이라고 우겨대며 일기문, 여행기,

      예찬 글, 심지어 논문까지 모두 수필이라고 합니다. 수필의 예술성(문학성)은 어디서 찾을 것입니까? 과연 그런 글을 읽고

      문학성의 여운을 맛볼 수 있을까요? 나는 반대합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수필의 장르적인 본질이 있는데 거기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기문은 일기문대로 기행문은 기행문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일기수필’이니 ‘기행수필’이라며 우기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지요. 적어도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장까지 했다 하는 사람이 ‘무슨 저런 이야기를 하노?’라고 할는지

      몰라도 세계적인 조류를 놓고 보면 그 분류는 수필이라 고 안 해요.
강: 좀 더 세부적인 설명을 해 주시지요.
도: 우리나라에서는 기행문이나 일기문을 넓은 범위에서 자유롭게 쓰는 글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수필이라는 장르에

      넣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이건 절대로 따 로 존속합니다. 여행수필이나 일기수필이라는 것은 아예 없습니다.

      수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을 왜 수필 영역에 넣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모순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수필의 이론체계를 재정립하여 직접 수필문학사를 써서 가르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 그렇다면 수필의 장르적인 특질은 정확하게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도: 수필의 첫 번째 장르적 특질은 진솔성입니다. 소설의 허구와는 다릅니다. 허구는 거짓말이고, 없는 사실을 꾸며낸 가공입니다.

      수필은 1인칭의 글입니다. 그래서 내면을 진솔하게 쓰면 쓸수록 명작입니다. 두 번째는 수필은 나를 쓰는 것입니다. ‘진솔성과

       같은 이야기’ 입니다. 가공을 동원한 상상력의 이야기는 절대 안 된다는 뜻입니다. 진솔하다는 것은 내 이야기를 거짓 없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진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자아의 세계를  쓰는 것은 다른 장르에서는 안 해요.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가 제일 중요합니다. 수필은 언제나 유머가 있어야 합니다. 뭔가 그대로 쓰지만, 그 안에 유머가 들어 있어야

       되니까 어렵지요. 진솔하게 쓰면서 웃기는 건 정말 어렵잖아요.
강: 유머가 있는 수필에 대한 것은 조금 있다가 설명을 듣기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방금 하신 말씀 중에 ‘진솔성과 같은 자신의

       이야기’라는 뜻은 사실적(事實的)이 아니라, ‘사실적(寫實 的)인 글’로 치부됩니다. 중요한 것은 수필도 창작품일진데 창조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수필정의에 대한 원의적인 것, 즉 실험적 창작이 어찌 나올 수 있을까요?
도: 조금의 오해가 있었나 보군요. ‘진솔성과 같은 이야기’라는 뜻은 바로 ‘사실적(事實的) 상상력의 이야기’를 말한 것입니다.

       피천득 선생이 말씀했다시피 있는 사실을 그대로 썼든, 자신의 ‘사실적 상상력’을 조금 섞어 썼든, 그게 진실에로 승화가

       되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작품이 사실이냐 허구냐가 문제입니다. 내 자아의 세계를 진솔한 상상력과

       함께 동원되고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수필이 됩니다. 그것을 누가 허구(虛構) 가 들어간 수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내레이션(이야기)이 들어 있는 수필은 사실적인 상상력이 동원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찰스 램의 작품

       <꿈속의 아이들>(Dream children)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램은 평생을 홀아비로 살아왔기에 자식들이 있을 수가 없지요.

       하지만 그는 잠에서 꿈을 꾼 내용. 마치 자식이 있는 것처럼 상상(imagination)을 동원하여 만든 가공의 수필입니다. 곧 ‘있을

      법한 진실(what seems to be)'은 그가 잠에서 있었던 내용과 현실세계는 엄연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허구를  배척하는

      사람들은 이 수필을 허구라고 단정 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그 작가의 작품이 꿈의 소산품인가 아닌가를 따질 수밖에 없죠.

