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관 시인

조회 수 384 추천 수 1 2023.03.01 09:42:30

 

 

                            평범한 일상, 잠언시로 부활하다

                                    -안종관 시세계

 

                                                          강기옥

                                                 (시인·문화재사료조사위원)

 

 

  시는 사념의 생산물이 아니다. 관찰과 관조와 교류 속에서 캐낸 정감의 산물이다. 무엇인가 보고 듣고 딪치는 가운데 솟아나는 감정을 쓰는 것이 시다. 그래서 때로는 홀로 명상하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쓰기도 하고, 삶의 현장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의 언어로 이야기하듯 쓴 글은 시가 아니다. 그저 산문으로서 기록의 일부일 뿐이다.

  시는 말 그대로 시적이어야 하고, 시적인 용어를 택하여 시적으로 서술하는 시문(詩文)이라야 한다. 시의 이론을 알면 오히려 시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시를 읽고 그 시 속에 나타난 용어의 선택과 시적인 기교가 무엇인지 깨달아 자신의 글에 적용하며 시를 익힌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시도 모방에서 출발한다.

  안종관 시인은 일상의 언어를 시화하여 서술하듯 시를 풀어낸다. 시의 모방이 아닌 자연의 모방이자 삶의 재현이다. 그의 시는 읽으면 읽는 그 순간에 공감하며 추억에 빠져들고 현실적인 문제를 인식하게 된다. 굳이 비유나 상징 등 시적인 기교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삶 자체를 시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후의 자연을 조명하기도 하고, 지난날의 추억을 되살려내는가 하면 현실의 문제를 통시적으로 관찰하여 공시적으로 조명하기도 하는 시쓰기로 나타난다. 그래서 호흡이 긴 서술형 문장을 즐겨 사용하려 했다. 시는 서정적 감상을 주로 다루지만 우리의 삶과 환경이 곧 시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실증적인 작품으로 시집을 꾸몄다.

 

  그동안 스스로를 유배하듯 제주도로 훌쩍 떠난 안종관 시인이 제5 시집 산방산을 상재했다. 시인의 나라를 사랑하는 시심이 때로는 교훈으로, 때로는 가르침으로, 때로는 한숨을 동반한 자탄(自歎)으로 잘 나타나 있어 그냥 시로 읽기보다는 잠언(箴言)과 같은 명구로 읽힌다. 순수한 시심의 발산 위에 사회 정화를 위한 참여시적 성격이지만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라 딱딱하거나 난삽하지 않다. 구약 성경의 선지자가 지도자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듯 안종관 시인은 사람과 사회에 대한 사랑을 나침반을 펴듯 선명한 목소리로 시화해냈다. 결국 제5 시집 산방산의 일관된 주제는 사랑이다. 그래서 제주도 생활 20년 동안 결집된 사랑이 산방산으로 태어났고 71편을 실은 시집의 서시로 올렸다.

  시인이 서문에 밝혔듯 안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공직 생활하던 '육지쟁이''섬돌이'로 변해 20년을 살았으니 제주도에 뼈를 묻어도 좋을 만큼 확실한 섬사람이 되었다. 그간의 삶에서 많은 애환도 있었겠지만 사랑은 아픔만큼 영롱한 결실을 맺는다는 속언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반증한다.

 

한라산 폭발하여

사계리 바닷가에 철모를 씌웠네

정상 움푹 떼어 산방산을 이루고

머리엔 허연 백록담이 패였네

 

올레길 두루 돌아 마음을 열고

깔딱 고개 계단 올라

산방굴사 금부처 합장하며 맞는다

애기 부처 앙증맞게

해탈 웃음 건네는 곳

 

용머리 해안에 뒹구는 중생의 소리

형제바위 맴돌아 하멜 상선에 머물고

조각배로 떠도는 시선을 맑혀

송악산을 이끈다

 

가파도 그만 마라도 그만

후한 인심으로 앉은

남쪽 끝 외로운 섬

마라도가 아스라이 손짓을 한다

- '산방산' 전문

 

  시심(詩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본능이다. 그 본능을 어떻게 발현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시를 쓰는 능력에는 개성적인 바탕이 있다. 그 바탕을 풀어가는 방법에 따라 시의 성격은 달라지기에 같은 소재로 시를 써도 사람마다 주제가 다르고 진술과 시상의 전개 방식이 다르다. 제주도를 소재로 쓴 시들은 무수히 많지만 산방산 주변의 풍광을 늘어놓으면서도 나열에 의한 지루함이 없다. 오히려 늘어놓은 것만큼의 사랑이 담겨있어 정겹다. 위 시를 소재로 수채화를 그려도 좋을 만큼 잔잔한 정이 묻어있다.

