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 자화상

조회 수 17647 추천 수 2 2014.12.21 09: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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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체와 목 부분의 윤곽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된 〈공재 윤두서 자화상〉의 적외선 촬영 사진(가운데), 얼굴 양쪽 가장자리 부분을 현미경으로 확대한 결과 양쪽에 귀가 그려진 사실도 드러났다(오른쪽과 왼쪽 확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첫 과학분석…두 귀·상체·도포 주름도 그렸던 흔적 확인

그림 밑바탕에 색칠도 드러나 “미완성 인물상 아니다”
몸체 그린 방식은 아직 못밝혀
 

우리 회화사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18세기초 선비 화가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국보 240호·해남 윤씨 종가 소장)은 그림을 둘러싼 숱한 수수께끼로도 이름높다. 자기 내면을 투시하는 듯한 형형한 눈매, 불꽃처럼 꿈틀거리는 수염, 안면의 핍진한 묘사가 압권인 이 절세의 초상화는 목과 상체는 물론 귀도 없이 머리통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뛰어난 사대부 지식인이던 공재가 당대 유교적 미의식을 정면으로 벗어나면서까지 엽기적 자화상을 그린 까닭은 무엇일가. 왜 이 걸작은 미완성 그림처럼 남았을까.

한국 미술사학계의 첨예한 논란거리였던 공재의 ‘머리통 자화상’에 얽힌 비밀이 최근 상당부분 풀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지금도 두 귀와 목과 상체의 윤곽이 뚜렷하게 남은, 온전한 그림이었다. 자화상은 윤곽선만 그린 것이 아니라 정밀하게 채색까지 되어 있었다. 단지 이런 부분들이 후대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사실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보존과학실 연구팀이 지난해 용산 박물관 개관 특별전을 위해 윤씨 종가에서 빌려온 액자 형태의 <윤두서 자화상>을 처음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밝혀냈다. 연구팀은 박물관이 최근 펴낸 <미술자료>74호에 ‘윤두서 자화상의 표현기법 및 안료 분석’이란 글을 싣고 상세한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우선 적외선 투시 분석 결과 눈으로 보기 힘든 상체의 옷깃과 도포의 옷 주름 선의 표현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미경으로 자화상 얼굴을 확대해 본 결과 화가가 생략한 것으로 알려져온 양쪽 귀또한 왜소하지만 붉은 선으로 그린 사실도 밝혀져 학계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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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은 1937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사료집진속〉에 상체 도포가 그려진 모습으로 실린 윤두서의 옛 자화상 도판이며 오른쪽 사진은 상체를 볼 수 없는 현재 자화상의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공재의 자화상에 원래 상체가 그려졌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작고한 미술사가 오주석이 지난 96년 조선총독부 자료인 <조선사료집진속>(1937년 간행)에서 상체 윤곽이 보이는 당시 공재의 자화상 도판을 발굴해 공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오주석은 “원래 윤두서 자화상은 밑그림 그릴 때 쓰는 유탄(버드나무 숯)으로 화면 위에 상체를 그렸다가 미처 먹선으로 다시 그리지 않은 채 미완성 상태로 전해졌다”고 추정했다. “후대 표구하는 과정에서 표면을 문질러 유탄 자국을 지워버리는 실수를 한 것”이라는 견해였다. 원래 자화상에 있던 공재의 상체 그림이 후대 표구과정에서 실수로 사라져버렸다는 그의 주장은 이후 통설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이번 조사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사라진 몸체를 그린 방식을 놓고 벌어졌던 학계의 논란또한 다시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림 화면 앞 표면에 몸체를 그렸다는 오주석의 주장에 대해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옛 자화상 사진에 보이는 옷주름은 뒷면에 윤곽선을 그린 이른바 배선법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양보없는 논쟁을 벌여왔다. “<조선사료집진속>에 실린 자화상의 사진은 그림 뒤에서 조명을 비추어 찍었기 때문에 뒷면 옷주름선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라는게 이 교수의 견해다. 

그렇다면 박물관 분석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일단 두 주장 가운데 한쪽에 당장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워보인다. 박물관쪽은 현존 <자화상>의 화면 앞쪽을 현미경으로 정밀 관찰한 결과 화폭 앞 표면에 어깨 부분 옷깃, 옷주름 등을 그린 듯한 부분적인 선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적외선 사진에서 확인된 것처럼 몸체의 형상을 이루는 일관된 선의 흔적은 확인하지 못했다. 통상 적외선 조사는 안료 등으로 가려진 먹선, 즉 채색화의 밑그림이나 먹글씨를 확인하는데 주로 쓰인다. 선이 연속되도록 최소한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먹의 탄소 입자가 적외선을 흡수해 먹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자화상 전면에 보이는 일부 선의 흔적보다 적외선 촬영 사진에서 나타난 몸체의 윤곽선이 더욱 뚜렷한 만큼 앞 표면의 윤곽선이 적외선 사진의 윤곽선으로 찍혔다고 보기에는 미진한 면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놓고 보면 그림 뒷면에서 선을 그려 비쳐보이게 하는 얼개로 몸체를 나타냈다는 이태호 교수의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단정은 어렵다. 이 그림이 액자로 표구되면서 배접(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그림 뒷면에 다른 종이를 포개 덧대는 것)된 탓에 현재 뒷면을 드러내 조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외선 사진에 나타난 몸체의 선들이 앞면에 그려진 유탄 혹은 먹선의 흔적인지, 그림 뒷면에 그린 윤곽선인지는 그림 뒷면을 제대로 조사한 뒤에야 규명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결론지었다. 

하지만 연백과 진사 안료를 써서 그린 양쪽 귀의 윤곽이 현미경 관찰로 얼굴 가장 자리에서 발견되어 공재 윤두서가 귀를 그렸다는 사실은 분명히 입증됐다. X선 촬영을 통한 안료 분석 결과 선으로만 그렸다고 여겼던 자화상의 안면과 몸체, 탕건과 귀부분 등도 화면의 뒷면에 은은하게 채색하는 배채법으로 색칠되어 있었다는 점도 처음으로 밝혀졌다. 논란의 대상인 몸체의 도포는 전체가 흰색으로 은은하게 배채가 되어있었다. 뒷면에 칠한 색감을 투명하게 비치도록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 종이는 젖은 상태의 종이를 여러장 겹쳐 두드려 한장의 종이로 만드는 이른바 도침(搗砧)가공이 이뤄진 종이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결국 미완성처럼 보였던 공재 윤두서의 초상은 사실상 완성품으로 봐도 손색 없는 치밀하고 정교한 인물상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조사에 참여했던 미술부 이수미 학예연구관은 “지워진 줄 알았던 자화상의 상체 부분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점과 배채 채색 사실을 확인한 점이 큰 성과”라며 “액자로 표구하면서 배접지가 붙어 배채법을 쓴 몸체의 색감이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체를 앞 화면에 그렸는지 화면 뒤에 그렸는지의 논란은 앞으로 그림을 다시 표구하기 전까지는 풀리기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분석결과로는 뒤에서 그렸을 가능성에 근접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초본으로 보기에는 완성도가 매우 높아 미완성작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재 <윤두서 자화상>은 그의 후손들이 60년대 말려져 있던 것을 펼쳐서 액자에 표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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