      분명한 것은 그가 꿈을 꾸고 작품을 썼든, 안 썼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작품이 진실에로의 회기 또는 진실에로의

      승화가 되었으면 진솔한 자아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는 정지해 있다’고 재판장이 판결했다고 해서 지구가

      돌지 않던가요?
강: 수필가 윤오영 선생의 글에서도 선생님과 비슷한 내용 ‘사실적 상상력’과 ‘있는 그대로의 글’에 관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도: <방망이 깎던 노인>을 쓴 윤오영 선생도 한평생 수필 창작활동만 했습니다. 그분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신 모양입니다.

      어떤 사석에서 그분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쓴 글이 수필이지만, 과연 문학수필이 되기나 할까? 생활의

      여적을 쓴 글들, 감성의 조각들을 모은 글들, 교훈 따위를 늘어놓은 글들, 인생 타령을 쓴 글들을 어떻게 문학수필이라

      일컫겠는가?  있는 그대로에 사실적 상상력을 최대한 축소시킨 내 작품들을 보니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네.”  정말 경종 울리는

      말입니다. 나 자신만 해도 50여 년 동안 수필을 써왔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수필작품 쓰기가 갈수록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니 어떻게 써야 수필이 문학이 될까를 고심할 수밖에 없지요.
 강: 충분히 통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이력에 비해 까마득한 후배인 저도 한 편의 수필을 쓰려고 마음먹으면 그때부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의 <죽절성竹切聲>이라는 대표작이 있습니다. 이미지즘의 수필이죠. 그 작품은 어떻게 사실적

       상상력을 동원한 것인지에 대해 궁금합니다.
도: 죽절성은 이름 그대로 ‘대나무가 분질러지는 소리’입니다. 이때 '대나무’의 실상(實像)을 심상(心象image) 즉, ‘여인의 절개’

      혹은 ‘여인의 정절’로 보았지요. 대나무가 분질러지는 소리를 ‘여인의 정절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의 이미지’로 바꾸어 그

      이미지를 형상화 해 나간 작품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극대화된 심상을 차근차근 수필 속에 심어 형상화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다음부터는 수필 전체를 미적(美的)으로 형상화했습니다. 그 미적이란 것은 수필장르의 특색대로 동기부여가

      들어간 것을 의미합니다. 이 동기부여를 넣기 위해 대나무에 얽힌 야사, 청소년들의 비행, 대나무의 역사적 고찰 등 ‘자연의

      소리’와 ‘여인의 정절’이 무너져 내리는 것에 대한 비교. 내가 본 세상적인 죽절성의 느낌 등을 사실적 상상력과 이론을 동원한

      것이지요. 그래야만 비로소 제2의 승화된 작품이 탄생하게 됩니다. 수필도 창작품일진데 창작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강 선생이 지적한 수필정의에 대한 원의적, 즉 실험적 창작이 안 나올 수가 없겠지요.
강: 남들도 이러한 사실적 상상력의 과정(路程)을 거쳐서 한 편의 수필이 나온다면 제2의 승화된 작품이 탄생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친 창작된 자신의 수필이라 할지라도 이 작품은 ‘신변잡기’가 아닌 틀림없는 ‘문학작품’이라

      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도: 칼로 무를 자르듯 ‘이것이다, 저것이다’로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통상, 수필창작품의 작품성은 자신의 작품을 읽은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겠지만, 작가 자신이 이 작품은 ‘문학작품’ 이다, ‘아니다’를 먼저 알 수가 있죠. 나 자신도 50여 년 동안 수필을

      공부하며 300여 편 정도를 발표했지만 '이것이다'라고 내놓을 만한 작품은 20여 편도 안 돼요.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단

      한 편이라도 성공한 작품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작가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죠. 시원스런 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수필은 어려운 문학입니다.
강: 선생님께서는 수필의 본질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도: 과학의 본질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수필의 본질은 미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죠. 즉 문학수필의 본질은 아름다움입니다.

