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

[책 속으로] 아는 만큼 써내려간 ‘글장정 25년’ … “지금은 느긋이 세상 내려다본다” 
| 기사입력 2017-08-19 01:01 | 최종수정 2017-08-19 02:15 기사원문
  인터뷰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 편 펴낸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새 시리즈가 나왔다. 이번에는 서울이다. 9권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는 종묘·창덕궁·창경궁 등 서울의 궁궐을, 10권 ‘유주학선 무주학불’은 한양도성·성균관·동관왕묘 등 조선의 문화유산을 다룬다. 이로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일본 편 4편을 포함해 모두 14편이 됐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 편 발간은 반갑고 뜻깊은 소식이다. 1권 ‘남도답사 일번지’가 발행된 게 1993년 5월 20일이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오늘도 새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출판계 유일의 기록이다. 지은이 유홍준(68) 명지대 석좌교수를 만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에 관해 물었다. 그는 어제보다 내일을 더 말하고 싶어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서울 편이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사랑과 자랑으로 서울 편을 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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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사기 9권의 주인공 격인 창덕궁에서 유홍준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나의 발견=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이 아홉 글자 제목에서 중요한 글자는 ‘나의’라는 두 글자다. 그러니까 80년대 거대 담론의 시대가 지나고 90년대 개인의 시대가 열렸을 때였다.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시절, 마침 경기도 호황이었다. 집마다 자가용을 끄는 마이카 시대가 이맘때 시작됐다. 정치와 경제보다 문화와 여가가 더 자주 입에 오르던 어느 봄날 나를 앞세운 여행 책이 나왔다. ‘우리’가 아니라 ‘나의’ 답사기여서 책은 90년대라는 시대 상황과 그대로 포개졌다.


1권을 펴낼 때 유홍준은 44세였다. 혈기방장한 미술사학도는 거침이 없었다. 유홍준은 특유의 입담으로 제도권 교육이 가르쳐주지 않은 문화유산의 의의와 가치를 실감 나게 들려줬다. 여기에서 ‘들려주다’라는 동사는 중요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발표하기 전 유홍준은 이미 잘나가는 강사였다. 답사에서 찍은 슬라이드 사진을 보여주며 ‘미스 신라 보살상’ 같은 이야기를 능청맞게 풀어냈다. 유홍준은 답사와 강연 자료를 토대로 ‘사회평론’에 연재 중이었고, 백낙청(79) 창비 명예편집인이 단행본 출간을 의뢰했다. 유홍준의 문장을 “‘학삐리와 딴따라(지식인과 예술가)’의 장점을 두루 갖췄다”고 평한 주인공이 백낙청이다.


유홍준은 운동권 출신이다. 서울대 미학과 재학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을 감옥에 갔다 왔고 80년대에도 민중미술 활동을 이어갔다. 유홍준의 비판적인 사회인식은 답사기에도 이어졌다. 문화유산에 대한 안목과 이해가 없는 문화재 행정과 군사정권의 입맛에 맞춰 왜곡된 역사 현장을 통렬하게 꾸짖었다. 이를테면 그는 경주 대왕암의 과대포장을 조목조목 짚었다.

‘박정희 정권은 군사 쿠데타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국사교과서에서 고려 무신정권, 이성계를 미화시켰고, 이순신을 비롯한 군사영웅사관을 조장했다. 문무왕의 군인정신 또한 얼마나 신나는 얘기였겠는가(1권, 164쪽).’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성공비결은 한 문장으로 환원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 유홍준의 답사기는 이 슬로건의 끊임없는 확장판이랄 수 있다. 1권 머리말에 등장하는 정확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 돌아보면 강진과 해남에서 답사기를 시작한 것부터 충격이었다. 그때만 해도 강진과 해남은 외지인의 발길이 뜸한 남도 끄트머리의 소읍이었다. 아무튼 이 거대한 대장정은 예의 익숙한 선언으로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이 선언은 오늘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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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문화유산답사기』9권과 10권.


◆사반세기의 여정=『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4권은 모두 380만 부가 팔렸다. 인문교양서 시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기록이다. 물론 1권이 제일 많이 팔렸다. 140만 부 이상 나갔다. 6권까지 출간됐던 2012년 인문서 최초로 시리즈 30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크게 두 시즌으로 나뉜다. 시즌 1은 1∼3권으로 97년까지다. 1권 머리말에서 밝힌 “서너 권 분량이 될 것 같다”는 예상은 98년 북한 편을 출간하면서 틀어졌다. 유홍준은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에 포함돼 북한의 문화유산을 취재하는 기회를 얻었고, 취재 기록을 정리해 4권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를 펴냈다. 2001년에는 금강산을 8차례 다녀온 경험을 엮어 5권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를 출간했다. 4, 5권은 북한 편으로 통한다.


