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시인

조회 수 408 추천 수 1 2022.11.01 14:27:00

 

 

                        코기토cogito- 시문학에서의 사유

                      -2시집 <나만의 시()>의 페러다임

 

 

                                                                                강 정 실

                                                   (문학평론가.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

 

  1. 들어가기

 

  여러 장르의 문학 중 시문학은 현실 자체로서의 우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곧 인간학이다. 이러한 시문학은 언어로 표시된 예술이며, 글을 쓴다는 것은 언어를 탐구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 자연스레 표현의 문제가 대두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스 이론을 언급할 필요 없이 모든 문학의 핵심에 인간의 삶이 여러 형태로 담기게 마련이다.

  진정한 시인은 인생과 사물의 진리 추구에 고뇌한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며 하루하루 시상을 떠올리며 몇 자씩 만들어 간다. 이렇게 창작한 시 속에는 인생의 목적과 의의가 무엇이며, 진정한 가족과의 관계 형성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또 우주에 관해서 역사에 관해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면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신앙인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절대자의 존재를 시의 세계와 접목하면서 인생 이해에의 개안은 더욱 깊어져 나간다.

  더 나아가 문학에서의 평화와 공존의 문제는 다분히 사회, 정치적인 소재주의적 특성을 갖게 한다. 창작하는 작가의 입장에서는 논리적, 설명적, 교술적 성격을 갖게 함으로써 문학화의 어려움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오늘의 시문학은 일상성에 탐닉한 소재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 시대적 요구에 편승한 창작의 새로움에 눈을 돌리고 있다.

  작가의 개성이 갖는 창작은 그 개안으로부터 열리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개명이요, 해명일 것이고 나이가 익어갈수록 치열해진다. 그 창작성이 언어 예술화로 꾀해질 때 그것이 바로 시문학성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고뇌에 창작성은 시 문학성을 더욱 진지하게 고취시킨다.

 

  2. 오늘을 살아가기

 

이제 괜찮아질 것이라며

어디에서나 사용했던

마스크를 입에서 뗐는데

 

서산에 해가 지기도 전

또 다른 펜데믹이

빨갛게 피어나는 불꽃이라

또 시끄러워지고 있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직장에는 가야 하고

동료와 펜데믹으로

아무 곳에서 같이 먹지도 못하고

애처로운 처지의 긴 세월이여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뜨거운 바닷가 여름

빨갛게 익은 가을

하얀 눈송이 춤추는 겨울을

함께할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인내하며

두 팔 벌려 하늘을 향해

웃음 짓는

그날만을 기다리게 되네

  -코로나 펜데믹, 전문

 

  근 2년 동안 세계적 재앙이었던 COVID-19가 한창 기승을 부렸다. 발 빠른 백신개발로 점차 사그라질 무렵인데 또 다른 BA 5라는 변종의 코로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새로운 백신은 올가을에나 선을 보일 것이라고 한다. 산 넘고 산이다. 이런 와중 러시아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시도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켰고, 다른 나라 곳곳에 자연의 재난이나 도처에서 태풍과 산불, 해난사고, 지진과 쓰나미가 지구촌을 위기로 몰아간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 작가는 지나간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인간의 감정이나 경험을 관심사대로 표현하고, 그 주관을 다시 객관적 방법에 의해 그려 내려고 있다.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뜨거운 바닷가 여름/빨갛게 익은 가을/하얀 눈송이 춤추는 겨울을/함께할 그날이/언제일지 모르겠지만//오늘도 인내하며/두 팔 벌려 하늘을 향해/웃음 짓는/그날만을 기다리게 되네// 화자는 또 다른 인생 표현과 생명 해석이라는 서정적이고 감성적, 주관적인 시 이념을 기다림이라는 예술로 승화시키고 구현시켜 나가고 있다.

 

인생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간다네

시간을 잡으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바람과 같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데

무언가 하나라도 남겨두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인생의 꽃은 들의 백합화 같은 것이라네

활짝 피었다가 얼마 있지 않아 말없이 시들어 가는데

 

각자의 삶에는 우여곡절이 있다네

나름대로 마음의 소망과 희망도 있다네

 

인생에 눈보라가 치고 비바람이 불어도

한번 태어난 인생 그대로 포기할 수가 없다네

 

인생은 잠깐 있다가 사라져가는 안개와 같다 하지 않은가

 

오늘의 소명이 도착하면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내 하루의 작별 시간이 되면 달은 그 안에 자리 잡는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후회하지 않고 현재에 살 것이네

  -인생살이, 전문

 

  마치 격언을 읽는 느낌이다. 성능이 좋은 마이크를 들고 많은 교인들을 향해 설교하는 목사님의 목소리를 듣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인생의 해석과 생명의 이해를 위한 정서와 상상과 사상을 하나로 용해시키는 문학으로서의 인간학이다.