       한 편의 수필을 읽고 '아름답다', '멋지다'는 생각을 한다면 성공한 수필입니다. 신문에 실린 칼럼을 읽고 ‘아, 이 칼럼은 참 아름

       답다’는 말이 나옵니까?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되는 소리죠. 수필이나 시에서만 가능한 일이지요.
강: 아름다운 수필, 멋진 수필, 성공한 수필을 쓰기 위해 선생님께서는 평소 어떤 지론을 가지고 계십니까?
도: 이 대답은 좀 깁니다. 중요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올 2월, ‘수필 워크숍’에서 ‘내가 쓰는 수필에 어떻게 문학성(예술성)을 높일까?’

      라는 주제로 발표했던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소재의 선택입니다. 국어사전에는 소재에 대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소재란 작품의 바탕이 되는 재료. 곧 자연물, 환경, 인물의 행동, 감정 따위’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쓰고 싶은 소재 중에서 꼭 써야 될 것만 써야 합니다. 적어도 자신이 전문수필가라면

      수필의 소재나 주제를 택할 때부터, 택한 소재로 수필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뭐라도 쓰면 수필이 된다’는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해요. 다시 말해 그저 자기의 체험을 있는 그대로

      써내면 문학수필이 된다는 생각은 싹 지워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소재는 사실적 근거에 의해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대가들에게는 소재를 선택하는 천재성이 있는 것 같지만, 천재성이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많이 쓰므로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주제와 주제의식을 갖고 써야 합니다. 주제란 수필의 주장이 되는 제목과 중심사상입

      니다. 수필의 내용이 지향하는 것이죠. 중심사상이 없는 글은 잡문일 뿐입니다. 그러니 주제는 글의 처음부터 말미까지 끌고

      가야 합니다. 주제의식은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을 뜻합니다. 사랑, 미움, 그리움, 아쉬움, 인정, 복수심, 정서나 서정 그 자체만으

      로도 족합니다. 주제가 보편적이면 보편적일수록 영원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어 영원한 예술성을 갖는

      것이지요. 한 번 더 강조합니다. 주제란 '꼭 찍어서 이것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썼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주제의식이 없는 글은 덤덤하고 속도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수필을 쓰는 기법입니다. 이것에는

      '연역법'과 '귀납법' 이 있는데, 주제를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의 방법입니다. 연역법은 주제에다 근거를 두고, 쓰고 싶은 영감이

      떠오르면 소재를 얻어다 느낌을 주제에 맞추어 이끌어 나가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귀납법은 주제에 근접하는

      소재를 모아 놓고 나중에 주제로 귀결시키는 방법입니다. 네 번째는 수필은 자신의 고백적 문학입니다. 수필은 진솔한 나의

      성찰이지요. 이 고백적 문학은 사물에 대한 관찰이나 객관적인 이야기는 의견의 나열이지 수필이 될 수 없습니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자기 고백적입니다. 자기 고백적인 글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려면, 인간의 삶의 보편성을 담은 이야기여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작품의 표현능력이 중요합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문장을 잘 써야 한다는 것이지요. 문장이란 갈고 닦을 수밖에

      없습니다. 왕도가 없지요. 아무리 좋은 소재나 주제라도 표현력이 부족하면 질이 떨어집니다. 또한, 계획성 있는 구성과 심도 있는

      문장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선택해서 많이 읽고 많이 쓸 수밖에 없습니다. 여섯 번째는 다른 사람

      의 글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입니다. 아는 게 없으면 남을 비판 할 수가 없죠. 무슨 뜻인가는 말을 안 해도 잘 알 것입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수필을 사랑하고 무한한 애착을 두며 문학작품을 쓰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죠. 수필에 인생을

      담는 그릇은 다양합니다. 무슨 형식을 취하든지 그것은 자유입니다. 유리그릇, 사기그릇, 놋그릇, 무슨 그릇이든 수필을 담는

     그릇은 같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담기는 담되 맛깔스러운 음식을 담으면 좋지요. 그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수필이

