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유재철

조회 수 1505 추천 수 1 2016.10.07 06:44:40


감상문-------------------------------- 오애숙

 

 

 Image result for 보릿고개의 추억

 

 

 

무상(無常)/유재철

 

 

 

거칠고 더 거칠어져

광야만큼 거칠어진 손으로

허기진 뱃가죽을 움켜잡고

해지는 산비탈 밭머리에 서신 어머니

 

우는 아이 젖 물리고 현기증을 삭이며

지는 해를 바라보던 어머니는

끝내 이슬처럼 사라졌지만

그 때 터지고 찢기고 할 퀸 상처자국은

영영 지워지지 않으리라

 

끈덕지게 추락하지 않은 돌 하나 움켜잡고

마음 한 자락 고요한 밤바다에 깔아 놓고

떨어지는 별들을 몰래 몰래 주어 담은 까닭은

 

정녕 미련만 남겨 놓고 가는 길에

아무 것도 버리고 갈 수 없기 때문일까

   

1.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이런 훌륭한 시를 감상하게 하실 기회를 주신 시인님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부족한 제가 제대로 시작 노트에 부응하는 시 감상을 잘할 수 있을는지……. 하지만 기회가 주어졌기에 자판을 쳐 내려갑니다. 또한, 세상으로 나온 시는 독자들의 몫이니까요. 독자의 관점에서 제 소견을 말씀드립니다.

 

2. 시에 입문하며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시입니다. 저도 언제인가 무상이란 제목으로 시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나이를 먹었고, 때로는 세월 속에 지쳐 있을 때도 있었다는 뜻이 내포되었음을 말하겠지요. 시인은 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제 소견으로 살펴본다면 먼저 제목이 남긴 뜻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무상(無常)이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生滅)하며 시간적 지속성이 없음을 말합니다다시 말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生滅)하며 시간적 지속성이 없음을 말하지요. 모든 것이 덧없다는 뜻이 있어 시인은 자기 관조를 통해 자아 성찰하는 가운데 지혜로서 사물의 실상을 찾아낸다는 뜻을 가지고 쓴 시라고 잠시 생각해 봅니다.

 

3. 본론

 

시를 통해 과연 시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과거사, 울 어머니를 대변하는 듯한 시이나 결국 시 무상(無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덧없는 인생을 자신의 관조로 삶의 애환을 찾은 시라 봅니다.

 

한 아이가 어미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태어날 때는 뭔가 해보겠노라고 주먹 쥐고 나오나! 결국, 인생 서녘 자신을 돌아보며 매의 눈으로 집어낸 것은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것이 인생사의 허무임을 말하고 싶은 무상(無常)’이라면 시의 제목대로 결론 역시 허무를 말하고자 했어야 싶습니다.

 

이 시를 한 연씩 조목조목 따져 보면 결국 어머니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함축시켜 광야를 대비시켜 그림 그리듯 시인의 내면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 쓰는 작업을 위해서는 저는 시를 쓰는 것이 시를 쓰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시가 하나의 모티브가 되어 그것을 토대로 수필이나 단편 소설을 위한 작업을 위한 것이기에 때로는 대충 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는 기···결을 따져 가며 시작노트를 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시인의 무상(無常)’이란 시를 살펴보면,

 

첫째, 기의 부분( 1) ‘~ 광야만큼 거칠어진 손으로 허기진 뱃가죽 움켜잡고 해지는 산비탈 밭머리에 서신 어머니에서 허기진 뱃가죽 움켜잡고란 문구를 분석해 보면, 우리나라 과거사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실제 현실에서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시고 시 속에 그림 그리듯 승화시켜 쓰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드라마에 간혹 사극에서 서민의 애환을 그려 놓는 부분을 봐도 그렇고 60~70년대의 한국의 보릿고개를 내용으로 한 드라마를 봐도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절 실제 먹을 것이 없어 어머닌 제대로 먹지도 못 해도 자녀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는 울 어머니, 곧 내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즉 선조들의 애환을 그리 표현했다 싶습니다. 보편적인 우리네 어머니들의 인생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고 자식을 위한 희생양으로서의 삶이었다싶습니다. 또한 시인은 무상이란 시에서 어머니의 삶이 자신 임을 2연에서 대변하고자 하여, 시인 자신만의 독특한 글로 그림 그리듯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싶은 시입니다.

 

둘째, 승의 부분(2)은 종일 일하다 굶주림에 지친 상태의 어머니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신체적인 상태가 최악이지만(산모는 먹지 못하면 젖이 나올 수 없음, 종일 일해 굶주리고 탈진한 모습이 1연의 3행과 2연의 1행이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배고파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젖을 물리는 극진한 모성애를 시인은 시를 통해서 우는 아이 젓 물리고 현기증을 삭이며/지는 해를 바라보던 어머니로 표현 했지 않았나 싶니다.

 

아이가 우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배가 고파서이고, 둘째는 몸이 아파서이고. 셋째는 기저귀 갈아달라는 신호이지요. 그 외는 심심하니, 나와 놀아 달라고 하는 신호 등등. 이지요

다시 말해서 어머니는 제대로 먹지 못했기에 아이에게 줄 젖은 영양도 없고, 풍족하지 못한 젖이지만 아이가 배고프니, 자신이 죽을지언정 내 아이는 살리겠다는 어머니의 강인한 모성애를 잘 표현하였다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이 어머니에게 부여한 성스러운 본능으로서 자식에 대한 의무이고 특권이며 사랑임을! 시인은 깊이 깨닫고 결국 시의 화자가 바로 자신의 삶이었음을 돌아보며 쓰신 시라 싶습니다.

