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기
정순옥
나쁜 사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크게 튀어나온 소리에 흠칫했었다. 교묘한 수단인 새치기를 하고서도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카운터로 향하는 못된 여자의 뒷모습이 그렇게도 꼴 보기 싫을 수가 없었다. 웬일인지 지금도 불쑥불쑥 그 여자의 교활한 모습이 떠오르면 나는 기분이 나빠진다. 아마도 나는 새치기하고서도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 행동이 너무도 불쾌했던 모양이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스러운 행동을 하던 그 사람의 뒷모습이 오랜 시간이 흘렀 는데도 잊히지 않는다.
새치기로 지금도 내 기분을 떨떠름하게 하는 그 여자를 본 시기는, 한국 고유 명절인 추석을 보내기 위해서 마켓에서 물건을 살 때였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추석명절을 고국에서 보내게 되어 행복한 마음으로 언니를 따라 마켓에 갔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물건을 고르니 명절이 다가오고 있음이 실감이 났었다. 물건을 담은 카트를 밀면서 수많은 사람들 중에 끼어 카운터로 향하는 긴 줄을 서서 움직였다. 카운터에 가까이 왔는데, 언니가 갑자기 무엇인가를 더 사야 한다고 하면서 빠져나갔다가 봉투 하나를 들고서 불편한 다리로 다시 내 앞에 섰다. 그때, 그 여자가 옆에서 물건을 고르더니 언니 앞으로 불쑥 끼어들면서, “저 물건 하나 더 고르고 왔는데요.”라고 한다. 언니는 “그래요?”라고 대답하며 진실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보살 같은 언니가 그 여자를 앞으로 끼워준다. “아닌데요~! 내가 긴 시간 줄을 서서 오고 있는데 왜 새치기해요?” 나는 화가 나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못마땅하게 말했다. 뻔한 거짓말에 열불이 나는데도 언니 때문에 참아야 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속에서 화가 난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들었으면 이렇게 화나지 않을 텐데---, 나는 역시 아량이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가끔 고국 방문하면, 급격한 사회발전에 따라 새로운 시스템들이 생겨 나를 당황케 할 때가 있다. 한국에 가서 행정처리 할 일이 있어 관공서에 갔을 때였다. 필요한 창구 앞에 아무도 없어 갔더니 번호표를 요구했다.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더니, 번호표 뽑는 기계에서 번호표를 뽑아야 한다고 직원이 설명해줬다. 내 앞에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지금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대신에 번호표를 뽑은 후 순서를 부르면 담당자를 만나 편리하게 일 처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은 새치기를 방지하는 방법으로 어디를 가든지 번호표를 뽑은 후에 순서를 기다리니,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공서뿐만 아니라 마켓에서도 새치기를 막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새치기는, 공공장소에서 순서를 어기고 남의 자리에 슬며시 끼어드는 행위로 경범죄 처벌법까지 적용되는 행위다. 새치기 문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새치기로 종종 말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온갖 종류의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살이에서 그까짓 새치기 좀 했다고 무슨 문제냐는 식으로 묵인해 버리면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새치기가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사회생활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타인에게 방해되는 나쁜 습관은 인격과 시민의식을 저하 시키지 않겠는가. 질서의식을 갖고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은, 수준 높은 사회문화를 보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상쾌해진다. 새치기하는 사람을 보고도 굳이 지적하거나 반성을 하게 만들려 하지 않으면, 사회의 질서의식 확립이 지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전쟁 후,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는 새치기가 삶의 기술이기도 하였다. 물량은 적은데 점잖게 순서만 기다리다 가는 살아나갈 수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새치기에 대해 응징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있고, 세계가 한국문화는 특이하고 매력적이라면서 많은 관심을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살면서 기본적인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새치기 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람은 온전할 수가 없으므로 실수하는 때도 있으면 자기의 잘못을 사과하고, 꼭 새치기해야만 할 형편에 있으면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하면 어느 누가 모른 체 하겠는가.
나도 새치기를 한 경험이 있다. 유럽여행을 할 때였다. 음식이 체질에 맞지 않으니 배탈이 나, 뱃속이 부글거리고 아팠다. 설사가 나오려 하자,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자동차 운전사에게 급히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요청했다. 급기야 차에서 내리자마자, 길게 늘어서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화장실 문 앞으로 달려갔다. 너무 급한 표정을 하자, 들어가려던 사람이 양보해 주었다. 나는 이미 팬티가 젖었고 눈물도 조금 나 있는 상태에서 용무를 마치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정말이지 나에게 자리를 양보한 사람이 아주 고마웠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어색하게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계속하면서 걸어 나왔다. 그때, 사람들마다 웃는 표정으로 나에게 “필스 베터?” Feels better라는 기억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내가 생활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선 어디에서나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행동이 습관화되어 있다. 어쩌다 순서가 엇갈리면 ‘미안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그런데 고국에 가면 새치기하는 사람 때문에 가끔 불쾌할 때가 있다. 다음엔 선진국 대열에 있는 놀랍고도 신기한 국민성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스스로 다짐해 본다. ‘새치기’하여 아름답지 않은 뒷모습을 남기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자고.