  1산방산 풍경에서 보이는 특징은 11편의 시들 중에 바다와 관련된 제목이 7편이다. '산방산', '제주의 봄', '탐라의 폭설' 외에 모두 바다와 직접 관련이 있다. 그 특징을 한 곳에 집약한 것이 '산방산'이다. '''바다' '바위' '' 이것이 제주의 상징이다. 그래서 '산방산'이 이 시집의 서문이자 서시이며 이어질 시의 안내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바다는 모든 것 받아주어

바다라 한다지

 

육지를 쓸어온 오물을 받아

짭짤하게 씻어 정화해 주는

큰 손의 사랑이라

바다는 넓다지

 

어느 날 그 태풍 휘몰아치던 날

누덕 누덕 얼룩진 바다의 얼굴

쓰레기에 파도 소리마저 부스러져

바다는 검게 멍이 들었다

 

가리지 않던 속 깊은 바다

그 바다를 아시나요?

- '바다' 전문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주어 바다라 한단다. 언어의 해학으로 시상을 도입한 후 '육지를 쓸어온 오물을 받아/짭짤하게 씻어 정화해 주는/큰 손의 사랑이라/바다는 무한정 넓다지'라며 반 의문문 형식으로 바다가 넓은 이유를 부연했다.

  이 역시 해학적으로 풀이한 의문성 강조의 표현 기법을 동원했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1연에서는 시상이 도입으로 기()에 해당하며 2연은 이를 발전시킨 승()의 긍정적 기능을 제시했다. 그러더니 3연에서 내용을 반전시켰다. 아무리 속 깊고 마음이 넓은 바다라도 '어느 날 그 태풍 휘몰아치던 날/누덕 누덕 얼룩진 바다의 얼굴/쓰레기에 파도 소리마저 부스러져/바다는 검게 멍이 들었다'며 어쩔 수없이 바다도 변해버린 상황을 제시했다. 인류에 대한 경고다. 그 경고의 무서운 상징은 '검게 멍들었다'는 구절에 숨어있다. 이리 터지고 저리 얻어맞아 생채기가 맺히더니 이제는 아예 검게 멍들어버린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우리는 제주바다만큼은 태풍이나 폭풍으로 인해 더러워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를 통해 청정바다 제주 해역도 이미 병들어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이는 제주도민을 향한 목소리가 아니다. 전 인류가 깨쳐야 할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시는 그렇게 사회 현실을 고발하고 민중의 지팡이처럼 계도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가을이 깊어 오면

외딴 초가집 굴뚝에선

저녁 연기 모락모락

 

아궁이에 군불 지피던 엄니

부지깽이로 뒤척 뒤척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주셨지

 

숯검정 실룩이는 입가와 콧등

매캐한 연기에 눈물 흘리며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지

 

따스해진 부뚜막엔

귀뚜라미 모여들고

사립문 슬쩍 밀치고 오는 말썽 아들

부지깽이 들고 쫓아 달려가다가

못 따라잡는 척 뒤돌아서는 엄니

 

소 팔러 시장에 갔다 돌아오시는

아버지가 대문 앞에 이르시면

부지깽이 손

행주치마에 닦으며 반기던 엄니

 

지금도

흰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고향 집 엄니의 부지깽이가

뒤척이는 추억이 되살아 난다

- '엄니와 부지깽이' 전문

 

  2부의 엄니와 부지깽이는 아련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향토적 정서를 노래했다. 특히 도입으로 제시한 '엄니와 부지깽이'는 개구쟁이 시절 바깥에서 놀다가 엄마 몰래 사립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엄마에게 쫓기는 장면을 해학적으로 그려냈다. 제대로 쫓아가면 어린 아들을 못 잡을 리 없지만 '부지깽이'라는 훈계의 상징으로 경고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결국 부지깽이는 고구마를 구워주는 사랑의 상징이자 교육의 기능을 담당한 도구로 등장한다. 지금은 아궁이도 없지만 부지깽이라는 용어조차 모를 세대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전하기에는 정겨운 자료다.