     라는 좋은 그릇에 향내 나는 좋은 수필음식을 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웃음과 해학이 들어 있는 수필


강: 선생님께서 수필 장르 중 제일 쓰기가 어렵고 또 중요하다는 유머수필 세계로 들어가겠습니다. 선생님의 <늦바람> <공중변소>

    <선심> <경쟁자> 등 몇 편의 유머수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다른 수필가들의 작품 중에서 해학이 있으면서 깊이가 들어있는

     명작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도: 당장 강선생의 수필에도 <최후의 만찬>이나 <젖소와 옷핀>이 있지 않습니까?(웃음) 하지만 이상하게 우리나라에는 유머가 있는

     수필을 잘 볼 수가 없어요. 국어학자 양주동의 설>을 보면 그 속에 기가 찬 유머가 들어 있습니다. 이 내용은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수필입니다. 게다가 피천득 교수 역시 나의 스승인데 그분도 내게 위트가 있는 수필을 요구했습니다. 요즈음 한국 수필은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진솔한 자아 세계를 추구한다고 아주 심각한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

      은, 위트와 해학이 가장 절실하게 나타나는 문학은 바로 수필입니다. 가디너의 <여행 동반자>는 전부 유머입니다. 인생의 깊이가

      있으면서 유머가 있으니 얼마나 명작이겠습니까? 수필은 수필대로 장르적인 본질이 있어서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강: <늦바람>은 부인과 개가 등장하고, <선심>에는 훔친 고추와 방뇨, 그리고 밭 주인이 등장합니다. 또한 <결전의 날>에는 자신과

      쥐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동물과의 사건, 자신이 깨어지면서 벌어지는 생활의 소재로 한정된 웃음과 해학이 대부분입니다.

      재미가 없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기묘하고 기상천외한 재치의 소재는 없을까요?
도: 다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일 것입니다.(웃음)

                         
                        수필에 대한 4단계 변신


강: 선생님의 초기의 수필과 지금의 수필을 비교해 보면 많은 변신을 한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건 수필분야에 대한 자신의 일탈이

       아닌지요?
도: 일탈은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나 자신은 일탈의 범주에서도 벗어났기에 변신이 라는 단어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무려 4번이나 변신을 했지요.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리리시즘(lyricism), 서정수필을 썼습니다. 그리고는

       에로티시즘(eroticism)으로 갔다가 이미지즘(imagism) 수필로, 다시 유미주의(唯美主義aestheticism)로 변신했습니다.
강: 수필분야에 대한 5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겠지요?
도: 아닙니다. 방금 말씀을 드렸지만, 처음에는 서정수필을 계속 고집했었지요. 그런데 어느날인가 이런 생각이 듭디다. 서정수필을

      아무리 써봐야 단 한편도 인정 못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대표작품 중에 <여체>라는 수필이 있습니다. 여체의

      전라(全裸)를 탐미하는 수필이지요. 발표되자마자 뜨는 것 아닙니까? 이게 에로티시즘의 시발점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수필에 대해서는 이때가 제 전성기일 겁니다.
강: 선생님의 에로티시즘의 수필에 대해 느낀 점은 조금 있다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선생님의 문학적인 변신에 대해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서정주 선생께서는 서정시 ‘국화 옆에서’에서부터 사물화(事物化)함으로써 ‘동천’으로 변신했고, 또다시 ‘신라초’

      로 영원과 진리에로의 회귀를 꿈꾸는 이미지즘의 시로 선택하였는데, 선생님께서도 그런 영향을 받은 것의 기초로 변신한 것이

      아닐는지요? 왜냐하면, 문단에 서정주 시인이 버티고 서 있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선생님께서 그분 문학의 변신을 항상 의식하

      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도: 맞다, 아니라는 단정보다는 좋은 예가 하나 있습니다. 매일 시장바구니나 들고 어디 갔다 온 이야기만 쓰면 안 되지요. 에로티시즘,

