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마른 빨래 ㅣ 이훤
가령 과일을 먹을 때도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건강을 위해 먹는지. 먹고 싶어 먹는지. 몇 개를 먹는 게 나의 둘레와 무게에 가장 적합할 것인지. 나를 너무 자주 앞지르는 나를 어찌할까. 아차 하면 삶에 추월당하고. 와중에 내일까지 보내야 할 부과금 따위에 대해 부지런히 고민하는 나에게 세계가 말하는 것이다. 너는 지금 서 있어. 멀리 있는 곳에 들어설 거야. 신문을 읽거나 타이를 매지 않아도 구태여 어느 호칭에 합격하지 않아도 한 무렵의 너와 멀어지게 될 거야. 수많은 너를 하의처럼 벗어던지고. 탈의된 날들을 한참 지켜보는. 그곳의 나를 덜 마른 빨래처럼 자꾸 들었다 놓았다, 스스로 기다리는. 그런 날이 올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