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인랜드

조회 수 7040 추천 수 1 2015.07.24 09:21:06


눈부신 설산… 불모의 땅… 달에 온듯 '경이로운 자연'을 느끼다

현지인조차 꺼리는 내륙, 4륜구동차로만 탐방 가능

시야 탁 트인 광활한 평원, 맑은 날엔 넋을 잃을 정도

새벽까지 훤한 백야속 트레킹… 흙바람 몰아쳐 겨우 하산

언 땅 녹아 진창에 차 빠지고 변화무쌍 날씨에 기진맥진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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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바트나이외쿠틀 국립공원


 

아이슬란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나라다. 북위 65도로 북극권(북위 66도 33분 이북의 범위) 가까이 오롯이 자리 잡은 이 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이름에서 느껴지는 '얼음'의 이미지 정도만을 떠올릴 것 같다. 혹은 우리나라만 한 크기의 국토에 고작 한 개 지역구민 수준인 인구 32만여명이 모여 산다는 사실을 통해 조금은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을 상상할지도. 경제·시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지난 2010년 분화해 유럽 하늘길을 마비시켰던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 화산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국가파산 등 조금 더 자세한 얘깃거리를 기억해낼지도 모르겠다.

기자 또한 이 섬나라에 대해 손에 쥔 정보가 기껏해야 한 줌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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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랜드 풍경


 무작정 떠나 약 열흘간 4륜 자동차를 타고 아이슬란드의 도시와 해안가, 내륙 곳곳을 탐방했다. 이상은 그 여행에 대한, 특히 인랜드 탐방에 대한 기록이다. 화산활동으로 비교적 최근 생성된 이 섬나라가 역사가 깊은 여느 국가 못지않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는 사실은 미리 일러두겠다.

한국 시각으로 오후2시45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현지 시각 밤 12시45분 아이슬란드 케플라비크 공항에 닿았다. 장장 19시간의 여정이었다. 경유 시간을 제외하고도 꼬박 14시간이 걸렸다.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말로만 듣던 '한밤중의 태양', 백야였다. 이른 새벽녘 같은 어스름한 빛 속을 걸었다. 약간 서늘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아이슬란드 인근으로 멕시코 난류가 흘러 같은 위도의 다른 나라에 비해 춥지 않다는 이야기는 출발 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이슬란드인들도 20세기에 들어 찾기 시작했다는 내륙, 일명 '인랜드' 탐방이다. 이곳의 기후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미 경험했던 사람들의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예언(?)처럼 실현됐다.

◇1일차, 인랜드 탐방 시작=4륜 구동차량을 준비하는 것이 인랜드 탐방의 첫 번째 관문이다. 내륙의 명소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이름 앞에 'F'자가 붙은 도로를 타야 하는데 이곳은 4륜 차량만 다닐 것을 권장하는 곳이다. 험한 길이고 차량 훼손이 너무 당연(?)하기에 보험 처리도 잘 안 된다고 한다. 4륜 차는 일반 승용차보다 2배가량 가격이 비싸다. 물가 높기로 소문난 북유럽답게 하루 렌트비는 손이 떨리는 수준이었는데, 특히 7월 성수기에는 비수기보다 최소 2배 더 비싸진다고 했다.

날씨는 다행히 화창했다. 기상 이변 수준일 정도로 맑다는 말에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지만 이내 후회했다. 실제 이날은 열흘간의 여정을 통틀어 가장 좋은 날씨였다. 자연은 자신이 가진 온갖 색감을 아낌없이 드러냈고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외부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이슬란드는 매우 청정한 지역이기에 이처럼 맑은 날에는 지평선 저 멀리까지 내다보인다. 시야가 탁 트인 광활한 녹색 평원 너머로 새하얀 설산이 보였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물빛에 설???평원을 가득 메운 라벤더를 닮은 보라색의 루핀이라는 식물에 정신을 뺏겼다. 하지만 이 같은 기쁨도 잠시, 동행하던 차량의 뒤쪽 유리창이 갑자기 박살이 났다. 곁을 빠르게 지나가던 트럭이 비포장도로 위 돌멩이를 강하게 쳤고 그 돌이 불행히도 우리 측 차량 창문에 맞은 듯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판지와 테이프로 임시 조치를 한 뒤 일단 여정을 계속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인랜드 명소 중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란드마날라우가르다. 산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와 노천 화산온천으로 유명하며 저렴하게 숙박할 수 있는 캠핑장도 있다.

