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승이 마주앉아 바둑을 두는데 /바둑판 위에 대나무 그늘이 시원하네
대나무 그림자에 가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때때로 바둑 두는 소리만 들리네
山僧對棋坐 局上竹陰淸 映竹無人見 時聞下子聲
백낙천이라고 더 잘 알려진 당(唐)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읊은 시로 또다른 정자의 흔적을 찾는다.
전북 고창 서호정(西湖亭), 아산면 남산리 남산마을 경로당 옆 함양 박씨(咸陽朴氏) 서호(西湖) 박인석(朴仁錫 1860~1919)이 지어 소요처로 사용했던 정자이다.
1958년에 중건 아산면 성산리 출신으로 고당(顧堂) 김규태(金奎泰), 효당(曉堂) 김문옥(金文鈺) 등과 근친했던 담재(澹齋) 김진명(金振明, 1906∼1978)이 시(西湖亭次韻)를 남겼으며 운석(雲石) 장면(張勉)과 일제시대의 대학자이자 서예가인 보정 김정회(普亭 金正會 1903-1970)가 현판을 썼다. 그리고 함양인 수산 오병수(壽山 吳秉壽)가 기문을 남겼다.
경향((京鄕) 각지의 여러 선비의 시문이 사방의 벽에 걸리고, 서호정 제영록(西湖亭題詠錄)이 간행(刊行)되었다.
우진각, 홑처마 앞 3칸, 옆 2칸으로 구성됐다.
1958년 편찬한 무장읍지에 서호정제영록(西湖亭題詠錄)이 남아 있다.
전의(全義) 이종렬(李鍾烈)이 어느날 이곳에 들려 시주로 즐기며 시를 남겼다.
성곽 뒤 정자를 지어 몇 번이나 헤아려 보니
밝게 빛나는 편액은 위대한 서까래를 더했다.
구름 속에 같힌 숲속 살만한 곳이 의심되는데
돌위로 맑은 물 휘돌아가는 별천지라네
이어지는 그의 감흥에서 호수위에 정자가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
산만하게 쌓은 거문고와 책 고매한 선비 잠에 들고
베옷으로 세상과 담을 싼 신선은 자고 있네
남겨진 글들과 빼어난 정치 누가 가벼운 곳이라고 할까
호수 위에 맑은 들보 바로 활현히 펼쳐지네
정자명 서호(西湖)는 송나라 때의 은사(隱士)인 임포(林逋)를 서호처사(西湖處士)라고 이르면서
임포처럼 산림에 은거해서 평생을 보내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임포는 서호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여 20년 동안 성시(城市)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며,
서화와 시에 능하였고 특히 매화시가 유명하다.
장가를 들지 않아 자식이 없었으며 매화를 심고 학을 길러 짝을 삼으니,
당시에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하였다.
사후(死後)에 화정선생(和靖先生)이란 시호를 받았다. 宋史 卷457 隱逸列傳上 林逋
그들은 정자에서 무엇을 했을까?
만년에는 스스로를 향산거사(香山居士), 취음(醉吟)선생이라고 하였던
백거이, 당(唐)의 시인으로 자유로이 읊었던(逍遙詠) 시를 암송하며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꿈으로 대리만족한다.
이 몸을 그리워도 말고 / 또한, 싫어하지도 말아라
이 몸은 만겁(萬劫) 번뇌의 뿌리거늘 어찌 그리워 하랴/또 이 몸은 허공 같은 먼지가 모인 것이니
그리움도 없고 싫어함도 없어야/비로소 자유로이 노니는 사람이리라
赤莫戀此身 赤莫厭此身 萬劫煩惱根 一聚虛空塵 無戀赤無厭 始是逍遙人
시에서 겁(劫)은 불교(佛敎)의 용어로, 하늘과 땅이 한번 개벽(開闢)한 때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기간이라는 뜻. 즉 지극히 길고 오랜 시간을 이르는 말이다.
정자는 우리네 선인들이 5000년 유정천리의 맥을 잇는 공간이었다.
조선 중기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의 백년(百年)이란 시로 또다른 정자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백년 살며 무단히 만년 계책을 세우고 / 오늘 살며 또 다시 내일을 걱정하지
힘들게 사는 일생 끝에 가선 뭣에 쓸까 / 북망산 무덤들이 그 모두가 공후라네
百年便作萬年計 今日還爲明日憂 役役一生終底用 北邙丘壠盡公侯/象村集
문화.오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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