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 즐거움

수필 조회 수 1614 추천 수 1 2015.02.24 1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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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쓰기 즐거움
                                                                                                                                                         제봉주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뚜드리고 있다. 서투른 손놀림이지만 그래도 즐겁다. 왜 즐거울까, 나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보다 더 사실 적인 이야기다. 그 속에는 삶의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내 마음대로 만들어 가고 있다. 울리고 웃기고 이렇게 내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인공과 친해지게 되고 또한 즐겁고 재미가 있어진다.
  소설은 허구이다. 말하자면 꾸며낸 이야기란 뜻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그것을 읽고 실제 있었던 일보다도 더 재미있어한다. 읽고 또 읽으며 감동하고 천 년을 이어 오고 있는 명작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해 본다.
  나는 소설을 한 편 쓰기 위해서는 우선 이야기 줄거리를 구상한다. 이것을 플롯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인공을 만들어 낸다. 그러면 소설 초고는 어느 정도 틀이 잡힌다. 제일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상상을 하는 것이 즐겁다. 새벽잠이 일찍 깨었을 때, 밤에 잠들기 전에 이불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공상해 본다. 그 가공된 주인공과 대화를 나눠 보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모양의 주인공으로 바꿔본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사람을 상상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말 재미있고 즐겁다. 아직 나는 많은 소설을 쓰지 못하였고 소설 같은 소설도 쓰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관심이 있는 것은 소설이 가진 매력 때문이다. 이미 때는 늦었고 또한 늙었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주인공을 상상 속에 만들어 보고 지워보고 그러기를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나는 여주인공이면 될 수 있는 한 예쁘게 만들기를 좋아한다. 같은 값에 다홍치마라고 예쁜 여자를 독자들은 좋아하니까, 남자는 건강하고 키가 크고 미남형을 좋아한다. 내가 키가 작으니까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해서 주인공이 만들어지면 그다음은 주인공에게 욕망이라는 동기를 부여하고 본격적인 주인공의 성격묘사에 들어간다.
  주인공은 힘들고 어려운 삶을 나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주인공은 갈등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울고 웃고 행복해하고, 희비애락을 겪으며 살아가야 한다.
   주인공의 삶은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시공을 초월할 수 있으니 내 마음대로 선택의 폭은 넓지만, 미래는 제한적이다. 나 자신이 미래를 장담할 수 없으니 주인공의 삶도 미래는 확실성이 없다. 소설은 항상 미래가 불투명하다. 단지 가능성의 단서를 제공 할뿐 결론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독자의 몫이니까. 어쨌거나 소설의 결말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미래는 독자 나름대로 상상의 공간을 허용해 줌으로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으니까.
  소설이 어느 정도 진전되면 내가 만들어 가는 소설 주인공이 오히려 나를 끌고 앞서 간다. 그러면 나는 그 주인공을 따라갈 뿐이다. 그래서 주인공과 나 사이에는 갈등이 생기게 된다. 주인공이 앞서 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어떤 식당으로 가야 하는 경우 나는 중간 수준 정도의 식당으로 가고 싶은데 주인공은 고급식당으로 가기를 원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고민한다. 이것이 주인공뿐만 아니라 소설 전체의 변환점이 되기 때문이다.
소  설을 쓰다 보면 처음 생각했던 초고와는 퇴고 시에는 그 결말이 엄청난 거리가 생긴다. 그것은 주인공과 작가인 나 사이에 이런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주인공의 결정이 우선으로 선택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상상해 보지도 않았던 결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이 계속되어 가면 모든 장면에서 외부적인 행동이나 내부적인 생각에 긴장이 계속 흘러가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들이 주인공과 함께 긴장하며 다음에는 어떤 일이, 그다음에는 무엇이, 기대하며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나 자신이 먼저 긴장하고 흥분을 느끼고 그 긴장을 주인공에게 주입해야 한다. 왜라는 질문과 무엇을 어떻게 라는 답변을 생각하며 고민 속에 빠지게 된다. 좌절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는 파일 위에 세이브를 클릭하고 컴퓨터를 꺼버린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묘한 것은 잊어버리고 얼마가 흘러가면 슬그머니 그 답변이 우연한 기회에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파일을 열고 좌판을 뚜드린다. 이런 묘미가 있기에 고민하고 좌절하고 그러던 어느 시점에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그런 즐거움을 맞보기 위해서는 너머야 할 산이 너무도 많다. 어떤 소설을 썼다고 하자, 그것은 나만을 위한 일기장이 아닌 이상 누구에게 읽혀야 한다. 읽어 본 독자가 형편없는 평을 했을 때 감수해야 하는 실망감은 엄청나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지 않을 수 없다. 혹독한 비평도 견뎌 내야 하는 강심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튼튼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더 큰 즐거움이 기다린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도 나는 소설가라고는 할 수 없는 습작시대의 풋내기다.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아도 실망치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차를 타고 가면서도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현재 만들어 가고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과 속삭이는 재미를 즐기고 있다. 보잘것없는 한편의 단편이지만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그 산고 속에 즐거움이 있다. 그 즐거움을 위해 내 인생 마지막 시간을 맡기고 있는 것은 그만한 보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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