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연못

조회 수 8887 추천 수 27 2014.09.21 09:29:51
작가 : 강정실 평론 

 

 

                                                                            작은 연못

                                                                                                                                                                            姜 正 實
                                                 
   토요일 오후다. 점심을 먹고 난 후라 그런지 하품이 쏟아진다. 거실에 있는 TV를 켰다. 화면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귀까지 먹먹해진다. 눕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둥근 어항을 쳐다본다. 금붕어도 한가로움을 물방울놀이로 달래고 있는 듯 한가롭다.
   나른함을 벗어버릴 겸 차를 청소하기로 했다. 차 트렁크를 열고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느 연못가에서 새들과 고기들이 한데 어울려져 있는 사진엽서가 눈에 띄었다. 작년 겨울, 동부의 마켓에서 구입한 것이다. 그동안 엽서의 사진이 예쁘기도 해서 책갈피로 사용하다가 잊고 있었다. 차 내부청소와 세차까지 마친 후 거실로 돌아왔다.
   물이 든 주전자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가스 불을 켰다. 커피를 마시기 위함이다. 차 트렁크에서 찾은 엽서를 어항에 세워 놓고 금붕어와 비교해 보았다. 어항 면에 반사된 금붕어는 커다란 잉어가 되어 나의 망막으로 들어온다. 의자에 앉았다. 또다시 하품과 함께 나도 모르게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스르르 감겨 왔다.

 

 

 

   작년 봄 초, 집 마당에 작은 연못을 만들려고 했다. 소박했던 어릴 때의 꿈이 담긴 소망도 함께 말이다. 몇 곳의 수족관을 통해 연못에 대한 조언을 받아 보았다. 시설비와 고기값이 생각보다 비쌌지만, 아내와 상의했다. 연못 설치에 대해 맞장구를 칠 것이라 믿었던 아내가 일언지하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어린 손자와 손녀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애들과 손자 손녀는 방학 때 20여 일 정도 이 집에서 생활할 것인데, 그 상황이 오면 내가 책임지고 야간 보초까지 서겠다고 했다. 그래도 안 된단다. 몇 차례 더 아내를 어르고 설득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별수 없이 연못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소파 위의 어항으로 꾹꾹 눌러 놓고 말았다. 그랬는데 사진엽서를 보는 순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못을 만들어야겠다는 새로운 의욕이 쏟아 놨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회가 이외인 곳에서 찾아왔다. 아내가 집안일로 금하게 한국에 나갈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2,3개월이나 말이다. 아내는 공항으로 가면서도 나의 음식과 빨래 등이 걱정되는지 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아니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연못뿐이었다. 출국장에서 아내를 편안하게 갔다 올 수 있도록 안심시키기보다는 해뜨린 웃음만 계속 터져 나왔다.

   전문가를 불렀다. 집 마당 중앙에 연못을 만들어 베란다에서도 잘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게 아니란다. 그는 햇빛이 들면서도 서늘한 곳이 좋다며 후미진 곳을 추천해 주었다. 온도의 편차가 심하면 고기들이 살아갈 환경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연못을 중앙으로 선택하겠다면 수심을 깊게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괜찮으니 본래의 생각대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 방법이 아내와의 교전을 피하기 위한 차선책이라는 것을 밝힐 수 없었다. 비록 아내에게 눌리어 살망정 남에게는 구차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연못을 만드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그의 지시대로 시멘트 독을 제거하기 위해 물을 채우고 빼기를 반복했다. 드디어 디데이가 왔다. 집사람 몰래 꿍쳐놓은 돈과 동전까지 총동원하여 비단잉어와 수초도 몇 종류 구입했다.
  연못 속에는 잉어 식구들이 30마리가 넘었다. 팔뚝만 한 놈들의 화려한 무늬와 빠른 몸놀림은 정신을 쏙 빼게 하였다. 생동감이 넘쳐 났다. 새벽녘까지 불을 환하게 밝혀놓고 연못주변을 떠나질 못했다. 이러한 기쁨이 몇 주 계속되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라 했나. 생각보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수온도 챙겨보고, 먹이도 넣어 주어야 하고, 질병까지 예방해 주어야 했다. 날씨가 더운 한낮에는 냉동실에서 얼린 얼음까지 넣어 주기도 했다. 그렇게 정성을 쏟는데도 벌써 다섯 마리나 죽어 떠올랐다. 죽은 놈들은 대부분 군데군데 비늘이 떨어져 있었다.
   야생 고양이들이 이런 짓을 한 것일까, 아직도 시멘트 독이 덜 빠졌었나. 연못 크기보다 고기가 많은 것인가, 산소가 부족해서이런가, 분수대를 추가로 설치해야 하나, 그렇게 하려면 전기를 끌어와야 하고 시간과 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전문가의 말대로 웅덩이를 깊게 파서 온도의 편차를 줄여야 했나, 아니면 베란다의 후미진 곳을 선택했어야 옳았던 것일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기가 다 빠져나갈 정도로 신경을 쓰느니 차라리 살아 있는 놈 모두를 반품시키자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수족관에 전화했다. 그것도 불가능했다. 연못에 있는 놈들은 수족관에 되돌아와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 연못의 환경에 적응 중이라며 도리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출장 치료를 하자고 역제안까지 한다.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에 서너 차례 집중치료를 하면서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가슴까지 벌렁댔다. 어떻게 만든 연못인데, 화가 머리 끝까지 끓어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연못을 쳐다보고 있으면 죽은 놈들과 화난 아내의 얼굴이 함께 물 위에 떠올라 걱정은 풍선처럼 부풀어져 갔다.
   또 한 놈이 옆으로 누워 비실대고 있다. 안 되겠다 싶었다. 살아 있는 놈들 전부를 강에다 풀어 주고, 본래의 모습대로 되돌려 놓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내가 오기 전까지 서둘러야 했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작업인부를 불러 설명했다. 견적서를 받고는 연락을 하겠다며 돌려보냈다. 여윳돈은 이미 고갈 났고, 신용 카드 사용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청구서 내용을 보면서 검사처럼 조목조목 따질 아내의 바가지는 도저히 감당할 자신 없었다.
  해머와 삽을 준비했다. 그리고는 연못가에 촛불을 켜놓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올렸다. 연못 시설비와 이놈들과 수초를 합친 총액을 10분의 1로 줄여 만들었다고 아내에게 거짓말하려던 죄, 작년 여름에 손자가 먹고 싶다는 아이스크림을 이빨 상한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던 죄, 주머니에 현금이 있는데도 친구들이 소줏값을 지불하게 한 죄, 죽으려고 비실거리는 놈들을 본전 생각에 매운탕용으로 사용하려 했던 죄, 그동안 연못에 얽혀 있는 죄들을 낱낱이 하나님께 고했다.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놈들을 목욕탕에다 옮긴 후 작업을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힘이 부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입에서는 끙끙대는 소리까지 나왔다. 해머를 놓고 연못가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등 뒤에서 앙칼진 쇳소리가 들려왔다.
  “여봇, 지금 뭐하는 거예요. 집에 불낼 일이 있어요?”

 


  
   아내의 고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펄펄 끓는 물주전자 주둥이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귀청을 때리고 있다. 주전자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는 의자에 앉은 채로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사진엽서는 나의 발 옆에 떨어져 있고, 입 언저리로 흘러내린 침은 의자 오른편에 거미줄처럼 길게 연결되어 있다.

 

 

강정실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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