       이미지즘, 유미주의 수필로의 변신. 재미있잖아요. 인간이 어떻게 서정적인 것만 가지고 살아갑니까? 인생 자체가 바로 문학인데,

      오히려 변신된 수필문학 작품이 더 중요하지요. 물론 이런 시도는 대학에서 영미수필에 대한 강의를 40년간 하면서, 나 자신의

      글에도 많은 시도를 하며 새롭게 변신에 변신한 결과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문예사조를 넘어서 어떤 문장을 써야 하는지

      직접 취득해 와서 새롭게 시도해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변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변신하려면 문학조류에 근거해서

      몸을 바꿔야 합니다. 자유로이 하는 게 아니라, 그 전과는 문장도 다르고 내용도 다 달라야 합니다. 그래야 바꾸는 것이지, 문장

      하나 바꾸고서는 변신했다고 하면 말도 안 됩니다.
강: 선생님의 에로티시즘의 작품, <불망초(不忘草) 사랑>은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읽는다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무대는

      다르지만, 유년기의 소년과 사춘기에 돌입한 소녀 화자와 담백한 사랑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마치 저 자신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하는 그런 풋풋하고 서정적인 향수를 느끼게 했고, <여체>는 여체의 전라(全裸)를 탐미하는 수필이지만, 프로이드가

      말하는 ‘생태적 본능’의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즘수필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도: 이 작품에서의 사랑과 전라(全裸)는 프로이드가 말하는 ‘생태적 본능’에 해당하죠. 다만 그런 생태적 본능과 욕정의 본능을 문학작

      품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고민이 수반된 작품이죠. 평론가 안재동 선생은 이렇게 표현을 합디다. ‘바람’의 의미는 일종의 ‘끼’라고

      요. 아마 ‘바람끼’라는 어휘에 부정적 의미와 긍정적 의미를 동시에 다 포함시킨 것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문학작품

      속에서의 ‘바람끼’는 오히려 인간적인, 보다 원초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수필을 읽히게 하는 일종의

      마력 같은 것이라 봅니다. 그런 작품이 바로 에로티시즘의 작품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사랑적 체험을 문학으로 재승화시키는

     작업, 거기에 자신만의 독창성(Originality)이 들어가는데 어떻게 우월한 에로티시즘의 문학수필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강: 2006년 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인호 소설가가 <껍데기는 가라>라는 긴 칼럼이 중앙지를 통해 발표되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그해 가을에 <껍데기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수필을 발표했습니다. 두 분 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詩) 전문을 똑같이 인용했습니다. 저는 최인호 소설가의 칼럼도 좋았지만, 선생님의 수필을 읽으면서 마치 ‘껍데기 전시장’에

      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놀랐습니다. 그만큼 많은 소제를 준비하신 것이죠. 그리고 참 대단한 수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때 이 시가 386세대들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시로 불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 작품도 상징수필 즉 이미지즘 수필에 포함시켜도

      괜찮은 것입니까?
도: 이미지즘수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엄격히 말하자면 참여수필 또는 비판수필에 속할 것 입니다. 그 당시의 국내 정치적인 변화와

      새로운 기대 속에 변질된 것을 껍데기로 비유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수필입니다.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해졌지만, 그 당시 우리

      문단도 개혁이라는 미명으로 두 동강이 났었지요. 언젠가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의 통일이 오면, 남북이 함께 왕래하고

      함께 노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담은 수필입니다. 또한, 이 수필은 내가 아끼는 수필 중 하나이지요.
강: 선생님의 <결전의 날>이라는, 쥐를 소재로 한 유미주의 수필을 ‘03년도 '문제수필'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끝 부분에

      가서는 엄청난 준비와 노력에 비해 너무 싱겁게 끝이 나고 맙디다. 차라리 쥐와 한바탕 전투를 벌인 결과가 나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또한, <거기 그 집>이란 작품은 ‘내’가 ‘그’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분명치

