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혼이 서린 곳, 성흥산

조회 수 10955 추천 수 1 2015.04.06 09: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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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성흥산·성흥산성

 

  성흥산에 오르면 부여·논산·강경·한산·홍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날이 좋으면 익산의 용화산과 장항제련소까지 바라볼 수 있다.

드넓은 전망을 갖고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 옛날의 성터가 있다.’ (유홍준 교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중에서).

성흥산(해발 268m)은 그 옛날 백제의 수도 부여로 드는 바닷길, 백마강(금강) 언저리에 솟은 산이다. 높이는 낮지만 산정에 오르면 굽이굽이 흐르는 백마강이 실뱀처럼 보인다.

이 산자락에 돌로 쌓은 백제의 산성이 남아 있고, 연인들이 사랑을 기약하는 ‘사랑나무’가 오랜 세월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패망한 왕국의 역사는 씁쓸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달콤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가 끊이지를 않는다.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산에 오른다.

충남 부여군 임천면에 자리한 성흥산은 백마강이 부소산을 끼고 돌아 남쪽으로 ‘S’자로 휘감아도는 중심에 솟아 있다. 동네 뒷산처럼 야트막하지만 서해에서 백마강을 거슬러 사비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바닷길을 감시하는 데는 그만이다. 부여 땅 드넒은 평야가 한눈에 잡히고 그 너머로 논산 반야산과 익산 미륵산까지 눈 안에 들 정도로 조망이 뛰어나다.

지리적 조건이 이렇다 보니 성왕이 사비로 천도하기 30년 전 동성왕은 백마강 수로를 살필 수 있는 이 산에 산성을 쌓았다. <삼국사기>에 ‘동성왕 23년(501) 8월에 가림성(加林城)을 쌓고, 위사좌평 백가에게 성을 지키도록 명령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산성이 바로 성흥산성이다. 당시 이 지역의 이름은 가림군이었다. 가림성은 백제가 한성을 잃고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부터 줄곧 주요 배후 방어 진지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패망 이후 백제 부흥 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고, 통일신라 이후 고려시대까지 군사·지리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가림성 수성의 임무를 받은 위사좌평 백가는 그러나 산성을 지키라는 동성왕의 명에 불만을 품고 기회를 노리다 사냥에 나선 왕을 살해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뒤이어 즉위한 무령왕에게 잡혀 처형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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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조사 석불
                                                                                  

 


 산성 입구는 남문지다. 남문지에는 성루나 성문이 남아 있지 않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산꾼을 반긴다. 느티나무 양쪽으로 길게 이어진 산성은 둘레가 1.5㎞, 성벽 높이는 3~4m에 이르는 테뫼식이다. 테뫼식은 산봉을 중심으로 성벽을 쌓은 모양이 ‘산에 테를 두른 것 같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 산성은 30분이면 둘레를 한 바퀴 돌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지만 얼핏 봐도 야무지다. 성벽 아래 산비탈은 가팔라 쉽게 오를 수 없다. 당시 이곳을 공격하던 당나라 장수 유인궤가 ‘성이 험하고 견고해 공격하기가 어렵다’고 했을 만큼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우물 3곳과 군창지로 추정되는 건물터 등이 남아 있는 산성은 옛 모습을 완벽하게 갖추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홍수로 인해 기존 산성이 무너지면서 보수공사를 한 탓이다. 산정에는 온갖 풍상을 겪으며 숱한 역사를 지켜봐왔을 거대한 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다. 400살을 훌쩍 넘긴 이 나무는 일명 ‘사랑나무’로 불린다.

사랑나무는 드라마 <계백> <여인의 향기> <신의> 등의 배경이 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사랑나무라는 이름은 드라마 <서동요> 방영 후 서동과 선화공주가 이곳에서 사랑을 나눴다고 해서 붙은 이름. 이들과 똑같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연인과 부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랑나무에서는 매년 1월1일 해맞이 행사가 열리고, 4월에는 백제 무명 장졸들의 충혼을 기리는 임천충혼제를 지낸다.

