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력 상실 절망서 발견한 삶의 기쁨 담아

조회 수 4038 추천 수 1 2015.07.14 11:23:26


‘청력 상실’ 절망서 발견한 삶의 기쁨 담아 

새·바람·시냇물 소리 등 고통 뒤의 환희로 가득 
LA필 ‘올 베토벤 나잇’ 본보 후원 16일 공연 

 
                                                                                                                  입력일자: 2015-07-13 (월)     미주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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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명작 교향곡 6번 ‘전원’ 탄생하기까지]


…지금 와서 돌아보니 6년간이나 절망적인 병에 걸린 데다 무식한 의사 때문에 더 한층 병이 악화되어 마침내 불치의 병이라는 단언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아! 남보다 더 완전해야 할 하나의 감각이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내 곁에서 있는 사람은 멀리서 연주하는 플룻을 듣고 있는데 내게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든가 또 목동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그것마저 내게는 전혀 들리지 않을 때는 이보다 더 한 굴욕은 없는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해서 나는 거의 절망상태에 빠진 채 하마터면 자살을 기도할 뻔한 일까지 있었다.

…나를 만류한 것은 예술뿐이었다. 자신에게 부과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창작을 완성하기 전에는 이 세상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카를과 요한이여. 나는죽음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리라.

이것으로 너희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참으로 슬프다! 저 잊지못할 희망, 적어도 어느 정도는 쾌유하리라 생각하고 이곳으로왔을 때 가졌던 희망, 가을 나뭇잎이 떨어져 시들고 마르듯이 그 희망도 꺾이고 말았다. …오오 신이여!

마지막으로 단 하루라도 좋으니, 순수한 환희의 날을 나에게 내려주시옵소서. 참된 환희가 나의 가슴에 일지 않게 된 지가 오랩니다. 오오 어느 날에 신이여, 또다시 자연과 인간의 전당에 서서 내가 그 환희를 맛볼 수 있을 것인지, 절대로 얻어질 수 없는 환희일 것인지. 아아, 그렇다면 너무나도 냉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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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에 있는 베토벤의 묘지


  루드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 32세 때 쓴 유서의 부분이다. 일명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라고 불리는 이 유명한 편지는 내내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베토벤이 그 중에서도 가장 절망에 빠졌던 시기에 동생과 조카에게 쓴 글로서, ‘음악의 성인’으로 추앙되는 베토벤의 인간적인 고통이 통렬히 전해지는 글이다.

  다행히도 베토벤은 그때 죽지 않았고, 6년후 다시 하일리겐슈타트로 돌아와 정양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거기서 나온 음악이 교향곡 6번 ‘전원’이다. 베토벤은 그때 자연을 벗 삼아 꽃과 나무, 새소리를 들으며 매일 숲을 산책했으며 거기서 새롭게 찾은 삶의 열망과 기쁨을 이 교향곡에 고스란히 담았다.

 전원 교향곡에서는 새소리, 바람소리, 나무소리, 시냇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청력을 상실한 그가 그려낸 것은 육체의 귀로 들은 것이 아니라 영혼의 귀를 통해 들려온 자연의 생명력이었을 것이다. 신에게 단 하루라도 좋으니 순수한 환희의 날을 내려달라고 울부짖었던 그는 ‘전원’ 교향곡을 쓰면서 그 환희를 경험한 것이다.

하일리겐슈타트에는 지금도 ‘베토벤 산책로’가 있으며 그가 묵었던 ‘베토벤 하우스’와 ‘베토벤 기념비’에는 날마다 그의 발자취를 순례하는 음악애호가들이 줄을 잇고 있다.

  2년 전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하일리겐슈타트의 방문이 예정돼 있었는데 일정이 허락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빈 외곽에 있는 중앙공동묘지를 찾아갔다. 그곳엔 베토벤과 슈베르트, 브람스, 브루크너, 쇤베르크, 요한 슈트라우스 등의 무덤과 모차르트의 가묘가 모여 있는 음악가 묘역이 있다. 다들 침묵하게 되는 공간, 위대한 작곡가들의 숨결은 이제 그곳에 없으나 고통 속에 피워낸 고귀한 음악혼들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가슴과 영혼을 뒤흔든다. 그가 남긴 9개의 교향곡과 32곡의 피아노 소나타, 7개의 피아노 협주곡, 그리고 유일한 바이얼린 협주곡 등은 하나하나가 음악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이정표적 작품들로, 시대를 초월하여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LA 필하모닉은 2015-16 시즌에 10월1~11일 열흘 동안 ‘불멸의 베토벤’(Immortal Beethoven)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베토벤의 9개 교향곡과 ‘로맨스’ 1번과 2번, ‘에그몬트 서곡’, 실내악 음악들을 연주하는 축제로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Simon Bolivar) 심포니를 초청해 두다멜이 이끄는 두 오케스트라가 함께 베토벤 대장정의 축제를 벌인다.

  이에 앞서 오는 16일 오후 8시 할리웃보울에서 ‘올 베토벤 나잇’이 본보 특별후원으로 열린다. 프로그램은 ‘에그몬트 서곡’(Egmont Overture)과 바이얼린 콘첼토 D장조, 그리고 베토벤이 가장 평화로운 상태에서 남긴 교향곡 6번 ‘전원’(Pastoral)이다. 지휘는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브람웰 토비(Bramwell Tovey), 바이얼린 협연자는 LA 필하모닉의 악장인 마틴 샬리퍼(Martin Chalifour)다.

한 여름밤 베토벤 음악의 진수를 느껴볼 수 있는 할리웃보울 콘서트에 삶의 여유를 찾고 싶어하는 한인들을 초대한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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