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조회 수 391 추천 수 0 2018.06.27 05:45:49



단편 소설

귀향

은파 오 애 숙

 

 

영민은 아파트 내의 플레이 그라운드(놀이터)에서 물끄러미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플레이 그라운드에는 초록빛 잔디가 잘 다듬어져 있다. 사시사철 꽃향기가 휘파람을 불고 있다. 아이들이 하하 호호 웃는 모습에 꽃향기가 신 바람난 것이다. 한 달 전에는 노란색과 자줏빛 팬지꽃이 함박웃음 짓더니, 이름 모를 주황색 꽃이 화사하게 웃음 짓는다. 아마도 난 종류인 듯싶다. 꽃의 모양이 공작새 얼굴 옆모양 같다. 바람결에 자카르타 꽃잎이 흩날려 플레이 그라운드에 보랏물결로 수놓는다. 자카르타의 향이 코끝을 간지럼 태우는 한 여름이다.

영민은 꽃향기 속에서 깡충깡충 뛰어 노는 손자 녀석들이 뭘 하고 있나 두리번거린다. 한 그룹은 미끄럼틀 바로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핸드폰으로 구글을 클릭하여 게임에 빠져있고. 킹더가든(유치원생) 꼬마 녀석들은 핸드폰이 없어 형아 들의 게임을 옆에서 구경하고 있다. 손자, 보람이 보배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리다 시선이 한 곳에 멈춘다. 보람 이와 보배가 우산을 치켜들고 희희낙락이다.

 

 

문득 어릴 적 기억이 아스라이 밀물이 되어 하얀거탑을 만들어 내었다.

 

 

비가 오면 흙탕물이 이리저리 튀겨져도 우산을 치켜들고 까르륵 까르륵 뭐가 그리도 즐거웠는지. 우산 속에서 마냥 노는 것이 유익한 낙일 때도 있었다. 어릴 때는 특별한 장난감이 없어, 우산을 가지고 놀이했고. 우산이 놀이 기구가 되기도 했다. 어릴 때의 우산 속은 행복한 소꿉놀이의 보금자리라 즐거웠다. 엄마만 안계시면 우산은 장난감으로 둔갑되어 신바람이 났었다.

 

영민은 손자 녀석들의 모습을 보며 우산은 저마다 추억이 깃든 어린 시절 공통된 분모라 싶었다. 내 아이들도 우산만 보면 우산을 펴들고 우산 속을 마냥 즐겼던 것들이 오버랩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산속이 어린이 놀이터나 되는 듯. 어린 꼬마들에게는 여전히 인기가 있는 듯 하다고 생각하다 문득 그 옛날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하지만 과거의 추억이 어렴풋이 밀물되어 오다가 아스라이 사라지나, 다시 밀물되어 밀려온다.

 

 

초등학교(초등학교) 입학 후 처음 있었던 일이다. 영민이 집에서 학교까지는 40분도 넘는 거리었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엄마 손에 이끌리어 학교를 다녔다. 그 후 부터는 옆집 오빠가 영민 이의 등교를 도왔다. 오빠의 이름은 신철민이었다. 이름이 또렷이 기억났다. 영민의 끝자와 철민이의 끝자가 같았기 때문이다. 철민이 오빠는 육학년이지만 키가 커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처럼 키가 훤칠했다. 영민 이가 철민이 오빠 옆에 있으면 전봇대에 붙은 매미 같았다. 그런 철민이 오빠는 늘 영민이의 보디가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어느 여름날이다. 학교까지 가려면 한 고개를 더 넘어야 했다. 반 정도 까지 왔을 때, 하늘에서 우르릉 쾅쾅 천둥 치며 번개가 번쩍이었다. 바람이 일며 먹구름이 몰려 왔다. 영민 이는 겁이 많은 계집아이였다. 번갯불에 무서워 어쩔 줄 모르는 영민 이에게 철민은 안심을 시켰다. 이번에는 휘~,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이 불어 왔다. 회오리바람은 비닐우산을 낙하산으로 만들었다.

, 어떻게 해. 오빠, 옷이 다 젖었어.”

나란히 우산을 쓰고 학교 가는 데 영민 이 우산이 뒤집혀 졌다.

오빠 것은 왜 안 뒤집혀!”

그건 말야, 바람이 불 때 우산을 접는 거야.”

그럼, 비를 맞게 되는 데.”

