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 융화되는 사랑의 詩學 - 안도현론



1.
프랑스 낭만주의는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가장 자연스러울 때 문학적 깊은 성찰과 깨달음이 나온다.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는 인간의 본성을 자연상태에서 파악하고, 자연상태에서 자유롭고 행복하며 선량하였던 인간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사회제도나 문화에 의하여 부자유스럽고 불행한 상태에 빠졌다. 인간이 보다 윤택한 삶을 위해 과학을 이용하여 자연을 파괴하는 사악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다시 참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여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루소의 작품 속에 나오는 자아의 고백이나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는 유년시절의 기억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추억이며,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과거와 오늘의 점철된 길을 따라 전진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뒷받침한다. 오늘날 첨단 과학의 발달과 기계화된 생활로 생태계가 파괴되어 자연은 병들어 가고 있다.
흐르는 물에서 숭어 떼가 노는 것을 보고 싶고, 울창한 숲에서 새들의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친숙한 벗이기 때문이다. 생존경쟁의 사회를 치열하게 살다가 문득 시골의 기차 정거장처럼 쉬고 싶을 때가 되어서야 미래보다는 과거를 뒤돌아보게 된다. 과거가 없는 오늘이 없으며 오늘이 없는 미래는 없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가지고 있다. 온전히 기쁨만 있는 개인은 없다. 역사의 풍랑은 아픈 기억과 고통의 번뇌로 혼합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행복했던 순간들의 기쁨과 함께 살아가는 동안 잠재의식으로 남게 된다. 이런 때 같은 세대를 살아왔으며, 시를 시답게 쓸 줄 아는 시인을 만난다는 것은 신선한 즐거움이며 잊어버린 과거로의 여행이다. 그런 시인이라면 적어도 잃어버린 일기장의 그리움이나 아쉬움은 없을 것이다.

안도현은 1981년 매일 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으로 당선되었고, 1984년 동아 일보 '서울로 가는 全琫準'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년을 한결같이 꾸준하게 시작활동을 하였다. 일곱 권의 시집들을 살펴보면 그의 동아 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의 제목을 딴 <서울로 가는 全琫準>(민음사, 1985)을 시작으로 두 번째 시집 <모닥불>(창작과 비평, 1989), 세 번째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푸른 숲, 1991), 네 번째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 1994), 다섯 번째 시집 <그리운 여우>(창작과 비평, 1997), 여섯 번째 시집 <바닷가 우체국>(문학동네, 1999), 일곱 번째 시집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 북스, 2001)을 출간했다. 그밖에도 다수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와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가 있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 (서울로 가는 全琫準) 일부

