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지지난 금요일아침
다른날이면 뉴스를 들으며 여유롭게 아침시간을 즐길 이른시간이지만
그날은 바쁘게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오전 수업조차 원장한테 맡기고 9시40분까지 광주 법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아침을 한술 떠먹고 정장으로 옷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전날 저녁 모든 수업을 마치고 간만에 전 직원이 회식을 하는중에 원장에게 걸려온 전화
잘 아는 강사가 꼭 좀 부탁한다며 자기는 실력이 딸린다고 통역을 부탁해 온 것이다
원장은 학원의 이미지상 소문이 걱정되어 안하고 싶어하며 나에게 부탁했다
나 또한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워낙 다급해하고
예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서 가 주기로 결정했다
남의 나라에서 부득이 통역이 필요할때 마땅한 사람이 없어 곤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를것이다
시내버스로 삼십여분 광주법원앞에서 하차했다
지방법원은 어느 건물인지 법원의 정문을 들어서니 거대한 빌딩이 세개나 마주하고선다
원장에게 넘겨받은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중년정도된 외국인 남성의 목소리가 전화로 들려온다
오른쪽 건물이라며 그쪽으로 오라고, 자기가 마중 나오마고
건물앞에서 앤토니라는 그분를 만나 함께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서로 간단히 통성명하며 로비에서 한국인 부인을 기다리기로 했다
재판(?)은 열시 정각이라했다
기다리는 동안 어색하기도하고 궁금하기도하고 두어가지를 물어보았다
호주에서 온 한국생활 삼년차 외국인강사
현재는 전주살며 결혼생활은 겨우 일년도 채 못 된 기간
이혼을 마치면 아마도 한국을 뜨게 될거라며 부인측이 그것을 원한다고,,,
잠시후에 부인된다는 젊은 여자와 친구라는 이가 함께 들어왔다
서로 인사하고 조금 더 기다리다가 열시가 되어 삼층 협의이혼 대기실로 올라갔다
대기실에는 중년 남녀들이 가득하고 더러는 삼국인인 듯, 여권을 손에 든 모습도 보였다
어수선한 분위기속에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데 조금후 직원이 들어와
이십분 정도의 시청각 프로그램을 본 후에 호명하고 사건들을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외화 몇개를 편집한 프로그램은 조금은 우스운, 그러나 이혼후의 여러가지 문제들
특히 자녀들이 겪는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티브이 화면이 꺼지고나서 그 직원이 다시 들어와 오늘 출석한 부부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호명된 사람들은 신분증을 제시해 본인임을 확인 받아야 하는데
한쪽이 안나온 팀(?)도 있고, 또 신분증을 안 가지고 와서 돌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다음주에 한번 더 기회가 있다니 조금은 생각할 시간이 생긴셈이다
아예 두사람 다 안나온 부부들은 아마도 마음이 바뀌어서일까
두사람씩 두사람씩 호명되어 옆방으로 들어가고
우리들 외에도 통역과 함께 온 다른팀이 세사람 함께 불려 들어갔다
드디어 우리차례, 이름이 불려져 옆방으로 들어갔다
본인들임을 묻는 확인절차와 내가 통역자임을 확인받고
서로 합의 하였는지 이혼후에 외국인의 출국문제등 몇가지를 묻고는 다 되었다고 가란다
서류를 동구청에 삼개월안에 접수시키면 되는거란다
취업비자로 들어온터라 굳이 출국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사는 말한다
너무나 빨리, 쉽게 끝나버린 이혼
정말 두사람의 관계가 이렇듯 가벼이 끝나버리는걸까
이십분의 시청각자료와 이십여분의 호명 대기
그리고 불려 들어가서는 단 오분도 안되어 끝나 버리다니
하기사 접수를 안하면 모든것이 무효가 되겠지만,,,
굳이 내가 이자리를 동행한 이유는 미국에서의 나의 경험이 너무나 길고도 힘들어서
남의 나라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전혀 딴판이었다
부인은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커서인지 동구청 접수조차 안하겠다며 외국인 남자에게 미뤄버린다
잠시 그들의 이야기를 간추려보면 여자는 남자가 드러내놓고 바람을 피웠다고 못산다하고
남자는 그 일 훨씬전, 결혼 초창기부터 여자의 성격이 너무 유별나서 견디기 힘들어 이혼이야기가 나왔었다나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길도없고 알고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길도 모르는 외국인이 고생할것같아 동구청까지 동행해 마무리를 해 주었다
서류를 접수하고 잠시 기다렸다가 다 되었음을 확인받고 영수증 한장을 받아들고 동구청을 나섰다
곧바로 전주로 돌아간다며 자가용이 법원앞에 있다고 차로 데려다 준다는 그남자의 말을 사양하고
버스 정류소를 향하는데 수고했다며 지폐몇장을 쥐어준다
사양했지만 애초에 오기로 한 다른 강사와 약속한 것이라며 굳이 손에 들려준다
오후수업을 위해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마음이 영 무겁고 답답하다
검은머리 파뿌리는 한국인의 정서에만 맞는 이야기인가
우리 한국인들도 그런 고리타분한 옛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걸까
일년도 못살고 헤어질 인연을 왜 만들었는지
서로 좋아서 살자해놓고 한해도 못 버티고 쉽사리 헤어져야만 하는지,,,
남의 일이지만 전혀 남의일 같지만은 않은게 요즘 이런일들을 너무많이 보아온 탓일까
맑고 아름다운 가을하늘이 그저 아름답지않고 어딘가 어둡고 답답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