우산을 접었지만 세모 모양으로 만들어 쓰니까 머리와 몸은 괜찮아.”

나도 요령을 알았으면 망가뜨리지 않았을 텐데.”

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야. 너는 아직 어려. 영민아, 춥지. 우산을 망가뜨렸지만 비가 조금씩 내리니 괜찮을 거야. 오빠 옆에 바짝 붙어 걸어. 오빠가 바람막이가 되어 줄 테니.”

영민은 철민오빠의 허리춤을 꼭 붙잡고 우산을 켜든 오빠에게 전봇대에 매미 붙듯 걸었다. 사분지 일이 남았을 때다.

, 어떻게 해. 오빠 우산도 낙하산이 되었네.”

걱정 마, 거의 다 왔어. 코앞에 학교 보이지.”

다시 한 차례 회오리바람이 불 때 우산 조절을 잘못하여 철민이의 우산마저 망가졌다.

오빠, 이젠 어떻게 해. 오빠 우산마저 망가 졌으니. 비 맞고 가야 잔아.” “괜찮아. 오후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어. , 이 옷 머리 위에 걸쳐.”

철민 오빠는 오빠의 윗옷을 벗어 영민이 머리를 씌어 어깨까지 덮어 줬다. “어휴, 머리에 비 안 맞으니. 살 것 같네. 비가 줄어드나 했는데 다시 오네. 오빠, 춥지 잖아.”

아니야, 난 남자야. 하나도 안 추워. 여름인걸 뭐.”

, 남자는 사람 아닌가. 비 맞으면 여름이래도 춥잖아요.”

남자도 사람이지. 하지만 오빤 크고 너보다 나이가 여섯 살 더 많아. 그래서 참을 수 있는 거야.”

너희 아빠도 한국에 계실 때, 엄마를 도와 주셨 잔아.”

그러고 보니 아빠는 엄마를 늘, 도우셨다. 식사 시간이 되면 활짝 날개를 부채처럼 펼쳐진 은빛이 가득한 공작새 두 마리를 자개로 박아 수놓은 커다란 홍색의 호마이카 상을 폈다. 밥 먹을 때도 엄마가 반찬을 차려놓고, 수저를 반듯하게 놓으면. 아빠는 엄마가 밥과 국을 그릇에 퍼 놓은 것을 상에 갖다 놓아 주셨다. 무거운 짐도 절대로 엄마가 들지 못하게 했다.

아하, 그렇구나. 아빠가 엄마를 도와주듯. 오빠가 지금 날도와 주고 있네. 그럼 나는 누구를 돕지.”

그거야, 그때 상황에 따라 엄마를 도울 수도 있고. 친구를 도울 수 있는 거야. 하지만 너는 아직 어려. 일학년 딱지 코딱지야.”

오빠, 왜 일학년을 코딱지라고 놀려?”

노랫말 가사를 아니? 기억해 봐.”

일학년 딱지. 코딱지 맛이가 좋아 인절미. 하지만 난,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몰라.”

너 앞가슴에 달아준 것이 뭔 줄 아니?”

코를 줄줄 흘리면 코 닦으라고 달아준 손수건이죠.”

근데 말야. 일학년 딱지 코딱지들은 콧물이 뚝 그치고 코딱지가 생기지. 코에 딱지가 생기면 간질간질해지지. 그 코딱지도 수건에 닦아야 하는데 그 코딱지를 파서 일학년들은 먹는 다구. 그 맛이 집지라니 구수해, 마치 인절미 같거든. 그래서 일학년들을 일학년 딱지 코딱지라고 먹지 말라는 뜻으로 노래를 만든 거야.”

하지만 오빠 나는 안 그래. 더러운 걸 어떻게 먹어.”

, 너는 안 먹니. 그럼 넌 다 큰 거야. 이젠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하지만 오빠처럼 크려면 아직 멀었는걸.”

겉으로 키가 큰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더 중요한 거야.”

너 가끔 오빠처럼 키는 큰데, 입을 헤 벌리고. 학교도 안가고 학교 앞 떡볶이 파는 곳에서 어정거리는 녀석 알지. 그 녀석은 머리가 텅텅 비었어. 그래서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엄마 심부름도 못해. 아마 지금도 그 녀석은 코딱지 파먹을 걸

오빠, 말이 맞다. 얼마 전에 코딱지 파 먹는 거 봤어.”

