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들의 대통령 뽑기
최효섭
쥐 나라의 임금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대신들이 모여 새 임금님을 뽑을 의논을 하였습니다. 육군 대신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임금님은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여 부자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쥐들은 힘이 센 쥐로서 전국씨름대회에서 우승한 장사 쥐를 임금으로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사 쥐는 백성의 기대에 어긋났습니다. 아무리 기다려 봐도 외국을 침략하는 전쟁도 하지 않고, 돈 벌 생각도 하지 않고, 먹기만 합니다. 하루 아홉 끼를 먹는 먹보 임금이었습니다. 대신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상공 대신이 주먹을 휘두르며 연설하였습니다.
“돈벌이는 힘으로 안 됩니다. 우리 쥐들의 버릇이 있지 않습니까? 도둑질을 잘해야 부자가 됩니다.”
상공 대신의 연설은 모든 대신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쥐들은 누구나 도둑질에 재주를 가졌지만, 그들 중에서도 검정 눈이라고 불리는 쥐가 도둑질의 으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검정 눈은 낮에도 검은 안경을 끼고 다닙니다. 그래서 검정 눈이 누구를 보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어 모두가 두려워합니다.
검정 눈이 임금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검정 눈이 시작한 것은 똑똑한 쥐와 멍청한 쥐를 갈라놓는 일이었습니다. 검정 눈은 모든 쥐에게 시험을 치게 하였습니다. 같은 문제를 주고 같은 시간에 답을 적게 하였습니다.
90점 이상은 뛰어남, 70~89점은 우수함, 50~69점은 괜찮음, 30~49점은 그럭저럭, 0-29점은 바보로 갈랐습니다.
그랬더니 불평이 너무 많이 쏟아졌습니다.
“내 성적은 89점인데 내 실력과 90점 맞은 쥐와는 겨우 1점 차이다. 어째서 내가 뛰어남에 들지 못하느냐?”
“내 아들은 49점을 받았는데 그만하면 괜찮음이지 어째서 그럭저럭 이라고 하느냐?”
“말도 안 된다. 내 손자가 29점이나 받았는데 바보라고 불리다니!”
거의 모든 쥐가 불평하기 때문에 시험 성적으로 임금 뽑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대신들이 다시 모여 의논하고 새로운 방법을 내놓았습니다.
“모든 쥐 백성은 들으시오. 털의 색깔로 임금이 될 자격을 결정하기로 합니다. 검은 색깔의 쥐만이 진짜 쥐입니다. 회색 쥐는 가짜입니다. 가짜는 이 나라에서 없애든지 종으로 부려야 합니다. 또한, 흰쥐가 더러 있는데 그들은 쥐가 아닙니다. 흰 색깔을 가진 놈들은 우리 쥐의 세계에서 추방해야 합니다.”
나라가 몹시 시끄러워졌습니다. 금방이라도 큰 전쟁이 벌어질 것만 같습니다. 회색 쥐들이 주먹을 휘두르며 항의하였습니다.
“그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 회색을 쥐색이라 할 만큼 회색 쥐가 많다. 우리가 모두 가짜란 말이냐?”
흰 쥐들도 항의하였습니다.
“흰색은 깨끗하다. 사람들도 우리 흰 쥐를 좋아한다. 왜 우리를 추방하려 하느냐?”
색깔 논쟁은 그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한 쥐가 외쳤습니다.
“우리가 수도사 어른을 잊고 있었군. 그분을 모셔다가 임금님으로 삼으면 어떻겠는가?”
쥐들은 모두 산으로 몰려갔습니다. 굴에서 수도사 쥐의 기도 소리가 들립니다. 쥐들이 굴 밖에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수도사님! 수도사님! 우리의 임금이 되어 주셔요.”
수도사 쥐는 굴에서 나오지도 않고 목소리만 들렸습니다.
“나는 세상일에는 관심이 없다. 신령 쥐와 의논하여라.”
