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와의 전쟁/ 청조 박은경
[10년전 이야기를 수정해 올려봅니다]
살다 보면 전혀 원하지 않아도 싸움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지만 막상 공격할 수 없는 예도 있다. 바로 지금의 내 상황이 그러하다. 내가 이곳 미네소타주에 정착한 지 사 년째, 어느 정도 환경에 적응했지만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벌레들의 공격이다. 북미대륙의 긴긴 겨울이 끝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오월에 첫 공격을 맞으니 그들의 이름은 피쉬플라이(Fish fly).
운이 좋아 이 기간에 바람이 반대방향으로 불면 호수 반대쪽이 공격을 당하지만 거의 매년 바람은 우리 쪽으로 분다. 성체의 벌레는 하루살이처럼 곧 죽고, 머무는 기간은 불과 이삼 주에 불과하지만, 낮이고 밤이고 차에 사람에 붙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우리를 괴롭힌다.
밝은 곳을 좋아하는 이 녀석들 때문에 차를 일부러 으슥한 곳에 주차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큰 효과는 보지 못한다. 특히 우리는 밤새 불을 켜 놓아야 하는 호텔이다 보니 아침 출근과 함께 호텔 전면 벽 아래에 수북이 쌓인 벌레의 사체를 치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때로는 그 양이 너무나 많아서 쓰레받기로 한참을 걷어내고 불로어(blower) 바람으로 청소를 하고도 하루종일 코에 생선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근처에 있는 주유소도 사정은 마찬가지라서 나는 이 기간에는 아예 우리 동네에서 주유를 안 하고 멀리 다른 곳으로 가곤 한다. 올해는 날씨 변화인지 아니면 윤달의 탓인지 한번이 아니고 세 번에 걸쳐 피쉬플라이의 공격을 당했다. 정말 세월이 지나고 매년 겪는 일이지만 적응이 안 되는 골칫덩어리 들이다.
죽은 벌레들을 다 치우고 한숨 돌리나 싶으면 곧이어 메이플라이(May fly)의 기습이다. 이름은 오월 벌레인데 대개 유월에서 칠월 초에 나타나 우리 주위를 맴돈다. 그 모양이 작은 잠자리처럼 제법 예뻐서 곤충 애호가들은 일부러 찾아보기도 한다지만 그래도 낚시꾼들에게는 골칫거리이다. 오월 둘째 주부터 정식으로 낚시를 허용하는 이곳 호수에는 이때쯤 해서 많은 낚시 인파가 몰려오는데 벌레들이 호수 위를 맴도니 미끼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녀석들은 구름처럼 몰려다니기 때문에 가끔 교통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한번은 다리에서 브레이크를 잡던 자동차가 도로에 수북이 널린 벌레들 때문에 미끄러져서 대형사고를 일으킨 적도 있다고 한다. 우리 호텔에도 드나드는 손님들 틈에 따라 들어오는지 여기저기 벽에 붙어서 이곳 사정을 잘 모르는 투숙객들을 놀라게 하기 때문에 청소할 때 자세히 살펴 처리해야 하는 고충이 있다.
어디로 들어오는지 창가나 양지바른 문쪽에 수북수북 쌓이고 벽이며 천정이며 마구 점령한다. 아침에 진공청소기로 깨끗이 청소해도 오후만 되면 도로 까맣게 쌓이니 참 방법이 없다 안에서는 진공 청소기로 밖에서는 약을 뿌리고 불로어로 불어 버려도 다만 그때 뿐이다. 녀석의 등껍질은 갑옷같이 단단하고 화려하지만, 건물 외벽 CCTV에 앉은 배 쪽으로 확대되어 찍힌 모습은 외계물체처럼 공포스럽기까지 하였다.
며칠 동안 날이 흐리고 춥더니 어제는 볕이 좋아 화분들을 밖에 두었다가 들여놓으며 큰 곤욕을 치렀다. 작은 체구를 잎사귀 사이사이에 숨었다가 잡으려 하면 매끄러워 톡 떨어져 죽은척하다가 돌아보면 날아가는 녀석들. 머리카락에, 팔에 붙어 스멀스멀 기어가고 깨물고,,, 오늘 보니 화분 주위에 죽은 무당벌레가 수북하고 주변 벽에도 몇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아무리 상생하며 사는 삶이라고 하지만 벌레들과 공존하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같다. 미리 방비하고 해마다 두 차례 건물 주변에 벌레약을 치지만 이곳을 떠나기까지는 벌레들과의 전쟁은 계속될 것 같다. 이제 긴 겨울과 흰 눈에 파묻히기 전에 주변을 깨끗이 치우고 벌레가 살만한 환경을 없애보지만 아무래도 이 싸움은 지는 싸움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