그걸 보고 느낀 것 없니?”

바보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어.”

그렇지! 그렇다고 바보라고 놀리면 안 된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 날 때부터 지능이 조금 모자라게 태어난 거야. 바보가 아니라 장애자야. 장애자는 몸의 어떤 한 부분이 정상적이지 않거든. 장애자 중에는 우리 눈으로 보이는 장애자도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자도 있어. 사람들은 눈이 안 보이는 소경이나 소아마비는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하는데 생각이 모자라는 사람은 바보라고 놀리려고 해. 그런 행동은 정말 잘못된 거야. 너 예수님 믿잖아.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잖아. 오히려 그런 사람을 우리는 도와줘야 해. 오빠네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우리나라는 나라가 가난해서 장애가 있는 사람을 많이 도와주지 못하는데 미국은 장애자들을 많이 도와주는 복지 국가래.”

복지 국가? 오빠, 난 오빠 말이 조금 어려워. 그리고 난 아직 어려서 뭘, 할 수 있는지 아직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래. 지금은 생각 하지 마. 누군가 너의 도움이 필요로 할 때, 그때 도우면 되니까. 지금부터 걱정 하지 마.”

, 하늘을 봐. 비가 머졌다. 오빠.”

진짜네. 다행이다.”

영민은 하늘을 보다가 오빠를 쳐다보니. 오빠의 얼굴이 흥건히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비에 젖어 있었다. 괜스레 미안했다. 하지만 철민 오빠의 말을 생각하며 가슴 깊게 가슴 속에 담아 두었다. -오빤 추운 것도 잘 참았어. 아빠가 참고 엄마를 도와주듯. 그렇지!......

소가 입안에서 여물을 씹듯 곱씹어 보았다.

 

영민은 학교 수업이 끝나 집에 오는 길에 이학년인 일식오빠와 집을 향했다. 영민이는 일학년이지만 철민오빠는 육학년이기에 수업이 끝나려면 세 시간이 더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일식이 오빠는 한 시간만 기다리면 같이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민이네 동네는 아직 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이웃 동네로 걸어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아침나절, 장대비가 내린 탓에 개울에 물이 징검다리까지 찰랑찰랑 찼다. 징검다리 1미터 아래는 미역을 감을 수 있는 깊이다. 하지만 징검다리 부분은 영민이 무릎 정도의 물만 있을 뿐이다. 영민 이가 입학하고 학교 길로 쭉 다녔으나 징검다리 옆에는 물이 10센티도 차지 않았다. 그래서 여느 때엔 폴짝폴짝 개구리가 뛰어가 듯 영민 이도 뛰어 건너갔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빗물이 개울가로 철철 흘러내리니. 개울가로 미끄러 떨어질까 발바닥이 바들바들 떨렸다. 일식 이는 자랑이라도 하듯 폴짝폴짝 징검다리를 뛰어 갔다. 그리곤 쭈그리고 앉아서 영민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롱, 나는 빨리 건넜지. 근데 너는 뭐가 그렇게 무섭냐? 바들바들 떨고 있잖아. 한 발짝도 건너지 못하고.”

오빠, 나는 한 번도 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개울가를 건너 본적 없거든.

철민 오빠가 말했어.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놀리는 것은 가장 치졸한 졸부래. 일식이 오빤 졸부야. 졸부 졸부가 뭔 줄 알아. 졸장부! 남자라면 대장이 돼야지. 대장!” 영민 이는 일식이가 놀리는 것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갔다. 소리를 크게 지를 수 있는 대로 대꾸했다. 일식은 주츰거리다 다시 말을 잇는다.

정말 넌, 한 번도 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개울을 건너보지 못한 거니. 아침엔 어떻게 건넜니?”

아침에는 물이 얼마 없었어. 그리고 철민이 오빠가 옆에 있었어.”

나는 용산에서 살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잔어. 용산에는 개울이 없거든. 지금처럼 이렇게 물이 찰랑찰랑거리는 징검다리는 처음이야. 우리가 공부하는 시간 내내 장대비가 오더니 물이 불어났나 봐.”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정말 미안. 정말 몰랐어. 우리 동네 여자 아이들은 나보다 더 폴짝폴짝 건너 뛴다구. 그래서 너도 그런 줄 알았어.”

알았으면 됐어. 놀리지나 말라구.”