갑오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에서 타락한 관리와 억압된 민중의 목소리를 낸 전봉준을 미화시키는 것이 아닌, 민중항쟁의 역사인식으로 과감하게 표현함으로써 현실정치에 대해 강한 목소리로 질타했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기 전에 그가 원광대학교에 학적을 두지 않았다면 '전봉준'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두웠던 사회와 직접 눈으로 보고 겪었던 암울했던 시대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전봉준을 민주화 현장의 진원지인 광주에다 세우고 시를 대비해 본다. 앞장선 민중의 선봉은 민주화의 카드를 들고 서 있는 전봉준이며 "이름 없는" 많은 시민들의 결집된 함성은 "나약한 들꽃"들로 힘이 없다. 가슴속에 한 맺힌 응어리는 "잔뿌리"로 형상화했다.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 주지 못하는 것은, 총 뿌리 앞에 진압된 도시가 피 흘리며 쓰러진 안타까움이며, 그 애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심한 관찰력은 시를 더욱 빛나게 한다. 피맺힌 사연들이 마치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는 듯 하다. 역사 속의 전봉준이 다시 살아 나오는 듯 아직도 이 시대의 아픔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산업노동자들의 거친 삶이 윤택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 시가 시대의 흐름에도 읽혀지게 되는 까닭이다. 첫 시집을 낼 때만 해도 뚜렷한 역사관을 가지고 분명하게 말하는 현실 참여시를 썼다. 서정적 글쓰기 보다 사회참여에 가까운 시를 다수 보이고 있는 것이 그 근거이다.
첫 시집에서 그의 역사의식을 살펴 볼 수 있다. '사월'에서는 4.19 민주혁명을, '젊은 북한 시인에게'는 6.25 한국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의 청년이 북한의 청년들에게 주는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의 맑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현실정치는 동 떨어져 있어 이상적인 정치적 백서들만 제시해서 자칫 농민혁명이나 현실부정을 노래하는 것으로도 들릴 수 있는 점이 포착되기도 한다. 평온한 세상에서는 불후의 작가를 낳기 어렵지만 자유가 억압당하고 폭력정치의 소용돌이가 이는 불안 속에서는 펜이 강하다. 시인은 학창시절에 '펜은 강하다'라는 글을 새긴 티셔츠를 입고 다닌 적이 있다. <모닥불>과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시집을 보면 그는 교직시절에 겪었던 일화들과 감정들을 비교적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이리중학교 국어 교사로 부임할 때는 1980년대 한국의 정세가 그랬듯이 교육은 낙후되어 있었다. 민주화 운동은 성공한 쿠데타의 정권을 거치면서 억압된 자유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문학인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긴장하고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미래에 조국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에게 참된 교육을 실천하는 일은 어려웠다.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과 교육의 변화를 꿈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산당화야 산당화야
교장선생님한테 불려가 혼나고
너도 숙직실 처마 밑에 나아 섰구나
할 일이 많아서 그리 많은 꽃송이를 달고
몸살 난 듯 꽃잎들이
뜨겁도록 붉구나
- (산당화) 전문