  4연의 '따스해진 부뚜막엔/귀뚜라미 모여들고'의 첫 행은 잊혀가는 시골 풍경을 되살려낸 최고의 압권이다. 귀뚜라미조차 좋아서 모여든 따스한 불기의 부뚜막, 요즈음처럼 싱크대도 없는 타일 수준의 부뚜막이라서 찬장의 그릇조차 연기에 그을렸을 60,70년대의 상황이다. 그곳의 온기가 오르면 어디서 왔는지 귀뚜라미가 팔딱 팔딱 뛰는 장면들이 있었다. 이 귀뚜라미는 곧 사랑의 온기에 몰려들 아들들을 일컫는다. 대유와 상징이 겹친 함축적 시어가 시의 맛을 더해준다. 그래서 '사립문 슬쩍 밀치고 오는 말썽 아들'이 등장한다. 이어 엄니의 교훈과 사랑이 겹쳐 나타난다. '부지깽이 들고 쫓아 달려가다가/못 따라잡는 척 뒤돌아서는 엄니'. 엄니는 무한한 사랑이다. 1부의 '바다'와 같이 속 깊고 넓은 바다의 사랑이다.

  여기에서는 시상의 멋진 확장이 나타난다. 소 팔러 간 아버지의 등장이다. 시장에 갔던 아버지를 맞는 아들이나 엄니는 아버지의 손을 보는 것이 순서다. 손에 무엇이 들렸는지가 하루의 재미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 부지깽이는 뒷부분에서 아예 '부지깽이'로 나타난다.

 

아궁이 땔감들 이리저리 통솔한다

요리 뒤집어 죽은 불씨 살려내고

조리 뒤집어 센 불 잦아들게 하고

고구마 감자 밤

통통 불어 까맣게 익을 때까지

엄한 손놀림 통제의 장군이었지

 

부지깽이의 끝

언제나 까맣게 그을려 있어

무료한 엄마의 연필이 되었지

통솔하던 장군이 부엌 바닥 공책에

집안일 세상 일 걱정하며 그린다

-'부지깽이' 전문

 

  부지깽이의 놀라운 변신이 재미있다. 어머니의 일상은 부지깽이와 닮았다. 집안의 대소사를 이래저래 관여하여 처리해가는 모습이 부지깽이의 통제력을 닮았다. 아버지는 바깥일에 힘쓰기 때문에 집안의 사소한 일을 관여하기는 어렵다. 실질적으로 집안일은 어머니 손에서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는 어머니의 모습과 부지깽이를 등가물로 시화한 것이다. 그만큼 어머니와 친밀하게 지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2엄니와 부지깽이15수는 잊혀가는 추억을 찾아 옛 정취를 살려내는 데 주력한 특징이 있다. '꽁보리 도시락' '수제비와 꽁보리밥' '딸랑딸랑 두부 사려' '한국인의 입맛' 등이 낫세나 든 사람들의 추억을 되살려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 중 '꽁보리 도시락'은 절대 빈곤 시대의 보릿고개를 넘던 7080세대의 배고픈 아픔을 되살려냈다. 못 먹어서 병을 얻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잘 먹어서 병이 되는 시대에 사는 격세지감을 느끼며 현 세대의 무한한 행복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짚어보는 주제가 2부의 핵심이다.

 

  3부의 천 년을 사나는 인생살이의 교훈을 지적해 주는 경구다. 더불어 잘 살기 위한 방편이 무엇이며 보기 아름답게 살기 위한 지혜가 무엇인지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참언이다.

