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에 맡겨진 십자가

꽁트 조회 수 3744 추천 수 1 2014.12.16 16:22:09


                                                                                   전당포에 맡겨진 십자가


                                                                                                                                                  제봉주

 

  보석상을 나서는 전예인 여사의 기분은 홀가분했다. 목에 걸린 황금 십자가를 한 손으로 만져보면서 왜 마음이 편안한지는 말할 수 없었지만 억눌려있던 무엇으로부터 풀려나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발길은 가볍고 운전대를 잡으니 찬송가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십자가 목걸이가 그녀의 목에 걸려있어 차가 움직일 때마다 옆으로 흔들거리며 그네를 뛰었다. 그녀 가슴도 함께 뛰었다. 이제는 주님이 가장 가까이 있어 친구가 되었으니 이 모든 것 다 아시는 주님 무엇이든지 들어주시고 받아주시고 허락해 주실 것 같은 그런 믿음이 처음으로 가슴에 감동을 주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그녀는 어느 날 손가락에 끼어 있는 금반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는 이 결혼반지가 그렇게도 그녀를 흥분시켰던 시절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지난날이 그립기도 했다. 벌써 결혼한 지가 얼마 만인가, 얼른 생각해보면 까마득해서 짐작이 가지 않아 한참 동안 손가락으로 셈을 해보아야 하는 그런 세월이었다. 결혼 그때를 생각하면 그것은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신랑 집에서 보내온 혼수 속에 들어있던 금반지를 손가락에 끼어 볼 때, 가슴이 콩닥콩닥 뛰든 기억이 새로웠다.
  그녀는 지난날을 회상해 보며 결혼반지를 빼서 세면대 위에 내려놓고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얼굴을 씻고 거울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얼굴 화장을 하면서 오늘은 립스틱을 좀 진하게 칠하고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옷장 문을 열고 걸려있는 옷들을 살펴보면서 무엇을 입어볼까 하고 이것저것 몸에 맞추어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요즘 들어 모든 것이 까다로워져 가고 있다. 교회로 가는 차 안에서 손가락에 끼어 있는 금반지가 낯설어 보이면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 손을 밑으로 내렸다, 운전하는 남편의 옆얼굴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그의 얼굴이 이제는 무표정하여 싫증이 났다. 어쩌면 저럴까, 꼭 찍어서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마음에 차지 않고 마음속에는 불만이 늘어갔다.
예배가 끝나고 점심 식탁에 끼리끼리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또래들의 손가락을 유심히 보았다. 누구 한 사람도 금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진주 반지가 아니면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치솟는 분노가 일어났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무디고 멍청할까.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촌뜨기라고 생각했을까, 그녀는 자책하며 더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보석상을 찾아갔다. 주인에게 금반지를 보이면서 십자가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 십자가를 오늘 목에 걸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제는 주님의 십자가와 함께하니 겁나고 두려울 것이 없는 세상으로 바뀐 것 같은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남편의 얼굴도 보이지 않고 결혼반지 같은 것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오로지 목에 매여 있는 십자가 주님과의 처음 만남으로 받았던 그 감동만이 가슴에 벅차오르고 있었다.