인용한 시에서 시인은 해야 할 일은 산당화의 꽃송이만큼이나 많은데 참교육의 실천을 펼 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고, 오히려 교장선생님에게 불려가 문책을 받으며 구시대의 획일적 가르침으로 말똥거리는 학생들을 보았다. 꽃송이를 지고 있는 나무처럼 가슴 아프게 "뜨겁도록 붉다"는 표현이 시인의 터질 듯한 번뇌의 심정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학생들을 꽃송이에 비교 할 만큼 섬세하면서도 그의 눈은 더 밝은 미래를 내다보았을 것이다. 학교의 문학교육은 문학을 읽고 쓰는 즐거움 보다 삶과 동떨어진 곳에 자리 매김 하고 예술의 하위품목으로 여기는 풍토가 만연함을 시인은 질타한 적이 있다. 그 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되었다.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분주하게 뛰었고 그로 말미암아 생활의 고충도 심했다. "전교조신문 나르고 설문지 나누고 서명도 받으며/어떤 날은 굴비도 팔고 연하장도 팔러 교무실로 갑니다"(학교로 가는 길)일부에서 보듯이 정치적 격정과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시작(詩作) 초기 특유의 문학적 기법을 습득해서 일정한 세계관을 가지고 창작해 나갔다고 본다면 그 후에는 해직으로 인한 체험적 삶을 살면서 그의 시상도 점차 바뀌어 갔다. 하루에도 수십 번 선생질을 때려치우고 싶었던 힘겨운 시간들도 지내고 보니 간절한 선망의 그리움이 되었으며 복직되기를 갈망했다. 삶이 투쟁의 대상이 아닌 것은 퇴색한 젊은 시절의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는 민주 투쟁의 과격한 언어나 정부의 전복을 기도하는 음모나 지령은 찾아 볼 수 없다. 그가 1980년 민주투쟁의 진원지에서 겪었던 군인들의 전투복과 약한 시민들의 군상 속에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참상을 보고 경험을 했는데도 왜 문학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는지 궁금하다. 그것은 진정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상처가 더 악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
상처뿐인 시인은 세상의 자연과 연민을 노래하거나 사랑의 테마로 시를 쓴 3번째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를 출간했다. 시의 정수리에 물을 붓듯 서정적 연시(戀詩)가 주를 이루고 있다. 시집이 나온 해가 1991년이니 복직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나온 시집이다. 그가 춥고 기나 긴 겨울의 벌판을 걸었다면 그에게 과연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분명한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그리워할 수도 있지만 정신적 고통으로 핍박 받던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길가에 민들레 한 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 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 (사랑한다는 것) 전문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이 아픈 사람을 위로 할 수 없는 것처럼 체험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강한 의지와 간절함이 배어 나온다. 또한 사랑이 하나의 객체의 연인이 아닌, 주체의식의 뜨거움과 표현적 동일성을 담고 있다. 가슴으로만 하는 연애는 뜨겁지만 쉽게 식을 위험이 있고, 손끝으로만 하는 연애는 가벼운 기술로 사랑을 좌우할 수 있어 가슴과 손끝이 함께 하는 연애 속에서 시인은 시를 창작한다. 시제는 과거이지만 구체적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의 내면공간을 형성하는 과거와 현재는 동일성을 지니며 깊은 깨우침의 철학이 있다. 내일의 기약이 없던 암울했던 시대의 수레바퀴에서 몸소 길에 나와 지나가는 범 우주적 공동체가 담기길 바라고 있다. 또한, 긍정적 존재와 가치를 시에 국한하지 않고 묵묵히 서정적 담론으로 담고 있다.
결국 길고 긴 인생 역경을 이겨낸 그에게 비로소 작지만 큰 의미가 주어진다. 작다는 것은 전교조활동을 안 하겠다는 것에 대한 서명이다. 오랜 방황을 접고 현실과 타협해서 절반의 승리를 한다. 1994년 꽃이 만발하던 봄에 전북 장서 산서 고등학교로 복직을 한다. 산중 오지나 다름없지만 시인은 여기서 그 동안의 힘겨웠던 여정을 풀고 자연과 친숙하게 된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 자연과 삶이 융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골에서 살아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유아기를 보냈고, 안동군 풍산면 풍산 초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 가까이 처음으로 산이 솟아올랐고, 들이 펼쳐졌고, 개울이 소리 내어 흘렀다고 할 만큼 해직시절의 긴 터널을 빠져 나와 회한과 뉘우침으로 자연을 바라보았으며 토속적이고 자연 생태적인 풍경을 시로 담아낸다. 그것이 '산서일기'와 100여 편에 가까운 연작시이다. 시인은 오리나무와 칡꽃과 고추잠자리와 버들치를 비로소 알게 된다. 여기서 그의 시는 한번 더 성숙하지만 오히려 속세를 탈피하는 배타주의의 선상에서 자연주의를 갈구했는지는 좀 더 살펴 보아야 한다. 그는 4번째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출간한다.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했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 (연탄 한 장) 일부

시인은 일상의 모든 것들이 자연과 삶의 융화로 어우러질 때 자연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느낀다. 연탄은 모든 것을 연소해서 존재를 입증한다. 사랑도 연탄처럼 연소될 수 잇는 것인가? 이미 타버린 연탄을 보면서 인간의 나약한 내면과 이중적 인격을 여실히 증명한다. 사회의 질서를 외치면서도 자신은 이기적 합리성에 젖어 살기에 연탄처럼 기꺼이 소멸될 수 없었음을 한탄한다. 자연과 인간이 융화될 수 있을 때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연과 삶을 사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연탄 같은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거기에는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객차에 한 사람의 손님도 타지 않았다면
화물 칸에 라면상자 하나 싣지 않았다면
비록 떠난다 해도 너는 우스운 쇳덩어리일 뿐
그 누구에게도 추억이 될 수 없을 거야
이 세상 끝에서 끝까지 얼마나 많은
-중략
나중에 커서야 알았지 세상을 많이 아는 것도 어렵지만
세상하고 더불어 사는 건 더욱 벅차다는 것을
이제 슬쩍 너에게만 말해줄게 있는데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간이역의 이름처럼
앞으로 많은 날들이 너를 녹슬게 하겠지만
기관차야, 철길 위에 버티고 서있지 말고
새 길을 만들어 달릴 때 너는 기관차인 것이다
끝이다. 더는 못 간다 싶을 때 힘을 내
달릴 수 있어야 모두들 너를
힘센 기관차로 부를 것이다
- (기관차를 위하여) 일부

