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밥

조회 수 15275 추천 수 7 2014.09.21 09:35:24
작가 : 한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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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밥

 

한길수

 

어릴 때는 몰랐다

어머니는 반찬도 많은데

국그릇에 물 부어 물밥을

후루룩 마시듯 드셨는지

빈 그릇 내려놓고 천장 보며

한숨 쉬는 의미가 뭐였는지

 

고국을 떠나온 이민자에게

매일 열한 시간 일하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마는 날은

더워 땀 흘리며 흥정하다

흐트러트리고 간 옷가지와

손님 뒷모습 보며 불쑥

고개 내미는 스트레스에

말아 놓은 물밥을 떠올린다

 

저녁에 뭘 먹을지 고민될 때

남은 밥에 시원한 물 넣고

총각무 한 조각 깨물면

편한 어머니 얼굴 떠오르며

가슴에 사무친 그리움으로

감칠맛 나는 한 끼가 되었다

 

어릴 때는 몰랐다.

저녁을 물리신 아버지는

물밥이 소화되기 전에

드러누워 코를 고셨는지

잠속에서 홀 눈물 같은 것

강으로 쏟아내지 않았을까

 

기름진 음식이 즐비한 식단

허기를 느낄 새 없는 요즘

수저에 간장 찍어 먹어도

가슴 먹먹한 삶의 눈물 같은

그리움 휘저어놓은 물밥은

아름다운 추억의 양식이었음을

 

지구를 몇 바퀴 돌았을지 모를

꽃향기 바람 같은 시간은

머리에 꽃으로도 피어나는데

말도 안 되는 영어는 엉키고

이국에서 만 물밥에 목메는

두 딸 둔 아버지가 된 지금

물밥은 그냥 물밥이 아니고

슬픔을 이겨내는 희망이다


약력:

충북 청원 출생

현대인 평론/시와 시학 등단

전 미주문협 이사장 역임

현재:한국문협 회원 및 한국문협 미주지회 이사

저서:붉은 흉터가 있던 낙타의 생애처럼


웹관리자

2014.11.23 09: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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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의 꽃

 

                       한 길 수

 

백제의 정원에 핀 연꽃
어느 혼령이 살아
꽃으로 환생했을지
한마디 말없이
발길 붙잡는 꽃
그대는 누구시오
 
천 년이 지나도록
여인의 속살 같은 자태에
이리 향기 그윽할 수 있을까 
궁남지에 용신(龍神)도
혼백을 빼앗겨 무왕을 낳고
이제는
수천 조각의 연꽃잎들이
바람 앞에 몸 꼬며
수줍어 보이는 얼굴이다

천 년 전 나는 
어느 하늘 아래 살았을지
백제의 궁남지 연못과
그리 멀지 않다면 찾아가
아득한 꿈결의 그곳에서
여인의 단소를 들으며
반나절만 딱 반나절만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번지, 백제 사비시대의 궁원지(宮苑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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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기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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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기러기 이 병 호 겨울이 되어 머나먼 수천리 길을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날아와 이곳 까지 찾아 왔네 일 년 내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이곳에 삶을 찾아 기나긴 여정을 짝과 함께 올 때는 서로서로 돌아가기로 기약했는데 몇 해 전 부터는 고향의 그리움을 잊어버리곤 어느덧 이곳 생활환경에 익숙해 졌나 봐 시간의 바퀴는 돌아가는데 변함없는 생활 어느 누구도 탓할 수가 없나보다 풀밭에서 떼를 지어 짝을 이루고 풀을 뜯어 먹고 옆 호수에서는 한가롭게 헤엄을 치고 어느새 낳았는지 새끼들도 뒷뚱뒷뚱 걷는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네 걱정도 근심도 모른 체 하루하루가 여유만만한가 보네 부부애가 각별한가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면 감히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접근하려느냐는 표정으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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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작가 안선혜 

자목련 안 선혜 이른 봄 정원을 환히 밝히고 있는 당신 무슨 사연 있어 성급하게 봄을 가지고 나왔을까 커튼을 젖히고 창 밖을 바라보는 어느 소녀의 간절한 소망 기다림의 눈망울 살며시 엿보았을까 봄의 속삭임 소곤소곤 귓속말 들려주고 있구나 프랑스 영화에 나오는 귀족의 자줏빛 망토 자락처럼 정원의 귀족이 되어 피어난 당신 따뜻한 그대의 손 겨울도 스르르 물러서네 발가벗은 맨 가지 잎보다 먼저 꽃을 선물하는 넌 봄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신저인가 보다 양력: 마산 출생 월간순수문학 등단 18회 가산문학상. 3회 해외문학상. 5회 해외동포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및 미주지회 회원 및 국제펜문학회 회원. 재미 시인협회 회원 작품:제1집 슬픔이 사랑을 만나다. 제2집 그해 겨울처럼

물밥 [1]

작가 한길수 

물밥 한길수 어릴 때는 몰랐다 어머니는 반찬도 많은데 국그릇에 물 부어 물밥을 후루룩 마시듯 드셨는지 빈 그릇 내려놓고 천장 보며 한숨 쉬는 의미가 뭐였는지 고국을 떠나온 이민자에게 매일 열한 시간 일하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마는 날은 더워 땀 흘리며 흥정하다 흐트러트리고 간 옷가지와 손님 뒷모습 보며 불쑥 고개 내미는 스트레스에 말아 놓은 물밥을 떠올린다 저녁에 뭘 먹을지 고민될 때 남은 밥에 시원한 물 넣고 총각무 한 조각 깨물면 편한 어머니 얼굴 떠오르며 가슴에 사무친 그리움으로 감칠맛 나는 한 끼가 되었다 어릴 때는 몰랐다. 저녁을 물리신 아버지는 물밥이 소화되기 전에 드러누워 코를 고셨는지 잠속에서 홀 눈물 같은 것 강으로 쏟아내지 않았을까 기름진 음식이 즐비한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