산정에는 사당도 있다. 작지만 반듯하게 세워진 사당은 고려 개국 공신으로서 태조 왕건을 도왔고, 지역민을 위해 선정을 베푼 것으로 알려진 유금필 장군을 모신 곳이다. 그는 왕건이 태봉왕 궁예의 장수였을 때 박술희·신숭겸과 함께 의형제를 맺은 인물이다. 사당에는 유 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역사 깊은 곳, 풍광 좋은 이곳엔 걷기 코스도 다양하다. 성곽길(1.55㎞), 솔바람길(4.63㎞), 대조사1·2길(1.1·0.5㎞), 구교리길(0.4㎞), 가림성길(1.8㎞), 호리동길(0.8㎞), 지토리길(2.3㎞)이 성흥산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찢어지고 만난다.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산바람 맞으며 슬렁슬렁 걷기에 좋은 길이다.

이 산자락 남쪽 기슭에는 대조사(大鳥寺)가 터를 잡고 있다. 산성을 방문했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천년고찰이다. 527년(백제 성왕 5) 창건된 대조사는 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다.

이름처럼 ‘황금빛 큰 새’의 전설을 품고 있다. 제26대 성왕은 불교를 진흥시켜 강국을 꿈꿨다. 웅진을 벗어나 사비로 천도한 것은 부여의 원대한 꿈을 펼치기 위해서다. 백제 최초로 범어를 공부하기 위해 인도로 떠난 고승 겸익은 귀국 후 어느 날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황금빛 큰 새로 변해 성흥산 쪽으로 사라지는 꿈을 여러 번 꿔 그 새가 사라진 곳을 찾아 나선다.

꿈에서 본 황금새가 실제로 높은 바위에 앉아 있었고, 빛이 바위에 비치더니 관음보살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소문이 궁중에까지 전해지자 성왕은 사비로 천도할 시기가 왔음을 알고 이곳에 큰 절을 짓도록 한다. 이 절이 바로 대조사다. 현재 규모는 크지 않다. 일주문을 대신해 세운 두 개의 석등 사이로 난 계단을 올라 경내에 들면 원통보전과 삼층석탑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원통보전 지붕 위로 석조관음보살입상(보물 제217호)이 머리를 내밀고 우뚝 서 있다. 관음상이지만 문화재청에는 석조미륵보살입상으로 기록돼 있다. 미래 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그 보살이다. 10m 높이의 불상은 논산 관촉사 석조관음보살입상과 연산 개태사 삼존석불을 빼닮았다. 머리에 청동방울이 달린 네모난 관을 쓰고 있는 석불은 생김새가 독특하다. 사각형 얼굴에 코와 입이 작고 신체 비율도 4등신에 가깝다. 바위 틈에 뿌리박은 늙은 소나무가 석불의 머리 위로 가지를 늘어뜨린 모습이 신비롭다.

석불과 함께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용화보전에는 불상이 따로 없다. 법당 뒤쪽 벽에 유리창을 두어 무릎을 꿇고 앉으면 석조미륵보살입상의 얼굴이 창을 가득 메운다. 늙은 절집은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작고 아담하고 한적하다. 일상에 지쳐 힘겨울 때 번잡한 마음 가다듬기에 좋은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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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소산 고란사&낙화암

 

 

귀 띔

■찾아가는 길:서울-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간 고속도로-남공주JC-대전당진간고속도로-서공주JC-공주서천간 고속도로-부여IC-규암-임천

■주변 가볼 곳:부소산성&낙화암&고란사, 정림사지오층석탑, 궁남지, 백제왕릉원, 백마강 수상관광, 백제문화단지, 만수산 무량사, 국립부여박물관, 능산리 고분군, 서동요테마파크, 신동엽 생가&문학관, 주암리 은행나무 등

■맛집:백제향(연잎밥, 041-837-0110), 구드레돌쌈밥(돌쌈밥, 041-836-9259), 나루터식당(매운탕·장어구이, 041-835-3155), 궁남가든(연잎냉면, 041-835-5609) 등

■탑기행:부여에는 정림사지오층석탑을 비롯해 장하리 삼층석탑, 화성리 오층석탑, 흥양리 오층석탑, 세탑리 오층석탑 등이 남아 있어 백제의 역사를 음미하며 탑기행에 나서 볼 만하다.

■숙박:롯데부여리조트(041-939-1000), 백제관광호텔(041-835-0870), 삼정부여유스호스텔(041-835-3101), 만수산 자연 휴양림(041-830-2348), 부여기와마을(041-834-8253), 부여전통한옥펜션(041-834-3669) 등

■문의:부여군청 문화관광과 (041)830-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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