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사에 대한 요약 1 (해방전까지)

조회 수 6712 추천 수 4 2014.10.04 15:20:13

 

1. 들어가며

문학을 전공하여 시를 배우게 되기 전에는 나름대로 많은 시들을 접하고 쉽게 창작도 해왔다. 문학의 언저리에서 맴돌다 제 풀에 신나고 제 풀에 지쳐 애꿎은 시간들을 학대하면서 자칭 시인으로 생각했었다. 현대시문학사를 보면서 이른 아침 안개처럼 뿌연 했던 장막을 걷어내고 뚜렷하게 시대적 경계를 그을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시 사조를 어디서부터 볼 것인가는 근대시와의 변별로부터 시작하고 또 많은 학자의 다른 견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보다 객관적이고 다수의 의견에 1900년대를 기점으로 새로운 문학의 태동기로 보는 정설을 따르기로 한다.


2. 신시(新詩)의 태동 형성과 주요 시인들의 시단 전개

우리 현대시의 출발은 최남선과 이광수, 주요한 김억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최남선은 신체시, 신시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시를 발표하였고, 조선주의의 정신 아래 시조부흥운동의 기치를 들기도 하였다. 개척자적인 공적과 함께 문학적인 측면에서 소홀히 다루어질 수 없다. 1908년 '소년'지를 창간하고 자신의 역사, 지리 지식을 바탕으로 계몽 교양활동을 펼쳤다. 독립선언문의 기초 책임자가 바로 최남선이다. 복고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지만 계몽적 선각자로서 그가 보여준 시정신은 주요한의 이상주의와 접맥되면서 초창기 한국 현대시의 생성에 중요한 터전이 되었다.
본격 근대시를 가능케 한 시적 각성은 1910년 중 후반에 문학활동을 시작한 새로운 문학지망생들의 문학에 대한 시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태서문예신보'를 간행했으며 새로운 서구 문예사조에 관심을 두고 이를 수용하려는 방법적 태도를 취하게 되고 식민지적 어두운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하지 못한 채 방향잡기에 급급한 혼란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김억과 주요한은 시가 보여주는 근대적 면모와 시적 지향의 구체적 실상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 현대문학사가 전개되면서 추구해온 시사적 맥락 속에 다음시기의 시와 직접 연계를 맺고 있다. 김억은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가 표방한 서구 문예의 소개와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번역해 우리 현대시가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에 큰 역할을 담당했기에 중요한 인물이다. 1925년을 전후하여 서구 세기말적 상징시파에 대한 관심을 멀리하고 시조나 한시, 민요 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조선심(朝鮮心)의 탐구에 몰두했다는 사실은 초창기 계몽적 시인들의 방향전환을 대표적으로 예시하는 사례가 된다.