잠깐! 그냥 그 자리에 서있어.” 철민이는 황급히 일어났다. 그리곤 징검다리로 달려갔다.

가방 이리 줘. 내가 도와줄게. 그리고 그냥 가만히 있어.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일식은 가방을 받아 개울을 건너자마자 커다란 바윗돌 위에 올려놓고, 영민 이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 섰다. 그리곤 손을 내밀었다.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 위에 첫 발을 디답고 서서 한 발짝도 못 넘는 영민 이었다. 징검다리 위에 영민 이의 신발 위로 물결이 넘실넘실 넘나들었다. 물결이 조개문양이 되었다. 고기비닐처럼 되어다 다시 조개문양이 되었다. 영민 이는 꼼짝 하지 않고 서 있었으나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넘나드는 거센 물결에 영민 이의 치맛자락이 밧줄이 되어 영민 이의 다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 놨다. 다리를 들어 올려야 되는데 한 쪽 발을 들을 수가 없었다.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바들바들 떨어야 했고. 세찬 바람에 긴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하얗고 곱상한 얼굴을 마구 할퀴었다.

손 이리 줘. 오른 손이든. 왼 손이든.”

영민 이는 그때서야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일식이의 손에 의해 한 발을 옮겨야 하지만 밧줄처럼 후레어 치마가 양다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줄 미처 깨닫지 못했다. 후들후들 떨리는 긴장 탓에 영민 이의 손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일식의 손은 따뜻한 엄마 손 같았다. 그러나 물결이 더욱 세차게 영민 이의 신발을 내리치자. 혼미 백산되어 발을 옮길 수가 없어 주저 앉아버렸다.

영민아, 안되겠어. 내 등에 업어. 차라리 내가 너를 업는 것이 낫겠다.”

철민이 오빠라면 몰라도 일식이 오빠는 키도 작고 등치도 너무 작잖아.”

내가 철민이 형보다 키도 등치도 작지만 너는 업을 수 있어. 너 여기서 밤이 세도록 있을 거니.”

밤을 새우긴 철민이 오빠 기다리면 되지.”

철민이 형을 멀리 돌아서 갔나봐. 벌써 수업 끝난 시간이 훨씬 넘은 것 같아. 우리가 학교에서 놀다 왔잖아.”

아니야, 시간 그렇게 많이 지나가지 않았어.”

그럼 네 마음대로 해. 너는 고집쟁이구나. 그것도 옹고집쟁이이야.

영민 이는 엉거주춤 학교 방향 쪽으로 징검다리로 되돌아섰고. 철민이는 집을 향해 징검다리를 폴짝 폴짝 뛰어 징검다리를 빠져 나왔다. 그리곤 바윗돌에 걸쳐놓은 책보를 어깨에 싸 멨다. 그리곤 언덕으로 향했다. 한참을 향하다 언덕 너머로 뒤돌아보니. 조그맣게 영민 이의 모습이 보였다. 영민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개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뭇가지로 냇가의 물살을 휘젓고 있었다. ‘안되겠는 걸. 저러다가 개울 속으로 꼬꾸라지겠는 걸!’ 일 식이는 가던 길을 휙 돌아서 영민이 에게 다시 달려 내려갔다.

영민아, 만약 아침처럼 또 다시 비가 내리면 어떻게 하냐. 그러니 내 등에 업혀! 나도 남자라고. 내가 너보다는 커 잔아. 그러니 업혀!”

물에 안 빠지고 건널 자신 있는 거지.”

그럼 이래봬도 난 쌀 심부름도 내가 해. 그러니 염려 마.”

오빠가 쌀 심부름도 한다구

그래. 그러니 염려마.”

일식은 있는 힘을 다해 영민 이를 업었다. 그리고는 한발 한발 내딛었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영민 이는 징검다리를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일식이의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모습에서 조금 전에 영민 이에게 메롱 놀리던 개구쟁이 일식이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며 일식이가 애쓰고 있는 모습이 가여워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졸부가 바뀌어 대장부가 된 것이라고.