신령 쥐는 쥐들이 하느님처럼 생각하는 존경하는 쥐입니다. 높은 느티나무 위에 살고 있고 아무도 이 나무에 올라가서는 안 됩니다.
쥐들은 나무 밑에 모여서 한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신령님, 신령님, 새 임금을 뽑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신령 쥐의 음성이 메아리처럼 울렸습니다.
“쥐 백성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검은 쥐는 우수하고 흰 쥐는 못난 것이 아니다. 색깔로 우수한 쥐를 가리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회색 쥐나 검은 쥐나 똑같다.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가 아니냐? 임금을 둘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쥐들에게 대통령이란 처음 들어 보는 말입니다.
“대통령이 무엇입니까? 임금과 같은 말입니까?”
“대통령은 임금이 아니다. 임금은 아들 손자로 임금 자리를 물려주지만, 대통령은 5년마다 국민이 투표로 뽑는 것이다.”
“그런 대통령을 국민이 따르겠습니까? 국민이 대통령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힘이 없을 건데요?”
“힘을 부리는 것이 대통령이 아니다. 국민의 뜻을 모아 다스리는 것이 대통령이다.”
쥐들은 대통령 후보 모집 광고를 냈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는 국민은 등록하여라! 등록비로 쌀 한 되와 보리쌀 한 되를 바쳐야 한다.”
불평이 쏟아졌습니다.
“등록비가 너무 많다.”
“그런 쌀을 가졌다면 부자다. 부자만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부자가 아니면 도둑놈만이 그렇게 많은 쌀을 가지고 있을 거다. 도둑을 대통령으로 뽑을 생각인가?”
결국, 등록비는 받지 않기로 했더니 대통령 후보로 나선 쥐가 열 마리나 되었습니다.
첫째 후보는 자기는 털이 희니까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색깔을 들고 나왔습니다.
둘째 후보는 자기는 씨름대회 우승자니 자격이 있다고 힘을 들고 나왔습니다.
셋째 후보는 자기는 예쁘게 생긴 암놈이니 자격이 있다고 얼굴을 들고 나왔습니다.
넷째 후보는 자기는 쌀이 많은 부자니 자격자라고 재산을 들고 나왔습니다.
다섯째 후보는 자기는 도둑질에 자신이 있으니 자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섯째 후보는 자기는 말을 잘하는 웅변가이니 자격자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일곱째 후보는 자기는 군대를 가졌으니 대통령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여덟째 후보는 자기는 방송국을 장악하고 있으니 자격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아홉째 후보는 하느님이 자기편이니 당연히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열째 후보는 자기가 대통령감이라고 무당 쥐가 예언하였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쥐가 열 마리입니다. 어느 후보든 투표자의 절반이 넘어야 당선된다는 규칙이었습니다. 쥐들이 열 마리 후보를 놓고 투표하였더니 한 마리도 절반을 넘긴 후보가 없었습니다.
쥐들은 신령 쥐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신령님, 어쩌면 좋습니까? 절반의 표를 얻은 후보가 하나도 없습니다.”
신령 쥐가 엄숙하게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대통령감을 겉모양이나 재산으로 보았으니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하여 스스로 희생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쥐들이 모여 의논하였습니다.
“신령님 말씀대로라면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쥐를 가리키는데 과연 우리 가운데 그런 쥐가 있겠습니까?”
“요즘 누가 남을 위해 삽니까? 만일 그런 자가 있다면 바보겠지요.”
“희생이란 말은 아주 오래된 옛말인 것 같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라면 손해도 볼 수 있겠지만 남을 위해서 손해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요.”
그런데 작은 쥐 한 마리가 말했습니다.
“뒷마을에 사는 ‘도우미’ 양이 있지 않습니까. 남을 많이 도와준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쥐들은 뒷마을 소녀 ‘도우미’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도우미 양은 내가 배고플 때 자기의 도시락을 몽땅 나에게 주었어.”
하고, 말한 것은 작은 오막살이에 엄마와 함께 사는 키다리 껑충이 쥐였습니다.