3. 1920년대의 낭만주의 형성과 역동적 변화

1) 동인지의 활동
1919년 3.1운동은 우리민족이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우리의 민족적 역량을 분출시킨 봉기이자 투쟁이었다. 일제는 무단통치 방식에서 문화통치로 방향을 바꾸면서 '조선' '동아' 등 민간지 발행 허가와 함께 '동인지 시대의 개막'으로 문학활동의 양적 확대가 이뤄진다. <창조>, <개벽>, <폐허>, <장미촌>, <백조>, <금성>, <영대> 등 문학적 성과와 당대의 영향력 있는 대표적 동인지가 나오게 된다.
<창조>는 한국 최초의 순 문예지이며 동인지로 근대문학 초기의 계몽적 교훈주의와 관념적, 추상적 성향을 배격하고 문학의 예술성을 확보하는데 주력하였다.
소월은 조선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채 조국의 산천에 지천으로 피고 지는 진달래나 산유화를 표상 함으로서 겨레 감정에 호소하고 추상적인 관념이 아닌 구체에서 출발하는 민족시인인 셈이다. 소월의 시는 대중적 공감과 친화력을 확대할 수 있는 자연풍경에 조응하는 전원심상과 향토적 소재들, 민족이 겪고 있던 비애를 아름다운 언어로 형상화하였다.
<개벽>은 김억, 김소월, 변영로, 박종화 등과 신경향파문학을 주도하던 김기진, 박영희 등이 중심이 되어 활약했다.
<폐허>는 서구 상징주의와 퇴폐적 경향이 깊은 시들이 실렸다. 민족혼을 불러내기 위해 논개를 노래한 수주 변영로의 폐허를 극복하려는 정신적 지향은 초기 시단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내밀한 가락으로 서정적 정감을 노래하고 민족애를 집중적으로 추구하며 '조선의 마음'을 발간하지만 판금과 압수를 당하게 된다.
<장미촌>은 최초의 시전문지로 낭만주의 경향을 표방했으나 대다수 동인들이 <백조>를 창간하는데 참가함에 따라 <백조>의 전신이라는 의미가 있다.
<금성>은 주로 해외문학의 번역 소개와 창작시 발표를 했고 양주동, 김동환도 참가를 했다.
신시사상 최초의 장편 서사시로 불리는 '국경의 밤'을 쓴 파인 김동환은 민족사와 개인의 비극을 추구함으로서 남성적 톤과 북극의 정서가 어우려진 근대시의 호흡을 장시형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영대> 평양에서 편집된 지역 동인지로 단명했다.
<백조>는 동인들은 적극적인 반항과 투쟁이 아니라 관념적 자아와 환상적 신비세계에 도취하면서 감상주의로 탐닉하고 도피하는 것으로 병적 낭만주의 혹은 소극적 밤의 낭만주의로 보려는 까닭이다. 홍사용의 경우 시의 표면에는 슬픔과 눈물이 주조를 이루고 있지만 시대적 압력과 문학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잠재적 노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상화는 초기시가 지니고 있는 낭만적 도피성을 탈피하여 민족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강한 자의식이 자연을 대상으로 나타날 때는 직설적인 진술이 사라지고 현실의 왜곡된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친화의 시계가 마련된다. 또한 조국 상실의 심리적 절망감이 대지의 생명력에 대한 확인 신념으로 연결되고 있다. 박종화 역시 이상화와 비슷한 각도에서 고뇌와 도피를 시도했다. 환상으로서의 죽음의 세계를 예찬했는데 이것은 현실적 절망과 시대적 좌절을 극복하려는 환상적 초월의 자세인 것이다. 같은 동인으로 박영희는 데카당적 유미주의의 경향을 가지고 신비주의로 유일하게 치료하는 길을 선택한다. 후에 새로운 시적 돌파구로 계급문학으로 전환된다. 노자영은 소녀적 센티맨탈리즘에 일관하여 자신의 시에 '수필시'라는 특이한 명칭을 붙이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감상에 젖어 시대와 역사성을 외면하여 후대에서 거론되지 않는다. 이렇듯 시가 병적 소극적 낭만주의의 풍을 흉내내어 서구적 낭만주의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 해도 그들의 노력은 충분히 시사적 의미를 갖고 모든 시적 탐색과 실험은 언제나 시사적인 숙명이며 동시에 필연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2) 비 동인의 활동과 새로운 시의 현상
일반적인 시의 특징은 초기 문예지를 중심으로 한 낭만적 성향과 중반 이후 카프계열의 투쟁적 이념 지향적 성향, 그리고 기류에 속하지 않은 소월, 만해 같은 시인들에게서 추구된 전통적 정서의 심화와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인식의 깊이와 대승적인 시적 형상화 노력이라고 구분할 수 있다. 만해 한용운의 관점은 독립운동가로서 사상적 측면과 불교 개혁자로 선승으로서의 불교적 사상을 들을 수 있고, '님의 침묵'이 일제 강점기하에 쓰여졌기에 역사적 정신사적 항일시의 중요성을 내포하는 시인이라는 관점이다. 시적 기류와 민족적 정조의 시들은 우리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우리의 근대시가 본 궤도에 올랐음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며 당대 식민지적 현실 속에서도 민족적 정서 형상화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시는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절망적 영탄이나 도피적 열망을 노래하거나 퇴폐적이고 감상성에 치우친 격정적 정서를 분출하는 낭만적 성향이다. 이런 낭만적 성향은 1924년 이후 신경향파인 카프(KAPF)계열의 문학이 등장하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과 이념적 지향을 앞세우는 일군의 시인들에 의해 사회의식이 강조되기에 이른 것이다. 카프(KAPF)의 결성으로 20년대 후반의 시적 기류는 계급주의 문학 목적문학의 성격을 띠게 된다. 김기진의 문학관은 사회개혁을 선결과제로 제시하여 예술이 제한 당하는 사회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현대의 모든 사회를 부정하고 예술을 생의 본연한 자유의 길로 해방시키기 위해 먼저 사회조직과 데카당적 부르주아 문화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자 하는 현실혁명인 것이다. 1920년대 초기문학의 반동에서 비롯되어 시조부흥운동이 일어나고 새로운 민족정신을 개발하고 문화유산을 발굴하자는 취지로 전개된다. 이것이 1930년대 '시문학파'의 태동을 위한 자양분이 된다.