 

 

일식이가 영민 이를 업고 개울을 건넌 후 내려 주었을 때는 일식이의 다리가 후들 거려 일어 설 수 없이 흐느적거렸다. 겨우 일어서서 숨을 돌리려할 때 다. 짖굳은 회오리바람이 한 차례 다시 불더니, 영민 이의 치맛자락이 나풀거리더니 바람과 함께 철민이를 내 동댕이친 것이다. 영민이는 개울가 징검다리를 일식이 등에 업혀 다 건너 내렸지만 철민이는 영민이의 치맛자락에 휘말려 그대로 개울 속에 빠져 들어갔다. 허우적거리다 철민이는 가까스레 헤엄치며 기어 나와 녹다운이 되었다. 일식이의 옷이 다 젖어 버렸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징검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건넜다 했는데 영민이의 옷자락 때문에 회오리바람에 휩싸여 일식이가 개울에 빠진 것이었다. 개울이 그리 깊지 않은 곳에 빠졌지만 정신 곧추세워 나오는 모습을 보니. 너무 멋있어 보였다. 다행이도 일식 이는 가방이 없어 보자기로 책을 싸서 어깨에 멘 가방이었다. 책 보따리를 바윗돌 위에 올려놨던 것이 천만 다행이 다. 책을 물에 빠뜨리지 않게 되어서.

 

 

오빠, 정말 멋있다.” 박수가 저절로 나왔다. 영민 이의 박수에 일식이는 기력을 잃었지만 힘이 난 것이다.

이 세상 오빠들 중에서 철민이 오빠가 가장 멋진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일식이 오빠가 진짜, 진짜로 멋져. 넘버원이야. 넘버 원! 오빠 넘버원이 뭔 줄 알지! 아빠가 한국말로는 최고라는 뜻이래. 최고!” 영민 이는 오른손 엄지손을 치켜세웠다. 그리곤 영민 이는 아침에 철민이 오빠가 우산처럼 머리서부터 쒸워준 웃옷을 가방에서 꺼냈다.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옷을 공부 시간 내내 가방위에 걸쳐 놨기에 거의 마른 상태였다. 영민 이는 일식에게 넌지시 입으라고 주었다.

무슨 옷인데.”

철민이 오빠 옷이야.”

비닐우산이 낙하산이 되어 비 맞게 되어 철민이 오빠가 윗옷을 두 개 입고 왔다고. 머리에 덮어 줬던 거야. 정말 다행이다. 빨아 주려고 안 준거야.”

영민 이는 안도의 숨을 크게 쉬었다. 갑자기 감사의 노래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입으로 터져 내왔다.

감사해요. 우리 모두 서로서로 아름다움 마음으로 섬긴다면 세상끝 달려도 피곤치 않아요. 감사해요. 우리 모두. 감사하는 마음이 예수의 사랑으로 가득 찰 때 세상은 기쁨이 넘치고 사랑과 평강이 흘러넘쳐요. 감사해요. 우리 모두

 

 

감사해요. 하나님 사랑 안에서 슬픔이 와도 감사하면 기쁨으로 바꿔져 세상이 환해져요. 감사해요. 우리 모두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 마음에 가득 찰 때 세상은 기쁨이 넘쳐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이 넘쳐나요. 감사해요. 우리 모두

 

 

영민 이가 노래하니. 철민이도 따라 불렀다. 영민이와 일식 이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높이 들고 몇 번이고 불렀다. 그러다가 영민 이가 갑자기 일식이 오빠가 너무도 잘 불러 의문이 생긴 것이다.

오빠, 오빠도 이 노래 알았어.”

응 알았어.”

어떻게? 이 노래를. 이 노래는 우리 엄마가 만든 노래야.”

철민이 형이 가르쳐 주었어.”

아참, 철민이 형하고는 사촌간이라고 했지.”

오빤 좋겠다.”

?”

철민이 오빤 멋진 사람이잖아.”

, 언젠, 내가 제일 멋진 사람이라고 하더니.”“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얼굴도 그렇고 외모로 보이는 모습은 철민이 오빠가 쨩이야 쨩! 오빠, 쨩이 뭔 줄 알아.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쨩도, 넘버원이라는 뜻이래. 하지만 오늘 아침에 철민이 오빠가 사람은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랬어. 나는 이다음에 말아야. 꼭 철민이 오빠하고 ......”

 

 

, 말하다 마냐. 놀러가겠다구

아니야. 아무것도. 아무것도 그리고 지금은 말할 수 없어. 이건 비밀이야. 비밀. 나만이 간직하는 비밀!”

, 멍텅구리 바보! 말하다 말면 멍텅구리 바보야.”