그리고 10년의 공백이 있었다. 그 시절을 그는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표현했다. 박사학위 논문을 썼고 여러 미술서적을 출간했다. 그리고 약 3년 6개월 동안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그는 “원없이 일했고 원없이 터졌다”고 공직생활을 기억한다. 시즌 2는 2011년 6권 ‘인생도처 유상수’ 출간과 함께 시작됐다. 시즌 2에 임하면서 그는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다짐했다(6권 머리말).


시리즈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출간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서울 편을 처음부터 작정했다면 경복궁을 6권에서 먼저 소개할 이유가 없었다. 서울 편은 앞으로 두 권이 더 예정돼 있다. “교토(京都)도 2권인데 서울이 4권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시즌 1은 각 권이 지역이나 주제로 구분되지 않는다. 유홍준은 “책마다 지역과 주제를 안배했다”고 설명했다. 책 한 권에 “충청·전라·경상 등 지역을 고루 배치하고 문화재도 종교에 따라 적절히 배분했다”는 것이다. 7권부터는 제주도·남한강 등 지역 하나를 정해 책을 내고 있다. 책 한 권은 15개 꼭지 내외로 구성되며 각 꼭지는 원고지 100장 정도 분량을 이룬다. 글에 정해진 형식은 없다. 여정에 따라 기술한 기행문도 있고 석굴암 편의 경우 학술논문처럼 가타부타 논리를 따진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전국 방방곡곡의 풍경을 바꿔놨다. 책이 예찬한 문화유산 대부분이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강진 해태식당, 해남 유선여관, 예산 수덕여관, 정선 옥산장 같은 장소가 명소로 떠올랐고 담양 소쇄원, 안동 도산서원, 경주 석굴암 같은 문화재는 새로이 조명됐다. 서울 편에서는 동묘로 알려진 동관왕묘가 새 명소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유홍준 답사기=유홍준은 서울 편 머리말에서 사명감을 말했다. “답사기를 기다리는 고참 독자가 있어 정년을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서 놓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25년을 충성한 독자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자랑거리다. 다만 25년 전의 저자와 독자가 오늘의 출판시장에서도 유력한지는 따져볼 문제다.


1권이 나왔을 때 일화다. 경주교도소에 갇혀있던 박노해(60) 시인은 유홍준의 답사기에서 진보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는 글을 발표했다. 실제로 박노해는 감옥에서 나온 뒤 생명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처럼 유홍준의 답사기는 90년대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해석됐다. 지금은 아니다. 21세기 유홍준의 답사기는 알아두면 여행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교양 정도로 소비된다. 25년 세월 동안 세상도 변했고 유홍준도 변했다.


시방 서점에는 유홍준의 아류라 할 만한 교양서가 수두룩하고 문화유산 정보도 널리 퍼져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낳은 현상이라지만, 너무 많은 ‘나의’ 답사기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자리를 갉아먹는 것은 사실이다. 콘텐트의 변별력을 묻는 질문에 유홍준은 “나는 궁궐의 크기와 구조가 아니라 궁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야기한다”고 반박했다. 사실 서울 부암동의 석파정을 말하면서 흥선대원군(1820∼98)의 글귀를 능숙하게 인용하는 저자는 많지 않다. 10권 제목 ‘유주학선 무주학불(有酒學仙 無酒學佛),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운다’가 대원군의 문장이다. 유홍준의 답사기에서 돋보이는 것은 친절한 정보가 아니라 문화유산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흥이다.


문화재청장 경력이 책에 미친 영향도 살펴볼 일이다. 청장 재임 이후 출간된 시즌 2 답사기에서 개인의 치적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하는 독자가 있다. 이번에 출간된 서울 편 두 권에서 숭례문이 없는 것도 궁금하다. 그의 재임시절 숭례문이 불탔다.

“청장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을 재임 중에 알 수 있었다. 그 경험과 시선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다. 예전에 밑에서 위를 바라봤다면 지금은 느긋하게 내려다본다. 과거와 다른 게 느껴진다면 경륜의 차이로 봐달라. 나는 내 한계를 안다. 말하자면 나는 내수용이다. 외국 문화에 익숙한 후학이 수출용 답사기를 쓰면 좋겠다. 숭례문은 앞으로 출간될 서울 편에서 다룰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나의’ 답사기가 아니라 ‘유홍준의’ 답사기로 읽힌다.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다. 25년 뒤에도 시리즈가 계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울러 애초의 결기도 부단히 벼리길 기대한다.

중앙일보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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