4. 1930년대 시 의식의 분화

1930년대는 유리 현대시의 생성과정에서 정착과 탐구의 시기로 일컬어진다. 30년대 초 '시문학파'의 등장으로부터 순수서정시와 모더니즘과 '시인부락'등 생명파로 전개되었다. 이어 '문장'지 출신 신인들의 전원파, 인생파 시인들에 의한 시사적 영향으로 발전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현대시사에서 언어에 대한 자각을 실천한 최초의 시인이라면 정지용을 말할 수 있다. 감정을 이지적으로 감각화 시켜 표출하는 새로운 표현을 정착시키게 된다. 그의 시 '長壽山1'을 보면 동양적인 관조의 세계를 자아내면서 고요하고 단아한 극기의 정신으로 상승하는 겨울을 견디는 정신으로 표현한 식민지 시대의 우리시 정신의 한 정점이 되고 있다. 반면 김영랑은 민족언어의 위기감에서 예민하게 감지해서 순수서정과 민족어 발굴 창조는 우리 시사에서 향토적 리리시즘의 언어미학을 성립시켰다는 의미를 갖는다. 박용철은 계급주의 문학을 비판하고 시의 심미적 가치를 표방한 시인이다. 신석정은 이상향으로서의 자연회귀 정신과 그렇지 못한 역사 현실과의 갈등 속에서 그의 시는 40년대의 친자연적인 청록파 시인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모더니즘 시론가인 김기림은 그의 시론에서 의도적인 시에 대한 제작의식을 가져야하며 의식적 노력 없이 시를 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바탕으로 시에 감상성을 배제하고 문명비판성을 고취해서 시론에 실천하려 했다. 이상은 초현실주의, 다다이즘적 성향을 지니는가 하면 띄어쓰기, 구두점, 도표, 수식을 사용하는 등 기존언어의 가치와 의미를 부정하는 방법에서 시를 쓴 모더니스트였다. 김광균은 다양한 회화적 감각을 서정과 결합시킴으로서 우리시가 현대시적 이미지 구조를 지니게 하는데 공헌한 30년대 시인이다.
인간생명의 몸부림을 통하여 인간회귀를 주장하는 경향은 동인지 '시인부락'의 시인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미적 세계에 침잠이나 서구 모더니즘의 방법, 그 어느 것으로도 극복될 수 없는 당대적 압박감을 돌파해 나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인간 자신에게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표적 시인 중에 서정주는 '귀촉도'를 발간하고 동양의 정신 '신라초'를 통해 신라정신과 불교전신에의 침잠은 해방 이후 확고한 자신의 시적 기반의 구축이란 점에서 그는 현대시사에서 보기 드물게 극적인 자기변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치환은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준열한 자기비판의 자세를 일관하였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변화 되기는 했지만 생명적인 것에 대한 탐구를 지속시켰다고 볼 수 있다.
뛰어난 문학 운동가인 임화는 카프를 결성해서 활동하다 10년 일본의 압력과 강제로 해산계를 내고 해체되고 만다. 1930년대 막바지에 으르면서 일제는 더욱 더 침략전쟁의 확대에 광분하기 되고, 한반도에 삼엄한 전시체제, 총동원령을 내리게 된다. 카프의 전 단계인 '염균사'를 조직하고 카프의 맹원이었던 박세영은 상해 유학시절 몰락해 가는 중국의 현실 앞에서 상해의 역사적 유물과 자연경관을 통해 중국의 역사와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외국에 나간 객수(客愁)와 어우러져 아련한 상실감을 감상적으로 노출한다. 박팔양은 카프에 가담했으면서도 서정적인 작품에 성공하게 되는데 카르 선택의 목적과 이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학적 소재를 위해 자연스럽게 취한 문학적 선택이었다. 이찬은 가난했던 고향의 체험과 표랑 생활을 하면서 얻은 북방의 정격을 시화하고 있으며 고향회귀와 마찬가지로 도피적 생활의 일면을 드러낸 것이다.


