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불혹의 나이를 넘어

조회 수 242 추천 수 0 2020.05.28 19:27:33
    
인생의 중반에서 내 자신의 모습은 돌아다 본다
여러 방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지만 오늘 나는 신앙과 교회 생활의 면에서 들여다 보고자 한다
가장 최초로 나의 기억에 남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 시골의 천막교회에서 시작된다
당시 우리 마을 산 중턱에 있던 그 천막교회에는 지금은 돌아가신
막내 작은 아버지께서 우리를 가르치는 주일학교 교사로 계셨었다
작은 아버지는 가족들이 모두 신앙이 없는 관계로 형님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것으로 기억되는데
우리 집에 제사가 있는 날에도 다들 모이실 때 그분만이 오시지 않고 스스로의 신앙을 고집하셨었다

그 나이에 무슨 특별한 신앙이 있던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매주 그곳에서 노래와 율동도 배우고
성경요절을 외우며 가마니 바닥에 앉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전도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아이들과 노는것이 좋았고 각종 선물과 맛있는 간식을 나누어주는 그곳이
당시에 시골 아이들에게는 천국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나와 우리 동네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교회를 장악했던  것같다
강남 마을에 살았었다는 서울 사는 친구와 얼마 전에 통화를 했는데
그 때 내 전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고있다니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손톱만큼의 전도상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서울로 전학온 중학교 시절, 나는 미아리 고개 위의 돈암장로교회에 부지런히 나갔다
시골 친구들이 그립기도 했지만 서울 사시는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어 좋았고
또 교회를 통해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그 곳에서 학습공부를 마치고 학습교인이 되었고 중등부 성가대에 서서
엘토 파트의 한사람으로 열심히 찬양도 배웠다
문학의 밤 행사에서 시낭송도 해 보고 동네 길 쓸기, 쓰레기 줍기등의 봉사활동도 생전 처음으로 해 보았다
몇 년 전에 옛생각이 나서 그 교회를 들렀을 때 당시에 학생 회장과 부회장을 하던 친구들이
아직도 그 교회를 섬기며 생활하는 것을 보고 한곳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마음 속에 불확실하나마 신앙이 잠재하던 처녀 시절
그러나 교회는 거의 나가지 않았고
사회 생활 초년병이 미국행을 결심하고 미국으로 떠나던 날
비행기의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속에 마음 속으로 기도를 드린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가까운 미국교회에 열심히 나가던 시절
마치 나에게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시 듯 미국 목사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다른 곳으로 이사한 후 들려온 목사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목사도 별 수 없는 람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오랜 미국생활 중에 교파를 초월해서 미국 교회와 한국 교회를 아침 저녁으로 동시에 섬기며 배우며,
더러는 생활에 찌들어 교회를 떠나기도 했던 그시절에도 마음 가운데에는 변함없이 그 분이 존재해 계셨고
긴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가 헤엄치다가 그 줄을 당기면 끌려 오듯이 항상 교회로 돌아오곤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사우디에서 생활하던 8년의 기간은 기독교를 박해당하고 청개구리 심보여서일까
오히려 열심히 성경을 읽으며 더 많은 영적 성장을 이루었던 것 같다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여러가지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는 성경과 교회가 생활의 중심이 되어 주었고
모시던 한분의 목사님이 순교하시고 다른 목사님은 안식년을 맞아 귀국하시며
세번째 모신 목사님을 통해 성경의 깊이와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다
여행이 자유스럽지 못한 나라에서 비행기까지 타고 날아가서 다른 지역(카미스)에 선교를 가기도 하고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나리라' 하는 찬송 구절을 사막을 지나며(타이프지역) 실감하기도 했다
걸프전에 쫓겨 미국으로 되돌아 오며 언젠가는 가 보아야 할 이스라엘을 눈앞에 두고 가보지 못한 것이 영 아쉽다  

비록 몸은 미국에 있어도 마음이 항상 한국에 가 있으니 결국에는 마음이 있는곳에 몸이 따라 가는법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하여 대전에 직장을 잡고 정착했다
미국에서 섬기던 목사님이 신학대 한국 분교를 대전에 세울 계획으로 준비 작업을 하고 계셨다
함께 계획을 세우고 일을 진행하는 한편 조그마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영어 학원에서 일하며
교회 봉사도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던 중, 정말 피치못할 사정으로 다시금 짐을 싸야하는 형편이 되었다
아직 신학교가 자리잡기도 전이었고 이젠 이사라면 신물이 나는 상황에서도
다시한번 거처를 옮겨야 하는 심정은 복잡하기만 했다  

고향에 가까운 광주로 내려와 삼년 째 접어들고 있다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는 평화로움에 만족한다  
아직은 작지만 큰 포부가있는 직장과, 더욱 작지만 말씀이 살아있고 언제나 향기로운 교회가 있어
쉴곳없는 새처럼 떠돌던 영혼이 이제는 제자리를 찾은듯 한 느낌이다
그러나 누가 미래를 알겠는가
자의이든 타의이든 언제 또 짐을 싸야할 상황이 생길지도,,,
다만 현실에 충실하며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떠났을 때 좋은 여운을 남긴다면
어차피 그것이 만족할 만 한 인생이라 하지 않을까
인생은 나그네길 이라고 노래가사에도 있지 않는가
나그네길 가는 동안 궂은일도 있고 즐거운 일도 많겠지만 가야할 때 가지않겠다 고집하는것 또한
정처없이 떠나기를 좋아하는 것 만큼이나 바람직하지 못 할 것이다
만사를 주관하시는 조물주께서 가라하면 갈 것이요 있으라하면 있으면 되는일
얼마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녀간 딸아이의 말이 생각난다  
'엄마는 만사에 낙천주의자라고-You are optimistic about everyghing. '

[2007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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