  화자는 우리 인생의 고뇌와 삶을 노래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존재론적 내면세계에 칩거하되 생의 진실을 탐구하고 탐미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렇게 시는 이미 있는, 있을 수 있는, 앞으로 다가올 인생을 밝혀내고, 여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문학하는 일이 된다. 인간 존재의 의미를 밝혀내고자 하는 시()작업이야 말로 진정한 문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하기 위해서는 모든 작가는 고뇌와 진통을 넘어선 삶의 의미에 대한 천착이 따라야 치열한 의식보다 경험에 의한 생의 깨달음과 그에 관한 메시지와 감동을 줄 수 있다.

 

남녀를 막론하고 체육관에 온다

건강유지를 위해서

 

각자 자기 몸에 맞는 기구를 이용해서

발운동, 다리운동, 허리운동, 등운동, 어깨운동을 하고

 

얼굴과 몸에 땀이 나면 샤워도 하고 사우나도 즐긴다

이 상쾌한 기분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좋거나 체육관에 온다

운동하는 맛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건강은 자기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체육관에 온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처럼

날마다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건강한 신체를 유지해야 한다

 

누가 건강에 대해서 뭐래도 체육관에 온다

부자 일지라도 건강이 좋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신체는 가꾸어 나가야 한다

건강은 가장 귀중한 보배이기에

  - 체육관에서, 전문

 

  헤겔은 자신의 법철학 서문에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날기 시작한다.”고 했다. 생태학적 건강 유지법은 현실적으로 건강을 위하는 통일적인 삶에 대한 객관적 성찰과 위로를 요구한 것이다. 자신의 뇌 활동과 육체가 건강할 때 사회적 참여와 모든 개체 생명의 본성은 물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는 물론 생활양식 전반에 걸쳐 건전한 사고의 전환을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화자는 2년 전 넓은 자택에서 서너 차례 넘어져 다리에 무릎보호대를 착용한 후 활동한다. 장거리 이동일 때는 휠체어나 지팡이를 이용해 각종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화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건강이 가장 귀중한 보배라고. 깊이 가슴에 와 닿은 체험적인 이야기다.

  화자의 시집 머리글에 이렇게 쓰고 있다. “시상이 떠오르면 잠시 생각에 잠기다 무슨 일인지 나도 모르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세상생활을 음미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시를 계속해서 써 보려고 합니다. 시인의 처지에서 늘 심사숙고하고, 한시라도 시작(詩作)을 게을리하지 않고 계속 시를 쓰는 일일 것입니다.”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걱정을 한다

날씨가 무더워 불쾌지수도 높아 짜증도 난다

 

여름이 오면

태풍도 오고 장마도 오고 물난리도 난다

사람들은 먹을 음식을 선택하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불청객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고

 

여름이 오면

잘 익은 수박에 얼음을 타서 먹으면서 가족끼리 이야기꽃을 피운다

방안에 습기가 차지 않도록 환기도 해야 하고

 

여름이 오면

산과 들녘은 녹색 그늘로 덮인다

밖에 나가 걸으면 땀이나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불볕더위를 피해 산이나 바다로 간다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이런 여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벌써 마음은 시원한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여름이 오면, 전문

 

 

  화자의 서정적인 경험에 의해 나열된 <여름이 오면>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요즈음 아주 짧은 시간 여러 곳에 내리는 국지성 집중호우다. 세계적인 대홍수로 한국은 추석을 앞둔 시점에 산사태는 물론이고 지역을 초토화하는 일, 도시 한복판의 맨홀에 빠져 숨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다. 비에 대한 이중적인 생각과 느낌이 들지만 이런 노래가 있다. 평자가 대학생일 때 자주 불렀던 양병집 작곡의 소낙비라는 가사 일부다. “어디에 있었니 내 아들아. 어디에 있었니 내 딸들아. 나는 안개 낀 산속에서 방황했었다오. 시골의 황톳길을 걸어 다녔다오. 어두운 숲 가운데 서 있었다오. 시퍼런 바다 위를 떠다녔다오. 소낙비……끝없이 비가 내리네.”

  이 노래의 의미는 70년대 데모하는 학생들의 시대 상황을 내 아들과 내 딸로 풍자한 노랫말이지만, 화자는 5번을 여름이 오면을 되풀이하며 시화화(詩話化)하고 있다. 두 번째 문구에서는 태풍도 오고 장마도 오고 물난리도 난다.”고 짧고 단순하게 여름을 시화화하고 있다. 이렇게 한 단어를 상황에 따라 사물화하는 방법은 여러 갈래를 증명하고 있다. 그래도 비는 물론이요, 여름을 통해 자연재해라는 삼중의 고통 속에서도, 평화와 공존이라는 자각과 노력을 노래하는 시다.