5. 1940년대의 시인들의 친일, 저항, 은둔의 암흑기

일제는 대동아 공영권이란 명분아래 내선일체를 내세워 창씨개명과 조선어 사용금지, 조선민족 말살정책을 수행하게 되면서 문학은 위기의 시대 30년대를 보내고 말부터 암흑의 장막이 내리기 시작한다. 징병제, 학병제를 시행하고 극악무도한 탄압으로 당시 문단에 적을 두고 있었던 문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친일행각을 벌이게 되고 일부는 아예 은둔하거나 전업하게 된다. 대표적 친일문학가는 이광수, 최남선, 김팔봉, 박영희, 유진오, 백철, 최재서, 김동인, 모윤숙, 김동환, 노천명, 장혁주, 유치진 등을 꼽고 있다. 이광수가 참회시를 쓰지만 그가 내린 변절의 결단은 개인적으로 그를 시대의 비극적 인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문학에도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남기고 만 것이다.
이와 반대로 암흑기에서도 일제치하를 저항한 시인들은 이육사, 윤동주, 심훈이 있다. 이육사는 17번이나 감옥에 옥고를 치르고 옥사를 한 시인이다. 결연하고도 숭고한 정신은 육사가 표현한 강철의 비전과도 같은 것으로 우리 시의 정신사적 맥락을 연결하는데 중요한 흐름이 된다. 그의 시 '절정'은 서릿발 칼날 위에 서 있는 절정은 시련의 절정이면서 시련을 감내하는 정신의 절정인 것이다. 윤동주는 이육사와 함께 대표적 저항시인이다.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일제의 감방에서 옥사를 했다. 인간존재에 대한 실존적 인식은 자기 응시와 분열, 자기희생의 심상을 고도로 형상화하면서 다가올 시대, 새로운 비전을 가능하게 했다. 심훈은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흙으로 돌아가 뿌리를 내리려고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날이 오면' 의 외침은 우리민족 모두의 함성을 집약한 것이다.
저항도 변절도 할 수 없는 시점에서 자연의 회귀로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는 시인들도 있었다. 신석정은 어두운 현실 너머에 있는 이상향을 노래하면서 자연회귀정신이 필연적으로 시대상황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김달진은 금강산 유점사에 머리 깎고 승려생활을 하면서 8만 대장경을 번역한 시인이기도 하다. 불교적이며 노장적인 시세계를 연결하고 있다. 김상용은 비록 후에 친일을 했지만 자연 속에서 생과 자연을 관조하는 시풍을 보여주었다. 신석초는 '子午線' 동인으로 활약하면서 동양적 감수성을 당시 서구기법으로 표출한 특이성을 보여주었다. 박남수는 '초롱불', '밤길' 등 자연을 노래했다.