  그중 '욕심의 끝'은 보다 더 잘 살기 위해 무리하여 일만 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잠언(箴言)이다. 누구나 나름대로 추구하는 정점이 있고 그 정점에 이르기 위해 피땀 흘려 일하지만 그 정점에 이르면 더 높은 단계를 추구한다. 결국 그 정점에서 더 높은 단계를 향해 일해야 하는 시지프스형 인간은 어느 계층에서든 삶의 고통과 걱정과 애로사항이 있음을 지적했다. 고은 시인의 '그 꽃'의 시형령과 같이 구체화한 시라서 깊은 울림이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 목표를 향해 올라갈 때는 주변을 살피지 못한다. 오직 굳건한 의지와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만 있을 뿐, 그러나 정점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교류하지 못한 이웃은 물론 아내와 가족 친지까지 외면하고 나만 위해 살았던 날들이 주마등으로 떠오른 것이다.

 

백만 원 월급쟁이

죽지 못해 살아간다

아프면 안 돼 아프면 끝장이야

 

이백만 원 월급쟁이

빠듯이 살아간다

아이들 학원비 엄두도 못 낸다

 

삼백만 원 월급쟁이

전전긍긍 살아간다

학원비 보험료 세금도 빠듯하다

 

오백만 원 월급쟁이

힘들게 살아간다

주식투자 융자금 여유 없이 지낸다

 

천만 원 월급쟁이

전전긍긍 살아간다

자녀 해외 유학 기러기로 살아간다

 

삼천만 원 월급쟁이

눈치 보며 살아간다

외제 차 펜트하우스 겨우겨우 지낸다

 

일억 원 월급쟁이

재산 관리에 잠 설치며 살아간다

상속 유산 싸움질로 속 편할 날이 없다

-'욕심의 끝' 전문

 

  잘 살아보자며 허리띠를 동여매던 6070년대에는 이웃과 땅 다툼하는 일이 없었고 부모 자식 간의 불화도 없었고 형제간의 칼부림은 더더욱 없었다. 잘 살아야 한다는 공동 목표에 모두가 합심하여 일했다. 그런 부지런 속에서 어느 정도 보릿고개를 넘었을 때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나 정신문화를 살펴보지 못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나의 주장'을 가르치며 사실에 맞지 않아도 논리에 맞으면 된다며 자기를 나타내는 교육을 실시했고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고 잘 쓰는지 경제 교육을 강조했다. 잘 쓰는 법도 교육했으나 누구든 돈 버는 방법에만 열을 올렸지 보람 있게 쓰는 방법은 등한히 했다.

  윤리 도덕보다 돈을 중시하여 사람의 가치를 능가하는 물신(物神) 주의에 빠져들게 했다. 돈이 부모 형제보다 앞서고 하나님과 부처님의 위에 있는 황금만능주의에 빠져들게 했다. 그래서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죽이고, 보험금을 위해 남편이나 아내를 죽이는 막간 드라마의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안종관 시인은 '욕심의 끝'에서 가슴 아픈 현실의 배경이 무엇인지 경계하듯 돌아보았다.

  가난한 사람이 오히려 행복했다는 말은 고려적 이야기다. 잘 살기 위해 협력하고 우애가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돈이 없으면 부부도 이혼하고 부모 형제도 남남이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단계에서 치러야 할 고민과 아픔을 지적했다.

  돈 전() 자는 쇠 금() 변에 창 과() 자가 결합하여 이루어졌다. 즉 돈은 부자가 창을 두 개나 들고 있는 형상이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서운 대상이 돈인 것이다.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인간의 비극을 그린 것이 '욕심의 끝'이다, 물신주의에 피폐해진 인간의 가치관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시라서 더 교훈적이다.

 

첩첩산중에 사는 사람

해는 앞산에서 떠서

뒷산으로 진다 하고

 

섬에 사는 사람

해는 앞섬에서 떠서

뒷섬으로 진다 하고

 

빌딩 숲에 사는 사람

해는 앞 빌딩에 떠서

뒤 빌딩으로 진다 하고

 

종교인은 제 신앙으로

지식인은 학식으로

정치인은 자기 당색으로

 

모든 사물을 판단하지

 

내 경험

내 생각

내 지식

내 신앙

 

내가 못 본

그 밖의 세상

마저 보고 행동하라

-'역지사지' 전문

 

  유학에서는 시를 경으로 삼아 시경(詩經)이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찬양과 기도문을 시편(詩篇)이라 하여 정신적으로 교화하는 중요한 대상이 되었다. 특히 시경은 연애담과 같은 가담항설(街談巷說)도 등장한다. 민중을 시로 교화하기 위해 당시 사회상을 진솔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시는 그렇게 사회상을 반영하는 진솔한 이야기여야 한다. 사회가 시끄러울수록 시인의 목소리가 커져야 하는 이유다. 사회를 정화하는 목소리는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이다.