      않고, 목적지도 분명치 않으면서 기차와 버스 그리고 도보로 계속해서 찾아갑니다. 전개되는 언술의 중심에 의미 생성이 보이지

      않고, 그야말로 환상적인 언화(言話)만이 계속되는 수필. 도무지 수필의 행로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유미주의 작품은

      심리적인 갈등의 진행에 역점을 두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즈음도 유미주의에 대한 작품을 많이 쓰고 계십니까?
도: 유미주의 수필은 오직 미를 위한 미, 예술을 위한 예술로 순전히 예술주의로 가는 것이라 주제가 없습니다. 소재도 별로 없고, 아름

      다움만을 줄곧 써가야 하기에 확실한 문학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강 선생이 지적한 것처럼 재미가 없어 잠시 주춤하고 있습니다

      (웃음). 유미주의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갈등구조가 깊어야 합니다. 심리소설의 원조인 에드거 앨런 포우의 <블랙 캣>을 읽으면

      유미주의의 장르적 특질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 수필은 처음 도입부터 갈등구조를 심화시키며, 숨 가쁘게 이끌어가면서

      계속 몰입해야 하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지요.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만 줄곧 써내러 가며 페이소스를 느끼고, 속도감에

      클라이맥스까지 이끌어가고, 카타스트로프 대단원을 내려야 하기에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강: 문학평론가 한상렬 선생의 <도창회 교수의 수필 연구>라는 논문에서 ‘도창회 교수가 우리 한국의 전통 수필을 벗어버린

     수필창작의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었다’고 극찬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문단의 수필가 중 누가 이런

      유미주의 경향의 수필을 창작하는 분이 있습니까?
도: 아무도 없죠. 단언합니다. 이 문예사조를 영국과 프랑스의 문학인들은 ‘스스로를 위해 있는 것이므로 도덕적, 정치적 기타

      비예술적인 표준에 의해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요. 칸트는 ‘유미적 판단은 사사로운 이해관계가 없는 순수한

      행위’라고 했고, 쇼펜하우어는 ‘이는 인간의 정신으로 하여금 의지의 속박을 받고 있는 속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고한

      기능’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보들레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다. 유미적 구호를 실제 인생에 적응시켜 예술을 위해서 현실생활

      전부를 바쳐야 한다’는 예술지상주의적 유미주의를 주장했었지요. 나는 이러한 유미주의적 경향의 수필을 관조적(觀照的)이고,

     서정적인 우리 토양에다가 새로운 창작변화라는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강: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선생님께서는 문학을 하는 이유가 마치 운명인 것처럼 느껴 집니다.
도: 맞습니다. 나에게는 문학이 운명이고 정서입니다. 아니, 우리 문학을 하는 모든 이가 맡은 분야는 바로 정서(情緖)입니다. 정서는

      과학자도 못 맡고 정치인도 못 맡습니다. 모든 인류의 정서는 문인이 맡아 왔습니다. 이 정서순화는 문학의 2 대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교훈성과 유희성입니다. 어쩌면 문인이 역사에 가장 크게 이바지하는 사람일지 모릅니다. 인간이 인간답지 않다면 어떻게

      존속할 수 있겠습니까? 문학으로 정서 순화를 맡는 것이죠. 그러나 이 길은 돈이다 명예다 이런 걸 결부시키면 진짜 문인이

      아니지요. 문인은 권리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그 외로운 길에 그저 자기와의 싸움에서 꿋꿋이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옆 사람을

      볼 필요도 없습니다. 잘나고 못나고 상관없이 걸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 문인의 길이니까요. 그런 자부심이 운명처럼 느껴지고

      위대한 짓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강:  우리 수필가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을 해 주시죠.
도: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라’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작품 그 자체로 명작을 써야 작가라는  칭호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한평생