 

 

영민 이가 일 식이와 바윗돌 위에 앉아 옷도 말릴 겸 토닥토닥 말싸움하며 쉬고 있을 때다

영민아, 일식아, 멀리서 철민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

어느새 철민은 쏜살같이 달려왔다. 철민이 개울을 건넌 후 일식이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입이 딱 벌어 졌다.

물에 빠진 생쥐가 없다더니. 바로 여기 있었네. 아니 어쩌다. 다치진 않았니.”

괜찮아요. 놀리지 말아요.”

일식의 모습이 왠지 진지해 보였고. 예전의 장난 끼가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철민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는 시간대 까지 집에 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한다.

 

 

지금까지 집에 안가고 있으면 집에서 모두 걱정해. 나는 오늘 등교하기 전에 늦게 집에 도착한다고 말씀 드렸단다. 친구 집에서 숙제하고 온다고 했지만 너희들은 아무런 말씀 안 드리고 지금 이렇게 있는 거겠지.”

영민이와 일식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일식이는 영민이와 그냥 그곳에 있는 것이 좋았고. 영민이는 철민이 오빠가 올 거라 생각되어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영민이는 내 등에 업히고. 철민이는 내 가방과 영민이 가방을 들어라.”

 

 

서녘 노을빛이 서쪽 산등성에 걸쳐 있었고. 석양의 감홍색이 차츰차츰 구름 틈을 비집고 붉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철민오빠의 등에 기대어 서쪽 하늘에서 고운 노을빛을 바라보니. 영민이는 가슴에서부터 얼굴까지 곱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늘 보던 서녘하늘인데. 영민이 눈에서 오늘따라 유난히도 붉은 감홍색의 빛이 활활 타오르며 반짝이었다. 마치 동화속의 주인공 백설 공주가 백마 탄 왕자의 등에 타듯 영민이는 백설 공주고 철민이는 백마 탄 왕자의 등짝 같았다. 영민이는 철민이의 따스한 등짝에 녹아들어 스르르 눈이 감기었다.

 

 

그날, 영민이는 철민이의 등에 업힌 채 잠이 든 채로 집에 까지 왔고. 일식이는 낑낑대면서 가방 두 개를 들고 집에 왔다.

 

영민 엄마는 그 다음날 철민 오빠와 일식이 오빠가 도와 준 것에 감사의 표시로 선물을 사왔다. 일식이 오빠의 선물은 가방과 우산이었고. 철민이 오빠 선물은 노트와 우산이었다. 하나는 노란색 두개는 파란색이었다. 파란 우산은 일식이 오빠와 철민이 오빠에게 선물로 주었다. 영민이도 늘 비닐우산만 썼는데 엄마가 사 주신 우산이 너무 좋았다. 그 후 철민 오빠는 중학교를 위해 장승백이로 이사 갔다. 하지만 다행히도 일식이는 그녀의 곁에서 머물렀다. 영민이의 둘도 없는 오빠이자 친구가 된 것이다. 그 후 철민 오빠는 크리스마스 때 빨간 목도리와 장갑을 선물로 사온 후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일식이 오빠만큼은 많은 친구들이 있어도 늘 영민이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다.

 

영민이와 일식이는 비가 조금만 떨어져도 우산을 치켜들고 우산 속에서 놀았다. 흙탕물이 이리저리 튀겨져도 마냥 즐거웠다. 그 무렵 인해와 인형 이와 순철이 오빠가 옆집으로 이사 왔다. 인해는 영민이와 동갑이지만 인형 이는 한 살이 더 어렸다. 순철이 오빠는 일식이 오빠와 동갑이었다. 하지만 영민이와 일식이가 사이좋게 노는 것에 대해 샘을 냈다. 소꿉놀이 할 때다. 가위바위로 정하여 일식이 오빠는 아빠가 되었고. 영민이는 엄마가 되었다. 인해는 이웃집 가계 주인이 되었고. 순철이 오빠는 아들이 되었다. 인형이는 딸이 되었다. 하지만 순철이 오빠가 일식이 오빠와 영민이가 부부가 되자. 삼십분이 채 안되어 소꿉놀이를 깨버린 것이다. 그리곤 동생들을 모두 집에 데리고 갔다. 할 수 없이 우린 일식이 오빠와 둘이서 소꿉놀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여보, 오늘은 소풍가는 날이니. 김밥을 싸서 도시락을 만듭시다.”