  세월은 흘러가고 있었다. 하루는 손을 씻으면서 손가락을 만지니 아직도 손가락은 매끈하고 탄력이 있어 매력이 있어 보였다. 손가락이 예쁘네 하고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이렇게 예쁜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고 살아온 지난 세월이 생각났다. 참 어리석기도 했지 하면서 그런데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끼고 있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면서 부러워했던 생각이 났다.
  그녀는 ‘나라고 그런 반지를 끼지 말란 법이 있나?’ 마음속으로 그런 말을 하니 꼭 한번 끼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무슨 돈으로, 돈이야 마련하면 되지 하고는 보석상을 찾았다. 마음에 드는 반지를 손에 끼고, 집 에퀴티 라인<equity line>을 이용하여 수표로 계산했다. 남편 몰래 한 행동이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자기변명을 했다. 에퀴티 라인은 한도액이 설정되어 있으므로 절대로 집이 날라 가지는 않을 것이고 은행 이자만 갚아 나가면서 때가 되면 형편대로 조금씩 갚아 나가면 된다는 계산도 하고 있었다. 그런 근심도 며칠이 지나가니 무덤덤해졌다.
  어느 날 샤워를 하기 위해 금목걸이 십자가를 세면대 위에 끌러 놓고 샤워를 했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목에 주름이 지는 것을 보면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 예쁘던 목에 벌써 주름이 생기네, 주름이 깊어지기 전에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한번 걸어보았으면 했다. 거울 앞에 놓여있는 황금 십자가를 보았다. 그동안 오랫동안 무심하게 십자가를 걸고만 다녔지 처음처럼 감사하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찾은 지가 오래되었다. 웬일인지 오늘은 그 십자가를 보기도 싫어졌다. 십자가를 손으로 움켜잡고 서랍 속으로 던져 넣고 서랍을 닫아버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후로는 십자가를 찾을 일도 없고 찾고 싶지도 않았다.
  세월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의 목에는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손가락에는 다이아몬드 반지, 이에 걸맞은 명품 가방이 필요했다. 날이 갈수록 명품 종류가 많아졌다. 옷장과 신발장 그리고 온 집안에 쌓여갔다. 허영은 그녀를 점점 죄의 늪 속으로 침몰시켜 가고 있었다. 집안일이나 남편 관리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남편 속옷 챙겨준 때가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늘도 시간이 늦었는데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밤은 깊어 가고 있었다. 그동안 남편에게 너무 무관심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관심했지 하는 뉘우침 같은 마음이 들었다. 오늘 남편이 들어오면 은행 결산서를 보이고 자초지종 고백하고 용서를 빌기로 마음을 정하고 있는데 오늘따라 남편이 돌아오지 않고 애를 태우고 있었다.
  밤은 깊어 가는데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전화도 통하지 않아 불길한 마음이 가슴을 조여 왔다. 그녀는 낮에 배달된 은행 결산서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있었다. 이자에 이자가 누적되어 에퀴티 라인이 바닥이 나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가 쓴 것도 아닌 금액이 또한 엄청났다. 그녀 몰래 남편도 같은 방법으로 돈을 끌어 쓴 것이었다. 어디다 썼을까, 혹시 다른 여자, 마약 도박,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놀란 가슴을 쓰러 내리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경찰서에서 온 전화였다. 남편이 비밀 도박장에서 도박하다가 잠복 경찰에 잡혀서 지금 경찰서 유치장에 구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정신없이 경찰서로 달려갔다. 남편은 눈이 뻥 뚫린 것처럼 멍청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 손가락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고 있는 그의 눈길에는 불꽃이 튀고 있었다. 증오와 분노 그러한 그의 눈길을 감당할 수 없어 그녀는 말없이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주님의 십자가를 찾았다.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기로 하였다. 그런데 서랍 속에 있어 할 주님의 십자가는 보이지 않았다. 모든 서랍을 다 뒤졌다 어디에도 없었다. ‘십자가 주님 어디 계십니까. 왜 나를 버렸습니까. 내가 필요해서 찾으면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녀는 외치면서 남편이 벗어 놓은 바지를 뒤졌다. 바지 주머니 속에 꾸겨진 노란 종이 영수증이 한 장 나왔다. 전당포 영수증이었다.
  그녀는 영수증을 들고 뚫어지게 응시했다. 남편이 도박에 홀려서 있는 돈 다 긁어 쓰고 십자가를 전당포에 잡힌 돈을 움켜잡고 허둥지둥 노름방으로 행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전당포를 행해서 갔다. 그리고 십자가를 찾아 목에 걸었다. 눈에는 눈물이 쏟아졌다. 허영 그리고 죄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뇌리를 때렸다. 주님 이 죄인 용서하여 주시지요. 가슴에는 참회의 눈물이 흘러 나리고 있었다.

  남편이 기다리는 경찰서에 갔다. 그는 아내의 목에 걸린 유난히 빛나는 십자가를 보고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남편의 손을 잡고 “여보 주님은 아직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실 거야.” 남편을 위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보석금을 치르고 경찰서 문을 나섰다. 그녀의 목에 걸린 십자가를 유심히 바라보던 취조 경찰이 ‘어쨌거나 저들의 가정은 등불이 꺼지지 않을 거야’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금자

2016.01.24 02:25:00
*.17.30.152

전당포에 맞겨진 십자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허영이 부르는 가정 파탄이 눈에 선하게 들어옵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모든 물건을 보고 사는 새대입니다.

한국에도 인터넷 중독자가   많다는 뉴스 가끔   보고 듣고 있습니다.

이 각박한 세상에 그런 허영된 삶은 살아서는 안되겠지요.. 

다음 시간 날 때 선생님의  나머지 소설도 읽어야 도겠습니다.. 줄거리가 재미있습니다.

소설가로서 큰 문운이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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