  가을이면 많이 듣는 샹송 '낙엽(고엽)'의 시인 자끄 플레베르가 '까다로운 아이들'에서 지적한 자성의 시와 비슷하다.

 

아빠들이여/왼쪽 모습을 비춰 보세요//

오른쪽 모습을 비춰 보세요//

아빠들이여/거울에 비친 당신들 모습을/실컷 보세요//

그리고 우리를 실컷 보세요

- 자끄 플레베르 '까다로운 아이들' 전문

 

  이 짧은 시는 오늘날의 우리를 향해 외치는 부르짖음이다. 좌익이라고 좌측만 보지 말고 우익이라고 우측만 보지 말며 먼저 자신을 보라는 지적이다.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을 보고 현실의 나와 거울 속의 나가 있음도 알라는 이 가르침을 안종관 시인의 '역지사지'로 변화시켜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해낸 것이다. 이브 몽땅이 부른 샹송으로 낙엽'은 잘 알려졌으나 정작 세상을 향한 플레베르의 목소리는 알지 못한다. 그 빈 틈을 채워준 안종관 시인의 '역지사지'가 돋보이는 이유다. 시격(詩格)은 일상적인 용어로도 충분히 살아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랑이 그립다' '사람답게 살아라' 등의 작품으로 3천 년을 사나의 주제를 부연하면서 4하늘은 구름의 놀이터'세대차이'로 미풍양속이 사라진 풍속을 지적하며 과거 세대와 현세대의 삶을 비교한다. 가난했지만 인정이 많던 그 시절이 오늘을 사는 신세대들이 아름답게 보완하여 고운 풍속으로 살려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보인다.

 

할아버지 세대는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카카오톡도 없고

드론도 없이 살았는데

 

손자들은

가족애도 없고

존경심도 없고

인간미도 없고

겸손도 없고

참사랑도 없이 사는 세대

 

옛날 그 옛날엔

숙제도 혼자 하고

돼지 오줌보 불어 발로 차고

시냇물 마시며 뛰어놀았지

빵이나 과자가 귀해

비만 걱정은 없었고

모두가 가난해서

장난감도 만들어 놀았지

그래도 그래도

행복하게 살았지

 

요즈음에는

친구가 없어도

스마트폰 컴퓨터 게임기 드론

값비싼 장난감에 묻혀

진종일 혼자 즐기지

운동이 부족하여 비만해지고

혼 밥 혼 술 혼 여행

한쪽 혼을 뺏긴

혼 족으로 살아가지

-'세대 차이' 전문

 

   2013년 식목일에 경부고속도로 첫 휴게소에서 식탁의 투명 칸막이에 '혼밥석'이라는 안내 부착물을 보고 허탈한 문화충격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훨씬 전이니 그 느낌은 새로웠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아예 혼밥이 대세다. 어울림이 귀찮은 세상, 익명성의 편의에 빠져 이웃과도 교류하지 않는 홀로 아리랑의 세상으로 변했다. 누구를 탓하랴. 그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나도 적응의 몸짓을 서두를 수밖에.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부모를 만나고 형제를 만나고 이웃을 만난다. 그 만남은 타고난 자기의 성격을 그대로 지닌 채 만난다. 사람의 ''과 같이 모가 난 상태다. 그 모난 성격은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부딪치며 마찰을 겪는 가운데 각을 깎아내며 둥근 모습으로 변한다. 형제들과 싸우며 깨닫고 친구들과 다투며 자신을 발견하는 발전적인 관계가 곧 만남이다. 만남을 통해 ''의 모서리를 갉아 ''으로 바뀌어 원만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것이 사랑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찰과 인격도야의 결과가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예전 사람은 사랑보다 어려운 것이 이별이라 했다.