'청록파'의 등장은 우리 한국현대시사에서 자연과 인간의 친화와 교감이라는 원형질을 발굴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은 빼앗긴 자연과 고향을 노래했으며 훼손된 인간의 삶은 물론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찾고자 하였다. 박목월은 생태적으로 시인의 자질을 지녔고 끈질긴 장인정신으로 자연과 인생의 문제를 시적으로 승화시켜 놓았다. 향토적 가락과 섬세한 언어감각으로 해방전후의 문학적 간극을 매우는 교량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지훈은 초기에 불교적 형이상을 바탕으로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고전적 미학을 머금고 있다. 박두진은 산과 더불어 하늘, 해, 바다, 등의 자연에 대한 순수한 감각의 기쁨에서 출발하여 그가 동경하는 이데아나 메시아의 계림을 노래했다. 그의 시 '해'를 보면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겠다는 소망은 해방 조국에서 기쁨과 만족적 화합을 표현한 것이고 삶에 대한 소망에서 우리는 시대를 견디고 세월을 견디면서 시대와 세월을 넘어서는 삶의 원초적 생명력을 발견한다. 자유와 평화와 이상에 대한 시의 갈망이 감겨져 있다.

우리 시사에서 드물게 북방정서를 드러내고 있다는 특성을 지닌 백석과 이용악 시인이 있다. 백석은 평안도 지방의 정서를 대표한다면 이용악은 함경도 지방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백석은 고향마을을 떠나 만주를 기행하는 유랑으로 점철되었으며 모더니즘 계열의 초기시 경향에서 토속적이고 원형적인 삶의 모습을 특유의 '이야기'시로 쓰게 되는데 이것은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려는 노력이라고 본다. 이용악은 뿌리깊은 가난과 아버지의 죽음 등의 곤궁한 체험은 자연을 매개로 하여 가족사적 비극이 바탕이 되어 서정적 슬픔이 담겨져 있다.


6. 나오면서

우리의 현대시문학사를 초기 생성과 해방 전까지를 살펴보았다. 전반적인 시대의 흐름은 변화의 바꿈으로 점철되어 있다. 외세에 의한 국내 정치와 사회의 혼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물을 접하면서 정형된 시조나 가락도 신시와 신체시로 혁신적 개혁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 바탕 위에 김억은 서구의 상징주의를 표방하게 된다. 나라를 잃어버린 문사들의 자각으로 계몽적 교훈주의와 이상주의가 접목되고 중요한 문학의 자리를 하게 되었다. 3.1운동을 전후해서 많은 동인지가 생겨나고 문학활동의 양적 활성화를 가져오면서 서양의 낭만주의를 닮아가지만 한국적 여건에 맞지 않게 되어 병적, 퇴폐적 낭만주의가 형성되어 문단을 이끌어 가다 반대급부로 이념지향의 계급문학이 자연적으로 생성하게 되고 대표적 카프(KAPF)문학은 일제의 대동아 전쟁의 광분으로 점차 쇠퇴해 간다. 그러자 일본의 억압과 강압에 의해 해체를 하게되고, 문인들은 중심을 두지 못하고 친일을 하거나 강하게 저항하거나 향토적 자연으로 회귀하게 된다. 계급문학의 해체는 다시 순수 서정시와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활동하다 해방을 맞게 된다. 시대가 고통스러울수록 암흑이 깊어갈수록 민족적 위기감이 커질수록 시인들은 무엇을 할 것인지 살펴본 것이다. 시인의 정신은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후일 해방 후부터 현대에 이르는 문학의 발자취를 살펴 볼 기회를 갖게 되길 바라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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