 

밤새 파도소리에 이룬 사랑이

봄철 한마당

꽃으로 필 줄이야

사방천지 궁궐 앞마당의

연분홍 혼이 될 줄

누가 생각인들 했겠는가

 

따뜻한 햇볕 아래 바람은 조금만 불어도

꽃잎은 시나브로 방울방울

해맑게 웃고 있다

 

이리저리 펼쳐진 꽃잔디는

행여나 빗님이 찾아올까

오늘 밤 짙은 구름이 보일까

달그림자도

사랑공원 담장에서 서성이며

빗님을 기다리네

  -꽃잔디, 전문

 

  화자가 거주하고 있는 몬터레이해변(Monterey Beach)에 잘 정돈된 사랑공원이 있다. 한참 익은 봄 나절에는 꽃잔디가 해변을 오가는 이들의 눈을 화려하게 만든다. 이 시는 순수한 서정적인 시로 활짝 핀 꽃처럼 맑기도 하다. //밤새 파도소리에 이룬 사랑이/봄철 한마당/꽃으로 필 줄이야/사방천지 궁궐 앞마당의/연분홍 혼이 될 줄/누가 생각인들 했겠는가//따뜻한 햇볕 아래/ 바람은 조금만 불어도/ 꽃잎은 시나브로 방울방울/해맑게 웃고 있다//

  꽃들에 마음이 용해되고 꽃들 하나하나를 뜯어 보면 무언가 상상을 떠올리게 되고 그 떠오르는 표상을 꽃들과 대화하게 된다. “너 어디 가니?” “아니야. 너를 보고 있는 거야.” 또 다른 느낌과 생각에 사로잡힌다. 코기토(cogito) 생각하다라는 코기타레(cogitare)1인칭으로 나는 생각한다로 사유적 문제로 집약되며 철학적인 개념의 생각, 나는 너로 인해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를 존재하게 만든다는 상징적 언어구조가 만들어지는 자연친화적 시다.

 

 

자식들이 생활하던 빈방은

결혼하고 떠나간 그대로인데

까르르 웃어대던 오랜 기억은

밤새

깊은 침묵의 골로 남아 있네

 

큰딸 해미는

약해 빠진 딸을 출산하더니만

그게 서운했는지

떡두꺼비 사내아이 같은

쌍둥이 딸까지 생산하고,

언니 보기가 민망했는지

둘째딸 해련이도

예쁜 딸을 출산하여

외손녀만 네 명이라

 

자식들이 떠나간 방에는

오늘따라

깊은 잠을 깨우는

웃음소리와 수많은 언어가

날갯짓하네

 

다친 다리를 움켜쥐고

이 층 계단을 오르며

사랑으로 다져진

빈방을 하나씩 기웃거리며

오래전 이승을 떠난

아들 해광이 방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멎어 있으나

언젠가 파랑바람이 일어

하늘 높이 날아가는

오색풍선이면

더 좋으리

  -빈방, 전문

 

네 마리 외손녀들

안 보면 보고 싶어

애가 탄다

 

자다가

일하다가도

보물단지가 보고 싶어 안달

러브홀릭에 빠져

단숨에 두 딸내미 집을

차례차례 찾아가네

 

옹알거리는 얼굴을 보면

아이구 내 새끼

웃음만 나오고

할 말을 잊은 채

궁둥이만 톡톡톡

보아도 안 보아도

사랑은 이래저래

보물단지인가 보다

  - 보물단지, 전문

 

  화자의 2층 큰 집에 비해 아주 적막할 정도로 조용하다. 두 내외만 생활한다. 그것도 간호사인 부인은 밤에만 병원에서 근무한다. 이러한 상황이니 화자는 밤이 되면 빈집에 등그러니 혼자만 있게 된다. 집에서 짐짓 대형TV로 영화나 음악감상 등을 감상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적막강산인 셈이다. 자연스레 애들이 성장했던 지금의 빈방을 하나씩 들러 다 보게 된다. 각각의 추억이 물씬 풍겨 나온다. 각 방에서 자식들과의 지나간 대화를 스스로 점검하며 회상에 잠긴다.

  화자의 토기토(cogito)를 비반성적 또는 선반성적 토기토인 것이다. 의도적으로 수행하는 의식활동을 회상하는 관계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에 의하면 데카르적 코기토는 전적으로 비논리치, 곧 규정되어 있지 않은 실존이라는 실존을 말하는 것이다. 깊은 밤, 잠 안 오는 밤에 각 방의 문을 열어 놓고 먼저 세상을 뜬 아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시집간 두 딸에게도 근황을 가슴 속으로 묻는다. 그러면서 토끼 같은 네 마리 외손녀를 그리워하며 화자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본다. 이게 우리들의 인생살이다.