“도우미 양의 은혜는 평생 못 잊을 거야. 내 아기가 아플 때 도우미 양이 며칠을 함께 놀아주었거든.”
하고, 감격스럽게 말한 것은 빼빼 마른 아줌마 쥐였습니다.
“도우미 양에 대하여 여러 말 할 것도 없지. 도우미 양은 마음이 부처님같이 착해.”
하고 칭찬한 것은 다리를 절룩거리는 할머니 쥐였습니다.
동네 쥐치고 도우미 양을 칭찬 안 하는 쥐는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입이 마르게 도우미 양의 착한 행실을 칭찬하였습니다.
늙은 쥐가 앞으로 나셔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두 도우미 양을 좋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우미 양을 우리의 임금으로 삼으면 어떻겠습니까?”
이 말에 대하여는 얼른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참 있다가 한 회색 쥐가 입을 열었습니다.
“도우미 양을 임금으로 삼자는 것이 말이 됩니까?”
“왜 말이 안 되는데요?”
“암컷이 어떻게 왕이 됩니까?”
“여왕이 있는 나라도 많습니다.”
“그 건 대를 이어 여왕이 되는 나라겠지요. 그것보다 도우미 양은 나이가 너무 어립니다. 소녀 왕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백성의 존경을 받는다면 나이가 어려도 왕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 우리끼리 말다툼을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본인의 뜻을 물어봅시다.”
쥐들은 모두 도우미 양의 집으로 몰려갔습니다.
도우미 양은 시냇가에서 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라라라라 즐겁구나 새 날이 밝았다
세수하자 싹싹싹 빨래하자 벅벅벅
좋은 일이 오늘도 많이많이 생길거야
신 나게 살아야지 씩씩하게 살아야지
쥐들이 한목소리로 도우미 양을 불렀습니다.
“도우미야! 도우미 양!”
많은 쥐가 몰려온 것을 보고 도우미 양은 무척 놀라 말은 못하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늙은 쥐가 대표로 말하였습니다.
“도우미 양, 우리는 너를 쥐 나라의 여왕으로 삼기로 하였다. 이 나라를 잘 다스려 주기 바란다.”
놀란 도우미 양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제가 무슨 여왕입니까? 남을 돕는 것은 내가 즐겁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점이 네가 여왕이 될 자격이니라.”
“저는 가난합니다. 백성에게 줄 것이 없는데 어떻게 여왕이 되겠습니까?”
“가난한 것이 네가 여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이니라. 욕심쟁이는 우리의 여왕이 될 수 없어. 백성을 도울 돈은 우리가 세금으로 거두어 바칠 것이니 염려 말거라.”
“대학도 못 나왔는데 여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네가 대학 나온 쥐들보다 유식하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안다.”
“군대의 힘을 가지지 못했는데 여왕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육군 대신이 도우미 양에게 경례를 붙이고 힘차게 외쳤습니다.
“도우미 각하! 우리 군대는 각하의 명령을 따를 것입니다.”
쥐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도우미 양이 여왕이 되었습니다. 도우미 여왕은 임금의 권세를 자랑하지 않고 가난한 백성을 돌보는 훌륭한 임금으로 칭찬을 받으며 쥐 나라를 오래오래 평화스럽게 다스렸습니다.
(끝)
약력:
1932년 황해도 해주 출생/목사/ 교욱학 서기. 신학박사/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철이와 호랑이‘ 당선(’63)
수상: 소천아동문학상을 받았다.(‘69)/기독교 출판협회 최우수상(‘95)/기독교 총연합회 의 저작상(’97)
저서: 창작동화집 9권, 소년소녀 소설집 6권, 아동문학 13권, 수필 전집 23권, 교육학 6권, 인생독본 10권 총 70권의 저서
참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늘이 두번째 들어와서 읽었습니다.
동화책을 읽다 보면 언제나 맑고 깨끗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 시킵니다.
전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책 많이 읽는 편입니다.
책만 있으면 금새 읽어 내려가니까요. 미국 와서 오래간만에 맑고 때 묻지 않은 동화 잘 읽고 나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동화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