이 시에서 기관차는 시인이다. 산문적인 이 시의 형태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미래지향적이다. 과거를 돌아보며 불확실한 내일을 향해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노력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젊고 패기 넘치는 문학청년기에서 추진력도 있었고 전진하는 행동도 보이지만, 뜻을 같이 하던 소수의 목소리는 빈 객석의 쓸쓸함을 표현하며, 삶은 계란 같은 관습을 타파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절실함이 배어 있다. 라면상자 하나 싣지 않은 외로움이 주눅들게 하고 궁핍한 삶이라도 현실을 인식하려면 우선 자만심을 버리라고 말한다. 80년대 후반서부터 감지된 시대적 변화와 경제불황의 현실 앞에 세상하고 더불어 사는 것이 더욱 벅차다는 것을 알려준다. 기관차는 옛 것이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옛 것을 익히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고 했다. 오래된 것을 묵혀만 두지 말고 꺼내서 새롭게 변화하는 내일을 향해 전진하자고 시인은 힘주어 말한다. 또한 한반도는 동족상잔의 분단국이며 슬픔이 상존 하기 때문에 진취적인 대륙을 향해 힘찬 기상을 가질 것을 간접적으로 권하고 있다. 복지부동의 나태한 삶의 자세는 국가나 개인적으로 낙후만 되어갈 뿐 발전되지 못한다. 스스로 녹슬지 않기 위해 높은 기상을 간직하는 낮춤으로써 높음을 바라보는 세상을 깨닫는다. 시인 스스로 삶에다 시를 밀착시키고 시와 함께 삶을 접목시키려던 꿈이 궁핍한 시절을 견디는데 어느 정도는 가감이 되었겠지만, 외로웠던 것은 과거의 일부이며 쓸쓸한 것은 지나간 추억일 뿐 현존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부재의 독백이다. 지나간 과거를 회한과 뉘우침으로 그리워하는 것은 내일을 위해 도약하는 거듭나기이다.

3.
시인은 1996년에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를 간행했는데 다소 의외였다. 독자들은 그의 시를 읽으며 대리만족과 위로를 받는다. 참다운 교육에 대한 회의와 함께 시골마을에서 그가 펼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종이와 펜이었다. 동화는 호수처럼 갇힌 그의 시상에 잃어버리고 싶은 않은 가족과의 사랑과 그의 추억들을 종합해서 만든 것이다. 자칫 잡문이라고 할만큼의 비평도 감수한 것은 기관차를 위한 시처럼 새 길을 만들어 달리고 싶은 충동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의 복직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던 자괴감(自塊感)으로 인하여 너무 쉽게 교직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의 결론을 내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至大計)라고 하는데 좀 더 꿈나무 육성에 힘을 모으고 현직에 있으면서 조금씩 참교육의 뜻을 펼쳤으면 어떠했을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도 한국의 문화는 교육적 좌표를 잃어버린 거대한 군함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아쉬움을 토로하는지도 모른다. 문학과 교육의 두 갈래에서 그는 문학을 택했다. 시인에게 보다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덮는다.
그의 5번 째 시집 <그리운 여우>를 출간했다. 형식상 4부로 나누었지만 자연을 노래한 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 교직에 있던 시절에 쓴 몇 편의 시를 포함해서 (자작나무를 입장을 옹호하는 노래), (제비꽃에 대하여), (단풍나무 한 그루), (화엄사) 연시와 (나와 잠자리의 갈등) 연시, (냉이꽃), (제비집), (나뭇잎 하나)등과 같이 자연과 친밀감을 보여주며 세심한 관찰을 통하여 마치 자연과 대화를 나누듯 삶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돋보인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 (겨울 강가에서) 전문