가는 길에서는 헤클라 화산도 만날 수 있었다. 이 화산은 문헌상으로 처음 기록된 1104년 화산 폭발 이후 큰 화산 폭발만 20~30번이 넘었고 1,300년께는 1년 가까이 용암 분출이 계속됐다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위협적인 화산 가운데 하나다. 중세 유럽인들은 이 산의 정상에 지옥의 문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최근에도 왕성한 활동성을 보여 1970년, 1980년, 1991년 그리고 2000년 총 네 차례 분화했다. 이 산의 남쪽으로 2010년 200년 만에 분화한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 화산을 얼핏 볼 수 있었다. '이외퀴들'은 아이슬란드어로 빙하를 의미하는데 빙하를 뚫고 형성된 화산에는 끝에 '이외퀴들'이 붙는다. 이런 화산이 분화할 경우 용암이나 화산재에 의한 피해보다 홍수 피해가 가장 크다고 한다. 빙하가 깨지며 내부의 많은 물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다리가 끊기기도 한다. 10년에 한 번 정도는 화산이 분화하기에 아이슬란드에서는 다리를 그다지 튼튼하게 만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일차, 변화무쌍한 기후에 손들다=새벽2시가 넘도록 환한 빛 속에서 겨우 잠이 들었다가 트레킹을 하기 위해 4시께 눈을 떴다. 하늘은 여전히 맑고 깨끗했다. 가벼운 복장으로 캠핑장 뒤편 야트막한 산을 올랐다. 하지만 정상에 도달할 무렵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흙과 돌로만 이뤄졌던 민둥산은 우리를 향해 흙과 모래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눈조차 뜨기 힘든 채로 겨우 산을 내려왔지만 날씨는 점점 나빠졌다. 강한 바람에 철수하던 텐트가 통째로 날아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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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클라 화산


 겨우 채비를 마치고 수직으로 아이슬란드 대륙판을 관통하는 스프렝기산두르 산악도로(F26도로)를 탈 수 있었다. 이 도로는 여름이 오는 6~7월부터 열리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여름이 늦게 찾아와 열리는 것이 다소 늦었다고 한다.

이날의 최종 목적지는 바트나이외쿠틀 국립공원 내 대피소(Mountain Hut)였다. 우리나라에서 접하던 비포장도로와는 차원이 다른 오프로드.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았지만 거친 길에서는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아 100㎞를 이동하는 데 3시간 이상이 걸렸다. 풍경 또한 기괴했다.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기 힘든 불모의 땅. 달 탐사를 준비하던 우주인들이 우주비행에 나서기 앞서 달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경험해보기 위해 택했던 곳이 이 근방이라고 한다. '당신이 달을 저렴하게 여행하고 싶다면 아이슬란드로 가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낯선 풍경에 홀려 서행하던 중 또 하나의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며칠간 날씨가 따뜻해 동토층이 녹기 시작했고 이 상황이 곳곳에 진창과 진흙구덩이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마주 오는 버스를 피하기 위해 차량을 오른편으로 이동하다가 진흙구덩이에 앞바퀴가 빠지고 말았다.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방법을 찾는데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우선 다른 차량은 대피소로 이동하기로 했지만 그 두 대 중 나머지 한 대조차 강을 건너다 뾰족한 돌을 밟아 타이어가 펑크 났다. 국립공원 관리자들의 도움을 받아 모두가 숙소로 복귀했지만 너무 많이 지쳐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3일차, 인랜드 아웃 다시 문명 세계로=대피소에서 하루를 보낸 후 밖으로 나오자 세상은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곧 쨍하니 해가 나왔고 눈은 거짓말처럼 녹기 시작했다. 날씨가 더 좋아져 빙하가 녹으면 운전하기가 더욱 힘들어지므로 서둘러야 했다. 이날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은 여전히 강했다.

흙바람 사이로 조심스럽게 차를 천천히 몰았다. 이제는 밖을 내다볼 기운도 없고 녹은 빙하에 더 불어난 냇물·강 등을 차량으로 불안하게 건너며 어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기를 바랐다. 더 이상 눈이나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언제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아이슬란드의 풍경은 시시각각 변했다.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이나 문명은 끝없이 무력하다는 것이 실감 났다.

과거 아이슬란드인들은 내륙에 들어가는 것을 금기시했다고 한다. 그곳은 악마나 요정이 살고 있으며 무시무시한 범죄자들만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왔다고 한다. 남한 규모의 국토를 가지고 있는 아이슬란드지만 대부분은 '링 로드'로 불리는 해안가를 따라 터전을 잡았다. 지금도 아이슬란드인들은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제2의 도시 아쿠레이리로 갈 때 내륙을 통과하지 않고 링 로드를 빙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 경이로운 자연은 소중하게 보존됐다. 최근 산을 좋아하는 아이슬란드 사람들과 모험을 꿈꾸는 여행자들이 4륜 차량을 타고 이곳을 찾기 시작하며 길이 열렸다. 여행자들에게 인기를 끌며 관광버스도 심심치 않게 다니고 자신들의 키만 한 등산 가방으로 무장한 채 길을 걷는 트레커들도 가끔 만날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관광객을 환영하면서도 그동안 지켜온 자연이 훼손되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오프 로드라고는 하지만 정해진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다 작은 식물이라도 훼손할 경우 벌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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