  요즈음에는 형제도 없어 모난 성격을 비빌 언덕이 없고 친구도 없어 내 단점을 보완할 대상도 없다. 혼자서 ''의 각을 세워 자기가 세상의 주인이 돼야 하는 개성적 인격을 키워가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지켜보는 안종관 시인은 과거의 아름다운 모습을 추억하며 현세의 메마른 상황을 가슴 아프게 시화한 것이 '세대 차이'.

  혼족의 세대, 갈수록 더할 홀로 아리랑의 현실은 우리의 미풍양속까지 송두리째 앗아가버리는 메마른 사회임을 경고한다. 교육의 전환이 필요한 세대임을 갈파한 목소리다. 그래서 5부의 세월은 어느 만치 가고 있나에서 '80대 세대'를 노래하며 자녀들로부터 독립을 선언해야 하는 서글픈 세대라고 지적했다.

 

삶이 즐거워도 세월은 흐르고

 

삶이 괴로워도 세월은 흐른다

 

삶의 내일이 보이지 않아도 세월은 흐르고

 

삶의 흔적이 없어도 세월은 흐른다

 

삶은 운명을 남겨둔 채 세월만 흐르고

 

삶의 보람을 위해 세월은 흐른다

- '세월은 흐른다' 전문

 

  특이하게도 이 시는 한 행 한 행을 독립된 형태로 전개했다.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여백의 기법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시간의 속성을 하나하나 풀어 병렬문의 형태를 취한 세 문장으로 전개했다.

  이 시 한 편만 따로 떼어 보면 시가 지니는 참신성은 저감된다. 그러나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시대적 목소리를 배경으로 읽으면 그 문학성은 크게 살아난다. 시집 전체를 마무리하는 결시(結詩)로서 결론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안종관 시인은 시집을 1산방산의 정경에서 '산방산'을 서시로 올려 서정적 자연관을 전개한 후 2부의 엄니와 부지깽이에서 서정적 추억담을 펼친 후 3천 년을 사나, 4하늘은 구름의 놀이터, 5부의 세월은 어느 만치 가고 있나에서는 일관되게 사회적 주제를 애잔하게 그려냈다. 그 목소리를 '세월은 흐른다'로 마무리하여 전체적인 결론을 삼았다.

 

  안종관 시인은 동양적 사유의 자연관으로 시의 배경을 삼는 여유가 있다. 그 여유는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소재를 반복적으로 열거하며 독자를 시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기법으로 나타난다. 결국 시상을 점층적으로 고조시켜 찬찬히 정점에 이르게 하는 시쓰기다. 이는 자신의 뜻을 보다 확연하게 드러내기 위한 기법으로 여러 사람과 어울려 살던 시절의 아름다운 풍습을 잔잔히 그려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경험한 평범한 일상을 시로 재생해냈기에 독자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안종관 시인의 시가 쉽게 다가와 정겹게 추억을 회고하게 한다.

  앞으로도 제주와 육지를 오가며 겪은 많은 일들을 감동적인 시로 묶어내기를 기대한다.

 

안종관 es.jpg

 

 약력:

화백문학. 애월문학 회원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이사

제11회 한미문단 문학상. 한.아세안포럼 문학상 외

시집: <봄 여름 가을 겨울>. <징검다리>. <산방산> 외 다수 

기행집: <내 마음을 따라 가본 곳>

동인지: <장독대 시설> 외 다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21 홍마가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4-05-01 143 5
120 박영철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4-04-01 209 3
119 오순자 문학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24-03-01 306 1
118 배우식 시조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4-02-01 248 1
117 문제완 시조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4-01-01 233 1
116 김남규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3-12-01 237 1
115 송복련 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23-11-01 150 1
114 정복성 수필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23-10-01 2040 3
113 이택화 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23-09-01 887 2
112 김광진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3-08-01 289 1
111 강태기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3-07-01 307 1
110 김준호 제4시집 <시인의 예수> file 웹담당관리자 2023-06-01 1011 3
109 이택화 문학평론가 file 강정실 2023-05-01 342 1
108 박철영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3-04-01 288 1
» 안종관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3-03-01 384 1
106 김광진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3-01-31 424 1
105 김석인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3-01-01 364 1
104 이택화 문학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22-11-26 431 1
103 이병호 시인 file 웹담당관리자 2022-11-01 408 1
102 이택화 문학평론가 file 웹담당관리자 2022-10-01 40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