안도현의 시 세계를 서정적 이미지로 잘 보여주는 시이다. 내리는 "어린 눈"도 매몰차게 버리지 못하고 가슴속에 담아 두고 싶었던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자연의 눈을 미성인(未成人)의 꿈으로 비교하고 강을 시인으로 비유, 해석해 본다. 눈발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씩씩하게 살아가지만 세상을 모른다. 기성세대가 된 시인이 보는 세상은 눈조차 어린 꿈나무로 보았을 것이다. 닭장 같은 교실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꿈들이 한꺼번에 맞이해야 할 치열한 생존경쟁이다. 그 참혹함은 강물 속으로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눈들이 가진 꿈의 포기였다. 현실에 적응해서 살아남은 그는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몸부림쳐 보지만 언제나 세상은 세찬 강물이었다. 안타까움으로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형태적 공간으로 이동한 다음에야 살얼음처럼 시린 가슴이 된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관념적이지 않고 강의 가장자리서부터 얼음이 오는 자연의 관찰과 흔적이 묻어나는 것은 이 시의 빼어난 은유적 묘사이다. 아마 지금도 시인은 동일한 마음으로 나무도 되고 꽃도 될 것이다. 보다 인간다운 모습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시인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꿈이 있다. 앞으로도 그는 그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향해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운 여우'에서는 할머니의 품 내지 아버지의 품에서 들었을 법한 동화이야기처럼 옛날의 따뜻했던 공동체적 삶의 공간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과거 그의 어느 시집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그는 자세를 낮추고 현실에 순응하며 한 발짝 물러서 조용한 목소리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언어를 풀 때는 풀고 당길 때는 당길 줄 아는 시인이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6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그는 시집 제목과 같은 바닷가 우체국과 시골 이발관, 포장마차, 옛 우물, 그리고 양철 지붕과 같은 시골마을의 풍경과 풍물을 시집에 담았다. 한국전쟁이전과 이후를 거쳐 70년대 후반까지 우리들이 살아왔던 고향의 모습이며 맑고 투명했던 서정적 근원지로, 잃어버렸던 우리의 오래된 앨범이다. 거기에는 두 엄지와 검지를 연결해서 사진을 찍는 흉내를 지어 보이는 것과 같은 낭만과 멋이 있다. 이렇게 시는 삶과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숙성되는 것이다. 통속적이고 객관적인 글의 유희나 달콤한 묘사가 아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삶의 체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다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바다를 건너가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 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바닷가 우체국) 일부

이 시는 그의 시세계와 미래에 대한 단상을 제시해 주는 작품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가슴에서 애절한 마음을 보낼 대상이 없었다는 것은 인생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이 시에서 늙은 우체국은 누구인가. 그건 의인화한 사회의 관습과 순수한 감정을 도외시하는 대중을 말한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더 이상 유치한 것이 아니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부터 가지자 표현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은유화해서 영화의 아름다운 배경을 연상하게 한다. 부치지 못한 편지는 시인이 열망하는 꿈이다. 소년시절만이 아닌 꿈이다. 언제나 가슴속에 있고 상상력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꿈이 아닌 상상력과 현실을 연결해주는 것이 꿈이며 또한 열정이다. 자신에게 새롭게 만나지는 편지를 쓰고, 받고 싶어한다. 살아 남기 위해 사랑한 것이 아니고 사랑하기 위해 살았다고 묵은 그리움을 고백한다. 그의 세계는 넓다. 수평선 넘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보는 심안의 세계와 바다를 바다로만 보지 않고 꿈틀거리게 하는 것은 그의 능동적 작법이다. 고정된 사물을 의인화시켜 생명을 불어넣는 시인의 심안은 시를 시답게 하는 요소이며, 그런 그의 특유의 기법이 놀랍다. 외로움을 달래면서 여유 있게 삶을 바라보는 사랑이 담긴 그리움의 시학(詩學)이다.