       한 편의 시가 없는 시인, 한평생 한 편의 수필이 없는 수필가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작품은 많이 냈는데 명작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로서 이보다 허전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강: 새롭게 수필을 시작하려는 예비작가들에게 도움되는 한마디의 말씀을 해 주시죠.
도: 예비작가들의 글을 보게 되면 대부분 이런 생각이 듭니다. 윤오영 선생의 말씀을 다시 인용하겠습니다. 생활의 여적을 쓴 글들,

      감성의 조각들을 모은 글들, 교훈 따위를 늘은 놓은 글들, 자기 생활이나 인생타령의 글들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문학수필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까?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수필비평가들의 생각이나 수필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서정수필에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다보니 예비작가들은 그대로 배울 수밖에 없게 됩니다. 뭐, 그곳에 한국의 역사와 정서가 들어

      있다나요? 서정수필이 꼭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치 교과서처럼 취급되고 있으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실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요즈음은 인터넷과 영상 시대라 독자들의 지식의 폭도 넓어졌고, 요구조건도 다양합니다. 따라서 우리 수필문학도 작품성을

      높이기 위해 서정수필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이미지즘수필 곧 상징수필 또는 미를 위한 미를 그려내는 유미수필(탐미수필) 등

      문학사조에 입각한 문학수필을 쓰려고 노력해야 된다고 봅니다. 또 있습니다. ‘09년 4월 현재,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회원수가

      1만 명이나 됩니다. 그 중 수필가가 2,500여 명으로 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기존수필가는 물론이고, 예비수필가

      들도 자신만의 문체를 개발하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수필, 서정과 위트가 넘치는 수필, 사회현실을 고발하는

     수필, 희망과 역사를 써 낼 수 있는 전문성을 고루 갖추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는 살아남기가 어렵게 됩니다.
강: 앞으로의 선생님의 다른 계획은 무엇인지요?
도: 무슨 별다른 계획이 있겠습니까? 지금 나의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습니다.  갈 길은 아직 멀고 걸음도 종종걸음으로

      바쁩니다. 죽기 전에 명작을 몇 편이나 더 남기겠습니까? 수필 책 서너 권을 쓴다 해도 그중에 명작이 몇 편이나 나오겠습니까?

      많아야 하나에서 둘이겠지요. 하지만 그걸 위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미주에 있는 한국문인협회를 바라보는 눈


강: 아직도 건강은 좋아 보이십니다. 이미 선생님께서는 수필가로 유명하지만, 시에서도 큰 성과를 올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한국문인협회 ‘미주문단’을 보시면서 느낀 소감을 말씀해 주시지요.
도: 역사가 꽤 오래되지요?  한국문인협회를 대표하는 ‘미주문단’이지요. 내용을 읽어보면 이곳에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신선한

      소재들이 상당합니다. 많은 자극을 받게 되지요.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서정시, 서정소설, 서정수필이 있는 거와 같이 상징시, 상징

      소설과 상징수필이 있습니다. 따라서 미주에 있는 수필가들도  전위수필, 이미지즘의 수필, 유머의 수필, 주지수필 등 문학사조나

      문학운동에 입각한 다양한 작품이 나올 것을 기대합니다. 앞으로 더 무궁한 발전이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강: 선생님의 기대치가 너무 커서 걱정입니다. 긴 시간 감사합니다.
도: 강 선생과 장시간을 가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녁 여덟 시 미국행 비행기라고 했지요?
강: 늦어도 일곱 시까지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야 합니다.
도: 한 시간 정도는 더 시간이 있으니 이곳에서 멋진 추억을 위해, 적포도주가 곁들인 근사한 저녁을 대접하겠습니다.

      

                                                                                                                                        < 원고작성: 강정실 회장>


<첨 부>
   위의 인터뷰 내용은 2009년 4월 1일, 서울 동자동 갤러리나 콘코스 (4층).


정순옥

2015.08.07 13:4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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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프로를 개설했네요. 필요한 내용이 한 개씩 늘려 가고 있음에 반갑기도 하고

또 아는 분과의 인터뷰라 재미있게 읽게 됩니다.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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