 

시인은 시를 통해서 우는 아이 젖 물리고 현기증을 삭이며/지는 해를 바라보던 어머니는 끝내 이슬처럼 사라졌지만 ~영영 지워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바로 자신이 그 자리에서 부모가 되어서야 뒤를 돌아보며 어머니가 이슬처럼 허무하게 가신 것을 슬퍼 애통해 하는 심정으로 어머니를 통해 자신을 관조한 시라 싶습니다.

 

시인은 끝없는 광야 같은 이민사회에서 살았던 삶을 울어머니에 대비시켜 쓴 시라 볼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이 황사 이는 이민사에서 자녀를 위한 희생을 과거 우리네 어머니의 희생적인 삶에 대해 자신을 관조하여 시로 승화시킨 부분이라 싶습니다.

 

셋째, 전 부분에서 시인님은 결국 자식을 위한 헌신과 희생을 통한 것은 그저 자식 잘되길 바라는 것이고, 그것이 삶의 목표였으며, 믿음 ! 이었음을반전시키는 부분으로 끈덕지게 추락하지 않은 돌 하나 움켜잡고 마음 한 자락 고요한 밤바다에 깔아 놓고 떨어지는 별들을 몰래몰래 주워 담은 까닭임을 시로서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즉 자식에 대한 추락하지 않는 믿음, 반석같은 그 믿음을 돌이라는 사물로 사유하여 시로 옮겼습니다. 좋은 시는 사유체로 걸러 쓴 시가 좋은 시라 절묘하게 적용시켜 쓰신 적절한 표현이라 싶습니다.

 

넷째, 시인님은 결 부분에서 결코, ‘~수고가 헛수고가 아님은 아무것도 버리고 갈 수 없기 때문일까로 결론을 지으셨는데, 그것 역시 믿음과 연관 시켜 끝까지 자식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 시라 싶으며 자신 또한 어머니의 삶을 통해 시인 자신의 삶을 연관 지어 과거의 삶을 돌아본 시라 싶습니다. 옛 속담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소중한 자식에 대한 믿음이라 싶습니다.

 

제 소견에 시인은 어머니가 자식의 성공을 못 보시고 소천하셨기에(~끝내 이슬처럼 사라졌지만) 가슴 아픈 어머니에 대한 아픔을 그리움으로 대변하고자 무상이란 제목을 붙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제 시도 제목을 잘 못 붙이는 부족한 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단지 글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 시인님의 귀한 시를 감상하며 제 소견을 표현한다는 것이 참으로 난관이라 싶습니다. 시인님의 시작 노트와 너무 동떨어졌다면 시인님에게 양해하옵기 바랍니다. 하지만 세상으로 나온 시는 독자의 몫이기에 시인님의 귀한 시를 겸허한 마음으로 마지막 결 부분을 감상했습니다.

하지만 시인님의 결부분을 살펴보면 시의 제목과 조금 빚겨간 느낌을 받습니다. 저의 소견은 이 시의 제목을 무상보다 미련이나 마지막 남긴 유산혹은 영원한 유산은 어떨는지요. 물론 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마지막 부분을 더 퇴고해야 하겠습니다만 무상이란 제목 역시 마지막 결 부분에 다른 문장이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견은 어디까지나 부족한 저의 소견일 뿐입니다.

4. 결론

 

사실상 시인이 뼈를 깎는 고통을 통해 퇴고의 퇴고를 거듭하는 것은 좀 더 나은 문향의 향그러움을 독자에게 혹은 후손에게 남길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시인은 그 이유로 때로는 인내의 쓴잔을 마셔야 하고, 때론 조개가 시린 가슴으로 진주를 품어 내듯 그렇게 품고, 때때론 어느 봄날의 초상처럼 사랑의 향그로움으로 세상에 나르샤하려는 것은 아닐는지요. 시인님은 특별히 덕망 있으신 기독교 문인이시기에 무상(無常)이란 제목보다는 다른 제목으로 아니면 '어머니'가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독교인은 현실의 고난 속에서도 이생을 떠나면 이생의 업적을 토대로 찬란한 그분의 영광 자리에 가서 그분의 은혜로 값없이 받은 그 은혜로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간바울처럼 면류관을 향한 목적이 있기에 무상(無常)’이란 단어를 이 시에 붙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덧없는 세월이 아니라 비록 값진 삶을 살고 있지 못하더라도 그분의 분량에 이르기 위해 삶 속에서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서 가는 오뚝이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소견으로 조심스럽게 지면에 서술했습니다.

 

시인님의 시 무상(無常)’에 대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앞이 창창한 아이의 어미로서 시를 감상해 보았습니다. 저 또한 울 어머니의 전차를 밟고 있기에. 물론 모든 어머니가 그렇겠지만, 특별히 귀감이 가는 시에 감사하며 어머니로서 새 각오로 울 어머니처럼 생각 곧추어 사랑과 희생정신의 모성애로 의무와 책임을 다 해야겠다 결심하는 귀한 시였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은파 오애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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