4.
시인의 초기 작품에서 현실 참여시에 바탕을 둔 민중시를 다수 보였지만 근간에 나온 7번째 시집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를 보면 주요 작품들은 새로운 자연주의를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90년대 현대시의 흐름에 편승한 해체시(解體詩)나 형태파괴시(形態破壞詩)를 배격하고, 죽음의 시학을 거부한다. 그는 시를 목적과 의도에 의해 끌고 가지 않고 시가 가자는 데로 그냥 따라 나서는 시인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은유의 기법과 생태적 관점, 서정적 이미지로 그리면서 자연과 함께 살아 숨쉬는 생명의 소리까지 듣게 되고,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삶이 융화할 수 있도록 느끼게 해준다. 비록 끊임없는 새로운 시어(詩語)들을 갈망하지만 자연과 함께, 생명체와 함께 호흡하는 생태계가 원천이 되는 것이 바로 시인이 추구하는 시 세계이다.

등꽃이 피었다
자국이다
저 것은
허공을 밟고 이 세상을 성큼성큼 건너가던 이가
우리 집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내 사는 꼴 들여다보고는 하도 우스워
혼자 키들거리다가 그만
나한테 들키는 순간이었는데,
급한 김에 발자국만 여러 개 등나무에 걸어놓고
이 세상을 빠져나간, 그 흔적임이 분명하다
얼마나 가벼워져야 나는 등꽃, 등꽃이 되나
- (등꽃, 등꽃) 전문

만일 시인이 앞서 말한 힘겨운 삶의 굴곡을 거쳐오지 않았다면 섬세한 표현으로 자연을 노래하는 서정시인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더 현실적인 사회참여의 글로 어렵고 힘들게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세태의 풍자시나, 밝고 미래지향적인 문학의 자유주의자로 끊임없이 현실과 부딪치며 저항적 거대담론을 펼쳤을 것으로 짐작한다. 앞으로는 경제적 어려움과 무분별한 삶의 풍토를 속에서도 현실의 직관을 가진 시인으로 거듭나 주길 바란다. "성큼성큼 건너가던 이"는 천진스런 시인, 자신을 말하고 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시인이란 자연과 함께 하고 그 속에서 바라보는 은은함이 바로 나무의 잎이 되고 꽃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처음이 없는 나중은 없다. 그 동안 보여왔던 낭만주의적 시 세계를 떨쳐내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는 시발점으로 나무는 우리들과 함께 영원 할 것이다.

세상에, 아직도 시를 읽는 사람이 있나, 하고
너는 마치 고장 난 엔진처럼 툴툴거리겠지
하지만 말이야, 배를 천천히 뭍으로 올려놓는 순간,
그 어둡던 바다도 배도 단번에 환해졌단다
그때 덩달아 끼룩끼룩 울어 준 것은 갈매기들이었고

너는 이해할 수 없다고, 바다만 바라보겠지
나는 배를 데리고 갈 방도를 생각하느라
20년 동안이나 끙끙대며 시를 쓴 것 같다.
배를 분해해서 옮기는 일은 재미가 없을 테고
트럭 짐칸에다 배를 통째로 태우는 건 더 우스꽝스런 짓이지
- (낭만주의) 일부

불확실한 현실에서 폐선이 되어버린 그리움과 시 세계에 대한 열망을 시인은 보듬고 있다. (살구나무 발전소), (논물 드는 5월에), (석류)등 시집에 실린 시들도 자연의 풍경을 그려내고 그 속에서 삶의 대상을 찾고자 한다. 돌아보고 반성하고 의식적으로 깨우친다. 그 바탕 위에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는 소박한 미래가 돋보인다. 시인은 20년 동안 시를 써 온 것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자연과의 융화로, 끊임없이 노력한 산물이다. 정보의 홍수에 사는 현실에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자연이란 공기를 마시는 일에 불과할지 모른다. 어떠한 모습으로든지 독자들에게 다가가 함께 하는 시인은 소신껏 문학의 세계를 열고 있다. 분명한 자기성찰과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시인이기에 인간애(人間愛)가 넘치는 이야기를 기대한다. 전자파가 범람하는 사이버시대의 결과 지상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진 인간들에게 시인은 우스꽝스런 몸짓일지라도 심금을 울리게 한다. 시인의 소박함과 금강하구에서 만난 숭어 떼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묘한 자연의 생태(生態)를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시인을 통해서나마 자연을 만나는 것은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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