천민이의 말에 영민 이는 재치 있게 대답했다.

아른 새벽에 일어나 벌써 다 준비 했어요. 빵과 사과, 계란, 사이다까지 가방에 들어 있어요.”

역시 당신은 멋진 아내야.”

오늘 하늘이 참 맑아요.”

구름도 몽실몽실 피어오르니, 기분이 짱이네.”

그렇군! 자 떠나요.”

얼굴이 타니, 우산을 씁시다.”

우린 부부니, 한 우산을 써요.”

그럽시다. 하하

호호

, 여기가 좋겠군.”

아니, 저기 개울을 지나 우거진 숲으로 더 들어 갑시다.”

그럽시다.”

당신은 어기 있구려. 내가 짐 보따리를 먼저 나를 테니.”

역시, 당신은 짱이구려.”

 

그때다.

영민아, 빨리 들어오렴, 미국 비자가 나왔단다. 일주일 후 미국으로 이민가야 된다. 아빠, 보고 싶지.”

아빠 말에 영민 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들어 달려들어 왔다. 그리곤 그 다음 날부터 친척이란 친척집 방문으로 일주일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엄마가 분주하니 영민도 덩달아 덩실덩실 춤추며 분주한 일주일이 훌쩍 지내 보낸 것이다. 짐들은 이미 한 달 전부터 처분한터였다. 살림살이들은 하나씩 이웃에게 나누워 주고 남에게 주기 어중간한 것들은 엿이나 강냉이로 바뀌어 먹었다. 필요한 옷 몇 가지만 사온 후에 배로 부쳤다. 계절도 한 여름이라 모든 일들이 순조로웠다.

 

 

철민이 오빠가 이사 가기 전 아빠가 가발 회사 사장으로 도미하셨고. 영민 이는 엄마와 함께 이 년을 더 머무르다 삼학년이 될 무렵 엄마와 함께 도미한 것이다. 영민 이는 세월이 흘렀어도 어린 시절의 일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도미할 때 철민이 오빠를 만나보지 못한 것이었고. 일식이 오빠에게도 제대로 미국에 가서 편지 하겠노라고도 생각지 못했고 언제인가 이다음에 만나자고 약속도 못했다. 일식이 오빠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시골에 갔기 때문이었다. 정신없이 미국에 와서야 얼마나 마음 아파했던가!

 

 

영민이는 지금 플레이 그라운드에서 손자, 보람이와 보배가 우산 속에서 노는 것을 보며. 서울행 비행기를 예약한다. 벌써 서울을 떠나온 지 몇 년인가! 손을 펴 헤아려다 손을 내려놓는다. 타향살이 40년도 넘게 고향을 찾지 못한 것이다. 구글로 관악산을 찍어 본다. 관악산 기슰기가 멋들어지게 눈부신 태양광 속에 희뿌연 안개를 막 거둬 내려는 새벽 동녘의 아침햇살이 억 만 개의 햇살로 아침을 여는 사진이다. 또 하나의 사진은 해질녘 어릴 적 그때 그 노을이다. 희미했던 기억이 눈에 선명하게 사진을 찍은 듯 머릿속의 저장 창고에서 인터넷에 실린 노을을 보자 또렷해 졌다. 갑자기 개울가가 보고 싶어졌다. 아직 그 개울가가 있을까. 영민은 고개를 끼우뚱거리며 까마득하게 잊혀진 세월에 기억의 실마리를 하나씩 더듬는다. 그녀 가슴 속에서는 아지랑이 물오르듯 오롯이 순이 돋고 있었다. 서쪽 산등성 위에 붉게 타들어가며 내일을 기약하던 석양, 철민오빠 등에 파묻혀 마음까지 취해 버려 잠이 들어 집에 왔던 어린 시절, 도미하여 그리움에 목말라 슬픔에 잠기던 유년기…….

 

 

생각하면 할수록 영민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고향의 푸른 하늘이 보고 싶고. 자꾸자꾸 일식이 오빠 등에 업혀 내리려다 일식이 오빠가 휘엉돌이에 휩쓸렸던 개울가가 눈에 선해지고. 그 개울가에 첨벙 뛰어 들어 송살이 잡고 바윗돌 들어 올려 가재도 잡고 싶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철민오빠 얼굴, 일식오빠 얼굴이 포물선을 그리며 동그랗게 하늘 위로 떠올라 둥둥 떠다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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