 

나만의 시()

아침 꽃밭에 찾아오는

새들의 노래 속에 있고

마누라 잔소리에 있고

바닷가 파도 속에 있고

내 아픈 다리에도 있다

 

주일날

교회에 참석해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 보니

목사님의 설교 중에도

나의 시가 들어 있네

 

아침마다 먹는

나만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집주변 둘레길을 걸으며

집에 들어와서도

새로운 시어를 생각하며

내 가슴 속을 한참 후벼 보아도

시어는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집 안에서

특별히 급한 일도 아닌데

시어를 생각하다가

후다닥 넘어져 다리를

서너 차례 다쳐

무릎보호대하고 지팡이를 짚는다

 

오매

나만의 시()가 내 지팡이 속에 들어 있네.

  -나만의 시, 전문

 

  화자는 하루를 집 안에서의 일과 가끔 집 주변을 산책하며 주일날 교회 가기를 기다린다. //나만의 시()/아침 꽃밭에 찾아오는 /새들의 노래 속에 있고/마누라 잔소리에 있고/바닷가 파도 속에 있고/내 아픈 다리에도 있다//주일날목사님의 설교 중에도 나의 시가 들어 있네//……후다닥 넘어져 다리를/서너 차례 다쳐/무릎보호대하고 지팡이를 짚는다//오매/ 나만의 시()/내 지팡이 속에 들어 있네//

  화자는 <나만의 시()>에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다. 잘 정제된 시어들이 아름답다. 온통 정서적 시어로 가득 차 있다. 시어를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더 깊은 시어를 생각해 나가고 있다는 화자. 이리하여 진정한 시가 깊은 고뇌로부터 탄생한다. 파스칼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것은 인간이 복합 다층적 존재임을 보인다. 그만큼 인간은 다양한 의미와 효과를 일구어내고 풍부한 삶을 향유하고 있다는 증명서이다.

 

  3. 나가기

 

  지금 우리는 우울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이 우울증이 지난 세기의 우울증과는 다른데에 문제가 있다. 자신이 우울증을 앓는지도 알 수 없을 만치 심각한 무감각함에 젖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무감각은 일종의 삶의 한 방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 이병호 시인에게는 현재 놓여 있는 상황을 새로운 사유의 프로그램을 시화화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글쓰기는 모든 사유는 도전이요, 도발일 수 있다.

  사유란 사전적 의미로 보면 사태를 두루 생각함을 뜻한다. 사유하는 사람을 사유가(思惟家)라 한다. 사유가는 두 가지 주어진 과제와 운명으로 요약된다. 그 하나는 그의 앞에 펼쳐져 있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태의 근원을 소급하여 그 시원에서부터 사유하는 것이요, 둘째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앞으로 펼쳐질 사태를 맞이할 채비를 그 사유로부터 길어내는 일이다. 전자가 과거로 소급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유라면, 후자는 현재로부터 미래를 투사한다는 점에서 계시적 사유일 것이다.

  화자 이병호의 마음은 불편해진 몸과 말을 떠나서가 아니라 오직 그 안에서만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사유일 것이다. 그랬을 때만이 비로소 유일한 삶 속에서 체험하는 무한이라는 것이 그에게 유효한 의미를 띨 수 있게 된다. 아픔으로 인해 체험한 무한과 죽음만이 그의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유효하기도 하고 유의미한 무한이고, 유일무이한 죽음을 관통할 것이다. 이른바 유형의 초월, 몸은 몸으로써 넘어도 몸은 그대로 남고, 말은 말로써 넘어도 말, 곧 자신의 시는 그대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삶은 공간은 기본적으로 윤회생사의 세계인 바르도(Baedo), 곧 유정(有情)이 태어남으로 인해 처할 수밖에 없는 유형지(流刑旨)의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몸을 입음으로 인해 치러야 할 형벌, 유형(有形)은 또한 유형(流刑)이 된다. 따라서 화자 이병호에게서의 시()는 자신의 삶의 길이요, 진리요, 빛이며 동시에 생명에의 등불이 될 것이다.

이병호 사진-es.jpg

송암(松岩이병호

1948년 전남광역시 출생. 전남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UCLA 교육학 박사과정 수료. 미국방 외국어대학 한국어과 교수역임. 월간 신문예 25회 시부문 신인상(2012). 25회 서울문예창작상 시부문 수상. 지식공감 문학상. 한국문협 본부 표창장(2017). 서울문학 오늘의 작가상. 저서: 론 사이프러스.나만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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