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

조회 수 309 추천 수 2 2022.09.28 13:41:18

빈 손.jpg

 

 

                                                            빈손

     

                                                                                                                정순옥

 

 

  손이다. 여왕님의 손도 시인의 손도, 어느 날 나의 손도 빈손이 될 것이다. 요즈음 비슷한 시기에 부자 여왕님과 가난한 시인의 영면 소식을 들었다. 삶 자체가 역사였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96세 나이로 202298, 자신이 사랑하는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서거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오애숙 시인이 62세 젊은 나이로 같은 달 16, 캘리포니아 병원에서 소천했다는 소식이다. 두 사람의 별세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어느 날 누군가가 추억할 나의 빈손을 상상해 본다.  

 

  ‘살아 있는 현대사로 불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70년 동안 장기 집권한 영국의 정신적 지주였다. 195225세 나이로 여왕 즉위하여 명성과 부() 모든 것들을 소유한 채 버킹엄 궁에서 근무하며 영국의 정신적 지주로 살았다. 지금도 영국민과 세계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름다운 신데렐라를 연상시키는 세기의 결혼식으로 각인된 고 다이애나의 황세자와 아들 황태자 찰스와의 결혼식. 연이은 이혼 때문에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 때도 왕실의 위엄을 의연하게 지켰던 여왕. 애도의 조문행렬이 8킬로미터나 되었고 조문객도 75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국 군주이자 대영제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국장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각국 나라 수장들과 왕실 일가들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런던 빅벤(Big Ben)96번 엄숙한 종소리를 울렸다. 여왕의 상징인 휘황찬란한 보석이 빛나는 왕관과 지휘봉 같은 막대기를 부러뜨려 관에서 내려놓음으로 여왕의 직무가 끝났음을 알렸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여왕과 동시대 공유 영광이라는 말로 조문했다.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한국문화를 존중하여 신발 벗고 고택을 올랐던 일화가 한국인들에게는 감동적으로 남아 있다. 열흘간의 세기의 장례식 중 시민들의 배웅 속에서 마지막 여정을 보내고 일 년 먼 저간 에든버러 공작의 곁에 영면했다.

  “내 평생 유일한 여왕이여 안녕히! 어느 시민의 마지막 인사가 바람 타고 널리널리 퍼져 나가고 있다.

하늘나라 복음 소식을 열심히 전하는 전도사로 언제나 사랑의 시 쓰기를 즐기던 오 시인의 일생은 물질적으로는 가난했다. 자신을 위해서는 지출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살아가니 겨울에도 헐거운 옷차림이었고 두 아들의 머리도 직접 손질해 주었다. 그래도 영혼은 부유하여 본향인 천국 소식을 전파하면서 행복한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람들을 대했다.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총무로 십 여년 간 봉사해 오면서 늘 문우들을 챙겼던 선하고 아름다운 여전도사요, 시인이다. 오애숙 시인은 시뿐만 아니라 시조, 소설, 수필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었다. 그야말로 문학의 향기를 품어낼 줄 아는 능력 있는 문학인이었다. 문학여행을 할 때도 무언가 생각날 때마다 펜으로 메모하던 오 시인. 허구의 문학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문학과 접목된 생활을 해왔던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를 위해서 애정 어린 헌신과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은근한 사랑과 그녀가 남긴 수많은 작품은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향기를 발할 것이다. 천국으로 나보다 먼저 간 소녀처럼 천진한 오애숙 시인의 미소가 가슴을 울린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보드라운 바람결에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시골 마을에서 진달래 화채를 보듬고 초가집을 드나드는 내 소싯적 모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진달래꽃이 피는 봄이 되면 우리 어머니와 새언니는 진달래 화채를 만들어 동네방네 선물했다. 나는 진달래 화채를 집집마다 가져다주면서 심부름하는 걸 행복해했다. 어떤 집에 들르면 이웃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예쁘다고 칭찬해 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이 좋았다. 어떤 집에선 달곰한 사카린을 넣어 만든 호밀떡이나 쑥떡을 준다. 그러면 나는 행복새가 되어 우리 어머니에게 전해주면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를 더욱더 즐겁게 했다.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사랑의 통로 역할을 많이 해서인지 지금도 나는 사랑의 통로 역할이 즐겁다.

  요즈음 나는 빈손으로 이 세상을 하직한 사람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렇게도 아름답고 싱싱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어느 것 하나 붙잡을 수 없는 빈손이 되고 만다. 한시도 쉬지 않고 손을 놀리면서 무언가를 움켜쥐었던 손이 마지막 한순간엔 빈손이 되어 다른 세계로 떠나게 된다. 인생은 이 세상을 나그네 같이 떠돌다 가는 허무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나그네같이 허무한 인생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하는 소망이 있는 순례자의 길을 걸을 수 있음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언젠가 다른 세상으로 다 떠난다. 그 시기에는 살아서 많은 것들을 움켜쥐고 싶어하던 손이 스쳐 가는 바람도 잡을 수 없는 빈손이 되고 만다. 그 빈손을 바라보며 추억하며 평가하는 것은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현대사의 상징이었던 여왕님의 빈손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던 손이었고, 오 시인의 빈손은 사랑시를 쓰면서 천국을 알리는 복음을 전했던 손이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나의 빈손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사랑의 통로로 쓰임 받은 미주이민 1세로 기억되기를 소망하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늘따라 푸른 하늘이 더 파랗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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